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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36화 (136/224)

136. 광신도 (8)

스스스스.

주변에 안개가 잔뜩 깔렸다. 밝은 빛을 유지하던 초원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제나는 어딘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고천수를 불러 보았다.

“천수 님?”

고천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검지를 입술에 올리기는 했다.

침묵.

사흘 가까이 지나는 동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건만, 고천수는 지나치게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젠장.”

그러더니 저 혼자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휴와 흑구라고 불리는 사람과 개가 그와 같이 사라지자, 자리에 남은 것은 제나 혼자뿐이었다.

‘뭘 보고 있는 걸까.’

고천수가 훔쳐보지 말라고는 했지만, 제나는 궁금증을 이기기 못했다.

-아. ㅋㅋㅋㅋㅋ 쉐도우 나타날 때 됐구먼.

-천수 트라우마 생성기 아님?

-쉐도우도 칼 갈고 왔을 듯.

‘쉐도우?’

고천수는 또다시 어떤 존재들의 말이 올라오는 채팅창을 보고 있었다.

‘그게 뭘까.’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채팅창의 존재들이나 고천수는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잘 아는 듯했다.

“…….”

디엔드의 관리자이긴 했지만 제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였다.

일찍이 디엔드를 광신하고 있던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능력을 알아차리자마자 디엔드에 맡겨 버렸다.

감시 역에 쓸모가 있을 거라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히 쓸모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일이 그녀를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다.

‘저 사람은……. 날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능력을 타고 났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디엔드의 교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감시자 역으로 이용만 하더니, 자신의 시야를 훔쳐보는 것이 두렵다며 그녀를 홀로 이곳으로 보내 버렸다.

잔뜩 이용만 하고 귀양을 보내듯 내친 것이 짜증났지만, 디엔드는 그녀가 능력 하나만으로 감히 반기를 들 수 없는 단체였다.

결국 이런 세계에서 살기 위해 그나마 주어진 역할만 해 오던 그녀의 눈앞에 방금 탑이 나타났다.

구원의 길이 있다는 교주의 말이 맞았나 싶어 탑으로 뛰어 올라갔지만 그녀는 곧 알게 되었다.

교주와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이곳에 있다고.

‘따라가야 돼.’

고천수는 분명 신격에 가까운 존재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설령 그게 신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저 정도의 능력이라면 반드시 교주와 부딪히게 될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 쪽에 서서 아예 개국공신이 되어버리는 거야.’

교주는 이미 자신을 버렸다.

심지어 이 탑도 진짜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기망당한 것이었다.

‘확실하게 갈아타버리겠어.’

으득.

제나는 이를 악물었다.

-야, 따라오는 느낌 나는데?

-저쪽에 안개 흩어지고 있음.

-조심하셈.

채팅들은 고천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제나는 고천수의 시야로 그가 보고 있는 풍경을 확인했다.

『고천수! 뭔가 온다!』

휴가 외치자마자 고천수는 옆으로 몸을 내던졌다.

‘해골?’

제나의 눈에 보인 것은 웬 거적때기를 쓰고 있는 해골이었다.

우우우우.

해골은 고천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거대한 낫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고천수가 몸을 굴러서 피하자 낫이 아슬아슬하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

‘뭐지?’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스켈레톤인가?’

디엔드는 7.5사단과 함께 각종 괴물을 몬스터 도감으로 정리해 두고 있었다.

이미 한 번 정리가 되었던 몬스터라면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아, 미친!』

고천수는 해골을 피해서 내달렸다.

웃기게도 해골은 고천수가 쫓고 있었다.

-과연 암살자 몬스터다워.

-여기 초원이라 피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제나야, 뭐 해.

“헉.”

채팅창을 엿보던 제나는 순간 놀라 뒷걸음질 쳤다.

-능력은 뒀다 뭐 하려고.

마치 그녀에게 하는 말인 듯했다.

-ㅋㅋㅋㅋ 이놈, 제나가 채팅창 보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거 봐라.

-예측샷임.

-그래, 제나야. 좀 나서 봐라.

그들은 그녀에 대해서 뭔가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역시…….’

저들과 붙어 있는 고천수는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단순 노동보다 더 값어치 있는 공적을 세워 곁에 있을 필요가 있었다.

