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공항철도 (1)
김포공항역.
아무도 오가는 일 없이 조용하던 그곳에, 디젤 열차가 천천히 들어섰다.
치이익.
플랫폼에 다다른 열차는 스크린도어에 맞추어 멈춰 섰다.
드르륵.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열차의 문을 직접 열고, 스크린도어도 수동으로 바꾸어 밀어젖힌 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후. 사, 살았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난 화장실부터 가야겠어……!”
나오자마자 주저앉은 사람, 그리고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도 주변은 무척 소란스러워졌다.
“살긴 살았네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뒤늦게 열차에서 내린 양민철이 장서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솔직히 좀 위험했는데.”
열차가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열차가 고장나고 철로까지 막혔는데, 그걸 해결하느라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괴물들과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게. 진짜 죄다 비명횡사할 뻔했지.”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장서연은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일행들을 살리기 위해서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원래부터 강인했던 그녀는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더욱 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특히 저 사람은.”
그녀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막 열차에서 내린 기성현이 김하령의 도움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미안하게 됐어, 나 때문에.”
기성현은 다리에 부목을 하고 있었다.
괴물과의 싸움에서 그렇게 된 것인데, 김하령이 적절히 조치를 취해 준 것이었다.
“같이 이곳까지 왔는데, 미안할 거 있나요. 다 같이 서로서로 도운 거죠.”
양민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기성현의 상태를 살폈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오긴 했다지만, 더 이상 긴 거리를 이동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김포공항역…….’
고개를 돌린 양민철은 플랫폼에 적혀 있는 역명을 바라보았다.
‘인천공항이 아닌 거지.’
군인들은 처음엔 목적지가 인천공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딘가와 연락을 주고받더니 목적지를 김포공항으로 수정했다.
‘대체 어디랑 연락을 주고받은 걸까.’
아무리 생각보다 서울이 상황이 괜찮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나을 뿐이었다.
곳곳에 괴물들이 돌아다녀 멀쩡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한 판국에 어딘가와 연락을 주고받다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자, 여러분.”
양민철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지휘관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이 모두 단결해 주신 덕분에, 희생을 줄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슨 수상소감과도 같은 발언에, 가만히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며 외쳤다.
“이봐! 그 말은 좀 그렇지 않아?”
“음? 무슨 소리십니까?”
“단결이라기보다는 그쪽에서 일반 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썼잖아!”
군인들은 위험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들은 뒤로 빠지는 일을 반복했다. 남자는 울분에 찬 표정을 지었다.
“단결이 아니었다고! 희생은 분명히 있었다는 거야!”
그 외침에 주변이 적막해졌다.
군인들 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남자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에게 동조해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군인들이 없었으면 우리도 죽었을 거야.’
‘여기까지 못 왔을 거라고.’
‘괜히 여기서 나대다간…….’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버려질까 봐, 혹은 괜히 적으로 인식돼 공격을 당할까 봐 조용히 있는 것이었다.
“필수불가결한 희생이었습니다.”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지휘관은 유연하게 반응했다.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결과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과? 자기네들만 살겠다고 그래 놓고…….”
“저희들만 살겠다고 그런 건 아닙니다.”
지휘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살아야 여러분도 살 수 있었습니다.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십니까?”
“그건 너무…….”
“결과론적이라고 하시려는 겁니까? 하지만 이게 실제 결과입니다.”
지휘관은 주변을 보라는 듯 손을 뻗었다.
“당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저희가 살아남아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건…….”
“부정할 수 있으면 부정해 보시죠.”
여기까지 오면서 군인들이 많은 괴물들을 물리쳐낸 것은 사실이었다.
남자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지휘관은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네, 답이 된 것 같군요.”
“…….”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지휘관의 물음에 우물쭈물하던 남자는, 울분이 전부 가시지는 않았는지 겨우 말을 뱉었다.
“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지금 좋아하는 건 일러. 우린 지금 역에 도착했을 뿐이잖아.”
아직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남자는 분명히 했다.
“비행기 타고 어디 안전한 데로 떠난 것도 아니라고. 긴장 풀기는 이르다는 얘기야.”
“그렇군요.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지휘관은 그러면서도 남자가 너무 부정적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깝습니다. 아직 남은 과정들이 있겠지만, 어떤 인도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인도?”
“그렇습니다.”
지휘관은 탑 모양의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저희들이 여기에 온 건 온전히 저희들의 힘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저희가 해내야 될 어떤 사명이 있어서일 수도 있죠.”
“뭐야.”
남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 하는 거야, 갑자기.”
“좋은 얘기를 하나 전해 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좋은 얘기?”
길 가다가 강제로 종교 전도를 할 때나 누가 쓸 법한 멘트였다.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외쳤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어? 여기까지 와서?”
하지만 이후의 흐름은 남자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지휘관은 숨길 것 없다는 듯 말했다.
“저희는 여러분들께, 믿음을 하나 선사해 드리려고 합니다.”
탁탁탁탁.
