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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53화 (153/224)

153. 고천수 님

『인도를 약속받은 것입니다.』

고천수는 이것이, 탑으로 가는 신도들을 위해 그어진 약속된 항로라고 소개했다.

『앞으로 또 시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저희는 함께 탑으로 갈 자격이 있는 것이라고.』

그 말에 사람들은 곧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우고 환호성을 질렀다.

“자격!”

“그래, 우린 자격을 얻었다!”

“고천수 님 만세!”

조금 부담스러운 반응도 있었지만 고천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런 건 다 쇼맨십.

필요한 전개만 밟을 수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고천수.”

소란스러운 현장 속, 함께 선교를 지키며 애썼던 휴가 다가와 말했다.

“대단한데? 무슨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말이야.”

“놀리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

휴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해서 그러지. 너는 내가 본 인간 중에 가장 파악하기 힘든 종류거든.”

“…….”

“항상 몇 수는 앞서 보는 것 같아. 진짜 뭐가 보이기라도 하나?”

눈을 마주치는 휴를 보며 고천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칭찬을 하려면 좀 더 솔직하게 하지 그래. 이렇게 돌려 말하지 말고.”

“미안. 내가 좀 대화 스킬이 부족해서 말이지.”

그러면서 휴는 기뻐하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고천수. 우리에게는 큰 문제가 남아 있어.”

“문제?”

고천수가 고개를 갸웃하자, 휴는 사람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저거.”

휴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 있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스피어피시들의 사체였다.

“잔뜩 쌓여 있으니까 치우긴 해야 할 텐데 말이야.”

“난 또 뭐라고. 저건 문제가 아니잖아.”

“음? 문제가 아니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휴를 보고 고천수는 한 번 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것도 보상이니까.”

***

보상.

휴가 고천수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우, 그게 이런 걸 말하는 거였어?”

상부 갑판에는 사람들이 고천수의 지시에 따라 가져온 스피어피시가 가득했다.

휴의 감탄에 고천수가 나지막이 답했다.

“왜? 그럼 이걸 버리려고 했어? 고난의 행군을 하는 신도들에게 식량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지. 이건 다 보상이야.”

앞으로 일어나는 일에 헛된 것은 없다.

이곳의 사람들에게 그 점을 인식시키는 건 중요했다. 그래야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다들 모든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자신을 끝까지 따를 테니까.

-하다하다 성서를 벤치마킹하려고 하네. 오우야…….

-대단하네. 하긴 가방에 실을 수도 없는 식량이니까, 지금 이렇게 유용하는 게 제격이긴 하지.

-맞어. 스피어피시는 독도 없고 식감도 괜찮을 거고.

“다행이군요, 형님들.”

고천수는 시청자에게 답하며 웃음을 흘렸다.

“스피어피시를 먹어도 별 문제 없는 건 이미 확인했지만요.”

와작와작.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스피어피시를 씹어 먹고 있는 흑구가 있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도움을 주네. 우리 기특한 흑구.”

고천수는 흑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이런 건 잘도 주워먹어서 말이야.”

와작!

흑구는 그런 말을 하는 고천수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순수한 표정으로 스피어피시를 더 씹어댔다.

“자, 여러분!”

그사이, 사람들 사이에 선 최형식 병장이 긴 나이프를 들고 말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배가 많이 고프셨을 겁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유람선에 올라타기 전까지 제대로 식사하지 못했다. 오면서 간단한 것들로 배를 채웠을 뿐이었다.

“그런 저희에게, 고천수 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졌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고천수는 그저 스피어피시가 일행에게 주어진 굶주림과 시련의 보상이니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항로가 나타나고 믿음이 굳건해진 최형식 병장은 그것을 신성한 지령으로 믿어 지금 사람들 앞에서 설파하고 있었다.

