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추격자 (1)
“뭐, 뭐야, 너희들.”
선장은 겁먹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체 뭐 하는 녀석들이야!”
그러자 휴와 소윤재는 모두 고천수를 돌아보았다.
왈!
흑구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온리베어마저 고천수를 보며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왜 다 날 보는 거야?”
고천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선장에게 성실히 답변해 주었다.
“뭐긴 뭐겠어. 탈취범이지.”
“타, 탈취범?”
“일반적인 탈취범과 다르다면 좀 다르지만.”
소윤재와 휴에게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흑구와 온리베어에 대해 설명했다.
휴야 그렇다 치고 소윤재는 상당히 놀랐던 터였다. 지금도 소윤재는 적응이 되지 않는지 흑구와 온리베어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고천수는 그런 소윤재도 의식하며 선장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선장님, 보시다시피 저는 개처럼 보이는 괴물을 하나 주워서 사육 중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셔야 할지는 알겠죠?”
“뭐, 뭘 원하는 건데.”
달리 원하는 건 없었다.
배를 탈취했는데 원하는 게 뭐가 있겠는가.
“제가 원하는 곳으로 배를 운항해 주시면 됩니다.”
“원하는…… 곳으로?”
선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는데?”
“서울.”
고천수는 위를 가리켰다.
“혹은 서울과 가까운 곳이면 됩니다.”
“뭐……?”
선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 지금 이 시국에 서울로 가겠다고?”
“예. 안 됩니까?”
“당연하지! 서울로 가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데! 근처고 나발이고 거기 가려고 했다간 죽…….”
으르르르르!
흑구가 선장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그러자 선장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누가 안 간대? 그냥 위험하다고 말한 것뿐이야! 간다고!”
“예, 좋습니다.”
고천수는 돌아서서 휴에게 부탁했다.
“휴, 선장님 좀 봐 줄 수 있어? 태울 사람들이 있으니까 배는 저쪽에 대서 잠시 대기하게 해 주고.”
“오케이. 넌?”
“잠깐 소윤재 씨랑 배 좀 둘러보고 올게.”
고천수는 선교로 올라오며 이 유람선에 선적돼 있는 많은 물건을 확인했다.
정확히 어떤 것들인지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다녀와.”
손을 흔들어 주는 휴를 뒤로하고, 고천수는 나머지 일행과 함께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천수 씨.”
내려가는 도중 소윤재가 고천수에게 물었다.
“이런 개를 우연히 얻은 건 진짭니까?”
흑구에 대한 질문이었다.
고천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예, 정말 우연이었죠.”
오히려 흑구가 고천수를 선택한 것에 가까웠다.
적절한 시점에 흑구가 갑자기 나타나 도움을 줬던 거니까.
-흑구 말고 다른 거랑 엮였으면 어케 됨?
-걔는 흑구랑 성격이 좀 달라서 천수랑 안 맞았을지도.
-나중에도 나올 수 있는 거?
시청자들이 흑구 얘기에 반응해서 채팅을 올렸다.
-이미 흑구를 데리고 있어서, 아군으로 안 나올 수도 있음.
-아, 레알?
-조심해야 되겠네.
신경 쓰이는 얘기였지만 고천수는 일단 소윤재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우연이긴 했지만, 필연이 될 때가 있죠. 저는 소윤재 씨와의 만남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소윤재 씨 덕분에 제가 편하게 차귀도에 들어갔다가 오지 않았습니까.”
“아, 그건…….”
소윤재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아니었어도 이선웅 씨가 어떻게든 했을 텐데요, 뭐. 제 덕분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건 이선웅이 혼자서도 고천수를 도울 만한 인물이었을 때의 얘기였다.
‘소윤재 씨가 없었다면 과연 그 사람이 날 잠시라도 도왔을까.’
이선웅도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였다.
고천수가 고강연의 아들이 맞다면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으니 그걸 생각하고 나섰을 터였다.
다만 혼자서는 위험하니 누군가가 꼭 필요했을 텐데, 마침 소윤재가 그 역할을 해 준 것이 분명했다.
즉, 소윤재가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 준 키였다.
‘믿을 만한 사람이야.’
