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인천항 (2)
“사격 중지!”
최형식이 주먹을 들고 외치자 총성이 잦아들었다.
탕! 탕…….
순식간에 주변은 조용해졌다.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최형식은 사격 중지를 지시한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천수 님, 정리된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앞에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끝났나?’
보내 놨던 제나가 백경연을 제대로 처리했는지도 고천수는 궁금했다.
후웅.
그때, 안개를 헤치고 제나가 돌아왔다.
“천수 님.”
그녀는 고천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지시하신 대로 완료했습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
고천수는 그제야 조금 표정을 풀 수 있었다.
“수고했어, 제나.”
마주쳤을 시 괜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집단은 제거했다.
남은 것은 일행들을 데리고 현재 지역을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최형식 병장님, 지금부터 이곳을 빠르게 지나갈 겁니다.”
다만 고천수는 방금 막 적들을 제거해 길을 터 놓은 정면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저희는 저쪽의 건물로 가도록 하죠.”
“네? 우회하자는 얘깁니까?”
“정확히는 여객 터미널로 이동해 주차장을 뒤져 보자는 얘깁니다.”
여기서 이 많은 인원이 빠져나가려면 차량이 필요했다.
이용할 수 있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거기로 가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논리였다.
“최형식 병장님은 군인들과 바다 쪽을 경계하면서 저희가 갈 길을 좀 살펴 주세요. 죽어 있는 몬스터 형태를 봤을 때 바다에서 올라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네? 그럼 천수 님은…….”
“저는 일반 신도들과 함께 적들이 놓친 무기를 좀 노획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고천수는 최형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병장님과 다른 군인들은 정예병이니 꼭 좀 부탁해도 되겠죠?”
“아.”
짧게 탄식한 최형식이 곧 고천수에게 필요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러더니 그는 군인들을 모아 바다 쪽을 경계하며 일행들이 갈 길을 살피기 시작했다.
-단순하네.
-ㅋㅋㅋ 단순해서 좋지 뭐.
-근데 군인들이 아닌 일반 신도들이어도 자세히 보면 죽어 있는 게 7.5사단인 거 다 알아차릴 텐데?
그건 그랬다.
“그냥 혹시나 해서 그렇습니다, 형님들.”
어차피 백경연이 죽은 마당에 최형식과 군인들이 휘둘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괜한 찝찝함을 안겨 줄 필요는 없었다.
일반 신도들은 백경연과는 상하 관계는 아니었으니 좀 더 이 상황을 납득시키기에 편할 터였다.
“어?”
무기 노획을 시작한 신도들 중 몇몇이 죽어 있는 군인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탄식했다.
“7.5사단?”
“우리랑 제주도에서 같이 있던 놈들 아냐?”
“근데 왜 여기에?”
그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고천수는 그런 그들 옆으로 다가가며 크게 한숨을 흘렸다.
“결국 이렇게 됐네요.”
“……천수 님?”
“뭐가 어떻게…….”
의문을 표하는 신도들을 보며 고천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지독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겠군요.”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귀도 근처의 항구에서 제가 습득한 유람선을 빼앗으려고 하더니, 여기까지 쫓아와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네?”
“저희가 탈 배를 뺏으려고 했었다고요?”
신도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소윤재 씨와 휴가 그것 때문에 함께 고생했었죠. 정확한 사정을 듣고 싶으시면 나중에 두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럼 이것들은…….”
“설마 또 우리를 노리고?”
그 의문에는 고천수는 침음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걸 생각하고 앞서 도착한 건 아니겠지만, 몬스터와 교전 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를 충분히 공격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이제는 한 무리가 아니라고 봤을 테니까요.”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고천수는 정황을 자기 좋을 대로 설명했다.
“애초에 탑에 남았던 저희들을 버리고 떠난 이들입니다. 다시 동료가 될 수 있을 리 없죠.”
“하, 하긴.”
“맞습니다. 아주 무서운 놈들이에요.”
-무서운 건 고천수 같은디.
-ㅋㅋㅋㅋㅋ 이봐, 고천수 믿지 마!
-벌써 다 넘어간 듯. ㅋㅋ
신도들은 죽은 7.5사단 병사들을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천수의 말 몇 마디에 완전히 쓰레기를 보듯이 바뀐 것이었다.
“그래도 함께한 적이 있던 사람들이니 더 이상 따지지는 말도록 하죠. 무기만 노획해서 가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쪽 군인들에게는 괜한 말은 마세요. 모르는 게 속 편할 겁니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신도들은 고천수의 지시에 따라 사방으로 퍼져 무기를 주워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온 송하나가 고천수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저기, 네가 한 말 다 진짜인 건 맞지?”
-ㅋㅋㅋㅋ
-하나 살짝 천수가 무서워진 듯?
-송하나도 나름 귀엽네.
“물론이지.”
고천수는 태연하게 답했다.
“그럼 넌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송하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송하나.”
고천수는 한숨을 쉬었다.
“편하게 얘기해.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으, 음.”
“그러라고 친구로 두고 있는 거니까.”
현재 송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특수 목적으로 엮여 있는 관계에 가까웠다.
물론 소윤재도 송하나와 포지션이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었지만, 성격 때문인지 송하나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하여간에.”
이렇게 쭈뼛거리면서도 곁으로 다가와 인간미를 자랑하는 건 송하나밖에 없던 것이다.
“너 때문에 기분이 묘해진다니까.”
“……그거, 뭐라고 하는 건가?”
“아니야, 인마.”
고천수는 주변에서 주운 탄창을 송하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니까 필요한 거나 잘 챙겨. 괜히 엉뚱한 거에 시선 쏟다가 넘어지지나 말고.”
