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공항철도 (4)
“뭐야.”
고천수는 디엔드 신도가 내민 손을 보며 몸을 멈칫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덜컥덜컥.
신도는 계속해서 손을 휘저었다.
고천수는 신도에게서 발을 물려주었다.
“뭔데. 유언할 거면 빨리 해.”
“코, 콜록! 교, 교주님은, 교주님은…….”
다시 목이 밟힐까 봐 걱정됐는지, 신도는 기침을 하면서도 재빠르게 말했다.
“김포공항, 거기에, 거기에 계신다……!”
“김포공항?”
그야 합리적으로 추측하자면 교주는 당연히 거기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뭐, 그렇겠지. 거기에 있겠지. 그래서 더 할 말은?”
고천수가 물은 건 교주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신도의 대답은 질문과는 맞지 않았다.
“더 할 말 없냐고.”
“마, 말했잖아!”
신도는 급하게 외쳤다.
“교주님이 어디에 계신지……!”
-산소가 부족해져서 이러나?
-ㅋㅋㅋㅋㅋ
-야, 천수 자극하지 마!
시청자들의 말대로 고천수는 쓸데없는 답변에 자극받아 인상을 찌푸리는 중이었다.
“교주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은 게 아니라고.”
고천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직접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대답해 봐.”
“그, 그건 나도 모르…….”
콱!
고천수는 다시 신도의 목을 밟았다.
“그럼 필요 없어.”
원했던 답이 아니었다.
“다른 답을 해.”
“케, 켁……!”
신도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더 이상 뭘 어쩌지 못했다.
정말로 그런 방법은 모르는 듯했다.
‘이런 놈한테 그런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도 안 했지만.’
고천수는 슬쩍 인상을 풀었다.
‘덕분에 충성도는 확실히 알았네.’
절대적인 충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정도면 고천수도 디엔드를 상대할 때의 부담을 좀 덜 수 있었다.
“천수 님.”
생각에 잠겨 있자니 제나가 갑자기 나섰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처리?”
“네, 천수 님께서 직접 하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런 제나의 태도를 보며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미친 녀석인 줄 알았지만, 사회생활도 만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회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천수는 신도에게서 발을 떼면서 말했다.
“제나, 빠르게 끝내고 가도록 하자.”
***
한편, 김포공항역.
그곳에 몰려 있는, 신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 상태였다.
“자, 여러분. 이야기는 다 들려드렸습니다.”
세상은 멸망이 예정되어 있었고, 탑이 나타나 정상에 오른 자를 구원하리라.
그것이 이 디엔드라는 비밀스러운 종교의 교리라고 군종장교 최영우가 말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최영우는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를 가리켰다.
“하나는 저쪽으로 가 공항이 아닌 출구로 나가는 것이고,”
그리고 그는 이어서 김포공항 국내선 방향으로 향하는 통로를 가리켰다.
“다른 하나는 저희와 뜻을 함께해 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주위에 있던 군인들은 그쪽으로 인도하듯 나란히 쭉 늘어섰다. 그리고 몇몇은 바깥으로 나가는 방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통로를 틀어막았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수군거렸다.
“뭐, 뭐야. 나가야 되는 거야?”
“공항으로 가면 이 녀석들이랑…….”
“젠장.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 사이에서, 양민철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의도가 뭐지?’
군인들은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줬다.
마치 길을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뭐야, 대체.’
하지만 그건 표면상으로 그러할 뿐이었다.
군인들과 함께 갈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조건 이 역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김포공항 쪽으로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뭔가 불길함이 감돌았다.
“누나, 이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죠?”
양민철이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 묻자니 장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저기는 아니네.”
장서연은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양민철처럼 이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 저쪽은 아니야.’
여기까지 살아서 올 수 있게 도와줬던 그녀의 감이, 저쪽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애초에 최영우는 디엔드가 비밀스러운 종교라고 했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신도들을 모집하는 사정은 일단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자기네 정체까지 밝혀 놓고 곱게 보내 주지는 않을 터였다.
“고, 고르면 된다고?”
군인들이 선택지만 주고 마냥 기다리고 있자, 결국 기다림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그냥 우리 마음대로 가면 되는 거지?”
“방해 안 할 거지?”
“예.”
최영우는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답했다.
“방해는 일절 하지 않을 테니, 가고 싶은 대로 가시죠.”
그러자 눈치를 보던 몇 명의 사람들이 이 역을 빠져나가는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나, 난 내가 알아서 가겠어.”
“이쪽으로도 김포공항은 갈 수 있는 거잖아?”
“잘 모르는 종교에 가입할 수는 없으니까…….”
그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군인들이 보인 행동에 환멸을 갖고 있는 부류였다.
도저히 군인들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며 그들은 바깥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군인들은 약속대로 그런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최영우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자, 더 가실 분은 없으십니까?”
그러자 눈치를 보던 몇몇이 더 앞으로 나와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로 갔다.
‘어쩌지.’
양민철은 그런 그들을 보며 고심했다.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군인들을 따라가자니 영 찝찝한 상태였다.
쿵.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지반이 울렸다.
쿵, 쿵.
마치 뭔가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쿵쿵쿵.
“뭐, 뭐야.”
“위에 뭔 일이 있는 거지?”
“설마…….”
남아있는 사람들이 불안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울림이 잦아들었을 때, 최우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또 나가실 분 있습니까?”
함정이었다.
양민철은 확실히 알아챘다.
‘선택지는 하나야……!’
다른 길은 없었다.
양민철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들도 똑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고민의 시간이 너무 길면 좋지 않…….”
“따라가겠습니다.”
양민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희는 이쪽을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공항 쪽으로 향하는 내부 통로였다.
