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50화 (150/224)

150. 항해길 (1)

“잠시 비켜 보시겠습니까, 선장님?”

선교로 올라간 고천수는 선장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비켜 보라고? 뭐야.”

선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출발 안 할 거야?”

“할 건데, 비켜 보세요.”

고천수는 선장을 향해 손짓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송하나. 데리고 들어와 봐.”

“아, 응.”

그러자 송하나가 두 명의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 사람들이야? 배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게.”

“응. 다 확인은 했어.”

송하나의 말에 고천수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부탁했다.

“두 분이서 배를 좀 맡아 주시죠.”

그러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뭐, 뭐야!”

선장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지금 누구 배를 맡으라는 거야! 이 배의 선장은 나야!”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를 이대로 놔둘 생각이 없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가기에도 길이 벅찹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물러나 주시죠.”

“우, 웃기지 마!”

선장은 발악하듯 주먹을 들어올렸다.

“가까이 오기만 해 봐! 어? 가까이 오기만…….”

푹.

순간 선장의 주먹에 휴가 내지른 칼이 꽂혔다.

“끄, 끄아아아악!”

“휴.”

고천수가 돌아보자 휴가 칼을 빼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주먹질을 하려고 하길래.”

고천수는 휴에게 대답하지 않고 선장의 앞으로 가 섰다.

선장은 칼에 찔린 주먹을 감싸쥐고 뒤로 주춤거렸다.

“워, 원하는 대로 해 줬잖아! 사람들도 다 태웠다고!”

“칼을 들이밀어야만 일하는 사람이라니, 불편해서 어디 써먹겠습니까?”

고천수는 한숨을 쉬었다.

“언제 우리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자, 잠깐!”

“반말도 좀 그만하시고요. 휴, 부탁할게.”

그러자 휴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선장을 붙잡았다.

“자, 선장. 그만 선교를 떠날 때가 된 것 같네.”

“기, 기다려! 이럴 것까진 없잖아!”

“늦었어.”

휴는 선장을 끌고 나가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진즉에 노선을 잘 탔어야지.”

마치 자신은 제대로 된 노선을 택했다는 듯, 휴는 고천수를 돌아보았다.

고천수는 아무런 반응을 해 주지 않았다.

휴가 선장을 끌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2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나는 어중간한 놈은 확실히 처리하는 게 좋아.]

오랜만의 젠 후원이었다.

고천수는 채팅창을 보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사랑합니다, 형님.”

별 의미없이 보인 반응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타격이 된 듯했다.

[띠링! 한도초과 님이 4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뭐임, 그 표현.]

한도초과는 새로운주인에게 보인 반응을 매우 불쾌해했다.

“더 사랑합니다, 한도초과 님.”

고천수가 바로 달래주자 이번에는 다른 쪽이 달라붙었다.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5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

[띠링! 한도초과 님이 6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_-)]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7젠을 후원하셨습니다.]

총 24젠.

두 명이 순식간에 고천수의 곳간을 채워 올렸다.

‘뭐야.’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고천수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면…….’

한도초과는 젠이 많이 없는 상태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뭔지는 모르지만 젠을 많이 수급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본인이 밝힌 적도 있었다.

‘갖고 있는 행성이 적다고 했던가?’

영문 모를 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한도초과, 젠 이제 못 내나 보네.

-있어도 못 낼걸.

-젠을 여기서 너무 많이 쓸 수도 없을 테니까. 갖고 있는 게 없어서.

올라오는 채팅에 한도초과는 반응하지 않았다.

-젠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애쓰는지 모르겠네.

도발하는 걸 보니 이쪽은 새로운주인인 듯했다.

“형님, 서로 사이좋게 지내셔야죠.”

고천수는 새로운주인이 별로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젠도 주는, 시청자 중 한 명이었다.

웬만하면 싸움이 나는 것은 말려야 했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신경 쓸 거 만들지 마세요.”

고천수가 자기 상태를 언급하자 새로운주인도 한도초과를 더 도발하지는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새로운주인 또한 고천수의 플레이를 방해할 의도가 없는 것만은 분명했다.

우우우웅.

오래잖아 배는 다시 출발했다.

이번에는 15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채였다.

“후우.”

그사이 돌아온 휴가 한숨을 뱉어냈다.

“처리했나?”

고천수의 물음에 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처리했다.”

“어떻게 했는데?”

“알고 있나?”

