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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51화 (151/224)

151. 항해길 (2)

‘선이……!’

이번에 나타난 선은 두 암석 사이에 그어져 있었다.

그쪽으로 길이 있기는 했지만, 유람선이 지나가기에는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수준이었다.

왈왈!

어느새 흑구가 선교 출입구 앞에서 고천수를 향해 짖고 있었다.

고천수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흑구 위에 타 있는 온리베어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온리베어의 손이 가리킨 장소는, 다름 아닌 암석 사이의 선이 있는 곳이었다.

‘아이템도 있다는 건가……!’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최형식 병장님, 이쪽 지휘는 맡기겠습니다!”

고천수는 돌아온 최형식에게 군인들의 지휘를 맡기고는 선교로 뛰어올라갔다.

“배를 꺾으세요!”

그러고는 새로운 선장에게 방향을 돌리라고 소리쳤다.

“예? 암석 쪽으로 말인가요?”

선장은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그쪽으로 가면 배가 위험…….”

“일단 가세요! 가서 암석 사이로 배를 통과시켜 주세요!”

“예?”

이제 선장의 얼굴은 아예 황당함으로 얼룩졌다.

“공격받고 있는 상태에서 배를 좁은 수로로 몰면 좌초될 위험이 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얘깁니까?”

고천수는 눈매를 날카롭게 세우며 선장에게 물었다.

“들어가면 배를 공격하고 있는 녀석들을 떼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앞뒤를 중심으로 방어진은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가능하겠습니까?”

선장은 밖을 돌아보았다. 여기저기서 비명을 내뱉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대로는 위험해. 그렇다고는 해도 암석 사이로는…….’

고천수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 선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냐, 이분이 괜한 말을 할 리는 없다.’

고천수는 훈련의 탑을 지키고 있던 존재에게 공인받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무작정 암석 사이로 가라는 것도 아니었다.

고천수는 암석 사이로 갈 수 있는지, 항해 실력을 묻고 있었다.

“……가능합니다.”

잠깐 뜸을 들이던 선장은 곧 입을 열었다.

“선교만 잘 보호해 주실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고천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은 것은 유람선, 정확히는 선교를 보호하는 일뿐이었다.

“흑구야.”

선교 출입문 밖으로 나온 고천수는 흑구를 불러 말했다.

“지금부터 이 선교를 지킬 거야. 물론 변신은 안 돼.”

변신하면 흑구의 무게가 너무 많이 늘어난다.

유람선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침몰하면 주객전도나 다름없었다.

“내가 좌측을 맡을 테니까 네가 우측을 맡아. 온리베어도 있으니까 가능하겠지?”

변신을 하지 않더라도 흑구는 몬스터였다. 기본적인 피지컬만 따지면 스피어피시에게 밀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흑구 위에 타 있는 온리베어는 물건을 찾아 주는 역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시력 자체가 엄청났다.

둘의 시너지를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잘해 보자고.”

고천수는 흑구에게 우측을 맡기고는 선교 좌측 출입문 밖으로 향했다.

타다다! 타다다당!

아래쪽에서는 군인들이 스피어피시가 뛰어오르자마자 총을 휘갈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좀 당황하는 모습이더니, 그래도 많은 몬스터를 상대해 왔던 7.5사단 출신답게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 듯했다.

슥.

허리춤에서 도끼를 꺼내든 고천수는 살짝 한숨을 흘렸다.

‘그래도 아직 안심은 금물.’

스피어피시는 쉴 새 없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에 보았던 날치들은 단순한 이상 현상으로만 나타났던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전조였단 거다.’

일종의 예행 연습.

스피어피시 또한 물량으로 승부를 볼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아무리 방어를 잘한다고 해도 시간문제.

스피어피시를 무력화시키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유람선이 밀릴 것이 분명했다.

첨벙!

마침 한 마리의 스피어피시가 고천수의 앞까지 뛰어올랐다.

-와, 이거!

-조심해!

날카로운 스피어피시의 주둥이가 마치 창처럼 고천수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큭!”

정면에서 보이는 주둥이는 착시 때문에 본래보다 짧아 보였다.

