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저층부
“2층 진입!”
“천수 님!
“전 인원 다 올라왔습니다!”
마키나 단원들의 우렁찬 소리.
열쇠를 얻고 나서 모두는 함께 2층으로 빠르게 올라왔다.
‘속도로 승부를 본다.’
어차피 인원 손실이 있을 거라면 고천수로서는 빠르게 올라가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디엔드 신도들이 올라오기 전에 중상층, 아니, 끝까지 올라가겠어.’
이 탑 자체가 시련이라고는 하지만 디엔드 신도들이 진짜 숨겨진 시련일 터.
여태 마주치지 않았던 건 1에서 6층까지는 두 갈래의 다른 길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공략집에 적혀 있던 내용이긴 했지만, 고천수는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통하고서야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게 됐다.
1층에 진입할 때 탑 내부 구조가 바뀌어 다른 곳으로 들어왔으면, 7층에 오르기 전까지는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만날 일이 없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물리적으로 마주치게 될 시점은 그리 멀지 않았다.
1층부터 6층까지는 튜토리얼에 가까웠다. 누구든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만큼, 디엔드와 7층에서 마주칠 가능성을 고려하면, 최대한 빠르게 주파해서 거리를 벌려놓아야만 했다.
“천수야!”
다가온 송하나가 소리쳤다.
“앞에 문이……!”
2층에 있는 건 별 게 아니었다.
옆으로 쭉 늘어서 있는 14개의 문.
그것들이 단원들을 맞이하고 있던 것이다.
“제가 먼저 확인을…….”
“멈춰!”
움직이려는 제나를 막으며 고천수가 귓속말로 말했다.
“그만두고 단원들만 저 숫자대로 나눠. 그리고 내가 올라오면서 말했던 인원은 맨 뒤로 빼고.”
문은 1~14까지 번호가 차례대로 매겨져 있었다.
고천수의 지시에 따라 제나는 사람들을 각 문의 숫자와 동일하게 나누어 놓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천수 님, 맨 뒤로 빼라고 했던 7명 전원이 숫자에 포함되지 못합니다.”
당연했다. 1부터 14까지 모든 숫자를 차례대로 더하면 105였다. 총 인원 112명에서 7명이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더 빼야겠어.”
하지만 고천수는 제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제나, 대의를 위해서 협동심이 적은 인원 두 명은 더 뒤로 빼도록 해.”
정리된 총 인원은 흑구와 온리베어가 제외된 숫자였다.
둘이 저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을 때, 두 자리를 더 비워 놔야 했다.
“아.”
제나는 뒤늦게 탄식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두 자리를 더 확보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제나가 인원을 정리하자마자 고천수는 단원들이 수군거릴 시간도 주지 않고 외쳤다.
“자, 지금부터 문을 통과하도록 하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냥 자신대로 서 있는 줄을 따라 문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안전함을 입증하기 위해 저와 몇 명이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고천수는 제나와 휴, 송하나, 소윤재, 흑구와 온리베어를 챙겨서 14, 13, 12, 11, 10, 9, 8번이라고 적힌 문으로 나눠서 들어갔다.
그래야 남은 인원들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그나마 늦게 눈치챌 테니까.
위잉.
고천수는 그렇게 먼저 문을 통과해 3층에 도착했다.
뒤이어 그가 선택한 인원들이 따라 들어오고, 1번으로 배정됐던 최형식이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천수 님.”
최형식은 고천수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무사하셨군요.”
“고작 문을 통과하는 일이었으니까요.”
휘잉. 휘잉.
통과해서 들어오는 다른 인원들을 보며 고천수는 최형식에게 말했다.
“인원들이 전부 들어오면 바로 정리해서 위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뒤이어 오는 단원들을 기다렸지만, 총 도착한 인원은 103명이었다.
“천수 님, 뭔가 이상합니다.”
최형식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인원이 모자랍니다. 다 넘어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 그럴 겁니다.”
고천수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답했다.
“협동심이 적은 것으로 관찰된 사람들은 뒤로 보냈습니다.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네?”
“위로 올라가려면 선별된 인원들이 필요합니다. 남은 인원들은 죽은 게 아니니 가능하면 나중에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면 됩니다.”
고천수는 최형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히려 위로 올라가야 하는 우리가 더 큰 죽음의 위협에 직면할 겁니다. 우리가 안전한 곳으로 오고 그 사람들이 위험한 곳에 남은 게 아닙니다. 그걸 확실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더 큰 짐을 진 겁니다.”
