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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49화 (149/224)

149. 추격자 (2)

용수항 근처.

그곳에는 7.5사단의 병력이 잔뜩 몰려 있었다.

“후. 진짜 연락이 오긴 하는 건가?”

편의점을 빠져나와 용수항 쪽으로 이동 중이던 백경연은 한숨을 쉬었다.

“연락이 빨리 오면 좋을 텐데.”

무전 연락의 내용대로 편의점에는 아직 건질 만한 것들이 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남아 있어 봤자 얼마겠는가.

이 수많은 병력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700이란 숫자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타앙-.

답답한 마음에 미리부터 움직이고 있던 백경연의 귀에 뭔가 익숙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지?’

탕. 타다다다.

총포였다.

‘총소리라고?’

백경연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한두 발이 아니었다. 엄청난 총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단장님!”

주위에 있던 간부 하나가 말했다.

“아무래도 근처에 일이 터진 모양입니다.”

“일?”

“정찰병들이 바다 쪽에서 많은 배들이 이동 중이라고 알려 왔습니다. 총소리도 그곳에서 나는 듯합니다.”

무슨 일일까.

근처에 있는 걸 생각하면 역시 차귀도에서 뭔가 터진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위험할 것 같습니다. 병사들을 뒤로 물리고 기다리고 계시는 게…….”

대량 해상 탈출.

간부는 작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것인지 백경연에게 그렇게 조언했다.

“아니.”

하지만 백경연은 그 말대로 할 생각이 없었다.

“모든 병사들을 데리고 이대로 해안가로 향한다.”

“예?”

“배가 다 움직이고 있다면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배들이 다 가게 놔둔다면 제주도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묘연해졌다.

“쫓아가서 뭐라도 해 보는 수밖에 없다. 가야 돼.”

이 인원을 유지할 장소를 찾지 못하면 백경연도 끝이었다.

가지고 있는 물자가 다 떨어지기 전에 뭐라도 시도해야 했다.

“하지만 사단장님! 해안가로 가서 배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인 충고였다. 하지만 간부는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정찰병들이 몬스터 얘기는 하지 않았지?”

백경연의 물음에 간부가 마른침을 삼켰다.

“예? 예.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분명히 저들끼리 싸우고 있는 거야.”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 인원들이 전부 같은 편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같은 편이 아니라면 얘기는 간단하다.”

백경연은 들고 있던 소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우리 쪽에 잘 맞는 곳을 구해 봐야겠지.”

“그럼…….”

“진격이다.”

백경연은 다른 병사들을 보며 외쳤다.

“해상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들이 타고 갈 배가 그곳에 있을지 모른다! 다 함께 서두르자!”

병사들은 그의 명령을 따라 빠르게 해안가로 이동했다.

부우우우! 부우!

그런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너른 바다, 그리고 어딘가로 향해 올라가는 수많은 배들이었다.

“뭐야, 뭐라도 본 건가?”

“다들 어디로 가는 거지?”

“저 배들이 다 떠나면 우리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불안했다.

오는 길에 몬스터와 격돌해 싸우다가 기운이 많이 소진된 그들은,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다들 정신 차려라!”

백경연은 총을 높이 들고 외쳤다.

“상황이 어떤지 각자의 눈으로 파악하고 보고해라!”

부우우우!

배들 중에서 유달리 경적을 크게 울리며 다가오고 있는 한 척이 있었다.

‘음?’

백경연은 그 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유람선.

1, 200명 정도는 충분히 수용할 만한 거대한 유람선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모자란 크기다. 하지만…….’

여기 있는 모든 부하를 태우기엔 작았지만, 항구 근처에 오고 있다는 점만 해도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군인 여러분! 계십니까!』

그리고 그러한 백경연의 희망에 응답하겠다는 듯, 유람선에서 스피커로 엄청나게 큰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저희가 여러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왔다고?”

백경연이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스피커에서 말이 더 흘러나왔다.

『차귀도에서 분란을 일으킨 작자들이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해안가에서 화력 지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백경연은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화력 지원?’

유람선 뒤로 따라오고 있는 배들이 있었다. 몇 척이나 있었다.

‘700명을 다 태우려면 저것들이 전부 필요하겠지만…….’

사람이 별로 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유람선과 다르게, 그 뒤를 따라온 배들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자기네들끼리 세력을 완성한 놈들로 보였다.

‘할 수 없지. 어차피 충돌은 불가피하다.’

백경연은 남 밑에는 기어 들어갈 수 없었다. 거기다가 분란을 일으킨 놈들이라 하지 않는가. 섞이려고 해 봤자 어차피 누군가는 크게 피를 흘리게 될 터.

