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탑, 진입
레드카펫.
그게 바로 정답이었다.
크아아아아!
크어아아!
끼에에에에엑!
미친 듯이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피해 단원들은 전부 레드카펫으로 향했다.
“이런 미친!”
“살려줘!”
“바로 뒤야!”
탑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단원들이 도달할 수 있던 건 어디까지나 레드카펫까지였다.
크우우우……!
도망칠 수 없을 거라며 절망하던 단원들의 눈빛이 순간 뒤바뀌었다.
레드카펫 위.
전 단원들이 그곳에 올라서자 몬스터들이 갑자기 몸을 멈췄기 때문이다.
“뭐?”
단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몬스터들은 아까운 먹이를 코앞에서 놓쳤다는 듯 이를 드러내고 그르릉거릴 뿐, 더 이상 단원들에게 다가서지 못했던 것이다.
“고, 공격하지 않는다!”
“진짜야!”
“살았다……!”
단원들은 곧 고천수를 돌아보며 외쳤다.
“천수 님 덕분입니다!”“덕분에 살았습니다, 천수 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고천수는 자신을 향한 칭송의 소리를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제 입구라고.’
진짜 이야기는 탑에 들어가고 나서야 시작되는 것이었다.
“다들 긴장하세요. 이제 진입합니다.”
고천수가 나지막이 말하자 들떠 있던 사람들도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 함께 앞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있는 거대한 탑.
앞으로 어떤 여정이 펼쳐질 것이란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문 닫혀 있네.
-열렸다가 닫힌 거임?
-ㅇㅇ 원래 그럼.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자, 시청자들의 말대로 닫혀 있는 문이 하나 보였다.
고천수는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고 밀어보았다.
덜컹.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천수가 물러서자, 문은 알아서 안쪽으로 활짝 열렸다.
“자, 여러분. 이제 시작입니다.”
고천수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시죠.”
“가자!”
“천수 님을 따르자!”
단원들은 고천수와 함께 걸음을 움직였다.
어두운 내부.
곳곳을 밝히고 있는 횃불이 있었지만 단원들은 각기 가지고 있는 손전등을 켜서 앞을 비추었다.
드드드득.
들어왔던 문은 다시 닫히더니 스스로 잠겼다.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천수 님, 디엔드와 마주치지 않겠습니까?”
제나의 물음에 고천수는 앞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어디론가 통하는 이 복도의 바닥에는 풀 같은 것들이 자라나 있었다.
당연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위를 지나갔다면 흔적이 남았으련만, 그렇지 않았다.
“괜찮아. 마주치지 않을 거야.”
고천수는 공략집에서 본 내용을 떠올렸다.
거기에는 탑의 회전형이라는 말이 있었다.
즉, 이 탑은 한 번 인원을 들인 뒤엔 회전해서 다른 방향으로 손님을 맞이한단 소리였다.
‘뭐, 다른 쪽으로 들어왔어도 가운데서 마주칠 가능성은 있지만.’
바깥에서 보았던 탑의 어마어마한 크기로 보았을 때,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는 공간이 있다기보다는 분리형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듯, 고천수와 마키나 일행은 디엔드 신도들과 마주치는 일 없이 1층의 주요 구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초원…….’
훈련용 탑에서 본 것과 똑같은 형태의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고천수가 하늘처럼 그려진 천장을 올려다보자 단원들도 일제히 고개를 올렸다.
“저번과 같은 곳…….”
“그건 역시 훈련용이었다 이거지?”
“그러게.”
단원들의 반응을 보며 고천수는 시선을 움직였다.
멀지 않은 곳에 문이 하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일 터.
다만 지금 닫혀 있다는 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터.
고천수는 공략집을 꺼내들었다.
-천수 커닝하네.
-ㅋㅋㅋ
-뭐, 솔직히 초반부에서 막히면 발암이니깐.