몸을 돌려 피하기는 했지만 스피어피시가 선교 문짝에 부딪히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망할!”

안에 있던 선장이 놀라면서 유람선의 방향도 살짝 바뀔 뻔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는 점에 안도하면서 고천수는 선교 출입문 앞에 떨어진 스피어피시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콱!

바다로 돌아가려는 듯 미친 듯이 날뛰던 스피어피시의 주둥이가 도끼를 맞고 반으로 꺾여 버렸다.

“죽어, 이 새끼야.”

콰악! 콰직!

10번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몇 번의 도끼질을 맞은 스피어피시는 그대로 토막 나 축 늘어졌다.

-회를 이렇게 뜨면 나중에 어케 먹음.

-천수 회 먹어 본 적 없나 보네.

“나중에 구워라도 먹으면 되죠.”

고천수는 빠르게 시선을 유람선 밖으로 돌렸다.

콱!

이번에 휘두른 도끼는 날아오던 스피어피시의 몸통에 정확히 직격했다.

끼아아아.

아가미가 파인 스피어피시는 듣기 싫은 괴성과 함께 유람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 습.”

스피어피시의 무게감이 그대로 손목에 남았다.

지이이잉 하고 울리는 감각에 고천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물고기 주제에 겁나 단단하…….”

콱!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스피어피시가 또 올라오는 바람에 고천수는 도끼를 다시 휘둘렀다.

콱! 콰직! 콰악!

연속된 공격이었다.

고천수는 사방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스피어피시의 주둥이에 당하지 않게 온 정신을 집중해 몸을 움직였다.

-총! 총이 낫지 않냐?

-그래, 너 총 가지고 있는 거 잊어먹은 거 아니지?

-와, 또 온다!

총은 만능이 아니었다.

‘못 맞춘다고!’

움직이는 물체를 총으로 맞추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게다가 총으로 맞춘다고 해서 여기까지 뛰어오른 스피어피시가 바로 관성을 잃는 것도 아니었다.

군인들에게 야삽을 챙기라고 한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접근하기 전에 총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면, 삽으로라도 쳐서 튕겨내라는 뜻이었다.

끼아아.

세 마리의 스피어피시가 차례대로 선교 쪽으로 튀어 올랐다.

이번에는 고천수도 한 번에 도끼로 찍어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콰악! 콰직!

두 마리까지는 도끼로 찍어 튕겨냈다.

하지만 한 마리가 선교 출입문 창문으로 날아들려고 했다.

쾅!

그때, 소화기 하나가 나타나 스피어피시의 주둥이를 그대로 찌그러뜨렸다.

끼아아!

“비명, 나쁘지 않은데?”

콰직!

출입문 앞에 떨어진 소화기를 다시 휘두르는 남자, 그는 휴였다.

“휴!”

“천수, 섭섭하네.”

자신을 보고 소리치는 고천수를 보고 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날붙이 들고 까부는 놈들 손보는 건, 내가 일가견이 좀 있는데 말이야.”

섬뜩한 소리를 잘도 떠드는 듯했지만, 어쨌거나 든든한 지원군이 나타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휴! 우리, 저기까지만 가면 돼!”

고천수가 바로 앞까지 다가온 두 개의 암석 사이를 가리키자, 휴가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저기? 설마 배로 묘기라도 부리려는 거야?”

딱히 설명은 해 줄 수 없었다.

고천수는 또 다시 날아드는 스피어피시들에게 도끼만 계속 휘두를 뿐이었다.

“뭐, 마음대로.”

휴는 이래나 저래나 상관없다는 듯, 고천수를 도와 선교를 보호했다.

크르르르!

반대편에 있는 흑구도 날아오는 스피어피시들을 상대했다.

휙.

스피어피시가 선교 쪽으로 튀어 오르면 동체 시력이 뛰어난 온리베어가 목줄을 잡아 끌었다.

그러면 흑구는 스피어피시가 날아오는 방향을 예측하고 미리 몸을 틀고 있다가, 근처에 나타나는 즉시 들이박았다.

끼아아아!

스피어피시는 선교에 닿지도 못하고 그렇게 다시 바다 쪽으로 튕겨져 떨어졌다.

