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65화 (165/224)

165. 7층의 살인마 (1)

부앙! 부아아앙!

7층에 올라서기 전부터 들리는 소리에 마키나 단원들이 움찔댔다.

“뭐, 뭐야.”

“전기톱 소리 같은데.”

“전기톱?”

총을 들고 있음에도 불안에 떠는 건 어이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천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여긴 탑이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큰 문제 없이 올라왔다고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단원들은 뼛속 깊이 느끼고 있을 터였다.

언젠가는 해결하기 버거운 장벽과 마주치게 될 거라고.

-다들 쫄았나?

-훌륭한 대화 수단의 소리가 들리잖아.

-휴만 긴장 안 하는 듯.

그 말대로 고천수에게 떠밀려 맨 앞에 선 휴만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살인마들은 다 거기서 거기거든.”

뭐가 거기서 거기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천수는 어쨌거나 휴를 믿었다.

‘살인마 위의 살인마.’

간혹 공포 게임에 나오는 특수 살인마로, 일반적인 사람보다는 살인마를 죽이는 데 희열을 느끼는 부류가 있었다.

여태까지의 행동을 보면 휴는 일반적인 사람을 대할 때는 어느 정도 사회성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게임에서 보던 그 설정을 가진 놈이 아닐까 했던 것이다.

‘뭐,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

휴가 다른 살인마들보다 더 뛰어나지 않다고 해도 선봉장을 서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런 탑에서는 겁에 질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니까.

부웅. 부우웅…….

7층.

휴가 계단을 끝까지 올라서려니 전기톱 소리가 어딘가로 멀어졌다.

휴는 먼저 주위를 둘러보다가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갔어. 지나가는 길이었나 봐.”

그의 손짓을 따라 마키나 인원들은 차례로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맞닥뜨린 환경을 보고는 저마다 입을 크게 벌렸다.

“여, 여긴…….”

주택가.

크고 작은 도로와 여러 집들, 그리고 상점들이 늘어선 마을 자체가 그들의 눈에 펼쳐져 있었다.

“아래층이랑 비교도 안 되게 활동 범위가 크잖아.”

“괘, 괜찮은 건가?”

“계단을 찾는 것만도 일이겠는데.”

당황하는 단원들을 놔두고 고천수는 자신이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진입로.’

이곳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근처에는 작은 검문소도 하나 있었다.

“천수. 역시 너도 감이 온 거냐?”

휴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더니 검문소로 먼저 걸어갔다.

그러더니 휘파람을 불며 헛웃음을 뱉었다.

“먼저 한 번 쓸고 갔네.”

고천수는 휴가 있는 검문소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토막이 나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시체가 둘 있었다.

-아, 씁.

-이런 건 모자이크 안 하냐.

-왜, 난 좋은데.

상태가 상당히 고어해서 정면으로 쳐다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고천수는 눈을 힐끗하며 상부가 네 면이 유리창으로 된 검문소를 들여다보았다.

‘검문 경찰들…….’

정체 모를 살인마에게 그들이 당하고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슬래셔 무비가 떠오르기도 했다.

“천수 님, 표면이 거친 물건으로 몸이 잘린 것 같습니다.”

제나는 휴와 함께 안을 잘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고천수는 엔진 소리가 사라져 갔던 방향을 멀리 내다보았다.

‘일단 전기톱 살인마.’

공략집에 적혀 있던 살인마는 총 7명이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살인마가 있는지까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7층을 가이드하는 정도의 내용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고천수는 공략집이 알려 준, 시킨 대로 하기 위해 한숨을 내쉬며 검문소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무전기가 하나 존재했다.

치이이익.

아니나 다를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무전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이익! ……여기는, D구역 검문소! 다리를 움직일 열쇠는 아직 못 찾았나? 제기랄! 무슨 열쇠가 네 개나 필요한 거야!』

뭔가 알 수 없는 외침.

