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공항철도 (2)
검암역.
인천항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역이었다.
‘쪽지에 나와 있던 곳인가.’
길이 겹쳐서 다다르게 되었지만 고천수는 원래대로라면 검암역으로 향할 생각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그대로 쭉 김포공항까지 갈 예정이었던 것이다.
부르르르.
하지만 버스는 어느새 멈춰 선 채 제자리에서 엔진 음을 내고 있었다.
“고천수 씨, 어떻게 합니까?”
정병훈이 뒤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길이 막혔습니다.”
고천수도 지금의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돼 있는 거지?’
온갖 잔해들로 버스가 나갈 길이 모조리 막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이동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사람은 지나갈 수 있겠는데…….’
그나마 막혀 있는 길들은 사람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는 뚫려 있었다.
“고천수 씨?”
전병훈이 다시 한번 묻자 고천수는 버스 문을 가리켰다.
“내려서 살펴보겠습니다. 열어 주시죠.”
덜컹.
문이 열리자 고천수는 흑구와 온리베어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잔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치울 수 있어?”
왈!
흑구가 걸어가 잔해를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위에 타고 있는 온리베어도 팔로 X자를 그려 보였다.
‘역시나.’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잔해의 대부분은 콘크리트가 붙은 철골이었다.
대체 어디서 온 잔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치워낼 수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천수 님.”
그사이, 다른 버스에서 내려 다가온 최형식이 말했다.
“이거, 버스를 타고 계속 이동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병장님,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고천수는 잔해를 가리켰다.
“아무리 봐도 그냥 여기에 있는 건 이상합니다.”
일부러 길을 막아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더욱이 몬스터가 이 짓을 해 놨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확실히, 누군가 길을 막으려고 일부러 이렇게 해 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최형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어딘가로 유도하려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딘가라고 한다면 바로 검암역일 확률이 높았다.
주변에 있는 이동로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으니까.
“디엔드가 움직였을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최형식 병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짚이는 게 있습니까?”
“디엔드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디엔드에 뉴타운에서 가입하기도 했고, 일개 병사였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고 있는 건 없습니다만 뭔가 목적이 있어서 이래 놨다면 그쪽일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의 흐름대로라면 탑은 김포공항, 적어도 그 근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고천수는 살짝 침음했다.
‘디엔드 본부라.’
목적지가 김포공항이라면 교주도 멀지 않은 곳에 있을 테고, 공항철도에도 디엔드 신도들이 있을 터.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7.5사단도 최형식이 신경 쓰지 않게끔 정리했건만, 디엔드 신도들이라도 마주치면 곤란한 부분이 컸다.
‘괜히 정신 공격이라도 받게 되지 않을지.’
확실히 자신을 따르게 되기는 했다지만 최형식은 교주가 만든 디엔드 출신이었다.
뉴타운에서 디엔드에 가입했기 때문에 교주와는 직접 대면한 적이 없어서 서울 지부와 연이 질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어떤 면에서든 방해 요소가 될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이건 버스에 타 있는 일반 신도들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나를 따르는 건 확실하지만, 다른 사람까지 따라서는 곤란하지.’
소속 집단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다만 이건 지금 말로 해서는 좋을 게 없었다.
괜한 고민을 안겨 주느니, 이곳에 있는 인원들 전부가 어쩔 수 없이 고천수만을 택하게 만드는 게 좀 더 확실한 방법이었다.
“최형식 병장님.”
고천수는 최형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전원 걸어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역시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최형식이 빠르게 버스로 뛰어갔다.
고천수는 곁에 있는 흑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흑구야, 가서 제나 좀 데려와라.”
***
“부르셨습니까, 천수 님.”
사람들이 행군을 준비하는 동안 흑구와 함께 고천수의 곁으로 다가온 제나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 녀석만 한 사람이 없지.’
제나는 교주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만큼 어느 편인지가 확실했다.
“제나, 부탁해 두고 싶은 게 있다.”
“부탁 말입니까?”
제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대답이 시원해서 좋네.”
고천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제나, 우리는 곧 있으면 다른 디엔드 신도들과 만날 거다.”
“예.”
“그때, 다른 디엔드 신도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한 것처럼 꾸며 줄 수 있나?”
내용을 들은 제나는 놀란 듯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저희를 먼저 공격한 것처럼 말입니까?”
“그래. 아니면 실제로 먼저 공격하게 만들어도 좋고. 넌 디엔드 간부였으니까.”
상대가 이쪽을 적대하면 이쪽도 당연하게 적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고천수는 그 간단한 원리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피해가 클 수도 있습니다.”
제나의 말에 고천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어.”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 번은 부딪쳐야 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최대한 빠른 것이 좋았다.
“제나, 다른 신도들이 디엔드 본부의 인원들과 온건히 만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그건…….”
“너와는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교주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제나처럼 미리부터 완전히 돌아서 있지 않은 이상은, 그가 직속 신도들에게 내려 둔 교리에 휘둘릴 수 있었다.
“원천 차단이 필요하다, 제나.”
탑을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인원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이쪽 세력만 남아 있다면 다시 충원할 수 있었다.
“소속감을 키우려면 우리에게도 동족의 적이 필요해.”