소윤재는 현재로서 가장 정직하고 정상적으로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내릴 수 있었다.
“소윤재 씨, 같이 한번 살펴보죠.”
화물칸에 내려선 고천수는 물건들을 뒤덮고 있는 천막을 치워 보았다.
“이건…….”
소윤재는 물건들을 돌아보며 탄식했다.
“식료품인가요?”
다양한 종류의 통조림이 다량으로 쌓여 있었다.
왈!
흑구가 혀를 날름거리며 통조림들 주변을 돌았다.
‘뭐야, 엄청난데.’
고천수는 쌓여 있는 식료품을 보며 크게 탄식했다.
‘이 정도면 내가 태워야 될 인원들에게 충분히 먹일 수 있겠어.’
서울까지 가는 데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다만, 더 찾아보아야 할 게 있었다.
“소윤재 씨, 연료도 싣고 있는지 찾아봐 주시겠습니까?”
시청자들은 이곳에서 위로 올라가는 항로 사이에 스피어피시란 놈들이 있다고 했다.
만약에 그 근처를 크게 우회해서 가야 한다면 혹시 모르니 기름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빠르게 찾아보죠.”
소윤재는 곧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연료를 찾기 시작했다.
“흑구야, 너도.”
고천수의 말에 흑구는 빠르게 뛰쳐나갔다.
킁킁. 킁.
냄새를 맡던 흑구가 어딘가로 올라서더니 크게 짖었다.
왈! 왈왈!
-찾았나 본데?
-발견☆
고천수는 바로 그곳으로 가 천막을 치워보았다.
정말로 연료가 가득 든 철제통들이 그곳에 잔뜩 존재하고 있었다.
-근데 이럴 거면 소윤재한테는 왜 시킨 거?
-똥개 훈련.
-ㅋㅋㅋㅋㅋ
그런 건 아니었다.
“형님들, 소윤재 씨도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습니까.”
뭐라도 계속 역할을 줘서 함께 하게 해야 소윤재도 이 상황에 적응할 수 있었다.
미리 알려 줬다고 해서 소윤재가 바로 흑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같은 일을 해서 편하게 동료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게 중요했다.
“찾았습니까?”
방법이 주효했던 듯, 소윤재는 자연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다시피 연료까지 잔뜩 있군요. 이제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만 남았습니다.”
문제는 태울 사람들이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배를 다시 돌려서 태우고 가야 하는데…….’
현재는 흑구를 보고 놀란 인원들까지 덩달아 자신들의 배를 타고 뒤를 따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휴에게 말했듯 이 유람선을 잠시 멈춰 세우고 대기했다가, 홀로 남았을 때 다시 뱃머리를 돌려 사람들을 태우러 가야 될 성 싶었다.
-그냥 사람들 보고 위쪽으로 올라오라고 무전하면 안 되나?
-그럼 7.5사단이랑 마주칠걸.
-[한도초과] : 약간 시간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게 낫지.
덜컹.
그사이 고천수가 타고 있는 유람선은 잠시 멈춰 섰다.
시간이 좀 흐르자 뒤를 따라오던 다른 배들이 바닷길을 앞질러서 가기 시작했다.
‘순조롭네.’
고천수는 그 배들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동료애는 없는 것인지 멈춰 있는 이 유람선을 보면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려는 이는 없었다.
투다다다다!
아니, 어쩌면 도와 줄 여력이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투다다! 투다다다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뭐지?’
소리는 뒤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아직 이 유람선을 앞지르지 않은 배들 중 몇 개가 총을 쏘아대고 있던 것이다.
-뭐야.
-누가 총 쏘는 거?
-뻔하지.
고천수는 마른침을 살짝 삼켰다.
‘설마…….’
『야, 이 새끼들아! 어딜 바로 도망가는 거야!』
예상대로였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이장의 목소리를 들은 고천수는 빠르게 선교를 향해 뛰어갔다.
“휴!”
“들었어.”
고천수의 외침을 들은 휴는, 이미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님, 배를 다시 움직여 주세요.”
“뭐? 어, 어디로…….”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한 휴가 고천수를 돌아보았다.
고천수는 선장에게 직접 소리쳤다.
