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김포공항
[흑구가 Lv.3로 성장했습니다.]
과자를 까먹은 흑구의 레벨이 성장했다.
하지만 고천수를 놀라게 한 건 다른 알람이었다.
[후불로 10젠이 소진됐습니다.]
젠이 멋대로 빠져나간 것이었다.
“뭐야, 이거. 내 젠이 왜?”
-ㅋㅋㅋㅋㅋ
-보이스피싱 당한 표정인데.
-10젠 꿀꺽.
고천수는 열려 있는 보급함을 바라보았다.
애완견 표식이 있는 이 보급함은 개봉 비용이 10젠으로 책정돼 있었다.
‘10젠.’
그렇다면, 아무리 봐도 이 보급함을 열어 버린 비용으로 젠이 빠져나간 것이었다.
“흑구야.”
왈?
“네가 열었냐.”
고천수의 물음에 흑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마음대로 열어버린 주제에, 자기는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랬구나.”
너무 당당해서 살짝 어이가 없었다. 주인의 재산을 그냥 써 버리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10젠이 빠져나가 재산이 이젠 4젠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한숨이 흘러나오면서도, 고천수는 사실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흑구가 대신 보급함을 열어 줄 수도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형님들, 이거 자기 먹이가 들었을 때만 열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뭐, 그렇진 않아.
-이쯤이면 알려줘도 되겠지.
-머여, 진짜임?
확인은 확신으로 돌아왔다.
고천수는 흑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흑구야, 대부분은 열어도 되는 거겠지만 조심해라.”
미믹 같은 함정 보급함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반드시 조심해야만 했다.
“애견창.”
고천수는 애견창을 열어 흑구가 Lv.3로 뛰어오르며 생긴 능력을 확인했다.
“씁. 좋을지 안 좋을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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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견(光犬)을 광견(狂犬)으로 완전히 교체할 수 있습니다.(복구 불가능)
광견(狂犬) : 지시를 받지 않고 날뛰는 미친개가 됩니다. 모든 신체 능력치가 5배로 상승. 대신 주인만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교체 시 1시간에 10분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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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수는 애견창을 보며, 포장지 안에 아예 주둥이를 처박고 혀를 내미는 흑구의 목걸이를 붙잡고 열차로 걸어갔다.
***
김포공항역.
검암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별 문제없이 김포공항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역입니다.”
최형식이 고천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고천수는 문에 달린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 열어 주세요, 전병훈 씨.”
가장 앞 객차에 있던 고천수는 기관사 호출 벨을 누르고 말했다.
치이이익.
그러자 곧 열차의 문이 열렸다.
고천수는 스크린도어를 수동으로 바꾸고 열어젖힌 뒤, 흑구에게 눈짓했다.
흑구는 먼저 나가 정찰을 하고는 고천수에게 돌아와 입을 열었다.
왈!
“다 같이 가죠.”
고천수가 최형식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부 이동!”
최형식이 우렁찬 소리로 외치자 단원들이 스크린도어를 열고 다들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겠습니까?”
“……잠시만요.”
고천수는 즉답하지 않고 다시 흑구에게 손짓했다.
그러고는 곁으로 다가온 흑구에게 물었다.
“냄새 맡을 수 있냐?”
흑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흑구의 주둥이에서 과자 조각이 몇 개 떨어졌다.
-ㅋㅋㅋㅋ 이거 과자 코에 남아서 냄새 제대로 맡을 수 있겠나!
-물론 좀 씻어 줘야 하는 거 아님?
-얼굴 얼마나 처박고 있던 겨. ㅋㅋㅋ
고천수도 우려가 되기는 했지만, 흑구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돌아다녔다.
왈!
그리고 자신 있게 가리킨 방향은, 바로 김포공항 국내선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구나.”
어디로 움직여야 될지 확실히 정해졌다.
“여러분.”
고천수는 단원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저희는 목적지로 갈 겁니다.”
도착이 코앞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경 써야만 할 것들이 많았다.
“지금부터는 뭐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고, 더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정비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고천수는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기세요.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네!”
단원들이 대답과 함께 이곳저곳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며, 고천수는 옆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제나, 사람들이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보고 관리하도록. 능력은 필요한 대로 사용해라.”
“알겠습니다.”
제나는 적안을 켜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고천수도 파밍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다른 보급함을 찾기 위해서였다.
“형님들, 줄 수 있는 젠이 있으면 지금 주세요.”
요즘 들어 젠을 주는 일이 줄었다.
후원이 없으면 살기 어려워지는 건, 방송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자꾸 후원을 해 달라고 하는구만!
-ㅋㅋㅋㅋㅋ
-차라리 대출해 달라고 하라고.
“예.”
-삐진 듯.
-ㅋㅋㅋㅋ
-좀 참아봐.
시청자들은 고천수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다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생각보다 네 팬은 많으니까 인내심을 가지셈.
-네가 방송 시작한 때가 우리한텐 좀 시기적으로 안 좋았음.
‘때?’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기다려 보면 알아. ㅋㅋㅋ
-그래. 묻지 마, 인마.
답을 주지 않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조금 초조해 보이는 반응 하나가 보였다.
-[한도초과] : 별 거 없을 건뎅.
별 거 없을 거라는 말과 다르게 한도초과는 더 이상의 채팅을 쓰지 않았다.
뭔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 오는 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고천수는 더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기획되어 있는 바가 있다면 알아서 일이 진행될 터.
너무 급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왈!
그때, 흑구가 짖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니, 온리베어가 손짓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보급함!’
