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뜻밖의 고아
“뭡니까?”
고천수 앞에 선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갑자기 집이라도 털고 있는 줄 알았던 걸까, 남자는 밖에 있던 휴와 흑구, 그리고 고천수를 돌아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하고 있던 거냐고!”
하지만 그보다 더 황당한 건 바로 고천수였다.
‘뭐야.’
고천수는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분명 고천수의 아버지 나이대가 맞았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야.’
낯선 얼굴이었다.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남자가 아니야.’
고천수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윤재는 분명 아버지가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주위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봐!”
남자가 그런 고천수를 보며 소리를 지를 때였다.
집 안에서 소윤재가 나오며 외쳤다.
“고강연 씨!”
그 외침에 고천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고강연이라고?’
이름은 같았다.
얼굴을 모르는 이 남자가.
“고강연 씨, 이분이 아드님 아닙니까? 고천수 씨요.”
소윤재는 흥분하는 고강연을 보고 말했다.
“고천수? 뭐야! 장난하는 겁니까?”
고강연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이름이랑 나이대만 같지 않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내가 아들이 죽는 걸 분명히 봤다고 했을 텐데, 괜히 사람 마음만 힘들게 하더니 기어코……!”
“어이구.”
마침 다시 집에서 나온 이선웅이 난장판이 된 상황을 보며 탄식을 뱉었다.
“뭔가 잘못 됐나 보네.”
“뭡니까. 그쪽도 있었습니까?”
고강연은 이선웅을 보고 더욱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구해 오라고 한 사람은 제대로 구해 오지도 못하더니, 왜 착각까지 해서 이런 소란을 벌이는 겁니까.”
“아니, 그, 저쪽이 아드님이라고 하셔서요. 고강연 씨 명함 보고 바로 아버지라고 했고.”
그 말에 고강연은 고천수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그러더니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헛소리! 아무리 봐도 아니란 말입니다! 착각이든 장난이든 아무튼 아니라고!”
“…….”
고강연이 한창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 고천수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없어.’
이곳에 다른 고강연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선웅과 소윤재가 말하는 고강연은 바로 곁에 있는 얼굴 모를 이상한 남자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고천수는 몸을 돌려세우며 고강연에게 말했다.
“당신.”
“뭐? 당신?”
“명함 줘 봐.”
고천수는 고강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고강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명함 줘 보라고? 이 자식, 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더 이상 존대할 필요가 없겠다는 듯 고강연은 손가락으로 그를 삿대질했다.
“네가 사람들을 속인 거냐? 내 아들이라고? 죽은 내 아들을 모독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냐고!”
“내놓으라고.”
고천수는 고강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뭐?! 이 자식이 그래도…….”
콰당!
순간 고천수가 고강연을 붙잡아 바닥에 패대기를 쳐 버렸다.
“앗!”
“고, 고천수 씨!”
“화끈하네, 천수.”
주변에 몰려 있던 이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큭! 이, 이 자식……!”
바닥에 널브러진 당사자, 고강연은 고천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워,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고천수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말했잖아. 명함 달라고.”
그러면서 고천수는 남자의 품을 뒤져 지갑을 꺼냈다.
거기에는 사진과 명함이 들어 있었다.
‘똑같아.’
명함은 그가 알고 있던 아버지와 명함과 같았다.
그러나 사진은 아니었다.
3인 가족이 나와 있는 그 사진에는 이 남자를 포함한 낯선 가족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
고천수는 말없이 남자의 몸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모습은 여태 누구에게 보인 적이 없을 정도로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 고천수 씨?”
소윤재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뭔가 착오가 있는 듯합니다. 일단은 비켜 주시는 게…….”
“하.”
“이, 일단은 일어나 주시죠, 고천수 씨.”
다가온 이선웅이 끼어들며 고천수의 팔을 붙잡았다.
“놔.”
고천수는 그런 그를 무섭게 돌아보며 말했다.
“문제 생기고 싶지 않으면 놔요.”
“어, 어엇…….”
이선웅은 놀라며 고천수에게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ㅋㅋㅋㅋ 천수 무섭네.
-이 정도는 처음인 듯.
-그러게.
고천수는 채팅창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그리고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형님들, 지금 웃깁니까?”
-아니, 뭐. ㅋㅋ…….
-화난 모습이 신기해서.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강연을 놔두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천수 씨!”
뒤에서 소윤재가 소리쳤지만 고천수는 따라오지 말라는 손짓만 했다.
“놔두시죠.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휴는 고천수가 혼자 갈 수 있게 놔두며 흑구에게 말했다.
“넌 가 봐. 주인이잖아.”
왈!
그렇게 흑구만이 고천수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
“뭡니까, 이거?”
해안가의 어느 돌무덤 위.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온리원 형님.”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다른 시청자들도 평소와 다르게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었다.
“설명은 들어야겠습니다.”
분명히 명함이 똑같았다.
들어가 있는 부속 정보까지 똑같으니, 우연히 디자인만 똑같은 게 아니었다.
“제 부모님은 어디로 간 겁니까.”
부모님의 행적은 게임을 따라가는 중요 요소 중 하나였다.
고천수가 차귀도로 온 이유이기도 했다.
“그냥 제가 갈 길을 유도하려고 이런 짓을 벌인 거면, 선 넘으셨습니다.”
고천수는 시청자들과 싸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와 같은 감정 상태가 아니었다.
-고천수.
한도초과조차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때, 갑자기 묵직한 채팅이 올라왔다.
-나 온리원.
온리원이었다.
고천수는 채팅창을 보며 눈썹을 치켜떴다.
