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37화 (137/224)

137. 한도초과가 돌아왔다

“제나……!”

고천수는 제나가 날아가 버린 것을 보며 탄식했다.

‘제기랄!’

저렇게까지 나선다고 해서 고천수가 더 좋아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거의 다 지났다!’

제나가 무모하게 굴긴 했지만 덕분에 확인된 건 있었다.

확실히 쉐도우는 다른 인간을 죽이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우우우.

제나를 내친 쉐도우는 다시 고천수를 공격하려고 했다.

“와 봐! 자식아!”

고천수는 휴와 함께 내달렸다.

딸깍!

얼마 지나지 않아 손전등이 다시 쉐도우를 비췄다.

멈칫.

쉐도우는 또다시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넌 이제 뒈졌다.”

고천수는 쉐도우에게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저번보다 나아.’

이번 손전등 아이템의 빛이 더 강력한 것인지 쉐도우는 신체 단계를 올리지 못했다.

도약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럼 내가 이기지!’

콱! 콰직! 콰악!

결국엔 시간 싸움이었다.

고천수는 마구 도끼를 휘둘러 쉐도우를 찍고 찢고를 반복했다.

우우우우.

하지만 이번에도 끝장내지는 못했다.

“하, 진짜.”

“천수 님!”

멀리 내던져졌던 제나가 근처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너 멀쩡하냐?”

하긴 바위만 피했다면 풀밭이긴 했다. 완충 작용을 했다면 그렇게 크게 다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막대 얼마나 남았어!”

“4분의 1 정도입니다!”

“좋아!”

그 정도라면 한 번만 더 스턴을 걸고 싸워도 이기게 돼 있었다.

-[한도초과] : 흠, 굳이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이길 필요가 있을까?

그때였다.

갑자기 올라온 채팅을 보고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어?”

-[한도초과] : 왜. 이 누님이 너무 갑자기 나타났나?

그러고 보니 한도초과가 나타날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야, 천수!”

휴가 그에게 소리쳤다.

“정신 멍하게 있을 거냐?”

“아.”

고천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 한도초과 타이밍이 좀.

-뭐, 뻔하지.

-천수 정신 빼 놓으려고.

‘이런.’

고천수는 한도초과가 왜 지금 나타났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설마 또 팬 미팅을 하려는 거냐?’

그건 그녀만 좋은 일일 뿐이었다. 고천수는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한도초과 님, 저 죽을 위기 맞으려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한도초과] : 내가 아는 천수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걸?

웃기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고천수는 이미 한 번 죽어서 ‘죽음을 알지 못했던 자’의 칭호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천수 님, 다 됐습니다!”

그렇기에 제나가 그렇게 외쳤을 때, 고천수는 뒤돌아 확실하게 전투 태세를 취했다.

딸깍!

그리고 손전등이 쉐도우를 마비시키자마자 도끼를 미친 듯이 휘둘러댔다.

-오우, 한도초과 만나기 싫은가 본데.

-죽기 살기로 휘두름. ㅋㅋㅋ

-[한도초과] : 흐음.

콱! 콰직! 콰악!

한도초과는 고천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살짝 신음하면서도 딱히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콰악!

고천수는 쉬지 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크아아아아!

순간, 쉐도우가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잡았나?

[쉐도우를 처음 처치했습니다.]

알림창이 떠올랐다. 고천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잡았다……!’

여태까지는 건방지게 땅에서 떠올라 날아다니던 녀석이 풀숲에 앉아 괴성을 질러대는 꼴을 보며 고천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지옥으로 돌아가랬지, 어?”

하지만 그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쉐도우가 곧 회생합니다.]

“응?”

[회생 시간까지 앞으로 300초 남았습니다.]

그 알림에 고천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 무슨 소리야!”

아직 탑이 개방되는 움직임은 없었다.

그랬다면 다른 사람의 시야를 엿볼 수 있는 제나가 이미 말을 해 줬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쉐도우를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회생 시 쉐도우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심지어 이런 알림까지 떠올랐다.

“이런 제기랄.”

“천수 님! 더 강력해진다니, 위험한 거 아닙니까?”

