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54화 (154/224)

154. 매는 남이 먼저 맞는 게 낫다

-[한도초과] : 단둘이?

고천수의 말에 시청자들이 의문을 표했다.

-왜 단둘이임.

-둘이서만 몰래 피자 먹으려는 듯.

-ㅋㅋㅋㅋㅋㅋ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는 건 다른 시청자들의 불만을 불러올 수 있었지만, 지금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다.

고천수는 더 확실하게 요청했다.

“아직 마음이 다 정리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배려, 불가능합니까?”

온리원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언급하니 시청자들의 분위기도 제법 진지해졌다.

-뭐야, 아직도 꿍해 있는 것?

-너무 흔들리면 좋지 않은데.

-재미가 반감된다고.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고천수의 이런 행동이 보기 좋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이렇게 말을 돌려서라도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뭐야. 해, 말어.

매니저는 심드렁한 느낌으로 말했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딱히 반대하는 놈 없으면 그냥 지를 거임. 5, 4, 3…….

-앗, 잠깐!

-5초는 더 줘, 새꺄!

-[울부짖는정신병자] : 0. 지금부터 한도초과만 남기고 5분 동안 접근 금지.

채팅창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매니저의 말대로 시청자들이 배제된 것이었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난 해 달라는 대로 해 줬다? 후회 말길.

-[한도초과] : 후우.

한도초과는 곧장 탄식했다.

-[한도초과] : 천수야, 이러면 별로 좋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한도초과] : 다른 시청자들이 좋아할 리 없잖아.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튕겨 내거나 블라인드 처리해 버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고천수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민감한 질문을 할 것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지지자만 남길 필요가 있었다.

울부짖는정신병자야 여태 보인 행동이 있고, 한도초과가 고른 인물이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한도초과] : 뭔데? 진짜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형님이 하신 말씀 중에 행성을 관리한다고 했던 거 말입니다.”

-[한도초과] : 행성?

“그 말대로면 온리원 님도 여러 행성을 관리하고 있다는 건데, 지구는 왜 이 지경으로 만들고 있는 겁니까?”

이건 관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고천수가 보기에는 유희에 의한 폭거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행성들도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겁니까?”

-[한도초과] : 음…….

한도초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한도초과] : 고천수. 내가 행성 관리를 언급해서 궁금하게 만든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넌 지금 게임 클리어와는 관계없는 질문을 하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한도초과] : ……좀 망설이기라도 해 줄래?

한도초과는 당황스러운 표정의 이모티콘을 띄웠다.

-[한도초과] : 너, 내가 말해 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서 그런 거지?

“네.”

-[한도초과] : 아~ 진짜. ㅜ,ㅜ

한도초과의 팬심은 다른 시청자들에 비하면 비정상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용하면 안 되긴 하지만, 고천수도 별다른 도리는 없었다.

“형님, 너무 무리가 된다면 그만두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뒤통수를 맞은 만큼 그에 준하는 정보를 얻을 자격은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고천수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싶었다.

시청자들의 단순한 유희만을 위해 이런 게임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온리원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온리원은 유희를 즐긴다고 하기에는 너무 관망만 하고 있는 느낌이 크고, 심지어 플레이어인 고천수에게 잘못에 대한 사과까지 했다.

고천수가 느끼기에 온리원은 상당히 업무적이었던 것이다.

-[한도초과] : 꼭 알고 싶은 거야?

고천수가 진지하게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았는지 한도초과도 무거운 어투로 물었다.

“네,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제가 끝까지 가도 얻을 게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도초과] : 좋아.

한도초과는 생각이 정리된 듯 말했다.

-[한도초과] : 정 그렇다면 최대한 문제가 없는 선에서 알려 줄게.

문제가 없는 선.

그게 어디까지인지 고천수는 알 수 없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한도초과가 설명해 주었다.

-[한도초과] : 행성이나 젠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말해 줄 수 없어. 아무리 네 편이라고 해도 너하고 나는 존재의 위치가 다르니까. 하지만, 네가 물은 것에 한정해서는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한도초과] : 맞아, 네 말대로 온리원은 다른 세계에도 이런 짓을 하고 있어.

고천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온리원 또한 여러 행성들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한도초과] : 자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고천수 너는 게임 클리어에나 집중하도록 해. 약속은 꼭 이행될 거야.

한도초과의 말에서 부담이 느껴졌다.

아무리 한도초과라고 해도 자기 멋대로 게임 중간에 이 이상 설명하는 건 어려움이 따르는 듯했다.

‘이 정도면 됐어.’

고천수도 더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한도초과 님, 고맙습니다.”

그는 무리한 요청에 응해 준 한도초과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형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묻지도 못했을 겁니다.”

-[한도초과] : 아냐, 딱히 알려 준 것도 없는데 뭐.

그 말에 고천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럼 그거 하나만 더 알려 주시겠습니까? 젠.”

-[한도초과] : 젠?

“가진 행성 수가 적어서 보유한 젠도 적다고 하셨는데, 그럼 젠은 가진 행성 수로 지급받는 겁니까? 세금이나 상납처럼.”

이 물음에는 한도초과의 반응이 없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은 사실 보유 행성이 없어서 기초 수급으로 젠을 받는다든가…….”

-[한도초과] : 야!

한도초과가 갑자기 흥분했다.

-[한도초과] : 씨, 묻지 마!

그러더니 갑자기 채팅방에서 사라져 버렸다.

‘음…….’

아픈 부분이라도 건든 걸까.

고천수가 신음하고 있으려니 매니저가 말을 걸었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다시 되돌릴까? 시청자들이 아우성인데.