그건 몬스터가 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해했나?”
“……예.”
제나는 곧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천수 님만을 따릅니다. 지시하신 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좋아.”
일을 치르기 전에 고천수는 또 하나 해 둘 것이 있었다.
“지금부터 우리도 이름을 하나 공표할 거야.”
현재 이 집단에는 일반 신도, 군인이었던 신도가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언어의 힘도 필요했다.
“마키나(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그 마키나.
무엇을 바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극을 끝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고르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마키나. ㅋㅋㅋㅋ 씁.
-손발 접힐까 말까 함.
-엔드 게임이 안 나음? 엔드 게임 하셈.
시청자들이 비웃기는 했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살짝 거창한 게 낫습니다, 형님들.”
신앙이 있는 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다면 일부러라도 이런 이름을 선택해 줄 필요가 있었다.
“제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더 말해 주지 않아도 되겠지?”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고천수는 제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천수가 제나에게 더 이상 설명을 해 줘야 될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래잖아, 그녀가 전파한 마키나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입가에 머물게 되었다.
***
검암역.
그곳의 입구에는 몇 명의 디엔드 신도들이 서 있었다.
“후우, 뭐라도 오긴 오나.”
“글쎄.”
“우리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거야?”
교단으로부터 검암역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머물러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근처를 보며 한숨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 불러 줄라나. 여기는 탑도 안 나타나는데.”
“죄다 김포 공항으로 가고 있다던데?”
“탑이 거기에 나타난 게 분명해.”
현재 연락이 닿는 디엔드 대부분의 인원에게 소집령이 떨어졌다.
신도들을 더 모으기 위해 남겨 놓은 몇몇 지점을 제외하고는, 신도들이 각자 지키던 곳을 떠나 김포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아, 우리도 빨리 불러 주셨으면…….”
검암역을 지키는 신도들은 당장에라도 김포 공항으로 가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다.
아직 교주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다.
조급하기는 했지만, 교주는 모두가 탑에 올라갈 기회는 준다고 했다. 교리를 전파한 디엔드의 최고 인도자가 하는 얘기인 만큼 신뢰는 확실했다.
그렇기에 이곳의 신도들은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응?”
그러던 중, 한 명의 신도가 뭔가를 발견하고 손짓했다.
“뭐지?”
그의 손짓을 따라 다른 신도들도 먼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에는 이쪽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는 금발의 여성 한 명이 있었다.
“뭔가 익숙한…….”
“야, 뭐 해!”
“총부터 들어!”
신도들은 급하게 총을 들고 여성을 조준했다.
그러자 여성은 손을 들고 외쳤다.
“디엔드!”
모를 수가 없는 단어.
신도들은 갑자기 들린 소리에 몸을 멈칫했다.
“디, 디엔드?”
“뭐야, 저 년.”
“자, 잠깐만!”
아직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여자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 명의 신도가 급하게 말했다.
“저 사람, 제나잖아!”
디엔드의 간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기에 디엔드 내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였지만, 교주의 명령에 따라 제주도로 내려가서 근래에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여성이었다.
“제나?”
“간부님?”
다른 지부로 갔다고는 해도 디엔드의 일원이며 간부인 것만은 확실했다.
신도들은 총을 들고 호들갑을 떨며 제나를 맞았다.
“제, 제나 님!”
“어떻게 된 겁니까.”
“제주도에 내려가셨던 거 아닙니까?”
바로 앞에서 제나를 보게 된 신도들이 놀란 눈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자 걸음을 멈춘 채로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제나는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려갔었죠. 제주도.”
그러고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거기에도 탑이 나타났었습니다.”
“탑이……!”
“정말입니까?”
신도들이 탄식하자 제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진짜 탑은 아니었죠. 많은 희생이 있었고, 여기까지 살아온 건 저뿐입니다.”
그녀는 태연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김포 공항에도 뭐가 나타난 것 같더군요. 혹시 들으신 게 있습니까?”
그러자 신도들은 서둘러서 그녀에게 답했다.
“예, 탑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교주님이 전부 거기로 모이게 하고 있어요.”
“그쪽에 나타난 건 진짜 탑인 게 확실합니다.”
그 얘기를 들은 제나가 눈썹을 움찔했다.
“사실이라면 정말 좋은 얘기군요. 그런데…….”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에 있는 인원들은 아직 안 간 겁니까?”
“아아.”
신도들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직 저희는 소집 명령을 받지 못해서 말이죠.”
“여기를 지키느라 아직 이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열차가 여기 있으니까, 금방 갈 수는 있을 겁니다.”
뚜벅뚜벅.
제나는 그 얘기를 듣고 그들이 지키고 있던 검암역의 입구를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다행이네요. 근데 여기 얼마나 대기하고 있는 겁니까?”
“예? 뭐, 인원은 한 스무 명쯤 되는데요.”
“적당하네요.”
그녀가 중얼거리자 신도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 뭐가 적당한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적당히 얼버무린 그녀는 다시 신도들 사이로 돌아왔다.
그녀가 바라본 신도들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고천수를 도울 계획을 떠올렸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 내용이 정리됐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잘 들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