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62화 (162/224)

162. 활주로

“탑이야!”

“이럴 수가.”

“진짜 탑이라고!”

단원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활주로 너머에 있는 탑은, 뉴타운에 있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는 탑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구름들이 기이하게 널려 있고, 거기로 메이플라이와 정체 모를 다른 몬스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입구까지는 레드카펫처럼 붉은 길이 깔려 있어서 분위기로 따지면 압도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아할 게 아닌 거 같은데?’

고천수는 탑의 위용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탑은 역시나 위험도도 높아 보였다.

-천수 긴장하는 거 보이네.

-역시 탑은 만만치 않은가?

-당연하지. 저기 안 보임?

탑 주위의 있는 몬스터는 하늘을 날고 있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활주로 쪽에서도 돌아다니고 있는 놈들이 있던 것이다.

‘크롤러……!’

한 마리만 나타나도 골치 아픈 녀석이 10마리나 넘게 보이고 있었다.

“천수 님.”

최형식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몬스터의 수가 상당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글쎄요.”

고천수로서도 쉽게 장담할 수가 없었다.

‘디엔드는 어디로 간 거지?’

탑이 저기에 있다면 디엔드도 탑에 들어가기 위한 뭔가를 했어야만 했다.

그 흔적을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고천수는 잠시 침음할 수밖에 없었다.

탕!

그때였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

활주로 쪽이었다.

반사적으로 시선이 돌아간 고천수의 눈에 많은 수의 군인들이 보였다.

탕! 타다다다다!

군인들은 크롤러를 공격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크롤러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기는 했지만, 군인들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타다다다다다!

타다다!

투다다다다!

화력이 압도적이었다.

군인들의 수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뭐지? 디엔드인가?”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미친…….”

군인들은 죄다 탑이 그려진 상의를 입고 있었다. 이제는 정체를 숨길 것도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고천수는 빠르게 눈을 돌려 군인들의 수를 가늠해 보았다.

‘적어도 수백.’

게다가 뒤따르는 일반인들도 있었다.

그들도 팔뚝에 탑 모양의 완장을 차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디엔드 신도라고 볼 수 있었다.

-와 씨, 완전 행렬이고만.

-근데 실력도 좋은데?

-크롤러 잘 잡네.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크롤러는 크롤러였다.

빠르게 주위를 돌아 디엔드 신도들의 공세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신도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크롤러의 동선을 예측하듯 공격을 퍼부었다.

이미 다량의 크롤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겠지.’

탑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상태면 저렇게 태연하게 다가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고천수는 주위를 좀 더 둘러보았다.

분명 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이가 있을 것이었다.

“어?”

하지만 고천수는 전혀 예상외의 인물을 먼저 발견했다.

“저건……!”

양민철.

그리고 장서연과 김하령까지.

헤어졌던 일행들이 다른 신도들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탑 모양의 완장을 찬 채로.

-양민철!

-왔다아아아아아!

-재회 타임!

하지만 양민철은 이쪽을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도 다가오는 몬스터들에게 온 신경이 곤두선 것으로 보였다.

다른 곳을 볼 정신은 없을 게 분명했다.

“천수 님?”

제나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는 분입니까?”

“그래.”

고천수는 이를 악문 다음 제나에게 부탁했다.

“제나, 좀 무리한 내용일 수 있지만 부탁 좀 해도 되겠지?”

“네, 말씀만 하십시오.”

“교주가 있나 찾아 줘.”

제나의 능력이라면 교주를 찾을 수 있었다.

인지하기만 한 대상이면 능력을 쓸 수 있을 테니, 저 아래의 수많은 사람들의 시야를 엿보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괜찮겠어?”

다만 그녀는 교주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걸 모를 리 없던 고천수는 그런 제나를 신경 써서 지시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제나는 적안을 켜며 말했다.

“어차피 다시 보게 될 사람이니까요.”

지이이잉.

제나는 활주로 쪽을 바라보며 능력을 사용했다.

대상자는 수백 명.