당장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유람선을 호위해 확실한 배 한 척부터 얻어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호위해라!”

그렇기에 백경연은 유람선을 구하는 선택을 했다.

“유람선을 구해! 화력을 지원해라!”

그러자 간부들이 병사들을 움직여 빠르게 포진을 갖췄다.

“쏴! 쏴라!”

투다다다! 투다다다!

수백 명의 병사가 쏘는 총알이 유람선 뒤를 쫓아오는 배들을 향했다.

그러자 배들도 병사들을 향해 응사를 시작했다.

탕! 타다다다다!

순식간에 주위에 총성이 가득해졌다.

다른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좋아……!”

적들이 당황했는지 유람선을 쫓아오던 배들이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화력을 쏟아 부어!”

거칠게 손짓하는 백경연의 모습을 보며 병사들은 더욱 화력을 집중했다.

부우우우!

배들은 항의하듯 경적을 울리고는 이쪽에서 물러나 북쪽으로 올라갔다.

“됐다!”

백경연은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사격 중지!”

백경연의 손을 본 병사들이 차례로 총을 내렸다.

총소리가 사라진 곳에는 초연과 적막만이 남았다.

“자, 그럼 유람선으로…….”

그렇게 유람선을 돌아보던 백경연은 순간 멈칫했다.

“응?”

유람선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배를 여기에 대려고 하는 건 아니었다.

바다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유람선은 점점 부두와 멀어졌다.

그걸 본 백경연이 놀라 소리쳤다.

“잠깐! 뭐 하는 거야!”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유람선은 더 뒤로 배를 빼고 있었다.

‘설마 병사들이 유람선까지 공격했나?’

오발탄이 있었을까 싶어 백경연은 빠르게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확성기 가져와! 빨리!”

그러자 병사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와 확성기를 건네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백경연은 그 확성기를 받아들고 유람선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 따라오는 배는 모두 정리했습니다! 왜 뒤로 가는 겁니까!』

그럼에도 유람선에서 응답이 없었다. 흥분한 백경연은 다시 입을 열고 외쳤다.

『뭐 하는 거야! 다 정리했다니까!』

유람선은 계속해서 부두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백경연은 확성기를 내던지고 멀어지는 유람선을 향해 뛰었다.

“멈춰어어어!”

끝이었다. 유람선은 그대로 항구에서 떠났고, 머뭇거리던 백경연은 그쪽으로 총 한 번 제대로 쏴 보지 못했다.

***

“괘, 괜찮은 거야?”

유람선.

선장이 배를 바다로 다시 빼면서 고천수에게 물었다.

“쟤네들 겁나 화난 것 같은데!”

“뭐, 화났으면 어쩔 건데.”

휴는 선장의 옆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배도 없으니까 우리를 쫓아오지 못할 텐데. 그냥 저러라고 놔두면 되지.”

“어차피 태울 수도 없었습니다.”

고천수는 끼어들며 말했다.

“저쪽에 있는 군인들은 위험한 녀석들입니다. 태워 봤자 똑같은 꼴을 봤겠죠. 결과적으로 잘됐습니다.”

모든 일은 고천수가 의도한 대로 돌아갔다.

백경연은 누구 밑에 들어갈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디엔드를 대할 때부터 그 성격은 이미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많은 수의 배 대신 호의적인 유람선 한 척을 선택했고, 지금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 것뿐이었다.

“다른 배들이 북쪽으로 올라갔으니, 저희는 일단 남하하도록 하죠. 거기서 태울 인원들이 있습니다.”

“뭐야?”

선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 누구를 태우겠다는 거야?”

“제 일행들입니다.”

고천수의 대답에 선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몇 명 안 되는 거겠지?”

“뭐, 그렇게 많지는 않을 수도 있죠.”

“정말이지?”

선장은 배에 실어 둔 물품들을 걱정하는 듯했다.

“너무 많이 태워서 좋을 거 없어. 여기에 있는 물건들 같이 나눌 테니까 조금만 태우자고, 조금만.”

“예.”

-ㅋㅋㅋㅋ 진짜 조금만 태울 건 아니지?

-다 태우는 게 좋을 거 같은디.

-[한도초과] : 사람들 꼭 데려가야 돼.

걱정됐는지 한도초과도 말해주었다.

-[한도초과] : 어차피 너도 훈련 탑에서 봤듯이 사람들은 전부 탑을 오를 생각만 하고 있어. 내가 쉐도우로 말해둔 것도 있으니까, 네가 탑의 안내자로 있는 한 안전할 거야. 걱정 마.

