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차귀도 (1)
“제나, 인원들은 다 준비됐어?”
“네, 천수님.”
제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보시다시피 전부 타에 태웠습니다.”
트럭과 그 뒤에 연결된 카라반이 즐비했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기 창고에 뭣 좀 남아 있었어?”
“네. 찾아서 총 32명의 신도들을 무장시켰습니다.”
“내 무기는?”
그러자 제나가 K2 소총과 경찰 권총, 테이저건, 대검, 그리고 이것들을 착용할 수 있는 조끼를 건네주었다.
“준비해 왔습니다.”
-워후.
-대단한데?
-수틀리면 위험한 거 아니냐? 다른 놈들도 무장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고천수는 제나에게서 차분히 무기를 인계받았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들.”
한도초과의 말 때문에 이곳의 신도들은 고천수에게 신뢰감을 가진 상태였다.
이곳에 있던 탑은 훈련용이고, 다른 곳에 진짜 탑이 있다고 말해 줬던 한도초과 덕분에,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도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고천수가 진짜 탑으로 가는 안내자 역할을 해 줄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남아 있는 군인들도 다들 신도들뿐이고…….’
문제가 될 만한 건 7.5사단의 병력들인데 그들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제나.”
고천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백경연이 여기에 있던 병력을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지, 확실하게 알아냈나?”
백경연이 차귀도로 향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정확하게 어디로 가기 위해서 차귀도를 행선지로 삼았는지는 아직 확실히 알게 된 바가 없었다.
“그건 알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제나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이봐, 고천수.”
휴가 옆으로 다가오며 손을 살짝 내밀었다.
“뭐, 내 쪽에는 무기 같은 거 안 쥐여 주나?”
“…….”
“표정이 살벌한데?”
“너한테 좋은 무기 쥐여 줬다가 뭘 어쩔지 알고.”
그러면서도 고천수는 제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그녀는 휴에게 거대한 정글 나이프를 건네주었다.
“뭐야, 이건.”
휴가 정글 나이프를 받아들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웬만하면 큰 거 드는 게 나아. 자꾸 사람만 잡으려고 조그마한 거 들고 다니지 말고.”
“이거, 참.”
휴는 제나가 추가로 건네준 검집에 나이프를 집어넣고 허리에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놈한테 이런 걸 주는 사람도 너밖에 없을 거야.”
“그래, 감사하게 생각하고.”
고천수는 그러면서 근처에 있던 송하나를 바라보았다.
“송하나. 너도 뭐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
“나?”
“받아.”
고천수는 들고 있던 테이저건을 건네주었다.
“음, 이거 하나?”
달라고도 안 하더니 막상 테이저건 하나만 주니까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차차, 하나씩 더 줄게. 처음부터 무리한 거 쓰려고 했다간 오히려 본인이 다쳐.”
“으음.”
“알았어.”
고천수는 권총도 건네주면서 말했다.
“그럼 이것도 주긴 할게. 대신 사용하기 전에 꼭 기억해 둘 게 있어.”
반동이나 사정거리, 장전 등에 관한 것이었다.
고천수는 그것들을 설명하고 난 뒤 송하나의 자세를 잡아 줬다.
“자, 쏠 때는 두 팔을 쭉 뻗어서 이등변을 만들어. 이게 가장 조준력이 좋아. 절대 눕혀 쏘지 말고.”
간단한 설명을 마친 뒤에 고천수는 송하나에게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한번 쏴 봐.”
“응?”
“쏴 봐야 줄 거 아냐.”
출발하면 더 이상 자세 교정을 해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송하나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곧 자세를 갖춰 보였다.
탕!
장전까지 마친 송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장소를 향해 한 발을 쏴 보았다.
“됐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송하나의 어깨를 밀었다.
“자, 얼른 타. 시간 없어.”
“자, 잠깐…….”
송하나는 별 말도 하지 못한 채 전병훈이 운전대를 잡은 트럭에 올라탔다.
고천수는 휴와 흑구도 같은 트럭에 태운 뒤에 제나에게 말했다.
“제나, 150명의 신도들을 내가 다 관리하기는 무리다.”
“…….”
“맡겨도 되겠지?”
수가 좀 많긴 하지만, 애초에 관리자로 있던 제나가 늘 해 왔던 일일 터.
“네, 맡겨만 두시길.”
제나는 두 눈을 붉게 물들이며 말했다.
***
차귀도.
그곳으로 가는 길에 백경연이 부대원들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제기랄!”
휘하 병력 7백.
적지 않은 숫자였지만 백경연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반이나 잃었잖아!”
1400명은 되는 숫자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반으로 줄었다.
함정을 밟았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도 그렇게 많은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차귀도로 오는 와중에 풀숲에서 개미 같이 생긴 거대한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부대원들을 헤집어놓았다.
‘컴뱃 앤트였던가?’
적은 수의 사람이 이동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많은 사람이 보이면 달려드는 희한한 몬스터였다.
“사단장님!”
영관급 장교 하나가 다가와 백경연에게 말했다.
“연기가 관측됐습니다! 저쪽을 보십시오!”
“뭐?”
백경연은 장교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연기, 잖아?”
정말로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몬스터가 있는 건 아니겠지? 확인은 해 봤나?”
“아직은 확인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런, 망할!”
백경연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또 그런 몬스터가 나타나면 700으로는 위험해.’
사단 병력은 원래 1만이 넘었다.
제주도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거의 10분의 1로 줄어든 상태였던 것이다.
‘그게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그래도 제주도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아니었다.
디엔드가 신봉하던 탑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단장님, 정말 거기서 나오는 게 맞았겠습니까?”
