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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66화 (166/224)

166. 7층의 살인마 (2)

“칼도 통하지 않습니다, 천수 님.”

총뿐만이 아니었다. 단원들이 다가가 재단사의 몸을 찌르는 장면을 목격했는지 제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제, 제길!”

“아무것도 안 통해!”

단원들은 주춤주춤 다시 집에서 걸어 나왔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보며 서둘러 외쳤다.

“다시 돌아오세요!”

지금 상태에서 공격만 계속하면 체력, 무기 소모만 될 뿐이었다.

“이쪽으로!”

그러자 놀란 두 명이 서둘러 고천수의 지시를 확인하고 되돌아 뛰었다.

고천수가 그들의 뒤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재단사가 함께 따라오지는 않았다.

“제나, 안에 있던 재단사 놈은 총알을 그냥 무시하기만 했어?”

“그건, 아닙니다. 총을 맞고 주춤거리기는 했습니다. 칼도 마찬가지입니다.”

타격 판정은 받는다.

그리고 지금 곧바로 따라나오지 않는다.

‘이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 건…….’

경직이다.

적어도 총을 맞고 움직이지는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게 문제네.’

탑의 바깥 세계가 그래도 현실과 조금 비슷한 면이 있었다면, 탑 내부는 확실히 게임 쪽에 가까운 듯했다.

총과 칼이 지금 통하지 않는다고 하면, 게이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역시 조건부로만 퇴치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는 게 나은 거 아님?

-굳이 상대할 건 없을 듯.

-겨우 O 구역에서 지지부진하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음.

맞는 말이었다.

도개교가 언제까지 사용 가능한지도 아직 정보가 없었다.

현재 있는 O 구역에서 빠르게 열쇠를 확보하며 도개교까지 가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면 지금 갈 곳은 바로 북쪽인 K 구역이었다.

“방향은 잡았습니다! 다들 저 안에 든 놈은 무시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이미 한 번 도발을 해 버린 것이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이곳에서 달아나는 것부터…….

덜컹!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재단사가 문을 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오우 쒯.

-바깥으로 나왔는디?

-겁나 화나 보임.

재단사는 제나의 말로만 들었을 때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2m는 될 법한 키에 어마어마한 덩치를 보고 고천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냐, 괜찮아.’

그래 봤자 들고 있는 건 칼과 줄자…….

‘어?’

아니다.

웬 검은 옷감처럼 보이는 것을 손에 또 쥐고 있었다.

“이런 시발!”

고천수는 놀라며 얼른 총을 치켜들었다.

“탕!”

총알이 날아가 재단사에게 향했다.

하지만,

툭.

재단사가 갑자기 둘러 입은 옷감에 총알이 박혔을 뿐, 재단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방탄……!’

재단사니까 가지고 있을 법한 물건이기는 했지만 고천수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형님들, 이건 반칙 아닙니까?”

탁탁탁탁.

그사이 재단사는 단원들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천수 님!”

“어떻게 합니까!”

“쏴 버려도 됩니까?”

당황한 단원들이 여기저기서 외쳤다.

탕!

그리고 지시가 있기도 전에 누군가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총알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탕! 타타타타!

타타탕!

타타타타타!

재단사의 기묘함을 엿본 탓인지 단원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때문에 무수한 총알들이 날아가 재단사에게 박혔다.

“이런, 씨……!”

고천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그만! 그마안!”

총과 칼이 통하지 않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그만하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총알을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됐다.

이제 겨우 살인마 하나를 마주친 것뿐이었다.

“그…… 제기랄! 흑구야!”

왈!

곁에 있던 흑구가 전면으로 나섰다. 온리베어는 바로 흑구의 목줄을 제거해 주었다.

크아아아아아!

총성 때문에 묻히는 고천수의 목소리 대신에 터져 나간 괴성.

거대화된 흑구가 단원들을 진정시켰다.

탕…….

놀란 단원들의 총성이 순간 멎었다.

흑구는 달려가 재단사를 입에 물었다.

휘익.

그러더니 재단사를 어느 집 너머로 던져 버렸다.

