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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35화 (135/224)

135. 광신도 (7)

-1024개.

채팅창에 이런 말이 하나 올라왔다.

-쟤가 지금까지 밀어낸 바위 개수.

초원의 바위는 고천수의 예상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더욱 예상외였던 건, 바로 제나의 집념이었다.

“헉, 헉…….”

제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속해서 바위를 밀어내고 있었다.

보다 못한 고천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너무 힘들면 조금 쉬었다 해도 돼.”

“괜찮습니다.”

제나는 고천수의 호의를 사양했다.

“원하시는 걸 찾을 때까지 하겠습니다.”

“하아.”

고천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네, 이거.’

아직 색이 다른 상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 통탄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역시 제나의 태도였다.

‘양날의 검이 되면 안 되는데.’

제나는 지금 시야를 한 번 훔쳐본 것으로 혼자 엄청난 믿음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형님들, 후폭풍이 좀 무섭네요.”

-ㅋㅋㅋㅋㅋㅋ

-뭐, 네가 잘 이끌면 되지.

-원하는 역할만 맡아 준다면 말이야.

드르륵!

고천수가 시청자들과 뒷일에 대해 우려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나가 또 하나의 바위를 밀어냈다.

“……천수 님.”

그러고는 바위를 짚은 채로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찾았습니다.”

“뭐?”

제나의 옆으로 다가간 고천수는 곧바로 이마를 짚었다.

“있었어!”

너무 오래 걸려서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찾았다!”

고천수는 바로 상자를 들어올렸다.

푸른색.

여태까지와는 분명히 다른 색을 가진 상자였다.

-이야, 집념.

-드디어 찾았네.

-뭐, 있으면 좋긴 하지.

있으면 좋다는 아이템.

하지만 이렇게나 꽁꽁 숨겨져 있었다면 분명히 쓰임새가 엄청난 아이템일 게 분명했다.

“고생했어, 제나.”

고천수의 말에 제나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와, 진짜 찾았네.”

바위 몇 개 밀어 줬던 휴가 다가와 엄지를 치켜들었다.

“휴. 넌 좀 빠져 있어. 맞지 싫으면.”

“살벌하네.”

고천수의 손짓에 휴가 양팔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어디…….’

고천수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푸른색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 볼까?’

무게는 가벼웠다.

무기는 아니란 것을 직감하며 고천수는 상자를 열어젖혔다.

“……응?”

안에 든 것은 웬 수첩이었다.

“수첩?”

많은 공을 들여 찾아낸 것치고는 조금 볼품없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뭐야. 겨우 수첩 하나 들어있던 거야?”

휴도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옆에서 중얼거렸지만, 고천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직 내용물이 하나 더 남았잖아.’

수첩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었다.

‘어디…….’

수첩을 펼쳐본 고천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쿠웅.

갑자기 탑이 흔들렸다.

“뭐야.”

고천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사람들이 계단에서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타, 탑이 무너진다!”

“피해!”

“살려 줘!”

1층 초원이 순식간에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쿠웅.

그리고 탑의 흔들림도 더욱 강해졌다.

-뭐 해!

-무너진다잖아!

-피하셈!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장난은 아닌 듯했다.

고천수는 수첩을 품에 챙기고 일행들에게 외쳤다.

“서둘러! 빠져나가야 돼!”

수첩을 얻은 것이 일종의 트리거였던 것일까.

탑이 진짜 무너지기 시작한 거라면 목숨부터 건져야만 했다.

고천수는 일행들과 함께 초원을 빠져나가 입구로 가는 통로로 향했다.

“제, 제기랄!”

“비켜!”

“나가야 한다고!”

문제는 통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다는 점이었다.

“미, 밀지 마!”

“앞에 누가 넘어졌어!”

“끄아악!”

서로 뒤엉키면서 사람들은 마치 햄버거 게임을 하듯 겹치듯이 엎어졌다.

통로를 막고 지지부진하는 사람들을 보며 고천수는 크게 소리쳤다.

