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44화 (144/224)

144. 차귀도 (4)

“고천수 씨, 부모님에게 말을 전해 달라고 했었죠?”

차귀도로 먼저 같이 가기로 한 것은 단 네 명에 한 마리.

고천수, 소윤재, 휴, 이선웅, 그리고 흑구.

“고천수 씨가 살아 있다고 전해 달라고.”

그중 이선웅이 승합차를 운전하면서, 승객이 된 고천수에게 말했다.

“네, 그랬죠. 안 그래도 이선웅 씨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고천수는 대답하면서 질문했다.

“전하니까 어떤 반응이셨습니까?”

“어…….”

이선웅은 쉽게 말하지 못했다.

고천수는 닦달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믿기 어려워하셨겠지.’

고천수는 세상이 이렇게 되기 이전엔 폐인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생각하기에 고천수는 여기까지 살아서 올 자식은 아닐 것이었다.

“저, 고천수 씨.”

이미 어느 정도 답을 예상하고 있는 고천수에게 이선웅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십쇼.”

“네.”

“고천수 씨 부모님은 고천수 씨가 살아있을 리 없다고 하시더군요.”

“예.”

“……?”

이선웅이 백미러로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제가 말을 잘못했나요? 고천수 씨 부모님은 고천수 씨가…….”

“아뇨, 제대로 들었습니다.”

다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말을 들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부모가 믿지 않아도 태연한 천수. ㅋㅋㅋ

-얼마나 믿음을 못 줬던 거임.

-대단하네. ㅋㅋ

“조용히 하세요, 형님들.”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이 고천수가 살아 있다는 말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았을 터.

“이선웅 씨, 제 부모님이 그 외에 다른 말은 안 했습니까?”

고천수는 태연하게 이선웅에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다른 말이라……. 글쎄요. 못 믿겠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끝까지 그렇게 얘기했다는 겁니까?”

그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못 믿는다고 해도 일단 자세히 물어보는 게 정상일 텐데.

“네, 분명히 아들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아들 얘기를 하니까 아예 화를 내려고 하셨어요.”

“음.”

“고천수 씨 이름을 대니까 거의 장난치지 말라는 반응이셨습니다.”

뭔가 부모님의 정신에 악영향을 끼친 걸까.

고천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온리원 형님, 계십니까?”

오랜만에 고천수는 그의 닉네임을 불러 보았다.

-온리원?

-천수가 찾는 거 오랜만에 보네.

-온리원!

하지만 온리원은 고천수의 부름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분명히 지켜보고 있을 텐데도 어째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일까.

-[한도초과] : 온리원은 왜 찾아?

대신 항상 고천수를 찾는 이가 대신 답을 해 왔다.

“아. 혹시 제 부모님한테도 뭔가를 했나 해서요.”

온리원은 고천수가 아는 인물들은 가급적 조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급적일 뿐, 어느 정도 손댄 구석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부모님 손대도 되나?

-부모님은 건들지 마!

-이미 건드려 버렸으면 어쩔 수 없지 뭐.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고천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온리원 형님? 정말 안 계십니까?”

혹시라도 정신 상태를 건드렸으면 그건 좀 아니었다.

-듣고 있다.

그때, 온리원으로 추정되는 채팅이 하나 올라왔다.

“온리원 형님 맞습니까?”

고천수는 지체할 것 없이 물었다.

“혹시 저희 부모님한테 손댄 거 있습니까? 있으면 괜찮으니까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시죠.”

-음.

온리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관점에 따라서 조금 다르겠는데?

그 말에 고천수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그걸 봤는지 한도초과가 나서서 그에게 말했다.

-[한도초과] : 게임을 위해서 아주 살짝 만졌다는 거겠지. 너무 신경 쓰진 마.

“한도초과 님, 잠시 만요.”

고천수는 살짝 손을 내저었다.

