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차귀도 (2)
렌즈.
그건 잠깐 사이 시청자들이 말해 준, 제나의 능력을 막아낼 수 있는 도구였다.
“네가 들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푸른색 렌즈.”
일반적인 렌즈는 소용없었다.
제나의 원래 눈 색깔과 같은 푸른색 렌즈여야만 효용성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을지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잖아? 어쨌든 가지고 있는 걸 아니까 넘겨.”
제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주머니에서 렌즈들이 가득 든 작은 종이 상자와 손 소독제를 고천수에게 건넸다.
고천수는 손을 소독하고 렌즈 한 쌍을 꺼내 양쪽 눈에 착용했다.
‘다행히 맞네.’
렌즈는 기성품으로 보였다.
고천수의 눈에도 적당히 잘 맞았다.
“너도 끼고 있는 거지, 이거?”
제나가 왜 자신의 약점이 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의문을 해결하자면, 이런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걱정했을 테니까.”
능력을 가진 건 그녀뿐만이 아닐 거다. 혹시라도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를 대비해서 그녀가 방법을 찾아놓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 푸른 렌즈였다.
“우연이든 실험이든 간에 찾아낸 거겠지. 이 색깔의 렌즈를 낀 사람의 시야는 능력으로 뺏어 볼 수 없다는 걸.”
“천수 님, 전…….”
“알아. 굳이 나한테 숨기려고 한 건 아닌 거.”
하지만 굳이 알릴 필요도 없던 것이었다.
“뭐, 그냥 앞으로 좀 더 잘할 거라 기대만 하도록 할게.”
쿵.
제나는 마치 돌덩이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숨을 삼켰다.
-겁나 압박 줬음. ㅋㅋㅋ
-무서워서 뭐 하겠냐.
-근데 앞으로 같이 갈 거면 천수가 이 정도하는 것도 필요하지.
“알려 준 것도 형님들이잖습니까.”
고천수는 시청자들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덕분에 한 번 제대로 짚고 넘어갔습니다.”
이미 포섭이 끝나긴 했었지만, 이제 제나는 더욱 고천수가 어떤 힘을 가진 사람인지 확실히 알게 됐을 것이었다.
우우우웅.
그사이 트럭들은 컴뱃 앤트와 사체와 군인들의 시체를 지나쳐 길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응?”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고천수는 멀리서 하늘 높이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를 발견했다.
“저건…….”
봉화였다.
다른 연기일 수도 있었지만 고천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푸른 연기.’
뭘 집어넣어서 태우는지는 몰라도 연기색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뭔가 터져서 나는 연기라면 당연히 검은색일 터.
‘소윤재 씨가…….’
소방대원이었던 그라면 충분히 뭔가 생각해서 저런 방식을 사용했을 수 있었다. 아니면 승합차 운전기사였던 이선웅이 뭔가를 도왔을 수도 있지만 그건 이제 상관없었다.
“제나. 저거 보이지?”
갈 곳이 정해졌다면 일단 가 보면 될 일이었다.
“운전사한테 저쪽으로 가 보자고 전해.”
“알겠습니다.”
제나는 운전사에게 연기가 나는 쪽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차귀도까지 가는 동안 몬스터는 더 안 나오던가?
-차귀도에 몬스터 하나 살긴 할걸.
-뭔디.
그건 고천수도 궁금한 내용이었다.
“형님들, 제가 미리 알아야 하는 몬스터가 있다면 미리 알려 주세요. 나중에 알려 주시지 말고요.”
-네가 미리 알아야 하는 몬스터라…….
-스피어피시.
-아, 맞아. 그놈.
“스피어피시?”
이름만 들어도 굉장히 강해 보였다.
“뭐 하는 놈입니까?”
-그 있잖아. 물고기 중에 주둥이가 꼬챙이 같은 놈.
-꼬챙이 어떻게 못 하면 다 때려 부수니까 조심해.
-미리 챙길 거 있으면 챙기고.
