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55화 (155/224)

155. 인천항 (1)

인천항 제1 여객 터미널.

유람선 앞에 목적지가 나타나자, 바다 위에 나타나던 항로도 어느새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도착이다!”

사람들이 허공에 깔린 안개에 휩싸인 인천항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고천수는 밖을 차분히 내다보았다.

‘정말 여기까지인가?’

혹시 항로가 더 위쪽까지 유람선을 안내하지 않을까 하고 고천수는 내심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게 여기서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그 유명한 경인 아라뱃길이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곧장 한강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띠링!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항로는 여기까지였고, 이내 새로운 정보까지 생성됐다.

“정보창.”

고천수의 중얼거림을 따라 정보창이 나타났다.

[정보1 : 경인 아라뱃길은 현재 입구가 막힌 상태입니다.]

[정보2 : 가야 할 목적지는 김포 공항입니다.]

상시 정보는 이제 없었다.

그 대신 정보는 고천수가 가야 될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포 공항? 아라뱃길이 막힌 걸 보면, 이 위쪽에 있는 인천 공항도 뭔가 잘못된 건가. 왠지 찝찝하네.’

한숨을 내쉰 고천수는 다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없어지는 건 갱신으로 안 치나.’

엄밀히 따지면 원래 있던 정보가 쓸모없게 되어도 정보가 갱신되며 알림이 떠야 하지만, 정보가 삭제될 때에는 알림이 뜨지 않는 듯했다.

‘뭐, 됐어. 그것보다…….’

어차피 위로 올라갈 수 없다면 무조건 인천항에 내려야만 했다.

‘군함들은 어디 있지?’

그런 그의 가장 1순위 궁금증은 바로 군함들에 대한 것이었다.

고천수는 먼 곳을 내다보다가, 순간 짙은 회색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저건!”

“군함이다!”

“군함들이 있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외침.

고천수는 자신이 보고 있는 짙은 회색의 정체가 군함이었음을 알아챘다.

‘군함? ……이럴 수가.’

군함들은 인천항 근처에 좌초되어 있었다. 제대로 정박하지 못하고 부두에 그냥 몸을 들이박은 것으로 보였다.

-제대로 배도 못 댔나?

-사람들 보임?

-글쎄.

고천수의 눈에도 별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군함이 좌초되면서 물에 빠졌거나 다른 곳으로 탈출한 듯했다.

철썩철썩.

파도가 조금 거칠었다.

유람선과 달리 항로 표식을 보지 못한 군함들이 짙은 안개에 시야가 가려 부두에 처박았을 확률이 높았다.

‘어쩐지 조금 옆으로 꺾더라니.’

이곳에 가까워지자 항로가 조금 이리저리 변경됐던 터였다.

나쁜 시계와 요동치는 파고에 항로가 유람선을 지키려 계속해서 갱신된 것이 틀림없었다.

“천수 님! 부두에 배를 대겠습니다!”

항해 중 결정된 호칭으로 고천수를 부른 선장이 남은 부두에 유람선을 가까이 가져갔다.

퉁, 퉁.

파도가 높게 쳐 유람선이 불안정하게 부두에 와 닿았지만, 사람들의 불안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크르르!

흑구를 데리고 먼저 내린 온리베어가 목줄을 풀었다.

바로 대형화된 흑구는 유람선을 잡아당겨 부두에 안착시켰다.

“역시 천수 님의 개!”

“우리들을 계속 돕고 있어!”

“천수 님, 만세!”

사람들이 기뻐하는 동안 승무원이었던 송하나가 일부 인원들과 함께 내려 하선을 준비했다.

“여러분, 이쪽으로 내리세요!”

작은 다리가 연결됐다.

송하나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둘씩 인천항을 향해 내렸다.

-와, 여기까지 왔네. 감회가 새로움.

-근데 누가 자꾸 만세하는 거냐. ㅋㅋㅋ 만세 ㅅㅂ

-살았는데 뭔 소리를 못 하겠니.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함께 유람선에서 내린 고천수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형님들, 여기에도 뭔가 있다고 했죠.”

매를 먼저 맞은 사람이 없다면 고천수의 일행이 대신 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왈!

그때, 다시 목줄을 차고 작아져 내달리던 흑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짖어댔다.

“최형식 병장님.”

“예.”

고천수의 부름을 받은 최형식이 다른 군인들과 함께 앞으로 나가 상황을 살폈다.

“천수 님!”