“아니, 왜 자꾸 훔쳐보는 거야, 너!”

고천수가 외치자 제나가 뻔뻔하게 답했다.

“그래야 천수 님을 더 잘 보호할 수 있습니다.”

“더 잘 보호해서 뭘 하려고!”

“그야…….”

제나가 제대로 답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고천수는 혀를 찼다.

‘뭐, 순수하게 날 돕는 건 아니라는 뜻이겠지.’

제나 정도의 능력이면 교주가 직접 데리고 있어야 맞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제나가 그의 눈 밖에 나 있다는 뜻.

갈아탈 대상으로 자신을 지정했다고 한다면 방금 보였던 그녀의 행동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일단 이게 먼저야.’

제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달라붙었든 간에, 쉐도우가 다시 되살아난다면 위험했다.

[첫 처치 보상으로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뭘까, 그냥 죽게 놔둘 생각은 없다는 듯 새 알림창이 떠올랐다.

[1. 팬 미팅 가능 조건을 ‘3일에 1시간’으로 단순하게 변경하고, 팬 미팅 시 3일간 채팅 불가 페널티 삭제.]

[2. 쉐도우 2주일 동안 안 보기.]

“어…….”

생각보다 상당히 쓸 만한 제안에 고천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보상이라고?”

그렇다면 쉐도우와 여기서 죽자 살자 싸울 필요가 없었다. 2번을 선택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닥치고 2…….”

-[한도초과] : 1번 어때?

하지만 그때, 한도초과가 치고 들어왔다.

-[한도초과] : 1번이 더 좋을걸?

남은 시간은 200초. 고천수는 한도초과와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형님, 팬 미팅 너무 해도 별로 좋을 거 없습니다.”

위기 상황에 한도초과가 튀어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괜히 팬 미팅 권한을 더 늘려 줄 필요는 없었다.

‘3일간 채팅 불가 페널티는 풀어 주고 싶긴 하지만.’

한도초과가 없으려니 확실히 불편했던 부분은 있었다.

매니저나 온리원은 그의 플레이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지 특별히 말을 걸어 오지 않았다.

간간히 새로운주인 등이 나서기도 했지만, 역시 한도초과만 한 시청자가 없던 것이다.

-[한도초과] : 1번!

-2번 하셈.

-그냥 쉐도우나 보내 버려. 지긋지긋하잖음.

다른 시청자들은 한도초과가 곤란해 하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2번!

-2번 가즈아!

-[한도초과] : -_-

“1번.”

그때, 고천수는 검지를 들고 그렇게 말했다.

-뭐? 1번?

-쉐도우부터 없애야지!

-정말 괜찮겠어?

어차피 이 탑의 문이 다시 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수십 분.

“굳이 2번에 의지하지 않아도 쉐도우는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쉐도우 말고도 고천수를 위협하는 일은 많았다.

그렇다면 확실한 아군 하나를 좀 더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게 나을 수 있었다.

“1번.”

-후회할 텐디.

-그러게. ㅋㅋㅋ 5분 내에 후회한다에 내 저녁밥을 건다!

-ㅋㅋㅋㅋ

팬심이 조금 과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한도초과는 선택하면 안 될 일을 추천할 이유가 없었다.

꾹.

고천수는 눈앞에 떠 있는 알림창에서 1번을 선택해 눌렀다.

[선택하신 보상이 적용됩니다.]

[쉐도우 회생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50초입니다.]

2분 남짓이었다.

고천수는 도끼를 들며 말했다.

“한도초과 님, 저 분명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렸습니다.”

-[한도초과] : ^^

“후회하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꾸욱.

그렇게 도끼를 쥐고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시간이 다 가고 쉐도우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크으으으으.

“아, 뭔가.”

쉐도우의 몸 전체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생각했던 거랑 조금 다른…….”

딸깍.

손전등을 비춰 보았지만 쉐도우는 이제 흠칫거리지도 않았다.

“엿됐네.”

크아아아아!

콰악!

쉐도우가 휘두른 낫이 그대로 고천수를 노렸다.

