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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59화 (159/224)

159. 공항철도 (3)

“…….”

“……뭐가 보여?”

“아직.”

검암역의 1번 출구.

서쪽을 경계하며 늘어선 10명의 디엔드 신도들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우리가 지키고 있는 역으로 뭔가 오는 걸까?”

“제나가 말했잖아. 디엔드하고 사이 안 좋은 놈들이 오고 있다고.”

“잘못하면 말살될 거야.”

교주로부터 아직 이곳을 비우란 통보를 받지 못했다.

애초에 연락병은 어제 제나와 따로 얘기를 나눈 뒤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나가 이 검암역을 지키기 위해 따로 연락을 준 것이라고 하니 도망친 건 아닐 터였다.

“다들 기억하지?”

그렇기에 신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것만 확실히 약속했다.

“나타나면 바로 쏘는 거야. 선제공격이라고.”

제나는 누군가 나타나는 즉시 바로 쏴 버리라고 했다.

안 그러면 이쪽이 당할 거라고.

“어, 잠깐!”

그때, 쌍안경으로 앞을 내다보고 있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길 봐!”

신도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조준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십 수 명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시발!”

“진짜였어!”

“다 총 들고 오고 있는데?”

아직 거리가 있어서 정확히 어떤 단체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인들과 일반인들이 섞여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젠장.’

이쪽 1번 출구를 지키고 있는 신도들의 리더는 이를 악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적들인가.’

정체가 어떻건 간에 저 정도 되는 무리가 이쪽으로 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교주로부터 딱히 누가 올 거라는 말도 듣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리더는 들고 있는 쌍안경을 돌리며 고개를 움직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속에는 초록색 완장을 찬 이들이 몇 명 존재했다.

‘제나 말대로다.’

제나는 초록색 완장을 찬 이들이 적들의 리더역을 맡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먼저 해치우게 된다면, 적들을 와해시킬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다고도.

“대장, 제나가 말했던 완장 찬 놈들 말인데.”

“죄다 방탄모에 목에도 뭘 두르고 있어.”

“공격하기 쉽지 않겠는데?”

주위에 있는 신도들이 리더를 돌아보며 말했다.

리더는 마른침을 삼켰다.

‘확실히 방비는 하고 있다는 건가?’

하지만…….

‘몸은 다 노출돼 있다.’

그렇다면 머리가 아니더라도 노릴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적들의 요인을 노린다! 초록색 완장을 찬 놈들의 심장을 노려!”

리더는 신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직 거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유효 사거리 안에 들면 먼저 사격할 셈이었다.

리더가 원하는 거리는 600m.

적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기까지, 폭풍전야의 시간이 흘러갔다.

“대장!”

그리고 마침내 적절한 거리를 확보했을 때, 리더는 답을 요하는 신도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쏴!”

탕! 타탕! 탕!

총알이 녹색 완전을 찬 이들에게 날아갔다.

“으아아!”

“악!”

“꺄아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요인들은 정확히 맞췄다.

이쪽에서 기선제압을 한 것이었다.

“됐어! 이제 적당히 휘갈기다가 뒤로 빠지…….”

쿠웅.

순간 들린 소리에 리더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있는 거대한 그림자. 그건 거대한 개의 모습을 한 몬스터였다.

“뭣……!”

이런 게 접근하는 건 보지 못했다.

아무리 전면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커다란 게 곁에 붙었다면 진즉에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카직!

의문은 거기까지였다.

리더는 몬스터에게 머리를 씹혀 박살나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 흐아아아아!”

그걸 목격한 다른 신도들이 총구를 돌릴 때였다.

탕! 타앙!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신도들은 하나씩 쓰러졌다.

“커, 컥.”

마지막으로 쓰러진 신도는 우연히 총알이 날아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도 발견했다.

“너, 넌…….”

제나.

그녀가 그를 멀리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그사이 이빨을 드러내며 주둥이를 이죽인 몬스터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검암역의 다른 출입구가 있는 쪽이었다.

“젠장…….”

속았다.

하지만 알아채는 게 늦었다.

애초에 그녀가 이런 짓을 벌인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신도는 그렇게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피가 붉게 시야를 물들이고 있었다.

***

“끄윽, 끅.”

“천수 님!”

“괜찮으십니까!”

총에 맞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뒤엉켜 소란스러웠다.

고천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원하는 대로 됐어.’

디엔드가 먼저 이쪽을 공격했다.

‘제나, 역시 대단하네.’

그녀는 먼저 디엔드가 있는 곳으로 가 전력을 파악하고 연락선을 끊어 놓았다. 그리고 몰래 다시 돌아와 마키나의 척후병 역을 자처하며 앞에 나서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 쪽도 좀 더 공고해질 수 있겠어.’

녹색 완장은 제나의 의견에 따라 채워 두었지만, 고천수는 일방적으로 그들을 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출발하면서 들렀던 경찰서의 무기 창고에서 몇 개의 방탄복을 얻었고, 그걸 완장을 찬 신도들에게 입혀 놓은 상태였다.

“끅, 커헉.”

덕분에 이 거리에서 죽은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타격이 좀 큰지 신음을 흘리기는 했지만.

‘생각 이상이었다.’

얻은 방탄복이 안 좋았을 경우엔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고천수는 만족하며 겉으로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전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몇 명 사상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당한 숫자가 많지는 않습니다.”

최형식이 답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천수 님, 죄송합니다. 저렇게 다짜고짜 공격할지는 모르고 대비를 제대로 해 두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최형식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저쪽과 대화할 여지가 약간은 있다고 생각했을 터.

고천수는 그걸 깨부숴 주기 위해 이런 판을 준비한 것이었다.