“중요해서 묻는 겁니다. 딱히 흥분하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솔직히 흥분하긴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의 정신 상태를 망가뜨려 놓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고천수는 채팅창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대로 대답하라는 듯이.

-걱정 마. 몹쓸 짓은 하지 않았어. 그것만은 장담할게.

이번에도 구체적인 답변은 아니었다.

“그 이상 알려 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그래. 너를 위해서야.

이게 무슨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고천수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시청자와 싸워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특히나 이 게임의 판을 벌인 온리원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내가 참아야지.’

아직 부모님을 직접 보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을 보고 나서야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고천수는 일단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고천수 씨?”

걱정이 좀 되었는지, 이선웅이 고천수를 향해 다시 말했다.

“일단 차귀도에 도착하면 부모님과 만나게 해 드릴 테니까 그때 가서 생각하세요. 막상 보면 또 아들이 살아 있다는 걸 바로 깨달으실 테니까요.”

“예, 감사합니다.”

고천수는 이제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귀도가 저 멀리 보일 만큼 해안이 가까워졌다.

끼익.

이선웅은 적당한 위치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일행들을 밖으로 내리게 했다.

“여기서 기다리면 금방 저희가 부른 배가 올 겁니다.”

이선웅의 안내에 따라 모두 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고천수는 짠 내가 나는 바다바람을 맞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둘은 잘하고 있으려나.’

제나와 송하나는 신도들 무리에 두고 왔다.

‘뭐, 잘하겠지.’

제나는 신도들의 통제를 위해 필요했다. 송하나는 그런 제나와 친해지라고 남겨 두었다.

통제를 하는 데는 유화책도 필요하니까,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면 송하나가 제나에게 다른 관점의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내가 나서면 되는 건가.”

품에서 칼을 꺼낸 휴는 이제야 한 마디를 꺼내며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휴.”

고천수는 그런 그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우리 배 구하러 가는 거거든? 내가 호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

“물론이지.”

전혀 자제하지 않은 표정으로 휴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네가 날 믿어서 데려온 걸 테니까. 제대로 된 집을 구할 때까지는 나도 충분히 자제할 거라고.”

-ㅋㅋㅋㅋ 존나 벌써부터 자제 안 되는 느낌인데.

-스읍. 괜찮은 거임?

-솔직히 언제 사고칠지 모르겠음.

사실 고천수도 휴가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데려온 것도 있었다.

‘적어도 내 편은 확실하니까. 전력으로 쓰기에는 휴만 한 놈이 없지.’

일단 데려왔으니 고천수는 휴의 효용성만을 고려할 생각이었다.

우우우우웅.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 고천수의 눈에 모터보트 한 척이 보였다.

* * *

“이렇게 두 명입니까?”

보트를 몰고 온 남자는 소윤재와 이선웅을 제외하고 고천수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개는…….”

남자는 당당하게 서 있는 개를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완견입니까?”

-ㅋㅋㅋㅋ 애완견.

-그렇게 안 보이나?

-ㅋㅋㅋㅋㅋㅋ 뭔가 이상하게 보일 거임.

흑구의 등 위에는 온리베어가 타 있었다.

심지어 흑구의 목줄도 온리베어가 잡고 있는 상태였다.

“네, 애완견 맞습니다.”

소윤재와 이선웅은 원래 흑구를 봤어서 그러려니 한 듯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설명이 필요했다.

고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등 위에 인형을 올려 둔 건 그냥 제 취미입니다.”

-ㅋㅋㅋㅋ 취미.

-미친.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천수의 말에 남자는 살짝 신음을 흘렸지만, 더 따지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일단 더 늦기 전에 타시죠.”

일행은 그렇게 보트 위에 올라탔다.

우우우웅!

보트는 거친 물살을 일으키며 빠르게 달려 나갔다.

‘진짜 가깝긴 하네.’

고천수는 차귀도를 내다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제주도 해안가에서 차귀도는 정말 가까웠다.