“나도 도울게!”

흑구의 옆에 나타난 건 송하나였다.

그녀는 어디선가 얻어온 프라이팬으로 날아오는 스피어피시들을 타격했다.

투다! 투다다다!

군인들이 내고 있는 총성에도 힘이 붙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나머지 사람들은 군인들을 도와 온갖 물건들로 스피어피시들을 공격했다.

“끅!”

“커헉!”

“끄아아아아!”

물론 스피어피시의 주둥이도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몸이 꿰뚫리는 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그사이 배는 암석들 사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분기점을 통과했습니다.]

[앞으로 15분 뒤, 항로가 표시됩니다.]

알 수 없는 알림이 고천수에게 떠오를 때, 무작정 유람선을 따라오던 스피어피시들이 잘못 튀어 올라 암석에 몸을 박았다.

퍽! 퍽! 퍼벅!

알림에 뜬 내용을 확인하는 건 나중으로 미뤘다. 고천수는 일단 스피어피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가는 것을 보며 선교 안쪽으로 소리쳤다.

“전방, 후방에 방어 집중하라고 방송해 주세요!”

선장은 고천수의 말대로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지시사항을 전파했다.

그사이 고천수는 선교를 가로질러 온리베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온리베어, 보급함은 어느 쪽이야?!”

스윽.

그러자 온리베어가 고개를 치켜들고 위를 가리켰다.

“뭐?”

전방 위쪽에 아치형으로 한 암석에서 뻗어 나와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에 녹색 상자가 끼어 있었다.

“아니, 이건 무슨 메탈슬러그도 아니고.”

인상을 찌푸린 고천수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사다리를 타고 선교 천장으로 올라갔다.

“후우.”

될지 안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시도는 해야 했다.

암석들 사이에 성공적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스피어피시들의 공세는 여전했다.

물량전에서 이기려면 역시 아이템이 필요했다.

철컥.

도끼를 허리춤에 집어넣고 총을 든 고천수는 보급 상자를 붙잡고 있는 나무를 쳐다보았다.

‘하나, 둘…….’

유람선이 나무 아래를 지나갔다.

숫자를 세며 호흡을 가다듬던 고천수는, 순간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탕! 타다다다다다!

순식간에 쏟아져 나간 총알들이 보급함을 감싸던 나뭇가지에 직격했다.

파삭! 파사사사! 파사삭!

나뭇가지는 수십 발의 총알을 맞고 부서져 흩날렸다.

-움직임?

-보급함은 꿈쩍 안 하는 것 같은디?

-ㅋㅋㅋ 못 먹을 듯.

“젠장!”

고천수는 총을 놓고 도끼를 다시 꺼내들었다.

“으아아아아! 차앗!”

그리고 팔을 풍차처럼 돌려 도끼를 위로 내던졌다.

콰직!

사선으로 날아간 도끼가 보급함을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세게 찍어냈다.

콰작! 콰자자자작!

그러자 힘을 잃은 나뭇가지가 완전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도끼는 그 과정에서 아래로 다시 떨어져 내렸다.

“으악!”

하필 자기 앞으로 도끼가 다시 떨어져 내리자 고천수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ㅋㅋㅋㅋ 뭐임.

-지가 던져놓고 지가 놀라는 건가.

아직 놀란 것도 아니었다.

고천수는 다시 위로 시선을 돌렸다가 순간 뒤쪽으로 몸을 던졌다.

콰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보급함이 선교 천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 제기랄.”

고천수는 넘어지며 부딪힌 몸을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존나 아프네.”

겨우 고통을 삭이며 눈을 뜬 고천수는, 그래도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급함……!”

도끼와 보급함 모두 선교의 천장에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무엇 하나 잃지 않은 것이었다.

“끄응.”

고천수는 기듯이 움직여 보급함으로 다가갔다.

보급함에는 방어 표시와 함께 10젠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좋아.”

이런 타이밍에 방어 아이템이라니, 딱 봐도 어디에 쓸지 정해져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고천수는 10젠을 사용해 보급함을 서둘러서 열어젖혔다.

“이건…….”

내용물을 확인한 고천수의 두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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