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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47화 (147/224)

147. 출항하는 배

‘배…….’

고천수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부우우우.

부우우.

여러 척의 배가 차귀도의 항구로 접근하고 있었다.

대형 배들이 대다수로, 대부분 근처에 다른 작은 배들이 달라붙는 것으로 봐서는 직접 접안하지는 않을 듯했다.

-[한도초과] : 천수야, 배는 어떻게 구해서 갈 생각이야?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목적인지 한도초과가 나지막이 물었다.

“글쎄요.”

아직까지 큰 계획은 없었다.

“역시 탈취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들어오는 배 중에는 유람선도 있었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200명 승선은 너끈히 탈 만한 것들이었다.

-[한도초과] : 탈취? 가능할까?

“상황을 좀 봐야겠죠.”

웬만하면 빨리 배를 얻어야 하지만 아직 적절한 묘안은 없었다.

방금 뒤통수를 맞은 탓에 고천수는 정신을 안정시키는 데 좀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후.”

10분은 금방 지나갔다.

오래잖아 채팅창이 다시 활성화되는 것을 보면서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임. 천수 진정한 거?

-표정 아직 빡쳐 있는 듯.

-흐음. 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은 별로 진지하지 않았다.

고천수는 그러려니 하며 걸음을 옮겼다.

“형님들, 할 일이나 하겠습니다.”

한도초과의 말대로 여기서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일단은 끝날 때까지 모든 감정을 미뤄 둔다.

그게 고천수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왈!

걸어가자니 근처에서 흑구가 튀어 나와 짖었다.

“뭐야, 따라 나와 있었냐.”

고천수의 말에 흑구 위에 올라타 있는 온리베어가 고개를 대신 끄덕였다.

“하, 참.”

이름 자체가 온리베어라는 점에서 온리원에게 당한 일이 떠올라 괴로웠지만, 고천수는 배를 탈 한 가지 쉬운 방안도 떠올릴 수 있었다.

“뭐, 괜찮아.”

고천수는 흑구와 온리베어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한테 부탁이나 하나 하자.”

***

“고천수 씨!”

고천수가 돌아가자 소윤재가 눈을 크게 뜨며 다가왔다.

“괜찮습니까?”

“예, 뭐.”

“걱정 많이 했습니다.”

소윤재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어떻게 합니까. 고천수 씨가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공포 게임 플레이어는 항상 이런 일을 겪는다.

어이없지만 자신이 플레이어라는 점을 자각하자 고천수는 그나마 부서진 멘탈을 부여잡을 수 있었다.

한도초과의 말들이 정말로 도움이 됐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선웅 씨는……?”

소윤재의 주변엔 휴밖에 없었다.

이선웅이 보이지 않는 것에 고천수가 의문을 드러내자 소윤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고강연 씨를 달래겠다고 함께 어디로 갔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고천수가 고개를 돌리자 눈을 마주친 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 욕 하면서 가던데? 아무래도 그 사람은 고강연 씨한테 얻을 게 아직 많이 남았나 봐.”

“아, 아니!”

소윤재가 당황하며 손을 가로저었다.

고천수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괜찮습니다, 소윤재 씨. 그것도 달래려는 행동이긴 할 테니까요.”

어차피 굳이 데려가야 될 사람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그보다 소윤재 씨, 준비하시죠.”

“예?”

“여기서 떠야겠으니까요.”

소윤재는 고천수의 말에 살짝 침음하다가 답했다.

“역시 이장님의 도움은 받지 않을 생각이신가요?”

“들었잖습니까. 뭔가 수상하다고.”

이선웅까지 자리를 떴다.

혹시라도 그가 이장 쪽에 돌아갈 경우 시간이 더 없는 상태였다.

“천수, 따라가서 슥 해 버릴까?”

생각을 읽은 듯한 휴의 물음에 고천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만약에 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였는데 그랬다간 오히려 나중에 골치 아파질 수도 있어.”

배를 탈취하는 데 실패했을 경우도 생각은 해야 했다.