그러자 주위의 군인들이 사람들을 둘러쌌다.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뭐, 뭐야, 이거.”
“뭐 하자는 건데.”
“대체…….”
그 와중에 양민철은 올 것이 왔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닐 줄 알았는데.’
적어도 김포공항에 갔을 때에야 본색을 드러낼 줄 알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솔직히 군인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만큼, 양민철은 일행들과 함께 적절한 계획이 있을지를 의논해 왔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야만 안전한 곳으로 떠날 수 있다면, 중간에 빠져나갈 방법이 솔직히 존재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는 사이, 결국 이런 일이 터져 버렸다.
“여러분,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지휘관은 사람들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여기까지 도착해 살아남은 여러분들은, 이 얘기를 전해들을 가치가 있으니까요.”
두서없는 언사였다.
양민철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무언가 해야 할까 싶었지만, 장서연은 그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그렇게 읽혔다.
그 말을 듣고 정말로 가만히 대기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새로운 군인들이 나타났다.
“오, 형제님. 여기까지 잘 도착하셨군요.”
그들을 이끌고 있는 이는 가슴팍에 탑 모양의 자수를 박고 있는, 소령 계급의 군종장교였다.
“소령님.”
지휘관은 그런 장교를 반갑게 맞았다.
“다시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야말로.”
소령은 그런 지휘관에게 미소를 지어 준 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군종 장교 최영우라고 합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당황하던 사람들은, 곧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뭡니까.”
“우리들한테 뭔 짓을 하려는 겁니까?”
“그, 그만둬 주세요! 오지 마세요!”
하지만 최영우는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보며 안심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는 품안에 있던 탑 모양의 상징물 하나를 꺼내들고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려고 할 뿐입니다.”
가르침.
그 말을 들은 양민철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사이비야.’
이런 세계에서 가르침을 운운할 놈의 정체는 굳이 따져 볼 것도 없었다.
‘어떡하지?’
뭔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건 아니었다.
양민철은 주위를 살짝 돌아보았다.
합류한 자들까지 합쳐서 군인들의 숫자는 대략 60명이 넘어 보였다. 그에 반해 일반인들은 고작 수십이었다.
무기까지 들고 있는 군인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저희가 가르쳐드릴 건 딱 하나입니다.”
최영우는 그런 양민철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탑에 오르십시오.”
탑?
양민철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최영우는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
“그 꼭대기에 답이 있습니다.”
***
탑.
전병훈이 운전하는 버스의 운전석 바로 뒤에 앉아서, 고천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디엔드 녀석들은 탑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세상이 개변되면서 사상을 주입당한 상태일 게 분명하지만, 문제는 설정이었다.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모르겠으니까.’
디엔드는 탑을 신봉한다.
탑에 오르면 구원을 받는다는 비교적 간단한 믿음을 가지기는 했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서로의 협력을 반드시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주란 놈이 나타나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협력보다는 경쟁에 가까웠다.’
뉴타운에서 신도들이 탑을 오르던 모습을 떠올리면, 충분히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거기서의 디엔드는 어떤 방식이든지 간에 신도들을 탑에 올라가게만 만들려는 모습이었다. 그 밖의 것은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
“천수 님.”
옆에서 제나가 말을 걸었다.
“걱정이 있으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고천수는 잠시 침음하다가 반문했다.
“제나, 디엔드 교주와 만난 적이 있는 거지?”
“교주, 말씀이십니까.”
제나는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표정을 살짝 굳혔다.
“네, 있습니다.”
“교주는 어떤 사람이었지?”
고천수의 물음에 그녀는 별로 고민할 것도 없는지 즉답했다.
“알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알 수 없다고?”
“네.”
제나는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놓고는, 정작 그 사람들을 본인이 경계하고는 했습니다.”
“……본인이 신도들을 경계했다고?”
“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신도들은 계속 모았습니다.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확실히 이 얘기만 듣고 보면 상당히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간이었다.
고천수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제나, 교주가 받았다는 계시는 어떤 형태였지? 혹시 알고 있어?”
“모르겠습니다.”
제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한테는 별다른 설명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서를 가지고 있기는 했습니다.”
“성서는 뭔데.”
“지침서 같은 것입니다. 어느 시기에 어디로 가면 뭘 얻을 수 있다든지, 탑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곳은 어디어디라든지 같은 것입니다.”
그 말에 고천수는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공략집!’
또 다른 버전의 공략집이었다.
“형님들, 제나가 얘기한 거에서 부연 설명 혹시 가능하십니까?”
-어려움.
-교주에 대해서는 금지어가 너무 많음.
-설명하기 힘들어.
스포일러 방지가 강하게 걸려 있는 듯했다.
고천수는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역시 교주 이놈은 뭔가 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다른 녀석들과는 급이 다를 가능성이 높았다.
‘주의해야겠어.’
단순하게 소모될 악역이 아니라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할 터.
주먹을 꽉 쥐는 그의 앞에, 검암역이라고 써진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