그리고 이내 뒤를 돌아보며 고천수에게 외쳤다.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급한 언색에 고천수는 서둘러 다가가 최형식이 발견한 것을 확인했다.

“이건…….”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뭐임.

-아, 깜짝.

-다들 죽었네.

하지만 시청자들의 말대로 산 사람들은 아니었다.

수백 구는 되어 보이는 시체가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사망한 것 같습니다.”

최형식의 말대로 주변에는 전투 흔적이 잔뜩 남아 있었다. 반 토막 나 버린 총과 칼이 가득했고, 그 옆에는 마치 꽃게처럼 생긴 중형 몬스터들의 사체가 존재했다.

‘이게……, 뭐가 있긴 있는 수준이라고?’

시청자들이 간단하게 표현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만약 고천수 일행이 이곳에 먼저 들어섰다면 어땠을까.

“형님들, 제가 먼저 왔으면 죽을 뻔했지 않습니까.”

장난하냐는 듯이 고천수가 채팅창을 쳐다보자, 시청자들이 변명에 나섰다.

-아니~. 너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을걸?

-이 사람들, 몬스터 특성 몰라서 당한 거임.

-저 꽃게 시키한테 가깝게 다가가지만 않았으면 될 것을. 어차피 방향 전환도 잘 못 하는데.

꽃게들은 대부분 같은 면을 바라보고 죽어 있었다.

걸음걸이가 애매했다는 것만 간파했다면, 이곳에 죽어 있는 사람들도 미리 더 적절한 대응이 가능했으리라.

‘안개 때문에 죽은 거네.’

그나마 시야라도 열려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최형식 병장님, 조용히 주변을 경계하면서 지나가야겠습니다.”

고천수는 일행에게 경고했다.

사람이든 꽃게든 어느 쪽도 살아 있는 게 보이지 않으니 아직은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었다.

이긴 쪽이 자리에 남아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경계는 계속해야만 했다.

탕…….

갑자기 들린 소리에 일행들은 전부 멈춰 섰다.

“천수 님?”

“쉿.”

옆에서 걱정스럽게 묻는 일행들을 보며 고천수는 입술에 검지를 올렸다.

‘누가 있다.’

근처에서 총소리가 조금씩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교전 중일 가능성도 있었다.

‘지금? 아니면 조금 지나서?’

선택을 해야 했다.

교전 중인 인원들에 따라붙어서 이곳을 빠져나갈지, 아니면 들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기다렸다가 걸음을 옮길지.

‘가자.’

고천수는 손짓으로 일행들을 천천히 이동시켰다.

‘어차피 이런 곳에 오래 머물러 있어 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인천항은 바다 쪽에서 수도권에 진입하려는 그 누구라도 지나칠 수 있는 곳이었다.

탕! 타타타타!

총소리가 가까워졌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한 고천수는 허공에 주먹을 들어 보였다.

척.

일행들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앞쪽에서 비명이 들려 왔다.

“으아악!”

“이쪽! 이쪽을 도와!”

“거의 다 정리했어!”

전방에 있는 건 군인들이었다.

고천수는 손짓을 해 일행들을 근처에 있던 컨테이너 더미 뒤로 숨겼다.

“제나.”

고천수의 부름에 제나가 곁으로 다가왔다.

“네, 천수 님.”

“누가 지휘관인지 찾아볼 수 있어?”

“음.”

“역시 안개 때문에 어렵나?”

제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해 보겠습니다.”

제나의 능력은 대상을 인식해야만 걸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기척을 감지한 사람들에게만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

다만 제나에게는 원하는 목표를 찾아낼 수 있는 특기가 있었다.

지이잉.

제나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군인의 시야를 훔치고, 그 시야를 통해 다른 쪽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렇게 인식한 또 다른 대상의 시야를 훔쳐 이 과정을 반복했다.

“천수 님.”

이 부대의 지휘관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에 제나는 10초도 쓰지 않았다.

“사단장입니다.”

그녀는 고천수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고천수의 표정은 대번에 굳어졌다.

“뭐?”

-오우 쒯. ㅋㅋㅋㅋ

-군함 위에 얻어 타고 왔던 거임?

-돌았네. ㅋㅋㅋ

예상하지 못한 인간과의 조우였다.

“제나, 병력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100 이하인 것 같습니다.”

군함을 타면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가 더 줄어 있었다.

‘다른 군인들을 속여서 탔을 것 같긴 한데…….’