『왜 아무도 답이 없어? 설마 당한 거야? 이, 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지도에 적힌 구역에서 열쇠를 가져…… 치이이익!』

말이 끊겼다.

고천수는 그 내용을 천천히 곱씹다가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형님들, 이 게임은 대체 누가 만든 겁니까?”

-왜.

-온리원이지.

-ㅋㅋㅋㅋ 왜, 이상해?

“온리원 님이 만드셨다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겠지만 취향 참.”

이쪽은 세계의 운명을 짊어지고 가고 있는데, 겪게 되는 일이 점점 게임 같아졌다.

알고는 있었다.

원래부터 이건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게임이라는 걸.

‘만족이라.’

멸망을 막을 기회를 주는 거라면 굳이 시청자는 필요 없지 않았을까.

물론 동료들의 무료함을 달래 주기 위해 이러고 있는 거라면야 딱히 따질 이유는 없었다.

방송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공급하고 소비하는 거니까.

고천수도 그런 것 덕분에 오히려 절망감에 빠지지 않고 상황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온리원이 정말 서로의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 것인지가 좀…….

“고천수.”

그의 상념을 깨듯, 휴가 끼어들었다.

“이거.”

검문소의 깨진 창문 안에 손을 넣은 휴는, 지도 한 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얻으라고 공략집에 적혀 있던, 이 마을의 지도였다.

“여기 몇 군데 표시가 되어 있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도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4×4 형식의 표로 나뉘어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즉,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무전은 D에서 왔었지.’

훈련용 탑에서 챙겨 왔던 공략집은 제 역할을 다했다.

지금부터는 모든 정보를 이곳에서 얻어야만 했다.

“휴. 지도 좀 줘 봐.”

고천수는 휴가 들고 있던 지도를 받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D구역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다리’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을 보니 D구역에는 마을에서 나가는 통로인 다리가 있는 듯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무전에서 열쇠가 네 개 필요하다고 한 것을 보면, 다리를 뭔가 기계적으로 작동시킬 일이 있을 것이었다.

‘도개교인가?’

배를 통행시키기 위해 몸체를 분리해서 들어 올리는 바로 그 다리.

원래라면 열쇠가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극적인 상황을 위해서 정해진 설정인 듯했다.

“천수 님.”

“응?”

“뒤를 보시겠습니까?”

제나가 지도를 돌려줘서 고천수는 그곳에 적혀 있던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열쇠는 C, G, J, M 구역의 관리소에 있다…….’

어쩌다 열쇠가 그렇게 떨어지게 됐는지는 몰라도, 일단 관리소의 표시까지 그려져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만은 확실했다.

“여러분.”

고천수는 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 다 같이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라고 할 것 없이 열쇠를 모으는 일이었다.

하지만 디엔드 신도들과 마주치기 전에 먼저 열쇠를 다 모아야 하기 때문에, 다 같이 다닐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부터 인원을 나눠 주겠습니다. 배치를 받으면 제가 지정해 주는 목적지로 가서 필요한 물건을 찾아 오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죠?”

그렇게 고천수는 인원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열쇠가 네 개라고 해서 넷으로 나누지는 않았다.

알파 조, 베타 조로 해서 두 개의 조를 만들었다.

알파의 조장은 고천수, 베타의 조장은 최형식이었다.

“송하나, 제나, 너는 나를 따라오고, 소윤재 씨는 최형식 병장님을 부탁드립니다.”

-휴는?

-휴는 어디다가 배치?

“휴, 너는 독자적으로 움직여.”

고천수는 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글러, 알지?”

“그럼.”

휴는 고천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알지.”

인원이 정리됐으니 할 일은 하나였다.

고천수는 베타 조에게도 지도를 다른 종이에 비슷하게 그려주고 난 뒤, 움직였다.

“자! 빠르게 움직입시다!”

알파, 베타는 금세 길이 갈렸다.