안 그래도 사람들을 태우기 전에 한 번 더 확실히 물어보려고 했는데, 시청자들이 조바심을 보이는 것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버지 일 때문인가.’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한 건지 당장은 훨씬 더 신경 써주는 느낌이었다.

‘뭐, 그럼 고맙지.’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 일단 고천수는 차분하게 일을 해나갈 예정이었다.

부우우.

이윽고 유람선은 고천수의 안내에 따라 어떤 해안가에 근접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잔뜩 서 있었다. 그걸 본 선장은 놀란 듯 바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게 무슨……!”

해안가에 몰려 있는 사람은 고천수가 데리고 온 150여 명의 사람들이었다.

“뭐야! 이쪽에도 군인이 있잖아?!”

선장은 고천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 사람들, 정말로 태우고 갈 거야?”

***

차귀도에 가기 전, 훈련의 탑.

흑구와 들어갔던 훈련 탑을 나오기 전, 고천수는 초원에서 얻은 공략집을 들어올렸다.

‘여기에 답이 적혀있다.’

미리 살짝 열어보았던 공략집에는 진짜 탑에 대한 공략이 적혀있었다.

다만 모든 층의 공략이 적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있는 것은 저층부 공략뿐.

‘그렇다고는 해도.’

공략집은 공략집이었다.

고천수는 공략집을 열어보았다.

몇 장을 넘기던 그의 눈에 들어온 부분.

5층의 공략법.

‘이곳을 통과하려면 무조건 100명 이상이 필요하다.’

고천수는 공략집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어떻게 할지는, 정해졌다.’

***

“네, 태우고 갈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선장님.”

“아니…… 이런 망할.”

고천수의 대답에 선장은 분노를 겨우 억누른 표정을 지었다.

“이 배에 있는 것들을 내가 어떻게 구했는지 알아? 어? 저 사람들 타면 얼마 오래 못 가.”

“알겠습니다. 일단 배부터 대세요.”

고천수는 차분하게 그에게 말했다. 옆에서 휴가 칼을 휘적거리며 신호를 주듯 눈썹을 살짝 올렸지만 고천수는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들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 여러분. 고천수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곧장 반색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돌아왔다!”

“우리를 태울 배를 가지고 왔어!”

“고천수 만세!”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는 반응에 고천수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확인해 보니 모든 인원이 다 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안에 물품들이 많긴 하지만, 선장이 용수항으로 가는 동안 설명해 준 말에 따르면 애초에 화물 적재도 염두에 두고 만든 배라고 했다.

승선 가능 인원은 최대로 했을 때 300명에 가까울 정도로, 겉으로 보는 것보다 태울 수 있는 인원이 많았다.

『모두 다 태울 수 있으니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방송을 끝낸 고천수는 선장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덜컹.

유람선이 접안하고 난 뒤, 사람들이 천천히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천수는 상부 갑판으로 나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제나를 발견했다.

슥.

고천수의 손짓에 제나는 상부 갑판까지 빠르게 올라왔다.

“부르셨습니까.”

“송하나가 안 보이는데, 좀 찾아다 줄래? 사람이 많아서 찾기 어렵다.”

“능력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적안.

눈에 붉은 불을 켠 제나가 순식간에 송하나를 찾아냈다.

“찾았습니다. 데려오겠습니다.”

제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송하나를 찾아내 데려왔다.

“어디에 있었냐. 제나랑 같이 있지 않았어?”

고천수의 물음에 송하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배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찾고 있었어. 필요할까 해서.”

송하나에게는 크루즈선에 이어서 바다에서 겪었던 일들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듯했다.

“잘했어.”

하지만 동기가 뭐가 됐든 간에 그건 고천수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승무원이었던 너한테 진짜 괜찮은 사람 좀 찾아보라고 부탁 좀 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고천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송하나에게 물었다.

“좀 있었어? 이만 한 배를 운용할 수 있는 사람.”

“일반인 중에 2명, 그리고 군인 중에 한 명이 있었어.”

“성향은?”

“일반인들은 온건하고, 군인은 너에 대한 믿음이 엄청 크긴 한데 운전하는 건 좀 거칠 것 같긴 해.”

그렇다면 일단 2명은 확보가 된 것이었다.

“송하나, 찾은 사람들을 데려와줘.”

고천수는 손을 풀며 선교 안쪽을 돌아보았다.

“인원 교체 좀 해야겠어.”

그의 동공에는 현재 배를 몰고 있는 선장이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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