“아, 오키. 알겠습니다.”
상대하기 까다롭긴 하겠지만 크라켄보다는 나을 터였다.
-[한도초과] : 나 왔다!
때마침 한도초과도 돌아왔다.
-[한도초과] : 거의 다 도착했네?
“네, 덕분입니다.”
한도초과가 쉐도우의 몸을 잡고 있었기에 편안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한도초과 님에게는 어떻게든 적절한 방법으로 은혜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한도초과] : 은혜는 무슨. 나중에 술이나 한 번 사!
터무니없는 답변에 고천수는 헛웃음을 한 번 내쉬었다.
‘뭐, 어쨌든 잘 풀렸어.’
난관이 있긴 했지만 뉴타운에서는 제법 큰 이득을 얻었다.
‘얼마나 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150여 명은 적지는 않은 수여도 결코 많지도 않았다.
7.5사단이 컴뱃 앤트와 싸우며 남긴 죽음의 흔적을 보지 않았던가.
크라켄과 같은 제왕급 몬스터까지 또 나타난다면 힘든 싸움이 이어질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고천수는 당장은 안심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은 괜찮겠지.’
스토리 흐름을 따져봤을 때 이곳에 있는 신도들을 서울로 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신도들이 희생될 수는 있어도 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란 뜻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나 있었다.
‘부모님.’
차귀도에 분명 부모님이 있다고 했다.
고천수는 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을 통해 보이는 연기는, 점점 자신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
봉화대.
그곳에는 소윤재와 이선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근데 그 사람들 진짜 오긴 할까요?”
이선웅이 소윤재를 보며 물었다.
“오다가 죽을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이곳으로 오는 동안 이선웅은 거대한 개미들을 목격했다.
다행히 개미들이 이선왕과 소윤재를 공격하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언제 돌변할지 몰랐던 것이다.
“일단은 약속했으니까요.”
소윤재는 피어오르는 연기를 살피며 말했다.
“적어도 이쪽은 안전하다는 걸 알려야죠.”
“거, 참…….”
이선웅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가 또 있잖습니까.”
고천수가 부탁한 것.
부모님에게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전해 달라고 한 내용이 있었다.
“고강연 씨한테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니까 완전히 표정이 박살나지 않았습니까? 자기 아들은 죽었다고.”
고천수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은 고강연은 이맛살을 구기고 이선웅을 쳐다봤더랬다.
그건 분명히 분노가 서린 것이었다.
“안 그래도 살려 오라고 부탁했던 사람 못 살리고 돌아와서 참 기분이 그랬는데, 괜히 화만 내게 만들었어요.”
이선웅이 고천수의 모습에 대해 묘사해도 고강연은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음을 믿지 않았다.
분명히 죽었다고 할 뿐이었다.
더 이상 아들에 대해서 언급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이선웅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그 사람, 아들을 사칭하는 건 아니겠죠?”
고강연은 큰 금액을 보수로 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고천수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를 범죄 타깃으로 삼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괜히 불러들여서 좋지 못한 꼴을 보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 사람이었다면 소윤재도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고천수는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제주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소윤재는 그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일단은 여기에 집중하죠. 봉화가 꺼지지 않게…….”
그때였다.
어디선가 차량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응?”
소윤재는 고개를 돌렸다.
언덕 아래로 군용 차량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군대?’
중문 관광단지에서 온 자들일까.
하지만 그곳에서 올 사람들은 고천수 일행이 전부일 텐데.
“어, 저기 웬 군인들이 오는데요?”
“이선웅 씨.”
놀라는 이선웅의 어깨를 붙잡고 소윤재가 말했다.
“일단 근처에 숨죠.”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소윤재는 이선웅을 끌고 가 근처 수풀에 몸을 숨겼다.
우우우웅.
우우웅.
차량들이 차례로 언덕에 올랐다.
그러더니 이윽고 별 두 개가 달린 차량에서 간부 한 명이 내려섰다.
‘저 사람은…….’
