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숨겨진 몬스터
“뭐야.”
고천수는 온리베어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준비 때문에 한 시가 바쁜 와중에 보급함이라니, 조금 뜬금없었다.
-안 받고 가도 되지 않나?
-너 놀리려고 지금 나타난 듯. ㅋㅋ
-가서 한번 보고 와. 근처라는 거잖아.
그건 맞았다.
온리베어가 여기에 있는 거면 아이템은 근처에 있다는 소리였다.
“다들 잠깐만 대기하고 있어.”
고천수는 일행에게 얘기해 놓고는 온리베어에게 발걸음을 향했다.
그러자 온리베어는 몸을 뒤뚱거리며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야야, 혹시 탑으로 가거나 그런 건 안 돼.”
또다시 탑에 갇힐까 봐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고천수를 비웃듯, 온리베어는 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야!”
-ㅋㅋㅋㅋㅋ
-온리베어도 말 알아듣는 거 아님?
-그럴지도 모름.
시청자들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이 온리베어는 기어코 탑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이, 진짜.”
입구 앞에서 멈춘 고천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할 수 없지.”
탑이 다시 열리고 나서 아이템이 생긴 거라면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문이 다시 닫히면 한도초과가 열어 줄 테니까.’
고천수는 눈을 딱 감고 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지?”
여전히 쉐도우의 모습을 한 한도초과가 고천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다시 들어온 거냐?”
“저 녀석 때문입니다.”
고천수가 손가락을 뻗자 온리베어를 발견한 한도초과가 작은 탄식을 뱉었다.
“아, 이 녀석인가.”
그러더니 한도초과는 낫으로 온리베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공간뿐만 아니라 특정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나타나기도 하니까. 지금은 탑이 다시 열리고 나서 시간이 흘러야 나타나는 거였나 보네.”
“아이템 찾아서 가는 게 좋을까요?”
“글쎄.”
한도초과는 잠시 침음했다.
“보급함이 있는 장소가 랜덤일 때도 있어서 꼭 쫓아가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은 못 하겠네. 온리베어가 너무 안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꾹꾹.
순간 온리베어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뭐지?’
이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아이템이 있는 장소로 그냥 달리는 게 전부였는데 말이다.
“무슨 뜻이야?”
고천수의 물음에 온리베어는 다시 제자리에 몇 번 뛰어 보였다.
“아.”
무슨 뜻인지 알아챈 고천수가 온리베어가 서 있는 바닥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에 있다는 뜻이야?”
끄덕끄덕.
온리베어가 이젠 고개까지 위아래로 움직였다.
-와, 이런 것도 되는 거였나?
-그럼 다음으로 할 일은 하나다.
-데려가자.
“형님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고천수는 시청자들에게 일갈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벽돌 바닥인데…….’
그냥 고천수가 열기에는 너무 단단한 바닥이었다.
슥.
고천수는 옆에 있는 한도초과를 바라보았다.
“뭐. 열어 달라고?”
끄덕끄덕.
고천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에서도 온리베어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 참.”
한도초과가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귀여워서 봐준다, 고천수.”
그러더니 한도초과는 높이 낫을 치켜들었다.
휙!
“잠깐!”
고천수의 외침에, 그대로 내리꽂히던 낫이 중간에서 멈춰 섰다.
왈!
흑구였다.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 온리베어 옆에 섰던 것이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잘못했으면 한도초과가 휘두른 낫에 흑구가 당할 뻔했다.
왈…….
흑구도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챈 듯, 놀라며 옆으로 물러섰다.
‘뭐지?’
고천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흑구 눈에 온리베어가 보이는 건 아닐 테고.’
흑구 또한 뭔가에 이끌려서 이곳에 왔다는 소리였다.
“파, 말아.”
한도초과가 낫을 어중간하게 든 채로 말했다.
“아, 파 주세요. 방해되는 건 제가 다 치우겠습니다.”
그러면서 고천수는 흑구와 온리베어를 둘 다 붙잡아 끌었다.
‘응?’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고천수였지만, 그게 무엇인지 바로 고민해 볼 시간은 없었다.
파악!
한도초과의 낫이 벽돌 사이에 꽂혔다.
“으으으음!”
쿠드드득!
벽돌이 낫에 걸려서 땅에서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콰득!