신도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대부분 몬스터가 있는 곳이었지만, 고천수가 언급한 사람의 시선이 순간 다른 쪽에 꽂혔다.

“……천수 님!”

제나는 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찾았습니다.”

교주가 있었다.

그의 상징인 깔끔한 정장이 순간 시야를 스치고 지나갔다.

“뭐? 어디 있지?”

고천수의 물음에 제나는 아직 보이지 않는 쪽을 가리켰다.

“뒤쪽에서 다른 인원들과 함께 접근 중입니다. 몬스터들이 정리되면 따라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교주도 이곳에 있다.

그건 저 탑이 분명하게 진짜라고 확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도 움직인다.”

고천수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빠르게 아래로…….”

쿠웅.

그때, 갑자기 건물이 흔들렸다.

“뭐, 뭐야.”

“뭐지?”

“지진인가?”

고천수는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여태까지 이곳까지 오면서 느꼈던 진동은 그냥 지진이었던 적이 없었다.

게다가 여기는 공항이었다.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건, 괜한 기시감일까.

“병장님! 빠르게 활주로로 내려가야 합니다!”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고천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건물이 위험한 상태였다.

“이런……!”

고천수는 단원들을 데리고 서둘러 활주로 쪽으로 나가는 계단을 찾았다.

“뭐야!”

하지만 그곳은 온갖 잔해들로 가로막혀 있었다.

“망할……!”

잔해만 있으면 다행인데, 알 수 없는 거미줄까지 쳐 있었다.

혹시나 해서 근처에 있던 물건을 집어던져 봤더니 거미줄이 그 물건을 붙잡아 구겨버렸다.

“스파이더 트랩입니다!”

제나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이쪽으로는 가면 안 됩니다!”

“다른 쪽도 확인해 보세요!”

고천수의 외침에 단원들이 곳곳의 출구를 확인했지만 죄다 막혀 있다는 신호만 보낼 뿐이었다.

쿠웅.

그사이에 건물은 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고천수는 머리를 싸쥐었다.

여기서 잘못된 출구를 고르면 그대로 잘못될 게 분명했다.

이 상황에서 탑은 안전지대.

디엔드가 탑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이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저곳으로 가지 못할 시, 이곳은 초위험지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미 되어 버렸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디엔드가 어디로 나갔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나간 길이 지금 막혔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형님들, 어디로 가야 합니까?”

고천수의 물음에도 시청자들은 ‘빨리 출구를 찾아! 근처야!’ 같은 말밖에 하지 못했다.

한도초과조차도 고천수를 돕지 못할 정도였다.

탑이 코앞이었다.

스포일러 금지가 더욱 심하게 걸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답답! 나갈 수 있다고!

-우리도 제재가 심해지는 구간이라 여기서는……!

-[한도초과] : 천수야! 좀 더 주위를 잘 봐 봐!

주위?

창문을 깨고 나가라는 말일까.

‘어그로를 끌어서 내 신체 능력을 강화하면……!’

창문을 깨고 뛰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다음이 문제였다.

디엔드가 자신을 너무 빨리 인식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단원들은 안전하게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아 씨, 뭐가, 뭐가 있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서 더 머리가 터졌다.

고천수는 빠르게 시선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근처에 있다고 했다.

근처에 방법이…….

“아.”

그래, 비행기가 있었다.

활주로에도 있고, 탑승구에도 비행기가 붙어 있었다.

고천수는 서둘러 손짓했다.

“흑구!”

왈!

“길 좀 확인하자!”

고천수는 바로 옆에 있던 탑승구로 향했다. 그리고 멈춰 있는 자동 유리문을 깨 부수고 통로를 내달렸다.

“열려 있다!”

탑승로와 비행기가 연결돼 있었다.

고천수는 열려 있는 비행기의 앞문을 가리키며 흑구와 온리베어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가서 확인해!”

왈!

흑구가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고천수가 입구에 도착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자니, 흑구가 이내 돌아오며 짖어댔다.

왈!