중간에 다른 거대한 암석 같은 것들이 시야를 가리지만 않았으면, 해안가에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우웅…….

실제로 보트가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트를 운전했던 남자는 선착장에 배를 메고 일행들에게 말했다.

“자, 가시죠.”

그가 안내하며 앞장서서 걷는 사이 고천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네.’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상자에 든 무언가를 선착장에 있는 배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곳에 있다는 물자인 듯했다.

‘내부에 숨겨진 공간이 있는 건가?’

겉으로 보기에는 차귀도에 그렇게 물자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섬은 일반적인 섬은 아닐 것이었다.

“여기입니다.”

남자는 근처에 있는 한 횟집으로 고천수 일행을 데려갔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남자는 사라지고, 일행만 건물 앞에 남았다.

-여기 누구 있는 거임?

-섬 치고는 뭔가 분위기가. ㅋㅋㅋ

시청자들의 말대로 건물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횟집과 달랐다.

입구에는 덩치가 큰 남자 몇이 문지기처럼 서 있었다.

‘보스라도 있나?’

물자가 있는 섬이라면 당연히 이곳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고천수는 살짝 마른침을 삼켰다.

“들어가시죠.”

덩치들 중 하나가 안내역을 자처하며 말했다.

고천수 일행은 그 덩치를 따라 건물의 3층까지 올라갔다.

“이장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드르륵.

덩치가 말하자, 어느 곳의 문이 활짝 열리며 그 안의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그럼.”

덩치는 인사를 하고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소윤재는 그런 그의 뒤를 바라보다가 고천수에게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내역만 몇 번 바뀌는 건지.

고천수는 살짝 혀를 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웃기게도 그곳에는 테이블이 단 하나만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 왔나?”

거기에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한 중년 남성이 횟감을 앞에 두고 술을 한 잔 마시고 있었다.

“요새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것 같군그래.”

그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흘리는 그를 보며 휴가 살짝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이장님이 굉장히 멋진 분이셨네. 반갑습니다. 휴입니다.”

고천수 일행이 순간 휴를 돌아보았다.

-???

-ㅋㅋㅋㅋㅋ 휴, 슈밤.ㅋㅋㅋ

-딱 봐도 원래 이장 밀어내고 이장인 척하는 조폭각인디.

-휴, 이놈 역시 겁이 없음. ㅋㅋ

그 말 대로였다.

‘이 새끼, 뭐 하는 거지?’

고천수는 휴의 돌발행동에 기가 찼다.

“하하하!”

하지만 어이없게도 자칭 이장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든 듯했다.

“대부분은 입구 들어올 때부터 기가 죽어서 오던데. 이번 손님은 뭔가 다른 것 같군.”

“네, 이장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 그를 본 고천수가 자신도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고천수라고 합니다.”

-ㅋㅋㅋㅋ 뭐 하냐.

-경쟁하니?

“하하! 그래, 자리에들 앉게!”

이장은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고천수 일행은 그런 그의 손짓을 따라 기다란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술을 너무 마셨나? 별 요상한 것도 보이는군.”

이장은 온리베어에게 목줄을 잡힌 채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흑구를 보고 말했다.

“제 애완견입니다.”

고천수의 말에 이장은 헛웃음을 뱉으며 소윤재를 보고 말했다.

“간만에 아주 재밌는 친구들이 들어왔어. 자네가 좋은 사람을 데리고 왔구만.”

“아, 네.”

“자네는 소방관이었어서 그런지 그냥 진지하지만 말이야.”

그러면서 이장은 술 한 잔을 더 따라서 마시며 말했다.

“근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온 거지? 배라도 타러 왔나?”

“네.”

“타고 가려면 비용이 만만치는 않을 텐데.”

이장은 또 한 번 헛웃음을 흘렸다.

“뭐, 좋아. 일단 한 가지 물어보도록 하지.”

그는 이 답이 자신의 반응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듯 물었다.

“자네는 어디로 가려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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