“같이 고난과 시련을 견디고 함께 잡아 올린 것을 나누어 먹는다! 그것은 저희의 단결력과 흔들림 없는 신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

“모든 과정에 참된 의미를 깨우쳐주시는 우리 고천수 님께,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를 표합시다!”

그러자 근처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말없이 서 있는 고천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고천수 님!”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천수 님 만세!”

그 광경을 바라보며 휴가 입술을 히죽이고 있었다.

-그놈의 만세. ㅋㅋㅋㅋ

-완전히 믿게 됐고만.

-항로까지 보여서 더 그런 듯.

“후우.”

고천수는 이런 상황에 흡족하면서도 살짝 민망함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의도한 바긴 했지만, 그래도 약간 부담은 됐던 것이다.

‘교주들은 이런 걸 어떻게 하는 거야?’

디엔드의 교주는 이런 걸 평상시에도 자주 받아 보지 않았겠는가.

그런 걸 생각하면 고천수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디엔드 교주, 그놈은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겠군.’

믿는 것을 몇 개 보게 해 주었다고 이렇게 바로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도 웃기지만,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을 교주였다.

누군가 따라 준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 결코 편한 건 아니었다.

“고천수 님.”

그 와중에 제나가 다가와 물었다.

“식사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

고천수는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특정한 방법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지만, 추천은 해줘야겠네. 보니까 배에 바비큐 도구랑 소금에 후추까지 잔뜩 있던데, 구워 먹어. 날것으로 먹는 건 좀 피하는 게 좋을 테니까.”

바다 위에서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골치 아파졌다.

아무리 스피어피시가 먹을 수 있는 몬스터라고 해도, 가급적 안전한 방법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 좋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제나는 그대로 최형식 병장에게 가서 고천수가 지시한 바를 전해 주었다.

최형식 병장은 고천수에게 경례를 한 번 해 보이고는 몇몇 인원들과 함께 도구를 챙기러 안으로 들어갔다.

“……왕 다 됐네.”

어느새 다가온 송하나가 고천수의 옆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왜. 마음에 안 드냐?”

고천수가 답하자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마음에 안 든대? 그냥…….”

“그냥?”

“…….”

송하나는 입을 다물었다.

고천수는 그런 송하나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그냥 좀 위화감 든다고?”

송하나는 고천수가 친구로서 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특별한 관계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녀로서는 조금 그에게 다가서기 어려워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니, 뭐. 그런 것까진 아닌데…….”

송하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보며 고천수는 또 다시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몸으로 한도초과가 날 만나러 왔었단 말이지.’

분명히 똑같은 외견인데도 한도초과의 위압감은 평범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행성을 갖고 있다고 했었나?’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할 수 있는 바는 있었다.

애초부터 시청자들은 평범한 인간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온리원이 이 시청자들도 별거 없는 존재라는 듯 말했다고 해도, 각자 갖고 있는 행성들이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이 시청자들은 서로 다른 행성들을 관리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온리원 또한 이 지구를 포함해서 몇 개의 행성을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가 됐다.

관리하고 있는 세계 중 하나에 이딴 짓을 한다.

왜 그런 걸까?

“하나야.”

고천수는 송하나를 보며 말했다.

“왜 그런 걸까?”

“응……?”

영문 모를 소리를 들은 송하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고천수는 송하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고 너무 긴장하진 마. 다른 사람들을 통솔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으음.”

“정체 모를 괴물들을 다룬다고 해서 너무 의식할 것도 없어.”

곁에 있는 흑구와 온리베어를 의식하던 송하나의 눈빛이 순간 좌우로 흔들렸다.

“그냥 편하게 따라오면 돼.”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알았지?”

“어? 어, 응.”

그녀의 대답을 들은 고천수는 스피어피시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최형식 병장이 돌아왔을 때, 함께 스피어피시들을 손질해서 굽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리병들이 존재했기에 고천수가 그렇게 고생할 일을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갑판 위는 구워지는 스피어피시의 냄새로 가득 찼다.

“고천수 님.”