“비켜! 나부터 가야 한다고!”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00:02:37

시간이 다 지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좋지 못한 꼴이 나리라는 건 고천수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비키라니깐!”

-ㅋㅋㅋㅋㅋ 천수 급한 거 봐라.

-그러게 미리 준비했어야지.

-탑 무너질 거 몰랐음?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무너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기랄. 시간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남은 시간은 2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앞에 사람들이 계속 넘어지며 길을 막고 있어서 그 안에 통과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가 없었다.

“형님들! 시간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코앞이잖아요!”

뭔지 알아야 대비할 수 있었다.

-시간 지나도 죽진 않음.

-맞아.

-그냥 사흘 정도 갇힘.

‘갇힌다고?’

고천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망할!”

그러면서 그는 두 다리를 더 빨리 움직였다.

“비켜어어어!”

일행을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들고 온 가방에 사흘은 충분히 견디고도 남을 물자가 있었지만, 그는 여기에 남을 수 없었다.

00:01:23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갇히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갇힌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쿠웅.

탑이 한 번 더 크게 흔들렸다.

앞서가던 사람들과 고천수는 함께 넘어져 바닥을 짚었다.

“큭!”

쿠구구궁.

엄청난 충격음이 연달아서 발생했다.

‘설마 2층까지……?’

충격이 가까웠다.

정말로 위층은 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했다.

쾅! 쿠앙!

1층은 어떻게 된 건지 함께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전부 없애 주지는 못했다.

“이……!”

일어나서 달려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00:00:53

“으아아아!”

고천수는 겨우 균형을 되찾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위태했다.

앞에는 넘어진 사람들이 끝없이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끄으으으!”

마치 나가지 말라는 듯 탑은 더욱 크게 요동쳤다.

00:00:07

“아나, 이 제기랄!”

출구가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닿을 듯했다.

“안 돼!”

00:00:01

“안 돼에에에!”

00:00:00

콰아아아앙!

폭탄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출구가 닫혀 버렸다.

***

“닫혔어……!”

“꺼내 줘!”

“갇혔어어어!”

함께 닫힌 출구 안쪽에서 동병상련하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절망적인 어투로 외쳤다.

“후우.”

고천수는 그들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젠장.’

진짜 갇혔다.

먼저 달려 나간 그 누구도 이 탑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튜토리얼용 탑에 갇혀 버리다니……!’

연습용이었다.

이 탑은 진짜의 모조품이라는 건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얻을 것만 얻고 빠졌어야 했는데!’

이래서야 본말전도이지 않은가.

정식 탑에 들어온 것처럼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뭐, 그렇게 흥분할 거 있나.

-어차피 닫힌 건 열리기 마련임.

-좀만 참으면 될걸? 뭐, 미친놈들이 좀 날뛰긴 하겠지만.

고천수는 주위를 시선을 돌렸다.

적어도 수백 명이 한꺼번에 갇혔다.

며칠 동안만 굶으면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달이 날지 뻔한 일이었다.

“워우.”

뒤늦게 다가온 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닫혔네.”

“…….”

“대참사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러면서 휴는 고천수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나마 동료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 없는 것보다 낫긴 하겠지.”

고천수는 휴의 팔을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지만.”

“음? 그럼 뭐가 문제지?”

휴의 질문에 고천수는 답하지 않았다.

고천수는 제나와 흑구 앞에 가서 섰다.

“다들 잘 들어.”

이왕 이렇게 갇힌 이상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가야 했다.

“아마 사람들은 이 앞에 몰려 있을 거야.”

탑이 불완전하다는 건 이제 다들 알았다.

다들 빠져나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굳이 초원 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리는 초원으로 간다.”

“초원으로?”

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에 또 뭐가 남아 있는 것입니까?”

“음.”

바위가 남아 있으니 또 뭔가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초원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제나. 당장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따라 주면 좋겠는데.”

고천수가 말하자 제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왈!

일단 둘은 포섭했다.

고천수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휴를 바라보았다.

“휴. 넌 여기에 있을 거냐?”

“천수 넌 다른 데로 가게?”