온리베어가 흑구의 위에서 팔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좋아!”

고천수는 그대로 흑구는 단원들에게 돌려보내며 말했다.

“가서 다들 이쪽으로 데려와!”

그러고 고천수는 비행기의 반대편 문으로 향했다.

비상시 수동 조작.

고천수는 레버들을 조작해 비상 탈출 준비를 마쳐두고 창문으로 가 바깥을 살폈다.

타다다!

타다다다다!

지상의 몬스터들을 거의 다 정리한 디엔드는 빠르게 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몇 분 내에 그들은 탑에 도달할 듯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슨 유도등이라고 밟는 것처럼 레드 카펫 주위로 모이고 있었다.

고천수는 활주로를 향하고 있는 다른 문도 비상 탈출을 위해 레버를 조작해 놓고 처음의 문으로 돌아왔다.

-와, 여기 쉽지 않은 구간인데, 역시 천수긴 하네.

-근데 비상 탈출하는 건 어케 아는 겨.

-슬라이드 모드 바꾸는 것도 힌트로 배워야 했을 텐디.

“비행기 공포 게임 하다 보면 나옵니다.”

고천수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종류별로 나와서 거의 다 해 봤습니다.”

인터넷 망령, 폐인 스트리머 고천수에게는 이미 들어가 있는 정보였다.

-넘 자랑스럽게 얘기해서 할 말이 없음. ㅋㅋ

-얼마나 폐인이냐고 ㅅㅂ ㅋㅋㅋㅋ

더 이상 채팅창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고천수는 통로 쪽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천수 님!”

제나가 먼저 나타났다.

그 뒤로 다른 단원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렬시켜! 빠르게 나가려면 줄 세워야 돼!”

고천수는 크게 소리쳤다.

“저쪽 신도들이 탑으로 들어가면 바로 탈출할 거니까 준비하세요!”

탈출 도중에 혹시라도 충돌이 있으면 이쪽이 위험했다.

건물에서 계속 심상찮은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최대한 기다려야 했다.

“천수 님!”

“뒤가……!”

“망할.”

고천수는 단원들이 다급하게 내뱉는 소리를 들으며 결국 문을 열어젖혔다.

투왕!

튕겨 나가듯 문이 열리자 곧장 슬라이딩을 위한 미끄럼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디엔드 신도들은 더 이상 눈에 뜨지 않았다. 탑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통솔을 부탁한다!”

고천수는 그러면서 다른 문으로 달려가 그쪽도 개방했다.

최형식의 도움으로 인원들을 나눈 고천수는 차례차례 단원들을 미끄럼틀로 유도했다.

콰앙!

건물 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비행기와 연결돼 있던 통로도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비행기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크윽!”

“으악!”

“조심해!”

다들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부여잡고 미끄럼틀로 향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고천수!”

다른 단원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돕던 송하나가 고천수에게 소리쳤다.

“우리도 얼른 나가자!”

단원들은 거의 다 바깥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정신을 차린 고천수는 서둘러 걸음을 움직여 다른 단원들과 함께 미끄럼틀로 향했다.

그리고 최대한 안전한 자세를 취하며 미끄럼틀을 타고 활주로로 내려섰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

디엔드가 지나가며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몬스터들이, 재차 어디선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씨……!”

크롤러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공항 근처에서 지진이 일어나면 별로 좋지 못한 징조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너지고 있는 공항 건물을 밀치고 나오고 있는 저 거대한 몬스터는,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빅 바디가 틀림없었다.

“천수 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다가오는 놈은 공격하세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탑에 들어가야만 했다. 고천수는 단원들을 향해 지시했다.

“최대한 빠르게 탑으로 이동…….”

그러던 고천수는 디엔드 신도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잠깐, 설마…….”

신도들이 당하는 걸 못 봐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생각할 여지는 있었다.

교주는 탑에 대해서 잘 아는 놈이었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짓을 신도들에게 시킬 리는 없을 테니.

“레드카펫!”

고천수는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레드카펫으로 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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