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준비
“총 153명입니다.”
제나는 고천수가 지시한 대로 인원수를 정리해 가져왔다.
“총 153명?”
“고천수 님의 일행은 제외한 수입니다.”
일행이라고 한다면 휴밖에 없었다. 흑구는 사람으로 치지 않을 테니까.
고천수는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예상보다 좀 적은데?”
“이탈한 인원이 있습니다.”
제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탑을 빠져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곳을 이탈했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천수가 너무 무섭게 굴어서인 듯.
-놀라서 도망 갔나 본데.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도 고천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뭐, 예상했으니까.’
어떤 이유든 간에 이탈자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탑에 오르려고 했다가 실패했지 않은가.
탑을 구원의 장소라고 생각했을 이들 중 몇몇에게는 오히려 충격으로 다가가 트라우마를 안겼을 것이었다.
탑은 위험한 곳이라고.
차라리 다른 장소를 찾는 게 낫겠다고.
“153명은, 군인도 포함한 숫자겠지?”
“네. 군부대와 관련해서 군인 한 명이 천수 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
고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병장 한 명이 가까이 다가왔다.
“구원! 최형식 병장이라고 합니다.”
“구원?”
누가 그런 경례를 하라고 했는가.
“웬만하면 경례는 바꾸죠. 그냥 충성으로 하세요.”
-ㅋㅋㅋㅋ 자기한테 충성하라고.
-아주 대단한 사람이네, 우리 천수.
“대단한 건 형님들입니다.”
고천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요새 후원이 아주 씨가 마르지 않았습니까? 이래서야 보급함이 나와도 아무것도 못 하게 생겼습니다.”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2젠을 후원하셨습니다.]
[띠링! 대교주 님이 5젠을 후원하셨습니다.]
[띠링! 낼름 님이 2젠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후원창이 활성화됐다.
“아, 진짜.”
청개구리도 아니고 왜 이럴 때만 제대로 된 반응을 해 준단 말인가.
“됐습니다.”
-ㅋㅋㅋㅋ 해 줘도 뭐라 하냐.
-귀엽네.
-난 천수 괴롭히는 게 좋아. 아주 좋아.
“천수 님?”
고개를 갸웃하는 최형식을 보며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것보다 군부대 관련해서 할 얘기가 뭡니까?”
“아, 네!”
최형식은 7.5사단의 행적을 알려 주었다.
“백경연 사단장님이 이곳에 있던 부대원들 대부분을 데리고 차귀도로 이동했습니다.”
“차귀도?”
고천수는 대번에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곳입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최형식을 보며 손을 내젓던 고천수는,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계속 얘기해 보세요.”
“네, 사단장님은 부대원들과 그곳으로 갔는데, 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려고 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주도도 안전한 곳은 아니다.
백경연은 그렇게 판단했으리라.
‘탑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는 독이 된 건가?’
고천수는 백경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디엔드를 아예 지워내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긍정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인정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탑이 나타나고 난 뒤에는 상황이 바뀌었을 것이었다.
‘뭐가 됐든 탑이 진짜 나타난 거니까.’
디엔드가 신봉하던 탑이 정말로 등장했다.
군인들이 동요하면 7.5사단이 가지고 있던 지휘 체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아마 백경연은 탑이 나타나면서 생긴 재해와도 같은 지진을 이유로 대며 군인들에게 안전한 장소로 가자고 했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최형식 병장이라고 했죠?”
“네!”
“앞으로 다른 군인들의 관리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천수의 말에 최형식은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형식을 포함해서 이곳에 남아 있는 모두는 고천수에게 진짜 탑으로의 안내를 희망하고 있었다.
‘뭐, 그 정도야.’
그리고 고천수도 이들을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거기까지 가면서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할 뿐.
“네, 그럼. 다음에 또 얘기하죠.”
고천수는 최형식 병장을 돌려보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는 사람이 계십니까?”
제나의 물음에 고천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몇 명 더 있었거든. 7.5사단이랑 갔는지 궁금해서.”
부우우웅.
그때였다.
어디선가 차량의 소리가 들렸다.
“뭐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같은 건가?”
중얼거리는 고천수의 앞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승합차였다.
위이잉.
운전석에서 누군가 창문을 내리고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탑에서 나오셨나 보군요.”
“정병훈 씨.”
고천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7.5사단을 안 따라가고 근처에 계셨나 보군요.”
“네. 그냥 여기에 있는 게 더 편해서 말이죠.”
담담하게 대답하는 그와는 다르게, 승합차의 뒷문을 열어젖히고 나온 송하나는 곧장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나 떼어놓고 가더니 이제야 나온 거야?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간 줄 알았었는지 완전히 구겨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에서 대체 뭘 하다가 나온 거야? 응……?”
그러던 송하나의 시선이 제나를 향했다.
“뭐야, 이 사람은.”
“내 비서.”
“엉?”
송하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비서?”
“그렇게 됐어.”
고천수의 말에 송하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언제 비서까지 구한 거야? 아니, 애초에 비서를 구해야 될 일이…….”
그러던 송하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녀는 주위에 몰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이제야 눈치챈 듯했다.
“이 사람들 뭐지? 뭔가 너를 중심으로 몰려 있는 것 같은데.”
“잘 알아봤네. 맞아.”
“뭐? 진짜라고?”
“어쩌다 보니 약간 리더 같은 역할을 맡게 됐어.”
지금 당장 자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봐서 반갑지만 송하나. 한 가지를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정병훈 씨, 당신도요.”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쉐도우 때문에라도 일정 범위 이상 이곳과 떨어져야만 했다.
그렇다면 고천수가 할 일은 하나였다.