공략집에는 저층부를 공략하는 방법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곳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 주는 내용도 존재했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하지만 고천수가 공략집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전에,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탑, 구원의 통로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꽤나 거창한 인사에 고천수가 헛웃음을 흘렸지만, 단원들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나 봐!”
“구원의 통로!”
“좋았어!”
들떠 있는 그들을 보며 고천수는 살짝 침음했다.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건만.
『힘든 역경을 헤치며 이곳까지 오신 여러분들의 용기를 칭송하며, 지금부터 그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고천수가 여태 알고 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째, 탑의 각층에 주어진 시련을 통과한다.』
『둘째, 살아남는다.』
『셋째, 정상에 오른다.』
『이 세 가지입니다.』
목소리는 아주 간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것만 이루면 여러분은 그토록 염원하던 구원받을 자격을 얻게 되실 겁니다.』
구원받을 자격.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자격이었다.
말장난에 불과했지만 단원들은 대부분 거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주어졌어!”
“여기만 올라가면 돼!”
“구원받을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개중에서는 의문을 품는 이도 있었다.
“저, 끝에는 몇 명이 올라갈 수 있는 겁니까?!”
“난이도는 높은가요?!”
“정상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상식적인 질문이었지만 목소리는 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여러분, 모든 길은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저 이곳에 모인 자들을 위로 안내할 뿐이었다.
『올라가다 보면 답이 보일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이곳은 여러분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장소입니다.』
그 자체로 구원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부디 여러분이 가는 길에 따뜻한 햇살이 깃들기를.』
치이이익.
그리고 마치 무전기의 잡음처럼, 목소리는 노이즈를 흘린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자, 잠시만!”
“아직 물을 게 있는데.”
“망할!”
탄식하는 단원들을 보다가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형님들, 방금 목소리는 누굽니까?”
-ㅋㅋㅋㅋㅋ
-보고 있는 놈 중 한 명임.
-ㅇㅇ 내가 그냥 녹음해 준 거……. 괜히 묻지는 마셈.
누군지도 모를 시청자가 녹음한 목소리.
별로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올라가면 되는 건가?”
“목소리가 그렇게 인도했잖아!”
하지만 단원들은 그 별 거 아닌 목소리에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형님들, 제 단원들이 무슨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날뛰고 있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
-어쩔 수 없지 뭐.
-그렇게 들렸을 텐데.
책임도 안 지면서 저들끼리 재밌어하는 시청자들을 보면서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곳을 통과해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고천수는 공략집을 확인했다.
‘보물찾기.’
1층은 보물찾기방이었다.
훈련용 탑에서 제나가 했던 것처럼, 바위들을 밀어젖히면 될 일이었다.
‘숫자는 몇 백 개 정도 되려나?’
바위들의 개수는 많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걸 옮길 머릿수도 많다는 것이었다.
고천수는 공략집을 집어넣고 단원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 여러분!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계시ㅋㅋㅋㅋ
-우리보고는 뭐라 했으면서.
-미친넘아.
“이곳을 통과하려면 바위들을 들춰야 합니다!”
“바위?”
“이것 말입니까?”
단원들이 옆에 있는 바위들을 가리켰다.
고천수는 단원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저희가 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도구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서둘러 주세요.”
바위들에는 00:27:23이란 숫자가 적혀 있고, 심지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시간제한이었다.
“바위에 쓰인 시간이 다 지나면 안 됩니다! 모두 서둘러서 힘써 주시길!”
“시, 시간?”
“이런!”
단원들은 그제야 급박함을 알아챘는지 모두가 퍼져서 바위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쿠구.
쿠구구구.
쿠구구.
단원들에게 밀린 바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단원들은 바위 아래를 확인하며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도!”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크아아아!
흑구까지 나서서 바위들을 밀쳐내고 있는 판이었다.
아직 발견된 게 없다고 해도 곧 도구가 나올 것이었다.
“천수 님.”