-앜ㅋㅋㅋㅋ

-던졌네.

-야, 이건 반칙이지. ㅋㅋㅋ

반칙이건 뭐건 간에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고천수는 바로 단원들에게 지시했다.

“전부 빠르게 이동합니다! 어서!”

그러는 와중에 정작 고천수는 재단사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었던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천수 님!”

뒤에서 제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고천수는 급하게 안을 살펴보았다.

“우윽.”

이미 죽어 버린 희생자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고천수는 애써 그 모습을 보지 않으면서 바닥을 살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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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양복점]

재단사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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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이었다.

희생자의 앞에 일부러 뿌린 듯한 그 명함을 한 장 주워들고 고천수는 다시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다른 단원들과 함께 이동해 어느 주택의 뒷마당에 집결했다.

“후.”

고천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쉽지 않네.”

구역이 생각보다 넓었다.

사방에 이곳이 O 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존재하고 있었다.

도로 표지판에 동서남북의 다른 구역으로 안내하는 알파벳, 화살표 표시도 있긴 했지만, 그 거리가 무려 각각 6km에 가까웠다.

‘6km면 쉬지 않고 뛰어서도 30분 정도.’

무기를 들고 살인마의 위협도 피하면서 열쇠도 모아야 하니 결코 빠르게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깨갱.

온리베어가 다시 목줄을 걸어 주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흑구가 주둥이 쪽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뭐야.”

고천수는 흑구를 잡아 만지며 눈을 크게 떴다.

“언제 다친 거야?”

자상이 있었다.

칼로 베인 흔적이었다.

“설마…….”

재단사가 물리면서 흑구를 공격한 걸까. 아니면 물리기 전에?

타격 판정을 받아도 재단사가 입는 피해라고는 경직뿐이었다.

거기에 방탄, 방검이 되는 두꺼운 옷감으로 그 판정을 빗겨 가거나 효력을 줄인 거라면, 물리면서도 흑구를 공격했을 가능성은 있었다.

“젠장.”

여태 흑구가 다치는 일은 없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여기는 수의사도 없었다.

“누구 흑구 좀 봐주실 수 있는 분 있습니까?”

없었다.

그러자 제나가 나서서 말했다.

“천수 님,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네가?”

“다친 사람도 많이 본 편이고, 디엔드에 있을 때 동물을 돌봤던 적이 있습니다. 개는 아니고 고양이였지만…….”

고양이?

“칼에 깊게 찔린 것 같습니다. 저희 인원들이 가지고 있는 구급약으로 조금 치료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흑구를 돌보는 제나를 보며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형님들, 근데 흑구는 자가 치유 능력 같은 건 없습니까?”

일단 고천수는 채팅방을 돌아보며 물었다.

-있기야 있지.

-근데 너도 게임 많이 해 봐서 알 거 아냐.

-살인마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도, 시그니쳐인 거 모름?

일반적인 무기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쩐지 흑구가 너무 크게 상처를 입었다 했다.

‘사면초가네.’

적어도 여기는 흑구의 능력에 기댈 수 있는 층이 아니었다.

위험할 때는 또 흑구의 손을 빌려야 하긴 하겠지만, 흑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쓸데없이 위험한 상황에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슥.

고천수는 희생자의 집에서 나온 명함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O 구역에 있는 재단사 X의 양복점이 약도로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위로 세 블록 정도 이동하면 있는 곳인가.’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았다.

게다가 K 구역으로 가야 하는 고천수의 동선과도 일치했다.

“천수 님, 저기…….”

그때 제나가 다가와 저 멀리 언뜻 보이는 경찰서를 가리켰다.

***

경찰서.

이런 세계관에서는 이미 완전히 털린 곳으로 나오기 마련이고, 바깥 세상에서도 그러했다.

반짝반짝.

그리고 그러한 예상대로 경찰서는 이미 박살이 난 상태였다.

소리 없는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담벼락을 박은 채 멈춰 있고, 경찰서 건물은 곳곳의 유리창이 깨진 채 방치된 상태였다.

“뭐 주워 갈 거라도 있을까?”