“저쪽이 먼저 모두를 손절했는지 몰랐을 뿐이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더 이상의 인원은 받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같은 소속이었다 할지라도.”

소속이 어디인지도 물어보지 않고 총을 쏴댔다.

그건 즉, 같은 소속이었든 어디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최형식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 보일 것이 분명했다.

“네, 천수 님. 저도 잘 알게 됐습니다.”

최형식은 한숨과 함께 총을 꽉 틀어쥐었다.

“요컨대 저희는 저희끼리 공고해져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잘 이해하셨군요.”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앞은 제나와 흑구, 온리베어에게 맡겨 놓았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제나는 검암역에 몰려 있는 병력들의 위치와 인원까지 전부 파악해 두고 있었다.

“소윤재 씨.”

고천수는 소방대원이었던 그에게 사상자 수습을 맡겼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고려해서 그에게는 수습반 인원 20명을 맡긴 터였다.

“다친 사람들을 부탁하겠습니다. 휴는 경호용으로 남겨 두도록 하죠. 저는 나머지 인원과 함께 검암역 내부를 점령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형식 병장님!”

고천수는 다시 최형식을 돌아보며 외쳤다.

“내부로 진입할 테니 따라오십시오!”

***

검암역 내부.

거기에는 이미 죽어 있는 디엔드 신도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자식들, 정말 우리를 먼저 공격했어.”

“우리는 일원으로 생각해두지 않고 있던 건가.”

“개자식들.”

마키나의 일원들은 죽어있는 신도들을 향해 분노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벌써 다 정리됐나?’

예상대로의 반응이었기에 고천수는 그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나가 손을 쓴 건지 살아있는 신도들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천수 님, 남아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곳곳을 둘러본 최형식이 고천수에게 말했다.

“천수 님!”

어딘가에 있던 제나가 고천수에게 달려왔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나 연기 잘하네.

-임포스터인 듯.

-ㅋㅋㅋㅋㅋㅋㅋ

어쨌건 간에 그녀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건 사실이었다.

고천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괜찮아. 넌?”

“저도 괜찮습니다.”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고천수는 최형식을 돌아보며 말했다.

“병장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좀 더 내부를 수색해 주시겠습니까?”

“수색 말씀이십니까?”

“여기를 지키고 있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희한테 필요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한 번 찾아봐 주세요. 아, 송하나랑 전병훈 씨도 데려가시고요.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최형식은 곧장 알겠다고 답하며 다른 인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제나에게 말했다.

“제나, 연락책은 어떻게 됐지?”

“사로잡아 뒀습니다.”

제나는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한 번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안 될 것 없지.”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간 곳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그곳을 통해 들어가자 보인 것은 시설의 기계 장비들.

걸음을 조금 옮기자 고천수는 철 기둥에 끈으로 팔들이 묶여 널브러져 있는 한 신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이 자식들.”

그는 입안에 피를 머금은 채로 고천수와 제나를 올려다보았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미 제나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모습에,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쪽이 이쪽 디엔드 신도들의 연락책이었습니까?”

“……뭐야.”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고천수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교주하고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있습니까?”

디엔드의 간부였던 제나가 있긴 하지만, 그녀도 지금 교주와 직접 연락할 방법은 알지 못했다.

“조금 얘기를 나눠 보고 싶어서요.”

“이 새끼…….”

하지만 연락책은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이를 갈았다.

“지금 장난하는 거냐. 이런 짓을, 해놓고, 교주님과 연락하게 해 달라고?”

“안 됩니까?”

고천수는 제나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제나가 가지고 있던 총을 들려 개머리판을 연락책에게 들이댔다.

“안 되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또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 이 자식.”

“제나.”

파악!

개머리판이 연락책의 얼굴을 때렸다.

“크, 꺽.”

퍽! 퍼억! 퍽!

수차례 개머리판이 휘둘러지고 나서야, 고천수는 손을 들었다.

“끄으으…….”

제나가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자, 연락책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만 들렸다.

“저희는 싸우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오히려 싸움을 피하려고 하는 거지.”

마키나 일원들의 소속감을 충족하려는 시도는 이미 성공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적개심은 탑을 올라가는 데 방해물이 될 수 있었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했다.

“뭐,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제나가 싫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미 그녀와 얘기는 다 해 두었다. 교주와 일시적으로 협력하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만 전술.

그녀가 바라고 있는 바는 이루어질 거라고.

다만 연락책에게는 그러한 내막을 설명하지 않고 온건하게 대화를 진행했건만, 일이 뜻대로 풀리진 않았다.

“우, 웃기지 마. 너희는 교주님과 직접 연락할 수 없어.”

“음.”

고천수는 일어나 발로 연락책의 목을 짓눌렀다.

“컥?”

“진짜로?”

괴로워하는 신도를 보며 고천수는 말했다.

“하긴 사실 이런 곳에 처박혀 있는 연락책한테 별 기대는 하지 않았어.”

“끄, 허억.”

“그냥 한 가지 알아두고 싶었던 것뿐이야.”

교주를 향한 이쪽 디엔드 신도들의 충성도를.

“살짝 골치 아파질 것 같긴 한데, 어쩔 수 없지.”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원하는 대로 충성을 지키다가 죽어.”

콰직.

고천수는 연락책의 목에 둔 발에 힘을 더 주었다.

연락책은 괴로워하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방법이 있겠는가.

그의 두 팔은 기둥에 끈으로 묶여서 겨우 몇 센티미터 정도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다.

덜컹덜컹.

그리고 몇 초 정도 지났을까, 우습게도 연락책은 잠깐 기다리라는 듯 손을 펴고 그 몇 센티미터를 앞뒤로 움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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