또 다른 보급함을 찾은 게 분명했다.
고천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있다……!”
한 작은 창고에 보급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 씁.”
하지만 고천수는 곧 자신이 가진 재산을 떠올렸다.
‘4젠뿐인데.’
그걸로 얻을 수 있는 건 손전등보다 못한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고천수는 보급함의 옆으로 다가갔다.
필요한 가격표를 보면 시청자들이 또 어떻게든 도와줄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뭐야.”
그런데, 이건 좀 예상외였다.
“뭐지?”
보급함에 달린 건 공격형 표식이었다.
여기까지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왜 가격표가 없어?”
가격이 적혀 있지 않았다.
보급함의 모든 부분을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밑바닥에 있는 거 아님?
-못 본 데가 거기밖에 없잖음.
-올려 보셈.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고천수는 보급함을 위로 들어보았다.
안에 든 게 없는 것처럼 보급함은 들리긴 들렸다.
하지만 애써 본 보급함의 아래에도 가격표는 없었다.
“음.”
고천수는 침음했다.
“불량품도 있습니까, 형님들?”
-불량품. ㅋㅋ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시청자들은 단순하게 보라는 듯 말했다.
-가격표가 없으면 뭐일지 생각해 볼 수 있잖아.
“아.”
순간 탄식한 고천수는 보급함에 손을 가져갔다.
“설마…….”
딸깍.
손으로 잡아당긴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보급함은 젠을 사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뚜껑이 열려 버렸다.
‘무료 보급함!’
여태까지는 없던 종류의 보급함이었다.
왜 무료인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안에 든 물건은 고천수를 황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건……?”
웬 드릴 모양의 젤리였다.
“뭐야.”
-ㅋㅋㅋㅋㅋㅋ
-가도 가도 이 표정은 계속 나오는구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정임. 개황당한 거. ㅋㅋ
옆에는 사용 설명서가 있었다.
고천수는 그 설명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물에 불려서 사용하세요.]
하지만 자세히 봐 보았자 적혀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고천수는 잠시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왈!
흑구가 정신 차리라는 듯 옆에서 짖었을 때에야 고천수는 다시 현 상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이템이야.’
공짜로 줘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아이템일 것이 분명했다.
고천수는 젤리를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하, 찝찝하네.”
이러다가 나중에 먹어야 하는 거면 주머니 먼지가 다 딸려 나올 거라서 벌써부터 기분이 역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젤리는 주머니에 넣어 버렸고, 더 이상 여기서 지지부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천수 님!”
최형식이 찾는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찾아온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모아온 것.
최형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찾아온 간식, 물과 음료, 손전등, 방독면이 있었다.
“하나 받아 주시길.”
최형식은 방독면 하나를 고천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물자가 더 없어서 아쉽습니다.”
최형식을 비롯한 군인들은 뉴타운에서 챙겨 온 것들은 많지 않았다. 무기들은 있었지만 군장이나 제독키트 같은 것들은 없었다.
백경연의 무리도 딱히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걸 보면, 몬스터들과 싸우며 전부 소진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쩔 수 없죠. 양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열량만 따지면 간식은 저희 식량과 합쳐서 총 인원이 3일은 정상적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인 듯합니다. 식수도 마찬가지고요. 방독면은 21개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쓸 만큼은 있었다.
“후.”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볼 시간이었다.
“자, 여러분! 다 챙기세요! 곧 출발할 겁니다!”
늘어 놓았던 물자들을 단원들이 빠르게 챙겼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탑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다 됐습니까? 그럼 출발합니다!”
고천수는 단원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제나와 흑구가 함께 앞에 서고 소윤재와 최형식은 후미를 맡았다.
국내선으로 향하는 길.
움직이지 않는 무빙워크 옆으로 단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조용한 통로에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울리면서 주위의 정적이 깨졌다.
철컥, 철컥.
뭐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모든 단원들이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고천수와 선두 그룹도 총을 치켜들며 상황을 살폈다.
-위로만 올라가면 공항임.
-와, 벌써 여기까지 오긴 했네.
-감개무량.
시청자들의 반응이 보였지만, 고천수는 갈 길부터 빠르게 따져보았다.
‘이쪽인가.’
고천수가 눈짓을 주면서 몸을 틀자 전체 인원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계단.
무리하게 체력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 이쪽에서는 속도를 좀 늦췄다.
타타타닥.
흑구만이 먼저 계단을 타고 올라가 정찰병 역할을 해 주었다.
흑구는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고천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리함에 고천수는 무심코 헛웃음을 흘렸다.
‘클리어.’
흑구가 미리 알려 준대로 올라간 층에는 위협이 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디엔드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고천수는 단원들과 함께 이동을 계속했다.
곧 도착한 곳은 김포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는 곳이었다.
원래라면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장소겠지만, 지금은 어지럽게 널려 있는 짐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알아낼 수 있는 거라면 있기는 했다.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고천수는 단원들에게 주의를 주고 또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최종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다.
“어디로 가려는 거냐?”
옆에서 휴가 묻자 고천수는 나지막이 답변했다.
“밖.”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은 탑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탑이 이 김포공항 내부에 있을 일은 없었다.
“아.”
탑승구들이 늘어선 층에 도착하자 단원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럴 수가.”
“저건……!”
고천수도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커다란 창들이 있었다.
제주공항과는 달리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시원하게 바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그런 창이었다.
고천수의 눈에 널따란 활주로와 수많은 비행기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서 보인 것은…….
탑.
온전하고 거대한 탑이 하늘을 뚫을 듯이 솟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