곁으로 다가온 송하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자 고천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솔직히 무기라면 지금 들고 있는 것들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소총이면 이런 경찰서에 있는 것들보다는 충분히 좋고도 남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찾아온 것은 세계관 보정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공포 게임의 경우 외부에서 가져온 무기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것과 비슷한데, 이런 경우 차라리 그 세계에 있는 별 것 아닌 무기가 외부에서 들여온 것보다 더 강할 때가 허다했다.

“천수 님, 제가 먼저 들어가 보는 게 좋겠습니까?”

의욕이 넘치는 제나가 경찰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역시 다른 사람들을 척후로 내세우는 게 좋았다.

“그럴 필요는 없어. 이제 능력 자율적으로 써도 되니까, 네가 몇 명 뽑아서 내부를 살펴보게 해.”

“알겠습니다.”

제나는 곧장 몇 명을 뽑아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렇게 능력을 사용해 다른 단원들의 시야로 내부를 꼼꼼이 확인한 제나가 말했다.

“천수 님, 안전 확인됐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게 있는지 찾아볼 시간이었다.

“지저분하네.”

바로 입구로 진입하자 보이는 것은 엉망이 된 경찰서의 내부였다.

한바탕 누군가와 싸우기라도 한 건지 곳곳에 피가 낭자해 있었다.

“이건…….”

재단사 X의 명함이 있었다.

경찰서를 혼자서 쓸어 버린 걸까?

가지고 있던 검은 옷감은 여기에 있던 방탄, 방검복을 주워서 만든 건 아닐까 싶었다.

“다른 놈인가?”

피가 주위에 미친 듯이 튀어있고 살점들도 종이가 찢기듯이 날아간 흔적이 있었다.

재단사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생각해 봤을 때, 이렇게 사방에 흔적을 뿌리게 되진 않을 듯했다.

-아, 나 비위 좀 약한디.

-약한데 이 방엔 왜 들어와 있어. ㅂㅅ이냥.

-이거 체인킬러가 한 거 아니냐?

고천수의 추측과 똑같은 채팅이 하나 올라왔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님.”

전기톱으로 밀고 들어간 게 더 확실해 보였다.

다만 X의 명함이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시신은 그가 양복점으로 가져가 재단해 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좋지 않네.’

살인마들이 서로의 구역에 분리돼 있지 않았다.

처음 7층 입구에 들어오면서 전기톱 소리를 들으면서부터 불안했건만, 일이 정말 꼬이게 진행되고 있던 것이다.

“천수 님.”

경찰서 내부를 훑던 단원들은 살펴볼 물건을 찾았다는 듯 손짓했다.

“이쪽에 챙길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창고 같은 곳이었다.

거기에는 7개의 무전기가 있었다.

“사용은 됩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몇몇 단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시험해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무전기는 무사히 작동됐다.

“예, 됩니다.”

“송수신 거리는 6km 정도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군요.”

두 구역 정도는 서로 안정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로의 거리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더 넓은 범위의 소통도 가능할 터였다.

“제나.”

일단 고천수는 자신이 무전기를 하나 챙기고 하나는 제나에게 넘겨주었다.

“나머지는 제가 그룹장을 정해서 넘겨주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찾으신 분이 챙겨 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고천수는 남은 공간도 더 둘러보았다.

어느 부서진 철창 안으로 권총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덜컹.

고천수는 경첩이 부서진 철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 권총을 들고 살펴보았다.

리볼버였다.

‘리볼버라.’

처음 경찰들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

감회가 새롭기는 했지만 아직 추억이나 곱씹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탄창을 살펴보니 들어있는 탄알은 6발.

꽉 차 있었지만, 매우 적어 보이는 숫자였다.

-천수야.

그때 올라온 채팅에 고천수는 시선을 슥 가져갔다.

-난이도가 좀 하드하긴 하겠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

느껴지는 말투를 보니 누군지 알 듯했다.

-네가 끝까지 살아남길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거, 잊지 마.

정말로 그렇게 여기고 있는 걸까.

고천수는 살짝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채팅에 답했다.

“정말로 얼마나 기대하고 계신지는, 이 층을 통과하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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