고천수가 속한 알파는 C와 G구역을 노렸다.

순서상 G를 먼저 찾게 될 것이었다.

-약간 약은 거 아님?

-출구랑 자기가 가까운데. ㅋㅋㅋ

-그러니깐. ㅋㅋ

“형님들, 제가 위험을 더 감수하는 겁니다.”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멀리 갈수록 위험한 거, 모르십니까? 그리고 열쇠는 어차피 네 개가 다 모이지 않으면 쓸모도 없습니다만.”

-흐음. 글쎄. ㅋㅋ

-여러 가지 상황도 고려해 본 거 아니야?

-너라면.

열쇠 없이 다리를 건너가거나 혹은 다른 이가 열쇠를 모아서 가지고 올 경우, 둘 다 일단 다리 근처에 있는 게 유리하기는 했다.

어쨌거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최악의 상황이 생기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글러를 믿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끄아아아아아!

그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렸다.

꽉!

고천수는 주먹을 꽉 쥐어 들어 올리며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60명의 단원들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그들은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각자 산개하며 안전한 장소에 몸을 숨겼다.

끄아아아! 끼야아아악!

비명 소리는 근처 보라색 지붕 집에서 들리고 있었다.

이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그냥 가느냐 아니면 잡느냐.’

살인마가 일반적인 사람으로 배치되어 있는 거라면 이쪽이 훨씬 유리했다.

무려 60명의 사람들이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미치광이 살인마라고 한들 총 앞에서는 순한 양과 다를 바 없었다.

‘어디까지나 우리와 똑같다면 말이지.’

주어진 맵의 크기를 보았을 때 7층은 아래층과는 확실히 난이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살인마 7명?

이렇게 단체로 올라올 가능성을 배제하고 이런 탑을 만들었으면 모를까, 다수에게 그냥 당할 살인마를 이곳에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였다.

“둘, 가 보세요.”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고천수는 단원 두 명을 보내고 옆에 있는 제나에게 눈짓했다.

“제나.”

그녀를 통해 저 단원들의 시야를 훔쳐보게 함으로써, 자신은 안전하게 이 근처에 있는 살인마의 정체를 파악할 셈이었다.

“누군지 알아봐.”

적안을 켠 제나가 비명이 들리는 집 쪽으로 간 단원 두 명을 주시했다.

두 명의 단원은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집 근처에 바싹 몸을 붙였다.

그러고는 창문 안을 살폈다.

“……천수 님.”

둘의 시야를 훔쳐보고 있는 제나가 말했다.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정장?”

“정확히는 유니폼 같습니다.”

정장인데 유니폼 같다라.

“손에 칼하고 줄자를 가지고 있는데…….”

순간 제나의 말을 들은 고천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줄자?’

재단사였다.

‘변태 같은 놈이 있나 보네.’

살인마에서 재단사 계열은 흔한 편이었다.

사람을 옷처럼 자르고 꿰맨다는 설정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상당히 취향이 좋지 않은 살인마인 건 맞지만, 다행인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우리한테 큰 피해를 줄 만한 상대는 아니야.’

재단사 계열은 한 번에 대량 살상을 즐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은 좋은 옷감을 고르듯 몇 개의 대상을 잡아 고문처럼 재단하는 것을 즐길 뿐이었다.

즉, 다수와의 싸움에서는 경험상 밀릴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게, 바로 재단사 살인마였다.

휙.

고천수는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둘을 보며 손짓을 해 보였다.

바로 총을 쏴서 끝내 버리라는 뜻이었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긴장한 얼굴로 한숨을 살짝 쉬더니, 곧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탕! 타탕! 타다다다!

대상이 된 자를 넝마로 만들어 버릴 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천수 님!”

하지만 제나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 남자가……!”

“남자가 왜.”

“총알을 맞았는데도 피조차 흘리지 않습니다!”

역시였다.

고천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이 세계가 어쩔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고천수는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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