장교의 물음대로 안전을 위해서는 그곳에 계속 있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백경연 개인의 위신에도 맞는 선택이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럼 나와야지! 거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백경연은 장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지진으로 무너지고 있었잖아! 여기까지 오면서 경험한 바가 없나, 자네는?”
대형 몬스터들이 나타날 때 종종 지반이 무너져 내리고는 했다. 백경연은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대로 있었으면 오히려 전멸했을지 모른다. 자네 말대로 그래도 조금 지켜보다가 이곳에 왔지 않나? 탑의 입구도 봉쇄됐던 걸 보면, 분명 뭔가 잘못됐던 게 분명하다고!”
“아, 네, 네! 맞습니다!”
장교는 식은땀을 흘리며 백경연의 의견에 동의했다.
백경연은 그런 그를 보면서 연기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알겠으면 가서 저게 뭔지나 알아봐! 뭔지 알아야 여기서 전진할 거 아냐!”
“아, 알겠습니다!”
장교는 서둘러 뒤돌아 달려 나갔다.
백경연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흘렸다.
“후우.”
사실 백경연이 그곳에서 떠나온 건, 탑이 진짜여서 자신의 지휘권이 힘을 잃을까 봐서였다.
‘그런 일은 절대로 안 되지!’
병력을 좀 잃는 한이 있어도 새로운 행선지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미리 습득한 정보에 차귀도에 대형 선박들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어떻게든 배를 탈 수만 있으면 그 이후는 그가 알아서 할 수 있었다.
탈취하든지, 같은 일원으로 포섭하고 적당한 후보지를 다시 물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건 대체…….’
뭔가가 터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는 크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귀도가 코앞인데 저런 수상한 게 존재하고 있으니, 백경연은 불안감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사단장님!”
그 와중에 다시 장교가 달려왔다.
“확인했습니다!”
“뭐? 뭔데!”
“봉화입니다!”
봉화.
그 뜬금없는 단어에 백경연이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 봉화?”
“네. 관측 결과 봉화로 판단된답니다. 누군가 일부러 피어올린 걸로…….”
“봉화라니.”
옛것이든 뭐든, 뭔가를 알릴 때 쓰는 수단 아니던가.
“하나면…….”
일단 별 문제 없다는 뜻이었다.
피어오른 봉화의 개수가 많아야 위험하다는 뜻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대체 누구한테 보내는 신호지?’
하지만 위험을 알리는 게 아니라면 뭔가 이상했다.
이곳에 위험이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뭐, 친절한 놈들이 모여 있는 걸 수도 있겠지.’
이런 세계에서도 이타적인 사람들은 존재했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만약에 함정이라도 해도 백경연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병력들이 있으니까.’
맨 처음의 규모에 비하면 병력이 전부 없어진 거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한 수였다.
‘좀 더 챙겨오는 게 좋았으려나.’
뉴타운에 탑을 신봉하는 군인들을 무기들과 함께 좀 놓고 왔다.
목적은 있었다.
혹시나 그쪽에서 살아서 뒤를 쫓아온 군인이 있다면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후회해도 소용없지.’
이제 와서는 한 사람도 아쉽게 되긴 했지만 이대로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봉화가 보인 이상 그쪽으로 간다.
백경연은 방향을 정했다.
“다들 이동한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백경연은 부하들과 같이 출발했다.
***
“천수님, 저기.”
트럭 뒤에 타고 있는 고천수에게 제나가 말을 걸었다.
“왜. 뭐라도 있나?”
고천수는 제나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건…….”
거대한 개미들의 사체였다.
-컴뱃 앤트네.
-아주 오질나게 싸웠나 본데?-군인 시체들도 많음.
그 말대로 거대 개미, 컴뱃 앤트의 주위에는 여기저기 몸이 찢겨 나가 있는 군인들의 시체가 많았다.
“형님들, 여기 위험한 거 아닙니까?”
적어도 몇 백은 죽은 상태였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제 위험할 건 없을 것 같은데.
-다 죽은 거 같음.
고천수는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컴뱃 앤트의 사체와 군인들의 시체는 길가로 밀려나 있었다.
‘치운 건가?’
생존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곳에 있는 컴뱃 앤트는 전부 정리하고 갔다는 의미였다.
“그렇네요. 일단은 그대로 가면 되겠습니다.”
고천수는 제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제나. 이대로 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제나의 눈동자는 아직도 붉은 상태였다.
“그거,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 거냐?”
“제게는 걷는 정도의 노동입니다.”
꽤 오래 할 수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몇 시간 동안하면 지칠 것이 분명했다.
“힘들면 적당히 쉬면서 해. 지금은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지?”
“대부분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천수 님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상대로였다.
고천수는 짐칸 벽면에 몸을 살짝 기댔다.
‘믿을 게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거의 다 제정신이 아니긴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긴 했다.
세상이 망가졌으니까.
출구가 필요한 사람들은 뭐 하나를 믿으면 미친 듯이 믿게 돼 있었다.
고천수는 그들에게 자신을 믿으면 된다고 외친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제나.”
“네.”
고천수는 그녀와 서로를 마주 보는 상태로 시선을 돌렸다.
“방플은 하지 마라.”
“방플?”
방송 플레이의 준말.
스트리머의 방송을 엿보며 플레이를 하는 것을 뜻했다.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내가 지시할 때나 위급한 상황일 때를 빼고는 내 시야를 공유하지 마. 한 번 더 얘기해 두는 거야.”
“아.”
제나는 탄식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굳이 제게 득이 되지 않을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렌즈도 당연히 줄 거지?”
고천수의 물음에 제나가 갑자기 숨을 삼켰다.
“렌즈, 말입니까?”
“그래, 렌즈.”
당황스러워하는 제나를 보며 고천수는 손을 까딱였다.
“다 안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