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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33화 (133/224)

133. 광신도 (5)

“잠시만요.”

여자는 상당히 놀란 눈빛으로 고천수를 붙잡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뭡니까.”

여자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에 고천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놓으세요.”

고천수는 여자의 손을 치워내며 말했다.

“여기는 제가 고른 문이니까 다른 곳 찾아 보세요. 문 많잖아요.”

-ㅋㅋㅋㅋ

-천수야, 그러지 마.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시청자들이 반응할 때, 여자는 더욱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천수의 손을 다시 붙잡았다.

“제나라고 합니다. 조금 갑작스러우시겠지만…….”

“놓으라고 했습니다.”

고천수는 제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뜬금없이 통성명하면서 제 문 가지려고 하지 마세요. 다른 문으로 가시라고요.”

어차피 다른 문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열 수 있을 테니 이곳으로 데려가도 상관은 없었다.

“가서 열어 보세요. 저 따라오지 말고.”

하지만 여태 불친절하게 대하다가 문을 열 것 같으니까 따라붙는 행위 자체를 고천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탁!

고천수는 제나의 손을 떼어내고 어깨로 문을 밀었다.

더 시간을 끌었다간 다른 신도들도 달라붙을 수 있었다. 고천수는 미친 신도들과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쿵!

문이 열렸다.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얼른 들어와!”

안쪽에서 다시 문을 닫을 셈이었다.

“오우, 간다!”

휴가 흑구를 데리고 함께 귀환하여 문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제나도 그 뒤를 이었다.

“뭐야.”

고천수는 제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다른 문으로 가라고 했을 텐데요?”

자존심도 없는 것일까.

탑이 나타나고 나서 거보라고 해 줬을 때조차 그녀는 고천수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다니 고천수는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팍!

더 이해가 안 됐던 건 그다음 행동이었다.

문을 보고 뛰어들었던 다른 신도를 그녀가 발로 차 버린 것이다.

“컥!”

발에 차인 신도는 문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고천수 님! 얼른 닫으세요!”

심지어 호칭도 바뀌었다.

‘뭐야, 대체.’

-ㅋㅋㅋㅋㅋㅋ 이럴 것 같았음.

-아, 이제 우리 말도 조심해야 하는 거임?

-오랜만에 보네, 천수 이 표정. ㅋㅋㅋ

시청자들은 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천수님, 어서!”

제나가 눈썹을 치켜뜨는 것을 보고 고천수는 일단 문부터 밀었다.

드드득! 쿵!

그렇게 문을 닫고 안에 있는 걸쇠까지 걸어 잠근 뒤에야 고천수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그녀는 고천수를 빤히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살가운 표정으로.

‘뭐야. 이중인격자인가?’

휴라는 미친놈도 있는데, 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하나 더 늘은 기분이었다.

“형님들, 이 사람 왜 이래요?”

-그러게. 왜 그럴까?

-제나는 원래 이래.

-눈을 잘 살펴봐.

고천수는 시청자들의 답변에 제나의 눈을 쳐다보았다.

‘어?’

붉었다.

분명히 푸른색의 눈동자였는데도 불구하고.

탁!

고천수는 제나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앗!”

제나는 고천수에게 밀려 그 상태로 벽에 몸을 박았다.

“뭐야, 너.”

고천수는 말투를 바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무슨 능력 쓰고 있는 거야.”

‘눈 색깔이 바뀌면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많은 창작물에서 차용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역시, 아셨군요.”

제나는 눈이 가려진 채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경을 저질러 죄송합니다, 천수 님. 하지만 이제야 알아 버렸습니다.”

뭘 이제야 알아 버렸다는 말인가.

“탑이 나타난 건 절묘한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천수 님 본인도 지진에 휩쓸리시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그러긴 했다.

제나가 봤을 때는 고천수의 말을 온전히 믿기 어려웠으리라.

“일단은 탑이 나타났기 때문에 저도 여기로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열쇠를 찾으면서 이리저리 시야를 바꿔 보다가 알아 버렸습니다.”

“뭘?”

“천수님이 보고 있는 것.”

그 말에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뭔 소리야.”

“그래서 제 눈을 가린 것이 아닙니까.”

역시나 이상한 녀석이었다.

고천수는 제나를 놔주고 위에 있는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제나라고 했지? 원래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녀석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지금 바빠. 대체 뭔 능력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그만둬. 휴한테 공격하라고 하기 전에.”

“나?”

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품에서 칼을 꺼냈다.

“뭐, 못 할 거는 없지만.”

“그만두겠습니다.”

제나는 다시 푸른 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같이 가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

의도치 않은 인원이 달라붙는 건 운명과도 같은 것일까.

고천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했다.

“그래, 맘대로 해. 같이 들어왔는데 뭐 어쩔 수도 없고.”

떼어내려면 그게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흑구야, 네가 좀 감시하고.”

고천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걸로 진짜 탑을 올라갈 수 있다고?’

마음이 급하긴 했지만 한 번쯤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 탑은 최소 수십 층이었다.

거기에 크기도 일반적인 빌딩 수준이 아니었다.

1층은 다 돌아보는 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물론 방금 지나 왔던 2층처럼 앞으로는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은 무대가 이어져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3층에서 또다시 1층 크기의 공간이 나와 버린다면 남은 시간은 그대로 아웃이었다.

-너무 급할 것 없다니깐.

-시간에 너무 연연하지 마.

-밖에서 봤던 탑을 기억해.

고천수는 3층으로 올라가며 밖에서 보았던 탑을 다시 기억해냈다.

‘완전하지 않았지.’

즉, 이 탑은 전부 올라가도 끝이 없는 형태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탑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3층에 나타났다.

3층은 폐건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마치 버려진 공장 부지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고천수는 잠시 숨을 삼켰다.