“뭡니까, 형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일단 사과부터 할게.
그답지 않은 어투였다.
-네가 기억하고 있는 고강연은, 잘못된 정보야.
“잘못된…… 정보?”
-맞닥뜨렸으니까 이제 서서히 기억이 돌아올 거야. 잠깐만 기다려 봐.
그 말에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뭘 기다리라는 겁니까?”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면 고천수가 알고 있는 진짜 고강연이 여기 없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응?”
아니, 그게 아니었다.
“뭐야.”
고천수는 순간 떠오른 기억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리가?”
머릿속에 있던 부모님과 관련된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정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부모님의 모습과 기억은 지워지고 단 하나의 단어만이 남게 되었다.
고아.
“…….”
고천수는 멍하니 있다가 중얼거렸다.
“고아?”
-아이고, 결국엔 이 시간이 찾아왔네.
-원래 여기서 알아차릴 게 아닌데.
-고천수가 워낙 빠르게 깨가지고.
혼란이었다.
고천수는 머리를 쥐어 잡으며 말했다.
“뭡니까, 이거.”
이젠 더 이상 고천수의 기억 속에는 부모가 없었다. 정신이 어지럽던 그때, 고천수는 가혹하게도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고아 새끼’.
매니저를 통해서 내보냈던 그 시청자.
“이런, 시발.”
그 녀석은 틀린 말을 했던 게 아니었다.
“형니이이임!”
고천수는 주먹을 꽉 틀어쥐며 악을 쓰듯 외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건 다른 NPC를 조작한 게 아니었다.
플레이어를 건든 것이었다.
“게임을 하려면 제대로 하셔야죠! 이건 좀 심하게 잘못됐지 않습니까!”
너무 흥분했다.
고천수 자신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때론 합이 맞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래, 인정해.
그나마 다행이라면 온리원이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지. 하지만 그러질 못했어.
“그럼!”
-다만 이제 와서 어쩌진 못해.
온리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게임을 시작한 이상, 모든 건 시스템에 의해서 굴러갈 뿐이야. 방금 네가 사실을 알아차린 것도, 고강연을 직접 맞닥뜨린다는 히든 퀘스트를 깼기에 벌어진 일이지.
중간에 게임을 건들고 있지는 않다는 설명이었다.
-너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할게. 다만, 필요한 일이었다.
“필요한 일이라니!”
고천수는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자신의 유년시절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형님, 이게 어떻게 필요한 일입니까!”
-빠른 시일 내로 알려 줄게. 하지만 지금은 아냐. 좀 더 가야 돼.
“이런…….”
욕이 나오려고 했지만 고천수는 겨우 입술을 깨물었다.
고천수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그건 고천수가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지금부터 한도초과하고 나 제외하고는 10분 동안 시청 금지.
고천수가 가쁘게 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갑자기 매니저가 나섰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고천수. 지금은 다들 이해할 테니 10분은 마련해 줄게. 하지만 온리원은 이 게임의 주인이야. 자중해.
닉네임과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언사였다.
고천수는 깊게 숨을 내쉬며 바다 쪽을 돌아보았다.
-[한도초과] : 고천수.
그때, 한도초과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한도초과] : 너는 스트리머지만 플레이어기도 해. 공포 게임 플레이어라면 너도 잘 알지?
이런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기억 조작이 일어나는 건 사실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한도초과] : 나는 당연히 널 이해해.
한도초과는 어쭙잖은 위로 대신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전했다.
-[한도초과] : 엄청 화날 거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래도 끝을 생각하자.
“…….”
-[한도초과] : 이대로 화만 내잖아? 그러면 천수만 손해 보게 돼.
고천수가 듣기엔 상당히 어이없는 발언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주효했다.
-[한도초과] : 난 네가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그러니까 잘해 보자.
그다지 멋진 말은 없었다.
하지만 한도초과다웠기에 고천수는 순간 맥이 풀려 버렸다.
“……위로, 잘 못 하시네요.”
-[한도초과] : 에엥? ㅜ,ㅜ 별루였나.
“그런 건 아니고요.”
덕분에 잠깐 여유는 찾았다.
솔직히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든 흥분이 가라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뒤통수, 얻어맞았으니까.’
하지만 한도초과가 해 준 건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가면 손해를 보게 될 게 자신밖에 없었다.
“형님, 이 게임의 끝까지 가면 온리원 형님이 약속한 대로 이루어지긴 합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확신은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억지로라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듯했다.
-[한도초과] : 그건 확실해. 온리원은 약속은 지키거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그렇군요.”
끝에 가서 생기는 못된 반전만 없다면 적어도 나았다.
고천수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참자, 천수야. 참자.’
진짜 탑까지도 얼마 안 남았다.
여기서 배를 타고 가면 여태까지의 흐름상 금방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모든 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거야.’
여기서 방황을 했다간 가진 걸 전부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럴 순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견디기 힘들긴 하지만 오히려 잘된 측면도 있었다.
속도.
온리원은 그것 때문에 일이 이렇게 빨리 틀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가서 터질 일이 지금 앞당겨진 것이었다.
더 위험한 시기 때 이런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나았다.
‘제기랄.’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 엿 같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도초과] : 내가 잘 도울게! 갖고 있는 행성이 없어서 젠은 별로 못 모으지만……!
한도초과가 영문 모를 소리로 위로를 계속했다.
-[한도초과] : 그래도 천수가 자기 세계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깐!
고천수는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게 찐팬인 거네.’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고천수도 쉽게 주저앉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부우우우!
그렇게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어디선가 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