휴는 약간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뭘 어떻게 할 건데?”

“얘네들을 쓸 거야.”

“응?”

휴가 흑구와 온리베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얘네들?”

“그래.”

고천수는 천진한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흑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얘네가 좀 무섭거든. 공포물로 한번 가 보려고.”

현재 차귀도에는 몬스터가 없었다.

다들 안심하고 있을 때 허를 찌를 요량이었다.

“알아들었으면 다들 갑시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고천수는 둘을 끌고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

“어이, 김 씨. 승객은 많이 태웠는가.”

“한 30명은 태워다 날랐지.”

차귀도의 한 선착장.

승선 가능 인원 200명의 배 한 척이 들어서 접안한 가운데, 다리를 놓아 준 이와 선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엔 몇 명이나 들어가려나.”

“글쎄, 이장이 몇 명이나 구해 놨을지 모르겠네.”

선장은 기지개를 켜며 탄식하듯 말했다.

“요즘 노예를 원하는 곳들이 많아서 말이지.”

이장은 목적지가 애매하거나 금전적으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이들을 팔아넘기고 있었다.

“전임 이장은 일 잘하고 있던가?”

“전임 이장?”

또 한 번 이어진 물음에 선장이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잘하고 있던데? 삽질도 열심히 하고.”

현 이장은 원래부터 이장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난 뒤, 원래 깡패들을 이끌고 있던 이가 들어와 차귀도를 먹어버린 것이었다.

“아, 차귀도에 이런 것들 있는 줄 알았으면 나도 다른 놈들하고 미리 뭐라도 빼놓는 거였는데.”

선장은 한탄을 하듯 말했다.

지금의 이장도 차귀도에 비상 물품들이 보관돼 있는지는 원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발견한 것일 뿐.

그 덕분에 이장은 물품과 사람을 팔아 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뭐, 이 정도 장사만 하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지.”

이런 세계에서 장사를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나마 돈을 벌어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거나 다른 안전한 곳으로 갈 만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후.”

선장은 한숨을 내쉬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장은 몇 시간 뒤에나 온다고 했으니 여기서 기다리거나 식당에라도 가 있으면 될 듯했다.

“어디 밥이라도 좀 먹고 와 볼…….”

그때였다.

“으아아악!”

“괴물이다!”

“살려줘!”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뭐, 뭐야.”

당황하는 동료를 보고 선장은 긴장하며 주춤거렸다.

‘뭐지? 무슨 일이야?’

괴물이 나타났다는 외침.

차귀도에는 분명히 사람밖에 없을 터인데, 뭐가 어떻게 됐단 말인가.

“허, 헉!”

하지만 곧 선장은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정말로 눈앞에 괴물이 뛰어오고 있던 것이다.

“괴, 괴물!”

거대한 개의 형상.

하지만 일반적인 개는 아니었다.

크기는 대략 5m, 이빨도 사람을 통째로 관통할 수 있을 만큼 큰 녀석으로 가히 지옥에서 올라온 것처럼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으, 으아아!”

저런 게 이곳에 미리 들어와 있었다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어도 괴물이 나타난 건 진짜였다.

“뭐, 뭐야, 대체!”

괴물의 위에는 곰인형 하나가 타 있었다.

마치 기수라도 된 양 자리하고 있는 곰 인형의 모습에도 선장은 웃음 한 번 흘리질 못했다.

쿵! 쿵!

괴물은 순식간에 배가 있는 곳까지 와서 멈춰 섰다.

풍덩!

동료는 괴물을 보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선장은 그러지 못했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이, 이……!”

하지만 없던 용기라도 내야 할 참이었다.

선장은 서둘러 달려가 바다로 몸을 날렸다.

아니, 정확히는 날리려고 했다.

콰악!

괴물에게 뒷덜미를 붙잡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으악! 으아아아!”

선장은 괴물에게 끌어올려져 발버둥 쳤다.

“사, 살려줘! 살려줘어!”