‘여긴 또 뭐야.’

조금 걸어가자 까마귀 떼가 놀라며 날아올랐다.

고천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 망할. 이거 설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었다.

고천수는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이야, 여기 너무 피 냄새가 진동하는데?”

휴가 고천수 옆에 따라붙으며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불길한 소리 하지 마.”

고천수는 휴에게 일갈하면서도 사실은 알아차리고 말았다.

‘살인마 게임에 나오는 공간이랑 비슷하잖아.’

똑같지는 않지만 주변 지형이 생존자가 살인마를 피해 다니기 좋게 꾸며져 있었다.

즉, 숨바꼭질용 맵과 같은 것이었다.

“빨리 빠져나가자. 소름 끼치니까.”

고천수는 걸음을 빨리 옮겼다. 언제 어느 때에 살인마가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왜 안 나올까.’

살인마는 물론이고 위로 올라오면서 몬스터 한 마리 발견하지 못했다.

1층부터 여기까지 지형지물이 나름 공들여 꾸며져 있는 느낌은 강했지만, 정작 배치되어 있어야 할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계속 가고 있고…….’

그 와중에 고천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 바로 저 폐건물 벽면에 박혀 있는 시계밖에 없었다.

-잘 모르겠으면 제나한테 물어보든가.

그 말에 고천수는 뒤로 힐끔 시선을 돌렸다.

‘물어보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꾼 여자에게 디엔드가 이곳에 대해서 조사해 놓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라는 것인가.

“…….”

계속 쳐다보고 있자니 제나가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천수 님, 다음은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아니……!”

고천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제나에게 다시 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적응 안 돼서 미쳐 버리겠네.”

“예? 다 아시는 거 아닌가요?”

제나는 다시 붉은 눈동자를 띠며 말했다.

“제가 뭘 보고 있는지.”

“뭘 보고 있는데?”

그렇게 묻던 고천수에게 휴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고천수. 너 눈이 갑자기 빨개졌는데?”

“……!”

순간 고천수는 깜짝 놀라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

탑까지 나타나는 세계관이니까,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둘쯤은 나타날 수도 있겠다고 추측하던 차에 고천수는 예상외의 일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말했잖아.

-열쇠를 찾다가 여러 시야를 엿봤다고.

-답은 뻔하지.

쿵.

고천수는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았다.

“제게 화나신 거라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저는 고천수 님이 그런 분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망했다.

“그냥 자기 멋에 사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신의 계시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일 줄은…… 웁!”

고천수는 이번에는 제나의 입을 손으로 막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천수. 왜 나만 못 듣게 하는 거야?”

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천수는 제나에게도 손을 뗄 수 없었다.

‘시바, 대형 사고!’

시청자들이 언질을 줄 때까지만 해도 다른 데에서 엮이게 되는 인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디엔드의 관리자라는 직함을 달고 있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다.

평범한 다른 인간들과는 확실하게 다를 것임을.

‘근데 이건……!’

예상외여도 너무 예상외였다.

시청자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알아차린 고천수는 어쩌지도 못하고 난감한 표정만 지었다.

-ㅋㅋㅋㅋ 네가 제나랑 만난 이상 이제 어쩔 수 없어.

-싫으면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지~.

-제나한테 우리가 다 보여져 버렷!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의 지위를 들킬 수도 있단 말인가.

“야, 너!”

고천수는 제나에게 당부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갈 때까지 얌전히 따라오고 있어. 나머지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한다. 알겠어?”

“알겠습니다.”

말을 잘 따르는 모습을 보고 고천수는 머리를 쥐어 잡았다.

“고천수. 대체 무슨 일?”

휴가 옆에서 계속 물었다.

흑구도 무슨 일인지 알고 싶은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냐.”

고천수는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시청자한테 묻기도 찜찜해져 버렸잖아.’

채팅창을 보는 게 불편해져 버렸다. 고천수는 일단 시청자들에게 묻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

‘일단 여기 일부터 해결하고 확인하자.’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빠르게 탑을 올라가야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지만 고천수를 방해하는 다른 존재들은 없었다.

3층을 빠르게 가로질러 가면서 고천수는 제나를 힐끗거렸다.

‘진짜인가.’

확실하게 확인을 하긴 해야겠지만 제나가 가진 능력이 진짜라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든 해 둬야겠어.’

제나는 현재 시한폭탄이었다.

시간이 줄어드는 시계가 두 개나 생겨 버린 기분이었다.

4층.

어느새 3층을 가로질러 계단을 발견한 고천수는 바로 그곳에 올라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긴…….”

작은 도심지였다.

다양한 빌딩들과 도로가 가득한 가운데, 어두운 공기를 밝히는 네온사인이 군데군데서 깜박거리고 있었다.

“후.”

엄청나게 불안한 풍경이었다.

“이건 설마.”

좀비가 나오는 배경인가.

영화나 게임에서 자주 봐 왔던 풍경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없어.”

하지만 역시나 이곳에도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줄어드는 시계만 곳곳에 존재할 뿐.

심지어 보급함을 안내해 주는 온리베어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대체.’

정신이 없었다.

탑은 외부에서 봤던 것에 비해 올라갈수록 공간이 너무 많이 작아지고 있었다.

지형지물을 봤을 때 분명히 존재해야 할 적도 존재하지 않았다.

갑자기 달라붙게 된 제나를 제외하면, 고천수에게 발견되는 위협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치 체험판 같은…….’

그러던 고천수는 순간 입을 벌렸다.

‘아.’

이제야 깨달았다.

2층에서 했던 역발상을 탑 전체에 적용한 결과, 알아낸 것이었다.

“제기랄!”

고천수는 이마를 잡으며 몸을 돌렸다.

‘잘못 와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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