“그렇습니까?”

-[울부짖는정신병자] : 괜히 다른 시청자들을 배제할 필요는 없어. 한도초과가 너한테 우호적이긴 하지만, 괜히 다른 물주들을 바보로 만들진 말라고.

정석적인 충고였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감사합니다.”

초반에는 닉값을 하는 걸로 보였지만 이제 보면 울부짖는정신병자는 상당히 이성적인 편이었다.

‘그래, 더 무리하는 건 좋지 않겠지.’

대화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적어도 온리원도 모종의 사유로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알았다.

한도초과의 태도로 보았을 때, 이 모든 게 단순한 유희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고천수도 좀 더 이 게임에 진지하게 임할 수 있었다.

“매니저님, 부탁합니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좋아.

매니저가 채팅창을 다시 원상복구 시켰다.

-아 씨, 기다리다가 뒈질 뻔.

-진심.

-이거 하지 말라고!

시청자들은 채팅방에서 두 번이나 배제된 것이 꽤나 불만인 듯했다.

-온리원까지 계속 배제되는 거 실화냐. ㅋㅋㅋ

-천수 깡다구 오진다, 진짜.

-ㅋㅋㅋㅋㅋ

그래도 여론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배제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서인지 그냥 재밌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다행이네.’

온리원도 여전히 조용했다.

웬만하면 계속 관망하고 있을 거라는 고천수의 판단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고천수.”

그때였다.

갑자기 휴가 다가와 고천수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네가 좀 봐야 할 게 있겠는데?”

***

축제 분위기로 어수선했던 현장이, 어느새 조용해진 상태였다.

“저기 봐.”

고천수는 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건…….’

배의 뒤쪽.

아직은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와, 뭐지? 배들인디?

-설마 따라온 건가…….

-잠깐, 저거 일반 배가 아닌데?

철갑으로 두른 배들이 몇 대 따라오고 있었다.

‘군함……!’

고천수는 인상을 구겼다.

‘왜 저런 게 지금!’

크기로 봤을 때 초계함 이하로 보였지만 누가 타 있는지 모르는 이상 그대로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장님!”

고천수는 선교로 달려가 선장에게 외쳤다.

“뒤에 저런 거 따라오는 거, 미리 알지 못했습니까?”

“아, 그, 그게…….”

선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더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우측에 보이는 지평선을 참고하고 바다 위에 보이는 항로로만 따라가는 중이었습니다.”

고천수는 그 말만 듣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군함들은 가늠되지 않는 속도로 계속해서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우연인가?’

어디에 있던 군함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이더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려면 지평선을 참고해야 했다.

우연히 항로가 겹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고천수는 선장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선장님, 저희는 지평선에서 좀 더 떨어지도록 하죠.”

레이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군함들도 우측에 보이는 육지의 지평선을 참고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항로가 눈앞에 보이는 이 유람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려진 선을 봤을 때, 항로는 이 유람선을 기준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거리를 좀 이동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게 없던 것이다.

“선장님, 가능하겠습니까?”

“아, 네.”

고천수의 말에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항로만 정확히 주어진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맡겨 두십시오.”

우우우웅.

그렇게 선장은 유람선의 방향을 돌렸다.

육지와 더 멀어지기 시작한 유람선의 앞에 새로운 항로가 계속해서 갱신되었다.

마치 내비게이션의 그것처럼.

‘항로도 바로 앞에만 그려지니까 괜찮겠지.’

고천수는 유람선 앞의 항로를 바라보았다.

항로는 유람선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만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었다.

지평선과 멀어지면, 군함에 탑승한 이들에게는 이 항로가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근데 어차피 군함들도 인천항 쪽으로 가는 거 아닌가.

-뭐 듣고 가는 거면 항로고 뭐고 같이 만날 가능성 농후.

-그치.

그건 맞는 말이었다.

이 항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 유람선이 길을 잃지 않게 해 주는 보조적인 역할이었다.

별일만 없다면 군함들도 지평선을 이용해 똑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있기 때문에, 나중에 같은 곳에서 마주치게 될 확률이 적지 않았다.

“형님들, 군함들 침몰시킬 방법이 있겠습니까?”

-뭐?

-그러다 아군이면 어쩜.

-그냥 다 죽이려고 그러네. ㅋㅋ

“아군이 아니었을 때가 문제가 되니까요.”

초계함이라면 속도가 그리 느린 편은 아닌 걸 본 적이 있었다.

이 유람선이 뒤처질 경우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것은 무조건 군함 쪽이니, 먼저 가 도망치거나 대비를 할 수도 없었다.

-공격할 거면 벌써 했을 듯.

-이미 다른 몬스터들하고 상대하다가 깡통됐을 가능성 높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셈.

“잘됐다고 생각하라고요?”

-그래, 인천항에도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님.

-너라면 정박할 때 뭐가 있는 건지 알아낼 테니까 우리가 별 말은 안 했지만.

-너보다 먼저 가는 놈들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 감이 좀 잡히지 않아?

“아.”

고천수는 나지막이 탄식했다.

“그렇군요.”

시청자들의 말을 들은 고천수는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네요.”

-갑자기 얼굴 사악해짐.

-그래, 변수라고 다 나쁜 건 아니지.

-아니, 근데 너무 좋아하지는 말고.

그렇게 말해도 고천수는 미소가 지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가서 매 좀 먼저 잘 맞아 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군함들에게 선두를 빼앗긴 유람선이 뒤늦게 인천항에 다다랐을 때, 고천수는 일이 자신의 소망대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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