몇 개의 벽돌이 낫과 함께 바닥에서 튕겨져 나왔다.
“더 물러나라, 고천수.”
고천수는 온리베어와 흑구를 데리고 더 먼 곳으로 물러섰다.
콱! 콰득 콱!
마치 괭이질을 하듯, 한도초과는 바닥을 미친 듯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콱! 까앙!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낫에 뭔가 맞은 소리가 났다.
‘상자!’
그건 돌과 부딪친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고천수는 온리베어를 흑구 등에 태워 놓고 서둘러 한도초과가 파 놓은 바닥으로 달려갔다.
“상자였습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한도초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부서지는 거 보니까 상자가 확실해.”
“그렇군요.”
“내 뒤로 와 있어.”
고천수가 그 말대로 하자, 한도초과는 다시 낫을 휘둘렀다.
콱! 콰지직! 콰자작!
벽돌들이 수없이 뽑혀져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초록색 상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보급함!”
고천수는 관처럼 그곳에 박혀 있는 상자를 두 눈에 담고는 입을 크게 벌렸다.
“이런 곳에도 있다니…….”
“그렇네. 나 아니었으면 파지도 못했다, 이거.”
“감사합니다, 한도초과님.”
고천수는 한도초과를 올려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니, 뭐. 네가 부탁한 거니까 그냥.”
-머야머야. 홍조 띤 거야?
-아, 시발. 이런 거 하지 마셈.
-적어도 쉐도우에 빙의했을 땐 하지 말라고! 으아아ㅏㅏ!
딸깍!
고천수는 이런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손전등을 켜 바닥을 비췄다.
“윽! 그건!”
한도초과가 손전등 빛을 보고 물러섰다.
고천수는 순간 놀라며 말했다.
“아! 이거 지금은 한도초과님한테도 불쾌한 아이템인 거군요. 죄송합니다.”
“아냐. 이번엔 내가 물러나 있어야 할 것 같네.”
한도초과가 물러서자 고천수는 보급함이 있는 곳을 비추며 아래로 내려갔다.
친절하게도 한도초과가 고천수가 보급함 옆을 따로 파 준 터라, 그가 착지할 공간은 충분했다.
“자, 어디 한번 볼까. ……응?”
개 모양이 있었다.
“아, 그래서…….”
흑구가 갑자기 나타나서 난리를 피운 게 이해가 갔다.
“16젠…….”
가격은 고천수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었다.
‘안에 있는 건 흑구를 성장시킬 도구나 먹이겠지.’
광견만 해도 쓸모가 있는 것이었다.
다만 시간 제한이 있는 건 아무래도 효용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다.
‘이번엔 다른 걸까?’
고민은 좀 됐지만 언제 또 흑구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게 나올지 모르니 챙겨야 했다.
덜컥.
고천수는 바로 보급함을 열어젖혔다.
“응?”
안에 들어있는 것은 목줄이었다.
평범하게 생기고 무게는 가벼웠지만, 표시되어 있는 줄의 길이가 50m나 됐다.
“뭐야, 이건.”
-오우, 목줄.
-대박사건.
-ㅋㅋㅋㅋ 기대되네.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매우 엄청난 것이 나온 듯했다.
“형님들, 반응 보니까 제가 또 재밌는 걸 습득했나 보네요. 설마 이거 때문에 미리 후원해 주신 건 아니죠?”
-ㅋㅋㅋㅋ
-이렇게 딱 맞을 줄은 몰랐음.
-가격 대비 가성비 엄청난 거니까 잘 써. 흑구 전용 템은 원래 별로 안 비쌈.
안 그래도 후원이 짠데 흑구 아이템은 가격이 싼 편이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천수는 이제 벽을 붙잡고 위로 올라가려다가 몸을 흠칫했다.
“어?”
어느새 머리 위에 있던 초록색 선을 통과했던 것이다.
[띠링!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알림이 떠올랐다.
[상시 정보 :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보 1 : 현재 양민철 일행이 향하는 곳에 진짜 탑이 있습니다. 일행과 합류하세요.]
분기점.
고천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합류?’
게다가 진짜 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다면……!’
서울이 최종 목적지라는 얘기였다.
고천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망할 게임 같으니!’