“일단 뒤쫓아 오는 무리와 최대한 떨어져야 합니다! 지금은 남하하기 힘드니까 일단 위로 올라가죠! 빨리!”
고천수의 고압적인 표정에 선장은 다시 유람선을 전진시켰다.
부우우우웅!
유람선이 출발함과 동시에 뒤쪽에서는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투다다! 투다다다다!
‘다 같이 죽기라도 하자는 건가?’
고천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과정을 보았을 때, 몬스터는 총소리에 민감했다. 안 그래도 배가 한꺼번에 몰려서 소음이 커졌는데 총포까지 들리면 위험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몬스터들이 자극받으면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들 가능성이 있었다.
『거래 대금도 안 내고 도망치려고 해?! 다들 거기 서!』
갑자기 사람들이 차귀도에서 도망가게 되면서, 묶여 있던 여러 문제가 폭발한 듯했다.
『다 잡아서 노예로 넘겨 버릴 줄 알아!』
“젠장!”
선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잖아!”
그는 여러 발의 총성에 공포를 느낀 표정이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저쪽이 배도 훨씬 빠르다고!”
“거, 참. 시끄럽네.”
휴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그럼 선장님도 빠르게 운행하십쇼. 죽기 싫으면…….”
“아니, 이런 미친놈들이!”
고천수는 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선장 말이 맞아.’
이대로는 따라잡히게 되어 있었다. 짐이 너무 많아서인지 유람선이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흑구를 쓸까?’
흑구는 목걸이를 걸면 개로, 풀면 몬스터로 변신이 가능한 상태였다.
온리베어가 목걸이를 풀었다 채우기를 반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것을 전략적으로 잘만 이용하면 이장의 배에 침입시켜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터였다.
-흑구 써!
-흑구로 막는 수밖에 없다, 레알.
시청자들도 흑구를 쓰라는 쪽에 기울었지만 고천수의 생각은 좀 달랐다.
‘흑구는 나중을 위해서라도 멀쩡한 상태로 놔둬야 돼.’
이런 데에 쓸 카드는 아니었다.
바다 위라서 흑구를 쓰기에는 불리한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선장님.”
그래서 고천수는 선장에게 요청했다.
“용수항 아십니까?”
“뭐?”
선장은 물음표를 그렸다.
“용수항? 이 위로 올라가면 있는 그 용수항?”
“네, 바로 그 용수항 말입니다.”
“그게 왜!”
선장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소리쳤다.
“거기 배 세우고 도망가기라도 하자고? 아서라고! 그럼 뒈져! 부두에 대는 사이에 공격당하고 뒈질 거야!”
“압니다.”
용수항으로 들어가면 스스로 덫에 갇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뒤를 따라오고 있는 이장 무리에게 붙잡혀 총을 맞거나 심문을 받거나 물건들을 빼앗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안다고? 그런데도…….”
“거기 배를 대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획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용수항에는 7.5사단이 있다.’
그리고 7.5사단은 자신들을 태우고 갈 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
고천수 자신에게는 피해가 없이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느냔 말이다.
“용수항에는 지금 배를 타려고 하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마침 소윤재와 흑구, 온리베어도 선교로 올라왔다.
고천수는 일행들의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를 털어놓았다.
“거기에 있는 군인들은 무장 상태도 제법 좋죠.”
“지금 뭘…….”
“이이제이, 아십니까?”
고천수는 당황하는 선장을 보며 말했다.
“화력이 강한 서로를 맞붙게 하면 제법 볼 만한 싸움이 될 겁니다.”
고천수가 말하자, 주위가 잠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마, 맞붙게 한다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성질 급한 선장 쪽이었다.
“거기에 있는 군인들이랑? 그게 가능한 거야?”
“가능하죠.”
7.5사단은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7.5사단이 이 유람선을 보호하게끔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선장님, 경적을 크게 울리세요. 그리고 방송 준비를 해 주시고요.”
도박이다. 7.5사단이 만약에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흑구를 활용할 터였다.
하지만 아직 도박을 해 볼 여유는 충분했다.
“지금부터 편먹기를 한번 해 봅시다.”
고천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