여태까지 7.5사단이 한 짓을 보면 사단장도 별다를 바 없는 수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직접 다른 군인들과 전투를 해서 병력을 잃었다기보다는 몬스터와 대적하거나 군함이 좌초된 것에 피해를 더 받은 듯했다.

‘뭐가 됐든 상관없어.’

고천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많은 수의 군인이 있었다.

고천수를 믿고 따르는 인원들이긴 했지만, 사단장의 존재는 고천수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할 수 없지.’

위험 요소는 이곳에서 제거하는 게 나았다.

“최형식 병장님!”

고천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최형식을 불렀다.

저쪽 지휘관이 사단장이라는 말을 듣지 못한 최형식은 다소 순진한 표정으로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네, 천수 님.”

“앞에 위험한 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험한 놈들 말입니까?”

안개가 더 짙어졌다.

최형식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확실히, 군함에서 내렸고 총도 가지고 있다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공격하려고 합니다.”

“네?”

최형식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선제 공격 말입니까?”

“네, 저쪽에서 몬스터와의 전투를 끝내면 바로 공격할 겁니다. 얼른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혼란의 요소는 바로 제거한다.

고천수의 의지를 전달받은 최형식은 곧장 사람들에게 손짓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고천수는 제나에게 속삭였다.

“제나, 머리는 너한테 맡긴다.”

그녀는 고천수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탕! 타앙…….

총성이 잦아졌다.

제나의 능력을 통해 사단장 휘하 군인들이 꽃게들을 거의 다 제거했음을 알아챈 고천수는 곧 일행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공격 준비.”

명령의 이행은 신속했다.

일행들은 안개 속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몸을 엄폐한 채 총을 내밀었다.

“발사.”

투다다다다다!

타타타타타!

투다다다다다다다!

일행들에게서 엄청난 양의 총성이 쏟아져 나왔다.

“윽!”

“으악!”

“뭐……!”

앞에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저쪽에서도 대응 사격이 있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쪽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고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제나!”

고천수의 외침에 제나는 우회로를 활용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나아갔다.

‘사단장은…….’

그녀는 능력을 사용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수많은 병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가운데, 사단장, 백경연이 안전한 곳에 숨어 당황한 얼굴로 이곳저곳으로 손짓을 하는 게 발견됐다.

철컥.

백경연은 뉴타운에 있을 때 자주 얼굴을 본 인물이었다.

익숙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제나와 딱히 정을 주고받은 사이는 아니었다.

‘귀찮은 인간.’

백경연은 예전부터 제나를 견제했다. 자신의 부하를 자꾸만 빼내어 갔기에 그러긴 했겠지만, 그러한 사정을 알 수만 있을 뿐 그녀는 그를 이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이 따르는 사람을 방해하는 역할로 다시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녀의 입장에서는 제거해야 할 분명한 숙적이었다.

탕!

백경연의 왼쪽에 있는 한 군인이 쓰러졌다.

탕!

그다음은 오른쪽이었다.

“뭐, 뭐야!”

가까워진 거리.

백경연의 외침이 들렸다.

타앙!

백경연의 뒤에 있던 병사가 쓰러졌다.

그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깁니다.”

더 이상 능력은 필요 없었다.

백경연에게 나타난 그녀가 살짝 입을 열었다.

“너, 넌!”

타앙!

백경연이 들고 있던 총에 탄알이 꽂혔다.

“크악!”

그 충격에 백경연이 부서진 총을 놓쳐 버렸다.

“뭐, 뭐야, 너! 어떻게 네가!”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안개 속에서 얼핏 실루엣만 비추며 제나가 계속 말했다.

“왜 저희를 쫓아왔습니까?”

“뭐?”

“계속 저희 일을 방해하기 위함입니까?”

그 물음에 백경연은 헛웃음을 뱉었다.

“뭐, 방해? 지금 방해라고 했나?”

“…….”

“방해는 네가 했다!”

백경연은 울분이 찬 듯 소리쳤다.

“나는 안전지대를 만들려고 했어! 그것뿐이야! 그런데 네가…….”

“그게 문제였습니다.”

제나는 붉은 눈을 유지한 채 백경연의 눈앞에 확실히 모습을 드러냈다.

백경연에게 보이고 있는, 자신의 표정을 보기 위해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원자를 찾고 따랐어야죠.”

“너, 너…….”

백경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쳤어. 네 년은 미친 거야. 어? 미친 거라고!”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것은 마치 끝을 맞는 이를 위한 비웃음과도 같았다.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그녀가 보고 있는 백경연의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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