“누, 누가 넘어진대.”
당혹스러워 하는 송하나를 놔두고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혼자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한도초과] : 뭔가 넘 친해 보인다.
한도초과가 올리는 채팅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한도초과] : 둘이 뭐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친구 먹어가지고는.
-흐음. ㅋㅋㅋ
-왜 이럼.
한도초과는 뭔가 불만이 생긴 듯한 눈치였다.
-[한도초과] : 내가 빙의할 때 썼어서 그런가.
고천수는 채팅을 바라보며 코밑을 슥하고 닦았다.
“뭐, 형님. 그냥 친구니까요.”
이런 세계에서 그래도 정상적으로 친숙하게 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형님이 말했듯이 저희는 존재의 위치가 다른 것도 있고요.”
-[한도초과] : …….
“제 위치에서 나름대로 위안을 얻는 것뿐입니다.”
한도초과는 별다른 답이 없었다.
고천수도 더 얘기하지는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신속하게 움직인 신도들이 필요한 것들을 거의 다 모아 왔다.
“천수 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더 있긴 한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 모을 필요는 없었다.
고천수는 신도들을 향해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이곳을 떠날 방법을 찾도록 하죠.”
***
“제나, 고생했다.”
최형식 병장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고천수는 제나에게도 격려를 잊지 않았다.
“사단장을 잘 처리해 놨나 보더군.”
사람들이 백경연을 찾았다는 말이 없는 걸 보면, 제나가 뒤처리도 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아닙니다. 저는 천수 님께서 의도하는 바대로 한 것뿐입니다.”
“뭐, 그래.”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내가 뭘 의도했든, 알아듣는 게 더 중요한 거지.”
알아듣지 못하면 그가 계획했던 대로 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제나가 보인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칭찬을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제나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고천수를 기다리고 있던 최형식 병장이 있었다.
“천수 님, 일은 다 마치셨습니까?”
“네, 병장님 쪽은 어땠습니까?”
주변에 특이사항이 있는지 묻자 최형식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몬스터나 위협물은 없습니다. 다만 안개가 짙게 깔려서 앞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걸립니다.”
관측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미리 살펴본 보람은 없다는 뜻이었다.
-뭐, 크랩들이 다 죽었으니까 당장 별 위협은 없지 않나?
-차 찾는 게 우선이지.
-넘 걱정할 건 없을 듯.
시청자들의 반응을 봤을 때, 추가적인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고천수는 뒤따라온 사람들을 시켜 노획한 탄약을 병사들에게도 나누어주며 말했다.
“안개 때문에 시간을 끌면 좋을 게 하나도 없을 테니,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고천수 일행은 다시 하나로 묶여 여객 터미널 근처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야.
-차는 종류별로 많네.
-많기만 함.
처음 다다른 곳은 관계자 전용 주차장 같은 곳이었다.
큼지막한 차보다는 승용차 위주였다.
‘더 큰 게 필요한데.’
작은 거라도 키가 있는 것만 구해도 다행이지만,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이 인원들을 다 수용할 차가 필요했다.
‘그런 게 있을까?’
약간 막막하기는 했지만, 고천수는 일행들을 데리고 다른 주차장 쪽으로도 가 보았다.
“아.”
여객 터미널 정류장 쪽에 있는 주차장에 다다른 고천수는 작게 탄식했다.
‘버스다.’
그곳에는 버스들이 몇 대는 늘어서 있었다. 관광용이었든 대중교통용이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곳에도 많은 버스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병장님.”
“네.”
고천수의 눈짓을 받은 최형식이 부하들을 이끌고 버스들을 살폈다.
“천수 님!”
이내 들린 외침에 고천수는 최형식이 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키가 있습니다.”
행운이었다.
최형식이 찾아낸 버스 외에도 다른 쪽에서도 외침이 있었다.
“여기도 있습니다!”
“여기도!”
“이쪽에도 키가 있습니다!”
찾아낸 버스는 총 6대.
충분하고도 남았다.
‘왜 이렇게 많지?’
하지만 고천수에게는 의문스러운 부분이었다.
이렇게 많은 버스가 문도 열려있고 키도 있는 건 고천수가 예상했던 바가 아니었다.
그는 최대한 많이 실을 수 있는 차를 찾은 뒤, 먼저 일부를 이동시켜 다른 곳을 수색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는 행군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장님, 특이사항 없는지 체크해 주세요.”
고천수가 지시하자 최형식이 차에 일가견이 있는 인원들과 함께 세부사항을 확인했다.
“버스들에 별다른 특이점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이런 게 발견됐습니다.”
최형식 버스에서 찾아내 건넨 쪽지가 있었다.
고천수는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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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하신 버스를 준비해 놨습니다만, 이쪽도 안전하지는 않아서 대피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인천공항은 활주로가 붕괴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김포공항이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만약 버스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인천역 쪽으로 이동해 철로를 따라 검암역으로 이동하십시오.
공항철도에 디젤로 움직이는 열차가 마련돼 있습니다.
언제까지 운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니 가급적 빠르게 김포공항으로 가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항만지원부대 한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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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쪽지였다.
남긴 이는 항만지원부대에 있었다는 한수영.
이름은 중요하지 않지만 거기에 담긴 내용은 분명히 중요했다.
‘군함에 타 있던 이들과 뭔가 얘기가 있었던 건가.’
이건 누군가 그들을 위해 마련해 둔 방편으로 보였다.
“후.”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됐든지 간에 이 버스들의 출처는 확인됐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병장님, 다들 탑승시켜 주세요.”
고천수는 총을 돌려 메며 말했다.
“바로 목적지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