원래부터 하려고 했던 일을 지금 바로 실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차귀도에 갈 거야.”
고천수는 송하나를 바라보며, 다음 행선지를 통보했다.
“거기로 가면 제주도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아마 십중팔구 배겠지만.”
그것만 있다고 해도 감지덕지였다.
배도 없으면 제주도에 그대로 갇힐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잘 계신지도 알아봐야 하고.’
이런 세계긴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생사는 중요했다.
정말로 살아 있다면 그 행적대로 따라가 만남을 가져야만 했다.
“다시 어디로 간단 얘기야? 그래도 여기 호텔도 있고 좋았는데.”
난감해하는 송하나를 보며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송하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뭐? 무슨 말이야, 그게.”
“여기에 있는 호텔은 결국 시한부야.”
호텔을 관리하던 7.5사단이 자리를 내뺐다.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호텔에 남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었다.
“관리를 안 하면 네가 아는 호텔로 유지되기가 쉽지 않지. 곧 정이 떨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 이전에 더 완벽한 곳으로 움직이는 게 나았다.
“당장 힘든 길을 선택하는 게, 나중을 위해서 더 나은 일이야.”
“……후.”
송하나는 자신도 모르지는 않는다는 듯, 그리 늦지 않게 상황을 이해했다.
“그래, 그렇겠지. 알고는 있었어. 그냥 널 이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될지 걱정이 들었으니까 그렇지.”
“천수 님은 잘 안내해 주실 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제나가 끼어들었다.
“우리보다 훨씬 월등한 존재니까요.”
“월등하기까지야…….”
그런 것까지는 없었다.
고천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송하나에게 제안했다.
“어쨌거나 같이 갈래? 동료는 꽤나 많이 구했는데.”
그러면서 고천수는 주위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다 가리켰다.
“따로 가게 된다면 고생 좀 하게 될 거야. 웬만하면 같이 가는 걸 추천할게.”
“……약았네, 약았어.”
송하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답했다.
“그래, 갈게. 솔직히 안 가면 어쩌겠어. 같이 가려고 기다린 거기도 한데.”
7.5사단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사실 선택지가 없기는 했다.
고천수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좋아. 그거면 됐어.”
고천수는 정병훈에게 다가가 물었다.
“정병훈 씨, 혹시 차귀도라고 기억하십니까?”
“차귀도?”
정병훈은 잠시 물음표를 그리다가 답했다.
“저희와 따로 헤어진 사람들이 간 곳 말입니까?”
“맞습니다.”
이곳에 할 일은 다했다.
백경연까지 부하들을 끌고 그곳으로 간 만큼,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바로 가려고 하는데, 지도 좀 보고 거기까지 차량 안내 좀 부탁해도 될지요?”
정병훈은 뭔가 운전하는 실력만큼은 뛰어났다.
선두에 세우고 차량 행렬의 인도를 부탁할 수 있다면, 꽤 도움이 될 것이었다.
“네, 뭐.”
다행히 정병훈은 고천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따로 가 보려고도 해 봤는데, 저도 그냥 고천수 씨랑 같이 가는 게 낫겠더군요.”
“그런가요. 잘 생각해 주셨군요.”
정병훈을 포섭했으면 이제 일은 다 끝났다.
고천수는 휴에게 물었다.
“휴. 너는 당연히 따라올 거지?”
호텔을 집으로 삼아서 여기 남는다고 한다면 그도 말릴 생각은 없었다.
“가야지.”
하지만 휴는 여기에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진짜 탑에 데려다준다며. 거기가 분명 제일 좋은 집이 될 거야.”
“집은 아니야.”
고천수는 휴에게 반박하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이놈은 어쩔 수가 없네.’
그렇다고 해서 싫은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큰 전력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천수 님, 운송에 관련된 군인 한 명에게 들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트럭으로는 100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가 없답니다.”
그때, 제나가 갑자기 다가와 새로운 정보를 전달했다.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뭐? 100명?”
나머지는 무려 50명 이상이었다.
“그렇게나 두고 가려고 했다간…….”
싸움이 날 것이 분명했다.
‘망할.’
어쩔 수 없었다.
고천수는 제나에게 물었다.
“제나, 디엔드가 따로 가지고 있던 운송 수단은 없던 거야?”
“차량은 다 7.5사단이 관리하고 있었어서…….”
“꼭 동력을 가진 차가 아니어도 좋아.”
제주도는 관광 여행지였다.
다른 종류의 차량도 있을 것이었다.
“혹시 카라반 같은 거라면?”
차량 뒤에 끌고 다니는 트레일러.
여행지인 만큼, 차 뒤에 매달고 다니는 주거용 트레일러들은 이 근처에 몇 존재하고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 그런 거라면……!”
제나는 생각나는 것이 있다는 듯 고천수에게 고했다.
“주차장에 트레일러 수십 개가 놓여 있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사람들을 많이 태울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좋아, 그거면 충분하겠네.”
트럭 뒤에 트레일러를 또 다는 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수 있었지만, 억지로 누군가를 떼어놓고 가려다가 싸움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제나, 방금 내가 말한 대로 진행해 줘. 최형식 병장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되고.”
“네, 알겠습니다.”
제나는 고천수의 지시를 듣고 곧장 최형식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좀 정리됐나?’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미리 짜 두면 좋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선방을 해 둔 상태였다.
왈!
곁에 다가와 짖는 흑구를 보며 고천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도 같이 갈 거야.”
흑구의 자리는 언제든지 확보가 되어 있었다.
왈!
하지만 흑구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응? 대체 뭘…….”
그러던 고천수는 흑구의 주둥이가 향한 곳을 보고 몸을 흠칫했다.
그곳에는 온리베어가 미어캣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