그 반문에 고천수는 휴의 손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들려있는 칼은 그의 생각보다는 깨끗했다.

“어디 매달아 두기라도 했냐?”

“정답.”

“그냥 깔끔하게 끝내지.”

고천수의 반응에 휴는 다시 뒤돌아섰다.

“뭐, 그게 나으면 그렇게 하고.”

“아, 잠깐.”

휴를 잡은 고천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에 묶었는데?”

“응? 뱃머리 쪽에.”

“그럼 그냥 놔둬.”

-거기 묶여 있으면 괜히 시끄럽게 구는 거 아님?

-맞아. 벌써부터 누가 앞에서 소리지르는 거 같음.

-그냥 바다에 밀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고천수를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요, 형님들. 방금 좀 바뀌었습니다.”

배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웬 날치들이 수면 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고천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에 쿠션 하나 달려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

후두두두둑!

마치 비가 쏟아지는 것 같은 소리.

“윽?!”

“뭐, 뭐야!”

“조심해!”

순간 날치들이 한순간에 뛰어올라 배에 충돌하기 시작했다.

후두두! 후두두두!

고작해야 날치들이었다.

하지만 그 양이 엄청났다. 배가 휘청일 정도의 충격에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콰앙!

배의 앞머리에도 뭔가가 세게 부딪쳤다.

“큭!”

고천수는 균형을 잃는 몸을 겨우 고쳐 세우며 앞을 바라봤다.

푸아악! 푸악!

수많은 날치들이 배에 부딪히며 날아가고 있었다.

뱃머리에 매달아 놓았다는 선장의 비명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고천수는 눈썹을 팍 찌푸렸다.

“형님들, 이건 뭡니까! 미리 경고했던 스피어피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쪽은 오히려 플라잉피시였다.

-맞아. 몬스터는 아님.

-대량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뿐.

-그냥 초이상현상임.

그렇다면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올라가는 도중에 만날 스피어피시를 대비해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는 재난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푸드드드득.

도대체 날치가 몇 마리나 몰려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람선인데도 부딪히는 날치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제대로 나아가질 못했다.

“제나!”

고천수의 외침을 들은 제나가 근처로 다가왔다.

“네, 천수 님.”

“군인들한테 당장 수류탄 까서 밖으로 던지라고 해! 스크루는 박살나지 않게 네가 직접 가서 확인하고!”

“네, 알겠습니다.”

제나는 서둘러서 선교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그리고 오래지 않아 폭발이 하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쾅! 콰앙! 콰아앙!

바닷물이 이곳저곳에서 튀어 올랐다.

위이이이잉!

물길이 뚫린 것인지 배가 다시 균형을 찾으며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쾅! 콰앙!

이후에도 달려드는 날치들이 있어 수류탄은 바다를 향해 몇 개나 더 내던져졌다.

“후.”

유람선이 안정을 되찾아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서울에 가면 바로 탑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적어도 항해는 편안하게 하고 싶었다.

우우우우.

하지만 세상은 고천수를 편안하게 내버려두질 않았다.

푸아아아아.

저 멀리 유람선의 앞으로, 몇 마리의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뭐야, 저건.”

대형 참치, 혹은 작은 고래 정도의 크기는 되는 그 물고기들을 보며 고천수는 이맛살을 구겼다.

“설마……!”

날카로운 창과 같은 주둥이가 그 물고기들에게 매달려 있었다.

“스피어피시!”

날치 때문에 정신이 빠지자마자 바로 나타났다. 고천수는 선교에서 나가 바로 소리쳤다.

“군인들 중 일부는 앞으로 가서 대기하십시오! 저 앞에 있는 물고기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스피어피시는 몬스터였다.

파괴력이 얼마나 강할지 모르므로 눈에 보이는 즉시 없애 버려야 했다.

“고천수 님! 얼마나 움직이면 되겠습니까!”

아래에서 최형식 병장이 소리쳤다.

“일단 전면 갑판이 넓으니 20명은 보내서 전열을 잡고, 나머지는 총과 야삽을 챙겨 넓게 퍼져서 전방위 경계하라고 하세요! 급하니까 빨리 보내셔야 합니다!”

물 밑으로 들어가면 언제 어떻게 공격할지 알 수 없었다.

모습을 드러냈을 때 끝장을 봐야 했다.

척척척척.

군인들이 최형식 병장을 따라 함께 앞쪽으로 이동했다.

고천수는 그들의 뒤를 따라가 전면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보이는 건 총 다섯 마리였다.