“오, 드디어 이쪽을 선택한 분이 나왔군요. 뒷분들도?”
양민철과 함께 앞으로 나온 일행들을 보며 최영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옳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
그는 옆에 있는 군인들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러자 군인들은 양민철 일행에게 탑 모양의 목걸이를 하나 선사해 주었다.
“나, 나도.”
“저도 그쪽으로 갈게요!”
“저도!”
겁에 질려 있던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양민철 일행이 선택한 길을 따랐다.
하지만 남아 있던 모두가 디엔드와 함께 하는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나, 난…….”
웬 남자 한 명이 군인들이 제시한 두 가지 길을 전부 거부하겠다는 듯,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쪽으로 공항에 갈 거야.”
그는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이 공간의 특성을 활용해 다른 쪽으로 공항에 향하려는 듯했다.
탕!
하지만 그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뒤 들린 소리는, 그가 그런 선택을 내리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런.”
최영우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분이 생기고 말았군요.”
군인은 여기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 군인들이 배치돼 있는 것이었다.
‘역시.’
양민철은 마른침을 삼키며 현재의 상황을 통감했다.
‘길은 이미 정해져 있던 거였어.’
이렇게 강제적으로 신도를 모집해서 원하는 게 뭘지, 양민철은 궁금했다.
똑같은 신앙도 충성심도 없을 텐데 말이다.
“자, 여러분. 이제 전부 준비가 되셨군요.”
그저 공포심을 자극해서 최소한의 추종만 하게 만들고서, 최영우는 드디어 양팔을 들며 외쳤다.
“탑으로 가도록 합시다!”
***
덜컹덜컹.
검암역.
마키나 결사단원들이 디젤 열차를 찾아 플랫폼으로 끌고 왔다.
-뭐임.
-이것도 조종 가능한 거?
-육지로 다니는 건 거의 다 모는 거임. ㅋㅋ
기관사는 전병훈이 맡고 있었다.
고천수가 그를 보고 헛웃음을 흘린 사이, 열차는 플랫폼에 완전히 열을 맞추고 멈춰 섰다.
“고천수!”
문을 연 열차에서 나와 스크린도어까지 수동으로 통과한 송하나가 고천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바로 사람들 태우면 될까?”
“그래, 서둘러 줘.”
너무 늦으면 좋을 게 없었다.
고천수는 뒤를 돌아 단원들을 돌아보면서도 말했다.
“자, 열차는 준비됐습니다.”
이제 가게 될 곳에는 디엔드의 본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앞으로 있게 될 일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속한 이 마키나에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통과하지 못할 곳도 통과할 수 있었다.
“여러분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이미 함께 여러 일을 겪은 사람들은 바로 팔을 들어올렸다.
“위대한 마키나를 위해!”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자!”
“끝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고천수는 미소를 지으며 단원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뭐 하십니까. 얼른 열차에 타지 않고.”
단원들은 이제 망설임이 없었다. 그들은 여기서도 승무원 역할을 하는 송하나의 안내를 따라 차례차례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밖에 있던 인원들도 다 데리고 들어온 소윤재가 고천수의 옆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고천수 씨, 최종적으로 정리한 저희 총 인원은 112명입니다. 여기서도 몇 명 사망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윤재 씨.”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었다.
“소윤재 씨도 타시죠. 이제 곧 출발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모두가 안내에 따라 열차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천수는 옆에서 과자를 들고 있는 흑구를 발견했다.
“그건 또 어디서 난 거냐.”
파닥파닥.
고천수는 과자 포장지를 흔드는 흑구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뜯어 달라고?”
-지가 뜯어먹지 이런 걸 시키네. ㅋㅋ
-응? 근데 이거…….
-과자 맞음?
채팅을 본 고천수는 흑구에게서 과자를 받아서 살펴보았다.
‘뭐야, 이건.’
과자는 맞았다.
하지만 사람이 먹는 건 아니고, 애견용이었다.
포장지에는 흑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왈!
흑구가 과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얼른 뜯으라는 듯했다.
-아, 씁. ㅋㅋㅋㅋ
-흑구 지가 먹을 특수 먹이 알아서 찾아온 거임?
-무능한 주인 농락. ㅋㅋㅋㅋ
‘특수 먹이?’
고천수는 여태 보급함에서 얻어 왔던 흑구용 먹이를 떠올렸다.
“뭐야, 너. 이건 어디서 가져온 거야.”
젠이 없으면 열지 못할 텐데, 대체 어디서 먹이를 얻어 왔단 말인가.
황당해서 고개를 들어 올리니 온리베어가 어깨를 으쓱이는 게 보였다.
보급함 자체는 온리베어가 있으면 찾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에 종속되는 몬스터인 흑구도 보급함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아니, 여태 못 봤다고 해도 온리베어와의 시너지가 생겼으니 지금은 확인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땅바닥에 널려 있던 거야?”
마스크 때처럼 그냥 놓여 있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파닥파닥.
고천수는 과자를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흑구가 얼른 달라는 듯 몸을 들썩거렸다.
“흑구.”
고천수는 바로 포장지를 뜯어 주지 않고 물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
왈!
그러자 흑구는 어딘가로 달려갔다.
고천수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수 님?”
“잠시만.”
뒤에서 부르는 제나의 말을 멈추고 고천수는 흑구를 따라갔다.
어쩌면 김포공항에 다다르기 전, 마지막으로 알아 둘 사항이 있을지도 몰랐다.
“응……?”
그런 고천수의 눈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열려 있는 보급함이었다.
“뭐야.”
지익!
그때, 이제 됐냐는 듯 흑구가 달려들어 고천수 손에 있던 과자 포장지를 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