“아…….”
고천수의 논리에 최형식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렇군요.”
“병장님은 현명한 분이니 잘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의문을 표하는 인원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구원받고 문을 다 열어서 나중에 낙오자들을 구제하면 된다고 전하세요.”
고천수는 그렇게 일러 두고 다시 인원들의 앞으로 나갔다.
-너무 뻔뻔하게 얘기하니까 그럴 듯해 보이네. ㅋㅋㅋㅋ
-더 위험해지는 거 맞긴 한데…….
-아래 남은 놈들, 기다리다가 탑 밖으로 나가면 죽는 거 아님?
그런 건 알 바 아니었다.
고천수는 의문을 표하는 인원이 별로 없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시바, 살았다.’
혹시라도 반발하면 골치 아팠다.
하지만 의문을 표하는 인원들도 최형식이 고천수의 뜻을 전하자 이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자신들이 구원자가 돼서 남은 인원들을 구제하면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듯했다.
‘좋았어.’
고천수를 탑의 인도자로 인지하고 있는 그들의 믿음은 이 정도로 흔들리지 않았다.
최형식도 인원 정리를 하다 의문을 표했을 뿐이었다.
‘이대로 6층까지는 빠르게 통과한다.’
문제는 7층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시간을 많이 쓸 필요가 없었다.
“갑시다!”
고천수는 그렇게 단원들을 이끌고 앞으로 향했다.
3층.
이곳은 입구 쪽 외에는 시야에 제한이 있는 어두운 방이었다. 손전등도 통하지 않았다.
다만 그게 끝은 아니고, 한 사람당 반경 5m 이내만 밝아지는 특성 또한 있었다.
“다들 서로 간격 10m를 유지하면서 대형을 벌리도록 하세요!”
10m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는 직접 따져 볼 필요가 없었다.
단원들은 고천수의 지시를 따라 본인들이 밝힐 수 있는 반경이 서로 겹치지 않게 늘어서서 이동했다.
사람마다 반경으로 어둠이 걷히고 밝아지다 보니, 부분 부분 어둠이 가시지 않는 곳은 있었다.
하지만 105명이 서로의 반경 5m를 협력하며 나아가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3층의 출구도 곧 어디에 있는지 찾아낼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다들 간격은 일렬로 유지하면서 줄을 서도록 하세요!”
서로가 밝히는 시야를 따라 단원들은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하나씩 걸음을 옮겼다.
고천수는 이번엔 단원들을 모두 먼저 보내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계단을 밟았다.
-와, 천수 이번엔 다 챙기고 가는 연출.ㅋㅋ
-안전한 거 알고 있어가지고.
-ㅋㅋㅋㅋㅋ
당연했다.
플레이어인 자신이 모험을 할 수는 없으니까.
‘공략집에 나와 있는 건 7층까지야.’
고천수는 6층까지는 별다른 문제 없이 상황을 통제하며 나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7층.
‘괜찮겠지?’
대비책은 세워 뒀다.
고천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천수 님! 흔들다리입니다!”
4층. 먼저 올라간 최형식이 이쪽 절벽과 저쪽 절벽 사이에 놓인, 나무판자와 밧줄로 만들어진 흔들다리를 가리켰다.
“아, 시발.”
“나 고소공포증인데.”
“제기랄.”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단원들이 겁을 집어먹으며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고천수는 태연한 얼굴로 반대편 절벽을 바라봤다.
‘저기가 아니야.’
공략집에 적혀 있는 4층은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보며 공포에 질리게 되는 장소였다.
고천수는 흔들다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흔들다리의 나무판자에는 유턴 표시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뒤.”
고천수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로 가면 됩니다.”
보고 알아챈 것처럼 고천수는 방금 단원들이 빠져나온 계단의 입구로 향했다.
원래라면 3층과 이어져 있어야 할 계단은 어느새 위로 향하고 있었다.
즉, 이쪽이 5층으로 향하는 통로.
“보세요. 계단이 위로 생겼습니다.”
“어?”
“와, 저, 정말이야!”
단원들은 감탄하며 소리쳤다.
“역시 천수 님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저기 건너갈 뻔했잖아!”
“살았다……!”
고천수는 미소를 지으며 단원들에게 손을 뻗었다.