배를 접안할 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는 허무하게 죽기 싫다는 듯 마구 발버둥을 쳐댔다.

툭.

순간 옷깃이 끊어지며 그는 배 안쪽으로 낙하했다.

“크윽!”

콱! 콰직!

그사이, 괴물이 배를 선착장에 얽매고 있던 밧줄을 모조리 끊어 버리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 제기랄!”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도망갈 기회였다.

괴물은 저것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차귀도 근처에 몬스터가 다량으로 발생한 거라면, 최대한 먼 곳으로 향해야만 했다.

부르르르.

선교로 올라간 선장은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어차피 물자는 충분하니까!’

사람들을 실어 나를 때 200명을 꽉 채울 일은 없었다.

비어 있는 자리에는 차귀도에서 실은 물자를 실어놨던 터였다.

“저, 저희도!”

“같이 탑시다!”

“기다려요!”

그런데 배를 출발시키자 세 사람이 소리치며 뛰어서 배에 올라탔다.

“뭐, 뭐야!”

선장은 당황했지만 당장 어쩔 수는 없었다.

일단은 배를 조종해 선착장에서 물러났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아직 안전한 거리는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던 것일까, 괴물은 갑자기 다시 배를 돌아보았다.

“제발, 제발…….”

선장은 주문이라도 외듯 괴물이 배에 올라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크아아!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다.

괴물은 선착장에서 점프해 배 쪽으로 날아왔다.

“으, 으아아아아!”

충돌 1초 전, 선장은 팔로 손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몇 초가 지났을 때였다.

“아아…….”

선장은 아무런 충돌도 일어나지 않자 빼꼼 고개를 들어올렸다.

“뭐…….”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날아오던 괴물의 모습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어디로 간 거야.”

불안감이 치솟았다.

괴물이 있었다가 없어졌다?

분명 눈을 가린 사이에 어딘가로 숨은 게 틀림없었다.

‘설마 헤엄을?!’

부우우우웅!

선장은 서둘러 배를 움직였다.

바다 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괴물이 없던 차귀도에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잠수 능력이 있다고 추측하는 건 억지가 아니었다.

“빨리 좀! 제발!”

우우우웅.

마침내 배를 돌려 세웠다.

선장은 전속력으로 배를 전진시켰다.

“안, 따라오는 건가?”

안심하기는 어려웠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렇게 배를 운항시키고 5분 정도 지났을 때에야 선장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 하아.”

살았다.

괴물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젠 굳이 날 안 쫓겠지.’

선착장에서 배를 출항시킨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이 유람선 뒤로 많은 배가 뒤따르고 있었다.

즉, 괴물이 쫓아온다고 해도 더 손쉬운 먹잇감들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하.”

위기를 벗어나고 나니까 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살았다!”

물건, 사람 장사를 하며 얻을 것도 많이 얻었는데, 이렇게 살아남기까지 했다.

선장은 자신감이 살아날 수밖에 없었다.

“신나 보이네.”

그런데 이게 뭘까, 갑자기 목 주위에 칼이 들어오며 서슬 퍼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뭣……!”

“아냐 아냐. 움직이지 마. 매우 위험하거든.”

선장이 눈을 살짝 돌리자 보인 건 차분하면서도 냉소적인 느낌의 남자였다.

“휴, 너무 겁 주지는 마.”

또 다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눈매가 거칠어 보이는 그는 휴라는 남자를 돌아보며 계속 말했다.

“앞으로 우리 데려다 줄 선장님인데, 잘해야지. 안 그래요, 소윤재 씨?”

“네, 맞습니다, 고천수 씨.”

그가 고개를 돌린 쪽에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총 셋.

아까 탄 인원들이었다.

“제, 제길!”

왈!

심지어 남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웬 개가 한 마리 있었다.

그것도 머리에 곰인형을 얹고 있는.

“으아! 으아아!”

괴물이었다.

분명 선착장에서 봤던 괴물이 작아져서 탑승한 것이었다.

“신기하죠?”

고천수라고 불린 남자가 선장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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