제주도로 유도해 놓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해 놓다니 대체 무슨 심보냔 말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양민철 일행이 그곳으로 간다고 정보가 떴던 것부터가 이미 힌트였다.
그쪽에 아무것도 없다면 굳이 그들의 정보가 나타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고천수. 멀었…… 으앗!”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던 한도초과가 손전등 빛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 한도초과님, 지금 올라갑니다!”
고천수는 정신을 차리고 일단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오자마자 고천수는 손전등을 껐다.
“으, 조심하란 말이다.”
한도초과는 눈을 비비적대다가 고천수가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듯 물었다.
“그건……?”
“아, 흑구 아이템입니다. 보급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고천수는 흑구를 쳐다보았다.
“응?”
그렇게 아까 전에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뭐야, 이거.”
-ㅋㅋㅋㅋㅋㅋㅋ
-이제야 알아 챈 듯.
-개웃김. ㅋㅋㅋㅋ
온리베어가 흑구 위에 타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이긴 하지만, 고천수는 이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
자신이 온리베어를 인형처럼 붙잡아 다뤘던 것이다.
게다가 보급함이 열렸는데도 온리베어는 사라지지 않았다.
“네가 붙잡아서 귀속시켜서 그래.”
한도초과는 고천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붙잡고 일정 시간 지나면 귀속되어 버려.”
“예?”
황당했다.
“이거 괜찮은 겁니까?”
“장단점이 뚜렷하지.”
한도초과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앞으로 새로운 온리베어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잃어버리면 안 돼.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일 거고.”
“아니, 세상에.”
“그래도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한도초과가 흑구를 가리켰다.
“둘 다 귀속 몬스터라 두 마리나 데리고 있으면 엄청난 시너지가 있어. 테이밍 마스터 효과지.”
“테이밍 마스터라니…….”
“일단 흑구가 각성을 해야 알 수 있을 거야. 그거.”
한도초과는 목줄을 가리켰다.
“한번 쓰려면 써 봐.”
고천수는 목줄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지금요?”
대체 뭐길래 이게 흑구를 각성시킨다고 하는 걸까.
마침 흑구의 목에는 고천수가 걸어 주었던 목걸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빨리 해!
-시간 별로 없잖아!
시청자들까지 재촉했다.
고천수는 할 수 없이 목줄을 흑구에게 걸어 보았다.
[흑구가 Lv.3로 성장합니다. 지금부터 몬스터의 진면목을 보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알림에 고천수는 실수를 해 버렸다.
[이제 목줄을 풀면, 스킬 ‘맹견’이 자동 적용됩니다.]
그 말에 따라 반사적으로 목줄을 푸는 순간, 고천수는 자신이 지금까지 뭘 데리고 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되어 버렸다.
***
쿠어어아아아!
갑자기 탑에서 쏟아져 나온 괴성에 밖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주춤댔다.
“뭐, 뭐야.”
“몬스터?!”
“또 뭐가 나타난 건가?”
동요가 일어났다.
여태 몰려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자리를 이탈할 듯 구는 것이 제나의 눈에 띄었다.
“주목!”
고천수가 그녀에게 보좌 역할을 맡겼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고천수 님이 말씀하셨던 대로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뭐?”
“고천수 님이?”
사람들이 시선이 모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시험할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놀라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면 남아 있는 우리를 탑에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맞아. 겨우 이 정도에 놀랄 것 있나? 천수 방식을 잘 모르네, 다들.”
휴까지 미소를 지으며 거들자 사람들은 금세 누그러졌다.
“그, 그래. 이건 우리를 시험하는 걸지도 몰라.”
“남은 사람만 데려가려는 거라고.”
“난 남아 있을 거야!”
다행히 사람들은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후.”
제나가 한숨을 지으면서 탑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터벅터벅.
고천수가 탑에서 걸어 나왔다.
옆에는 목줄을 건 흑구가 있었다.
‘저건 뭐지?’
제나의 눈에 흑구 위에 올라타 있는 작은 곰 인형이 보였다.
다시 고천수에게 시선을 향하자, 그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천수 님?”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 묻자니, 고천수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
그녀가 다시 던진 물음에 고천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도 없어.”
와그작.
옆에서는 흑구가 입에 남아 있는 벽돌을 씹어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