“큭!”

고천수가 몸을 날리자 쉐도우의 낫이 지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도초과 님!”

고천수는 급하게 외쳤다.

“설마 다른 형님들이랑 똑같이 저 놀리려고 이러신 건 아니겠죠?”

-뭐?

-듣는 다른 형님들 서운.

-ㅋㅋㅋㅋㅋ

하지만 한도초과는 답이 없었다.

쉐도우는 몇 번이나 고천수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캉! 카앙!

낫과 도끼가 몇 번이나 부딪혔다.

“천수 님!”

이번에도 뭔가 하려는지, 제나가 쉐도우 쪽으로 달려들었다.

휘익!

그때였다.

쉐도우가 제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낫을 휘둘렀다.

“뭐?”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고천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은 안 노리는 거 아니었나?’

게다가 아직 제나가 쉐도우에게 달라붙은 상태도 아니었다.

명백한 선공격.

제나도 당황했는지 낫을 피하고는 그대로 멈춰 섰다.

“그래, 거기가 딱 적당하다.”

순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그 목소리는 쉐도우의 것이었다.

고천수는 놀라며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

쉐도우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내가 돌아왔다.”

***

잠깐 동안은 이해하지 못했다.

고천수는 쉐도우를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돌아왔다니까.”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쉐도우가 왠지 친근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고천수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실감했다.

“아니, 설마!”

-ㅋㅋㅋㅋㅋ 아. 결국엔 이렇게 되는고만!

-팬 미팅의 진가를 알게 되는 순간.

한도초과였다.

쉐도우의 모습을 한 한도초과가 비릿한 목소리로 헛웃음을 흘렸다.

“원래는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한도초과는 회생해서 광폭화된 쉐도우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잠시 이 몸을 빌려서 네가 이 가짜 탑을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붙잡고 있는 수밖에.”

고천수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아닌 다른 대상에게 빙의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못했던 것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한도초과는 사람이 아닌 다른 대상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고는 말한 적이 없었다.

“싫으면 지금 나가 줄 수도 있고.”

한도초과의 말에 고천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지금 모습이 잘 어울리십니다.”

“뭐?”

“아뇨. 감사하다고 한 겁니다. 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멍하니 한도초과를 바라보고 있는 제나의 모습이 있었다.

‘잠깐…….’

제나의 눈이 붉은 걸 알아챈 고천수가 뭐라고 하려고 하자, 한도초과가 먼저 움직였다.

“제나.”

묵직하게 울리는 한도초과의 말에 제나가 몸을 흠칫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지?”

“예?”

“어차피 넌 내 시야는 엿보지 못한다. 거슬리게 하지 말고 눈에 켠 불은 끄도록.”

그러자 제나가 다시 눈을 푸르게 되돌렸다.

한도초과는 그런 그녀에게 낫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미리 경고해 두지. 네 사리사욕을 위해서 천수에게 달라붙는 건 좋지만, 선은 지키도록 해라.”

알아들은 것인지 제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뭐임. 지금 경쟁심 발휘하는 거임?

-천수 좀 여자랑 친해지게 놔두셈.

-제나는 잘만 성장시키면 진짜 좋은 비서가 된다고. 훼방 놓지 마셈.

시청자들이 쉐도우 퇴치 보상으로 2번을 추천했던 건 이런 일 때문인 듯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한도초과는 다른 시청자들에게 뻔뻔하게 답한 뒤에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천수야.”

“예.”

“이거 별로다. 역시 몬스터에 빙의하니까 말투부터 바뀌어.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할 일을 하겠다는 듯, 한도초과가 말했다.

“남은 시간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철컥.

한도초과가 낫을 치켜드는 모습을 보고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진짜 대단하네, 이거.’

한도초과를 팬으로 만든 게, 결과적으로 어떠한 이득을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도초과 코인은 불패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지만 아직이지.’

이용 가치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문을 열어 주겠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고천수는 이 한도초과의 모습을 가지고, 한 가지를 더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한도초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한도초과 님. 그럼 신도들이 몰려 있는 출구로 가서 모두한테 인사부터 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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