조리병 중 하나가 잘 구워진 스피어피시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시험용이네.

-먹고 죽는지 알아보려고.

-ㅋㅋㅋㅋ 기미상궁 같은 건감.

텁.

시청자들의 장난에도 고천수는 조리병이 준 스피어피시 조각을 맛보았다.

“음……!”

그리고 순수하게 감탄을 흘렸다.

“맛있는데?”

“맛있습니까?”

“맛있다고 하신다!”

고천수의 반응에 주변의 사람들이 오히려 신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고천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들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앞 다투어 스피어피시를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허기가 진 것도 있겠지만, 마치 중요한 음식이라도 먹는 것처럼 보였다.

‘안 되겠네.’

아무리 신도 보정이 있다고 해도 고천수는 사람들이 이렇게 따르는 게 익숙지 않았다.

‘호칭이라도 바꿔 놓아야겠어.’

어차피 앞으로도 떠받들어질 거라면 좀 더 편하게 불리는 게 좋았다.

“형님들, 호칭 모집합니다.”

-호칭?

-뭔 호칭?

-사람들이 너 부르는 거?

“네.”

고천수는 단호한 표정으로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이건 좀 못 견디겠습니다. 대장 어떻습니까.”

-ㅋㅋㅋㅋㅋ

-아, 진따였던 티 내지 말라고.

-고천수 님이나 대장님이나. 씁. ㅋㅋㅋㅋ

하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름보다는 직책이 낫지 않습니까? 대장이 안 된다면 보스도 괜찮습니다.”

-보슼ㅋㅋㅋ

-너 일부러 그러지.

-왜? 그냥 뽀식이네 감자탕으로 불러 달라고 하지.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가득 찼다. 그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한도초과] : 난 지금도 괜찮은데.

다만 한 명의 시청자는 고천수와 함께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 주었다.

-[한도초과] : 그냥 성만 빼고 편하게 천수 님이라고 부르라고 해. 그 정도면 적당함.

“그렇습니까?”

-[한도초과] : 응. 괜히 오버해서 너에 대한 신비감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어. 직책으로 바꾸면 교주 같은 게 아닌 이상 뭔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해 보이잖아.

그건 그랬다. 고천수는 한도초과의 의견을 보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렇네요. 형님 의견대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와, 한도초과 말만 듣는 건감?

-나도 후원 좀 했는디.

-뽀식이네 감자탕 가자거!

채팅창이 좀 소란스러워지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다른 호칭을 바라는 시청자는 없는 듯했다.

고천수는 호칭에 대해서 정리하고는 유람선 밖을 바라보았다.

유람선은 바다 위에 그어진 항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쉴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겠지.’

인천항에 도착하면 탑으로까지 또 위험한 여정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사실 호칭 같은 걸로 고민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건네주는 스피어피시 고기조각이나 씹고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천수 씨.”

그 와중에 다른 호칭을 쓰는 소윤재가 다가와 귓속말로 말을 걸었다.

“사망자를 정리하기는 했는데, 전체 피해는 파악이 안 됩니다.”

“괜찮습니다. 제나가 정리해 줬거든요.”

고천수는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답했다.

제나는 이 유람선에 탄 인원 중 31명이 사망했다고 알려 주었다.

스피어피시들이 몰려들었던 것에 비해서는 꽤 선방한 수준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사람들한테 공표를…….”

“소윤재 씨.”

고천수는 소윤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다들 식사를 즐기는 중입니다. 굳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지금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

소윤재는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네, 소윤재 씨도 그러지 말고 하나 드시죠.”

고천수는 옆의 병사에게 고기조각 하나를 받아 그에게 건네주었다.

“꽤 맛이 좋습니다.”

멍하니 고기조각을 받아드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고천수는, 난간 쪽으로 이동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한도초과 님.”

그는 얼마 남지 않은 항해 시간 동안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혹시 단둘이 얘기 가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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