아래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섯 마리면 충분히 승부를 해볼 만했다.

“목표는 저 물고기들입니다!”

고천수는 군인들에게 목표를 확실히 지정해 주었다.

“집중 원거리 공격을 담당할 화력조, 그리고 총과 야삽으로 화력조를 근접 호위할 지원조로 각각 나누겠습니다! 공격을 시작하면 물고기들도 바로 달려들 테니, 다들 경계 바랍니다!”

고천수의 도움 아래 군인들은 곧바로 편성을 마쳤다.

남은 것은 스피어피시를 공격하는 일뿐이었다.

“형님들, 먼저 공격하는 게 맞는 거겠죠?”

-이미 저쪽에서 이 배 인식했음.

-도망가도 따라올 거니까 선제공격도 나쁘지 않음.

-어차피 아무런 희생도 없을 수는 없음.

시청자의 말에 고천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 많이 잃으면 안 돼.’

탑으로 가서 쓸 인원은 반드시 남겨야 했다.

“최형식 병장님!”

고천수는 최형식 병장을 불러 말했다.

“20명이 당할 때를 대비해서 뒤에 들어올 인원도 준비 부탁드립니다.”

“예?”

최형식은 앞을 돌아보며 답했다.

“저 물고기들한테 당한다고요?”

“가능성입니다. 준비만 해 주세요. 빨리!”

최형식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고천수가 시킨 대로 하기 위해 뛰어갔다.

‘최대한 희생 없이 끝내고 싶지만…….’

약간의 희생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유람선은 어느새 스피어피시들과 가까워졌다.

최형식 병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고천수는 대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화력조, 수류탄 투척 준비!”

고참병이 없음에도 병사들은 고천수의 명령에 따라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투척!”

쾅! 콰앙! 콰아앙!

선빵필승.

한 개만 터뜨려도 물고기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앞서 확인했다.

고천수는 당연히 스피어피시도 수류탄에 의해 적어도 기절하지 않을까 했지만…….

푸아악!

어이없게도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바다에 충격을 주자, 오히려 숨어 있던 스피어피시들까지 나타나 유람선 곁에서 점프하며 포물선을 그렸던 것이다.

푸욱!

그리고 앞 열에 서 있던 병사 하나를 꿰어 바다로 함께 날아갔다.

“끄아아아……!”

병사가 남긴 비명에 아주 살짝 멍한 표정을 짓던 고천수가 빠르게 외쳤다.

“발포!”

탕! 타앙! 타! 타앙!

타이밍이 깨졌기에 조준 사격을 할 틈도 없었다.

병사들이 들고 있던 총이 불을 뿜었다.

끼아아아아아!

도저히 물고기의 입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괴성이 바다에 울려 퍼졌다.

퍽! 퍼억!

몸통에 사격을 맞은 스피어피시 한 마리가 몸을 뒤틀며 바다 아래 쪽으로 떨어졌다.

첨벙첨벙!

그사이 물살을 빠르게 헤치고 다가온 다른 스피어피시들이 유람선 근처에서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투다다! 투다다다다!

군인들이 사격을 해댔지만 물 속에서 잠수하다가 바로 앞에서 점프해 나타난 스피어피시들을 전부 잡아내기에는 무리였다.

푸욱!

푹!

스피어피시들이 군인들을 주둥이로 꿰서, 날아오던 관성을 그대로 이용해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쾅! 쨍그랑!

뒤쪽에서 난 소리에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스피어피시들이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 선교와 선실을 공격하고 있었다.

주둥이의 강도는 고천수의 생각보다 더 강했다.

유리창 따위는 그대로 꿰뚫렸다.

“윽!”

“으악!”

“이쪽으로 쏴!”

게다가 물 밖으로 보이던, 몇 마리 안 되어 보이던 수도 착각이었다.

숨어 있던 스피어피시는 적어도 수십, 수백 마리로 보였다.

‘충격 내성도 갖고 있고, 생각보다 훨씬 강해.’

대형 참치 크기인 만큼 유람선 안쪽에 떨어져 쌓여도 유람선 전체의 무게가 늘어 위험했다.

괜히 건드렸나 싶었지만, 일단 맞닥뜨린 이상 어차피 피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시청자들이 미리 스피어피시에 대해 말을 해 줬을 리도 없었다.

“아.”

그때, 고천수는 순간 눈앞에 보인 초록색 선을 발견하고 탄식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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