우웅.

제나는 자신의 시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반쪽만 다른 이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으윽.”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시야를 옮기면 항상 두통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우우우우.

제나는 해골의 시야를 훔쳤다.

‘이건 뭐지?’

해골의 시야에는 붉은색 막대와 숫자 하나가 존재했다.

숫자는 현재 1이었다.

‘이것도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야.’

일반적인 몬스터에게는 이런 게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천수 님!”

제나는 저멀리 이동하는 안개를 따라 외쳤다.

“천수 님, 이쪽으로 오세요!”

하지만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입술을 한 번 깨문 뒤, 안개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천수 님! 고천수 님, 응답하세요!”

그러던 중 해골이 그녀가 옮겨 놨던 바위 중 하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저쪽!”

기억나는 모양의 바위였다.

제나는 바로 고천수가 가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천수 님! 뒤에!”

그리고 마침내 고천수를 찾아냈다.

“야이 씨! 제나! 시야 되돌려!”

딸깍!

동시에 고천수가 이렇게 외치며 손전등을 해골에게 비췄다.

우우우우우!

“아앗!”

해골이 얼굴에 손전등 빛을 맞고 움츠리는 동시에 제나도 눈 하나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쉐도우 시야를 훔치면 어떡하냐! 빨리 되돌려!”

고천수의 외침에 제나는 다시 시야를 자신의 것으로 되돌렸다.

콰직!

그사이 고천수는 도끼로 해골, 쉐도우를 공격했다.

콱! 콰직!

우우우우!

잠시 움찔거리던 쉐도우가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런 망할!”

고천수는 쉐도우에게서 물러서며 휴에게 외쳤다.

“휴! 와서 좀 도와!”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던 휴는 고천수에게 달려오며 말했다.

“왜. 저거 겁나 무섭게 생겼잖아.”

“몬스터한테는 약하다는 소리 할 거면 안 어울리니까 이거나 들어!”

고천수는 손전등을 휴에게 넘겨주었다.

“이걸로 저 녀석 좀 비추고 있어 봐!”

“비추고만?”

휴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고천수에게 손전등을 받아 쉐도우를 비췄다.

우우우우.

쉐도우는 손전등을 맞으며 괴로워했다.

“확실히! 이 손전등이 저번 거보다 더 잘 먹혀!”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들고 다시 쉐도우를 때렸다.

“넷! 다섯! 여섯!”

그리고 숫자가 아홉이 된 다음이었다.

“열!”

고천수가 자신만만하게 휘두른 도끼에 쉐도우의 몸이 잘려 나갔다.

“됐…….”

하지만 그의 기쁨도 잠시였다. 쉐도우는 5초도 안 돼서 다시 자신의 몸을 수복했다.

우우우.

그리고 손전등 빛에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연속해서는 한계가 있는 건가?”

고천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휴에게 외쳤다.

“휴! 손전등 챙겨서 날 따라와!”

둘은 그렇게 어디론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우웅.

그 틈을 타 제나는 다시 쉐도우의 시야를 확인했다.

“아.”

그녀는 급하게 몸을 일으켜 고천수를 따라가면서 외쳤다.

“천수 님!”

“왜!”

“저 몬스터한테 붉은색 막대와 숫자가 있습니다!”

“뭐?”

순간 고천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붉은색 막대하고 숫자?”

“네!”

“숫자에는 뭐라고 쓰여 있는데?”

“1입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1 이외에 숫자가 더 생겨나 있었다.

“줄어들고 있는 시간을 나타내는 것도 있습니다! 방금 30초였는데, 지금은 27초입니다!”

“설마……!”

고천수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외쳤다.

“손전등이 다시 먹힐 때까지 남은 시간인가? 막대는 HP!”

그는 제나에게 급하게 물었다.

“제나! 혹시 막대의 붉은색이 처음 봤을 때보다 줄지 않았어?”

“예?”

“확인해 봐!”

그 말에 제나는 붉은색 막대를 확인했다. 확실히 뭔가 차 있던 것이 빠진 것처럼 색깔이 줄어 있었다.

“지금 한 7분의 1쯤 색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역시나!”

고천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HP다! 제나! 남은 시간이 다 지나면 알려 줘!”