“자, 그럼 다들 이쪽으로 가시죠.”
-암 것도 모르는 사람들 불쌍.
-남한테 추앙 받으니까 조와?
-ㅋㅋㅋ 좋을 듯.
[띠링! 조와 님이 3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내가 나올 줄은 몰랐네.]
후원금까지 챙겼겠다, 고천수는 단원들과 함께 서둘러 다음 층으로 향했다.
‘이제 5층……!’
속도는 빨랐다.
디엔드가 먼저 탑에 입성하기는 했지만, 인원이 많기 때문에 이쪽이 더 앞서고 있을 것은 자명했다.
“여러분, 지금부터 4인 1조로 나눠서 조장은 오른쪽 벽에 오른손을 댄 채로 이동할 겁니다.”
도착한 5층은 6층과 콘셉트가 하나로 이어지는 곳으로, 안에 천장 높이까지 벽으로 막혀 있는 미로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 들어선 사람들은 5, 6층의 미로를 통과하면 바로 7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조장은 막다른 길이 나와도 절대 손을 떼지 말고 전진하세요. 호위는 조원들이 맡아 주시고요.”
시간이 걸릴지언정 미로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손 하나를 정해 한쪽 벽면에 댄 채, 떼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크아아아!
어디선가 몬스터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이동.”
하지만 인원들을 4인 1조로 나눈 고천수는 개의치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아!
“아, 시발!”
탕!
갑자기 나타난 좀비를 쏴 버린 단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이야.”
“좁아서 더 무서워.”
“정신 바짝 차리자고.”
탕!
탕탕! 탕!
이후에도 좀비들은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단원들을 괴롭혔다.
5, 6층의 콘셉트는 다름이 아니었다.
긴 시간 동안 미로를 이동하며, 계속해서 가져야 하는 긴장과 공포심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었다.
‘7층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하지만 고천수는 5, 6층을 통과해야 하는 시간을 지루하게 느끼며 다음에 도달하게 될 곳을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7층은 범죄의 도시였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도시라는 설명이 있었기에 결코 지금처럼 좁게 한정된 공간만을 이용하게 되는 곳이 아니었다.
당연히 빠르게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기에, 뒤이어 올라온 디엔드 신도들과 마주치게 될 가능성도 컸다.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였다.
‘후.’
7층부터는 아래층에서 올라온 이들과 만나게 되는 구조.
디엔드와 뒤섞이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알 수 없었기에 고천수도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탕! 타앙…….
총성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6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찾아 올라가서 몇 십 분을 걸은 뒤에야 좀비들의 습격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천수 님.”
미로의 끝에 계단 입구가 또 보이는 것을 보며 제나가 말했다.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래.”
이제 5, 6층은 다 통과했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돌파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부터였다.
“여러분!”
고천수는 계단 앞에서 조금 넓어지는 공간에 서서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단원들은 6층까지 통과하는 과정이 제법 수월하게 느껴졌는지 얼굴에 옅은 미소까지 걸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단체로 봉사활동이라도 하고 나서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 탑은 그렇게 설계돼 있지 않았다.
6층까지 올라오는 과정이 수월한 건 어디까지나 이곳이 최저 난이도의 저층부, 즉 등반자를 위한 적응용이기 때문이었다.
공략집에 적혀있는 탑의 층계는, 엘리베이터 구간을 제외하고 총 14층.
6층 위로 8층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7층까지밖에 내용이 없는 공략집에서는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7층부터는 질적으로 확연하게 다른 싸움이 될 것이라고.
한 층 한 층에서 끔찍한 피 냄새를 맡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여기까지 함께 오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고천수는 단원들의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이쪽부터는 진짜 시련이 펼쳐질 겁니다. 모두 각오 단단히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낙오자가 될 겁니다.”
그러면서 고천수는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휴!”
7층부터는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기서부터는 네가 날뛸 곳이야.”
“뭔데?”
“올라가 보면 알아.”
그렇게 단원들과 올라가자니 초록색 선이 그어진 곳을 지날 수 있었다.
[팔찌가 주어집니다.]
고천수와 단원들의 손목에 팔찌가 하나 생겨났다.
‘이건…….’
드드드! 부웅! 부앙! 부아아아앙!
7층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엔진음이 들렸다.
하지만 절대 자동차의 엔진음은 아니었다.
“아아.”
전기톱에서나 날 법한 소리를 듣고 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