제나가 가만히 서 있는 고천수를 보며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사실은 있었다.
‘저쪽 놈은 손이 느리고, 저쪽 놈은 힘이 약해.’
고천수는 바위를 미는 단원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누가 살아남을지 알 수 없었기에, 몇몇을 제외한 일반 단원들은 이제야 평가를 내려 보고 있는 것이었다.
-천수 표정만 보면 뭔 일 난 것 같은디.
-ㅋㅋㅋㅋ
-제나한테 못 숨기겠는데.
역시 시청자들은 남 일이라는 듯 이 상황을 재밌게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아니었다.
‘다 데려갈 수는 없어.’
이렇게 모두가 협력해서 다 살 수 있는 층도 있었지만, 공략집에 나온 내용만 보면 모두가 그럴 순 없었다.
문제는 끝까지 올라가려면 다수의 협력이 어그러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몇 명이 죽으면 믿음이 흐트러질 수 있는데, 그걸 다 잡는 게 문제였다.
‘2층. 어떻게 하지?’
공략집을 통해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모르겠다.’
모르겠으면 할 수 없었다.
올라가서 직접 맞닥뜨릴 수밖에.
“천수 님!”
어디선가 목소리가 터졌다.
“여기 찾았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손에는 2층으로 갈 수 있는 열쇠가 하나 들려 있었다.
* * *
“찾았습니다!”
그 시각, 디엔드 신도들이 있는 1층.
바위들을 밀던 신도들 중 누군가가 열쇠를 하나 찾아내 들어 올렸다.
“2층으로 가는 열쇠입니다!”
그는 자신이 찾아낸 공적을 보라는 듯, 매우 기쁜 표정을 지은 채 어딘가로 향했다.
“제가 찾았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하얀색의 무표정한 가면을 쓴, 양복 입은 신사였다.
“…….”
그는 딱히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검을 찬 키 큰 포니테일 여성이 대신 말했을 뿐이었다.
“건네주시길.”
그녀는 신도에게서 열쇠를 받아들고 자신이 살펴보더니 옆에 있는 신사에게 건넸다.
열쇠를 받아든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신도가 환희에 찬 얼굴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제가 찾은 이것이 구원의 열쇠가 되길!”
그 거창한 장면을 엿보면서, 근처에 있던 양민철은 조용히 혀를 찼다.
‘저자가 교주…….’
가면을 쓴 이는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서 교주라고 불리고 있었다.
즉,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의 핵심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장난 아닌 것 같고.’
교주의 주변에는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포니테일 여성을 비롯, 연구원들처럼 보이는 남자들, 그리고 우락부락한 덩치들이 있었다.
바위들을 밀어야 한다는 건 저 연구원들이 교주에게 조언한 방법으로 보였다.
“엘리트 집단 모아 놓고 방법을 찾는 거 같네. 미리 탑에 대해 조사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장서연이 그런 그들을 보며 말했다.
탑에 들어올 때부터 그들은 레드카펫이 몬스터들을 막아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뭐가 됐든지 간에 어느 정도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고, 그걸 활용하기 위한 정예병들을 두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놀아나는 거 아닐지 이거.”
신도들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단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장서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으니까 일단은 표정 숨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김하령이 고개를 갸웃대며 말했다.
그러자 기성현도 동의를 표했다.
“그래, 일단은 조용히 따라가야지. 별 수 있나.”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양민철은 잠시 침음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 탑이 어떤 곳인지 양민철은 알지 못했다. 그저 탑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끌려왔을 뿐이었다.
다만, 탑에 들어오고 나서 어떤 목소리를 듣기는 했다.
살아서 이 탑의 정상에 오르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게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천수 형.’
양민철은 열쇠를 가지고 어떤 문으로 향하는 교주를 보며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떠올렸다.
‘형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하지만 양민철은 알지 못했다.
고천수가 이미 그와 같은 탑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좀 더 빠르게 탑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