17, 16, 15…….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 가운데, 휴와 흑구도 각각 따라붙었다.

“좋아. HP가 있다면 얘기가 빠르지!”

고천수는 휴에게 신호를 줬다.

“휴! 대기하고 있어! 곧 저놈한테 손전등을 비춰야 돼! 얼굴 쪽으로 말고 몸에만 비춰!”

“근데 천수야, 너 빨리 해야 하는 거 아냐?”

쉐도우는 지금 막 낫을 다시 치켜들고 있었다.

“지금 너 그냥 썰릴 것 같은데?”

휴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제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5, 4, 3, 2, 1!”

“휴!”

고천수가 신호를 주자마자 휴는 손전등을 쉐도우에게 비췄다.

딸깍!

우우우우우!

낫을 휘두르려던 쉐도우는 그대로 움찔하며 멈춰 섰다.

“지금이다!”

고천수는 흑구에게 외쳤다.

“흑구야, 도와!”

왈!

고천수가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하자 흑구도 함께 달려들어 쉐도우를 공격했다.

제나는 쉐도우의 시야를 통해 붉은색 막대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대체 뭐지.’

흑구의 공격은 막대의 붉은색을 많이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고천수의 공격은 달랐다. 도끼질 한 번 한 번이 막대에 꽤 큰 타격을 주고 있었다.

“여덟, 아홉! 열!”

그리고 도끼질이 열 번째가 될 때마다 막대의 붉은색이 대폭 깎여 나갔다.

‘설마.’

제나는 고천수의 도끼에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조언을 주는 채팅창에 신비한 힘이 깃든 물건까지…….’

보면 볼수록 예사롭지 않은 남자였다. 분명히 남들과는 달랐다.

제나가 잠시 멍하게 그를 지켜보고 있자니 고천수는 그녀에게 급하게 외쳤다.

“제나! 뭐 해!”

“네?”

“붉은색 얼마나 남았어! 숫자는?”

제나가 잠시 버벅거리자 고천수가 급하게 외쳤다.

“제나! 정신 차려! 네가 필요하다고!”

바로 그 말이었다.

네가 필요하다는 그 말에 제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막대는 3분의 2 정도 남았습니다!”

우우우우.

쉐도우는 다시 손전등의 빛에 면역 상태가 되었다.

“읏?”

휴가 손전등을 거두며 쉐도우의 얼굴을 비춘 탓에 제나는 잠시 신음을 흘렸다.

“제나야! 따라와!”

하지만 고천수가 내뱉은 외침에 제나는 눈을 비비며 빠르게 몸을 추슬렀다.

‘됐어……!’

짧은 순간이지만 이 남자의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모자랐다.

꽉.

그가 자신을 끝까지 데려가고 싶게끔 만들어야 했다.

그녀는 겨우 여기서만 신임을 얻고 끝날 생각이 없었다.

꽈아악.

“너……?”

고천수는 그녀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뭐 하는 거야?”

그녀는 쉐도우를 붙잡고 올라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제가 시야를 가리겠습니다! 잠시 안전한 곳에 가 계세요!”

“야, 너!”

쉐도우는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쉐도우가 고천수만 노린다고 되어 있다고 해도, 이런 도발을 눈감아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위험해! 내려와!”

고천수의 외침에도 그녀는 쉐도우를 놓지 않았다.

‘당신도 이 정도는 원하잖아.’

이런 미친 세상에서 상대방의 완전한 신임을 얻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모험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원하는 대로 할게. 그 자식을 끝장내고 날 진짜 탑으로 데려다줘.’

우우우우우!

쉐도우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29, 28.

그러는 동안 손전등 면역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아니, 이런 망할!”

쉐도우가 그녀를 잡으려고 팔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고천수가 외쳤다.

“뭔 오해를 하고 있는 거냐! 넌 앞으로 쓸데가 많으니까 몸 사리고 내려오라고! 네가 안 그래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제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넘어왔다.’

“야! 듣고 있냐? 아니, 시발! 어떻게 된 게 다 미친 작자들밖에 없냐!”

말은 거칠었지만 분명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게 보였다.

“야! 제발 좀! 이런 미친 광신도야!”

덥썩!

그때, 쉐도우가 그녀를 집어서 멀리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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