휴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마 여기에 있어야 구조될 확률이 높을 텐데?”

“구조라.”

미안하지만 구조 이전에 생존이 문제였다. 고천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으면 사람들이 하루만 지나도 사람들이 날뛰기 시작할 거야.”

탑에 갇힐 걸 예상하고 뭔가를 들고 들어온 사람은 적었다.

“차라리 안쪽에 있는 게 안전해.”

“틀린 말은 아니네.”

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시끄러운 곳이 더 좋은데.”

“여기 남겠다는 건가?”

“좋지만 뭐, 네 뒤를 따라가긴 해야지.”

휴는 살짝 미소를 그렸다.

“솔직히 아무리 나라도 수백 명이 날뛰면 무리여서.”

“잘 생각했다.”

고천수는 가방을 고쳐 메며 말했다.

“가자, 안쪽으로.”

그렇게 일행은 다시 초원으로 향했다.

초원은 아까 전에 본 그 풍경대로였다.

‘안 무너졌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은 붕괴해 있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연기까지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초원 자체는 무사했다.

[띠링!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그 알림에 고천수는 정보창을 켜 보았다.

[상시 정보 :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보 1 : 현재 있는 탑은 사흘 후 다시 출구가 열립니다.]

[정보 2 : 획득한 수첩에는 탑에 대한 공략법이 적혀있습니다.]

[정보 3 : 양민철, 장서연, 김하령은 현재 홍대입구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참 빨리도 갱신되었다.

‘홍대?’

하지만 정보 3는 고천수가 현재 알지 못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홍대로 가고 있다고?’

대체 왜 그곳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흠.”

지금 고민해 봐야 나오는 답은 없었다.

어쨌거나 계속 정보창에 양민철 일행이 나온다는 것은, 그들이 중요한 지점에 있다는 사실일 터.

그 정도만 알아 두고 고천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열중해야 했다.

스륵.

수첩을 열어 보자 거기에는 탑의 1층에 대한 정보가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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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 바위들의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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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혀 있는 내용은 무척 직관적이었다.

‘바위들의 초원이라.’

몰려드는 몬스터를 피해 바위를 열고 안에 있는 무기를 가지고 대항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처음 밀어젖힌 바위에서 가장 가까운 바위를 추가로 4개 더 열면 2층으로 올라가는 증명서가 나오는 식이었다.

‘정식 탑에서는 몬스터가 나온다는 거네.’

그렇다면 처음 밀어젖힐 바위의 위치가 중요했다.

몬스터들에게 밀려 다시는 손도 대지 못할 곳에 있는 바위를 처음 밀어젖힌다면 낭패였다.

더욱이 일행들까지 함께 올라가야 한다면…….

‘벌써부터 머리 아프네.’

흑구까지 데리고 가야 하니 고민해야 할 건 배로 늘었다.

-공략집. 역시 얻어서 좋기는 하지?

-없으면 나중에 개고생함, 진짜.

-필요하기는 했지.

미래를 위해서라도 공략집은 확실히 필요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이었다.

“형님들, 당장은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고요.”

갇혀 있어야 하는 날을 보아라.

무려 사흘이었다.

“휴, 제나, 흑구.”

고천수는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가 가장 사방이 트여 있는 곳이야.”

이제부터는 돌아가면서 보초를 맡아야 했다.

“누가 쉬거나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달려드는지 꼭 봐 줘야 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대항법은 이걸로 족했다.

불행히도 지금 고천수가 신경 써야 할 건 사람이 아니었다.

‘사흘. 진짜 이건 아니지.’

강제적으로 한 장소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 제발.’

자연스럽게 이마에 손이 올라갔다.

-ㅋㅋㅋㅋㅋ

-미안하구먼, 천수.

-우리는 ‘그걸’ 보는 게 재밌긴 해서 말이지. ㅋㅋㅋㅋ

어쩔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시련과 극복의 시나리오를 원했다.

“하아.”

결론적으로 고천수가 한숨을 내쉬고 며칠 뒤, 사흘이 되기 직전에 쉐도우는 여지없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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