소윤재의 눈에 비친 그는 두 개의 별을 달고 있었다.
사단장이 분명했다.
“역시 봉화였나.”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왜 아무도 없지?”
“사단장님!”
병사 하나가 그에게 외쳤다.
“근처에 발자국들이 찍혀 있습니다. 방금까지 사람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사단장은 고개를 까딱하더니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주변을 좀 수색해 봐. 보이는 게 있으면 바로 말하고.”
“네!”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곧장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소, 소윤재 씨, 우리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대로 있다가 걸리면 괜히 매복이라도 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여겼는지, 이선웅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글쎄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소윤재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선웅을 애써 말렸다.
제주도까지 오면서 좋은 군인들을 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했던 자들도 분명 많았다.
게다가 제주 공항의 그 사태 역시 군인들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쪽!”
“이쪽에 지나간 흔적이 있다!”
하지만 숨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군인들은 소윤재와 이선웅이 숨어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소, 소윤재 씨.”
이선웅이 작은 목소리로 소윤재에게 말했다.
“이젠 어떡합니까.”
“…….”
소윤재는 작게 숨을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나가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사단장님!”
병사 하나가 다시 사단장에게 뛰어가 소리쳤다.
“차귀도 쪽에서 배들이 움직이는 게 관측됐다고 합니다!”
“뭐?”
“떠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단장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이곳을 수색할 시간이 없다! 얼른 차귀도가 있는 곳으로 가자!”
그러더니 병사들을 모조리 데리고 다시 차를 타 언덕을 내려갔다.
“후, 후우…….”
그들이 간 것을 확인한 이선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안 들켰네요.”
“그러게요.”
하지만 군인들이 차귀도를 향해서 간 이상, 또 마주치게 될 것은 뻔했다.
이선웅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금방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소윤재 씨. 군인들이 차귀도로 갔으면 어차피 마주치게 될 것 같네요. 괜찮을까요?”
“그러게요. 그래도 차귀도에 바로 갈 수는 없을 테니까요.”
차귀도는 섬이었다.
건너가려면 배가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차귀도로 건너갈 수 있는 배는 쉽게 이용할 수 없도록 그쪽 사람들이 조치를 해 둔 상태였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 소윤재 씨. 차귀도에서 떠난다는 배는 어차피 오늘 나가기로 예정된 배들일 뿐일 테니까.”
이곳에 온 군인들이 걱정하는 대로 모든 배가 차귀도에서 떠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차귀도로 오기로 한 배도 있는 만큼,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죠. 어차피 고천수 씨를 만나야 하니까요.”
“정말 그럴 생각입니까?”
이선웅이 또 한 번 한숨을 흘리며 답했다.
“그 사람들 언제 올지도 알 수가 없잖아요?”
“무작정 기다리자는 건 아닙니다. 반나절 정도만이라도 기다리자는 거죠.”
중문 광관단지에서 군인들이 움직인 거라면 고천수 일행도 이쪽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도 그와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반나절 정도면 그 사람이 나타나겠습니까?”
“알 수는 없지만, 그러기를 바라야죠.”
그렇게 답하는 소윤재를 보며 이선웅은 살짝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안 나타나면 우리만 차귀도로 다시 들어갈 길이 막힐 수도 있어요.”
“오히려 지금 갔다간 군인들에게 잡혀서 심문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랬다간 돌이킬 수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러느니 패를 하나 더 쥐고 움직이는 게 나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 패는 당연하게도 고천수 일행이었다.
“그 사람은 뭔가 다릅니다.”
소윤재는 다시 한번 이선웅에게 말했다.
“좀만 더 기다리시죠.”
“허, 참.”
이선웅은 결국 소윤재의 의견에 뜻을 함께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반나절까지 만이에요.”
그러면서도 이선웅은 고천수가 올지 반신반의했지만 그러한 의심은 길지 않았다.
부우우웅.
얼마나 지났을까, 저쪽에서 트럭들이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