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광신도 (4)
쿠아앙!
집어 삼켰다.
아스팔트와 함께.
“누나아!”
양민철의 외침이 뒤늦게 허공을 때렸다.
끄욱.
그때였다.
갑자기 빅 바디가 몸을 움찔하며 입을 벌렸다.
“어?”
놀라는 양민철의 눈에 보인 것은, 빅 바디의 입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장서연이었다.
끄우우우우.
빅 바디는 심한 거부감이라도 느낀 것처럼 고개를 뒤로 빼고 주춤거렸다.
쿠우웅.
그러다가 다른 쪽으로 다시 넘어지는 빅 바디를 보며 양민철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누, 누나!”
서둘러 달려간 양민철이 장서연의 팔을 붙잡았다.
“빨리 일어…….”
순간 양민철은 장서연의 얼굴을 쳐다봤다가 숨을 삼켰다.
그녀는 넋이 나가 있었다. 잡아먹힐 뻔했다고 생각해서일까.
“누나! 서둘러요!”
양민철은 그런 장서연을 끌어 일으켰다.
어느새 다른 일행들까지 곁으로 와 그녀를 함께 부축했다.
“다시 일어난다!”
“얼른 가요.”
기성현과 김하령이 길을 재촉했다.
더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일행은 공덕역까지 빠르게 뛰어갔다.
우우우우우.
그새 정신을 차린 빅 바디가 뒤를 쫓아왔다.
쿠아앙!
일행이 역사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에 입성하자마자 빅 바디가 그 입구에 몸을 박았다.
“빨리!”
양민철은 사색이 되어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쾅! 쿠앙!
빅 바디가 모래집이라도 헤집는 것처럼 계단으로 들어오려고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몸이 맞지 않아 빅 바디가 바로 따라붙지는 못했지만, 흩날리는 잔해 때문에 일행들은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하아하아.”
일행들은 오로지 빅 바디에게서 달아나는 데만 목표를 뒀다.
아니,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바로 공항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이었다.
‘여기에 진짜 지하철이 들어오기는 할까?’
전기가 끊겼으면 전동차는 이동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지하 통로에는 간간이 불이 들어와 있었다. 비상 전력을 사용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불이 들어온다면 희망은 있었다.
탁탁탁탁!
앞에 뛰어가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군인들의 안내에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저희도 서두르죠.”
그렇게 말하면서 양민철은 다시 장서연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잘 따라오면서도 아직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나, 괜찮아요?”
양민철의 물음에 장서연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양민철은 일단 앞의 사람들을 따라잡는 데만 집중했다.
“하아……!”
그렇게 지하철이 들어오는 플랫폼에 들어서고 나서야, 양민철은 한숨을 내쉬며 일행들과 멈춰 섰다.
“도, 도착했다.”
미뤘던 숨이 뒤늦게 터져 나왔다.
다른 일행들도 미친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저 자식들…….’
양민철은 다른 사람들을 미끼로 삼았던 작자들을 발견하고 쏘아보았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군인들이 왜 제지를 안 했냐고 하기에는, 지휘관부터가 같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서로의 합의 하에 사람들을 밀어 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빅 바디가 나타나고 나서 군인들은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괴물들을 불러들일 수 있어서라고 하기에는, 당장의 위협이 거셌건만 총알을 아꼈던 것이다.
‘설마 다 탈 수 없는 건 아니겠지.’
지하철 객차의 수가 적다면 탑승 인원을 줄이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나마 다행인 건 빅 바디 덕분에 여기까지 온 사람들의 수가 많이 적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다행이라니!’
양민철은 고개를 저으며 옆을 돌아봤다.
일행들을 위해 희생까지 각오했던 장서연은 여전히 영혼이 없는 표정이었다.
“누나, 괜찮아요?”
양민철이 뒤늦게 물었다.
“누나? 왜 그래요. 대체 무슨 일이…….”
“들렸어.”
장서연은 끔찍한 기억을 상기하듯 읊조렸다.
“들렸다고.”
“뭐가…….”
“비명 소리.”
그건 누구나 들었던 것이지만, 장서연이 말하는 것은 종류가 달랐다.
“그 괴물 안쪽에서.”
철커덩철커덩철커덩철커덩.
먼 레일에서 뭔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온갖 소음이 다 들렸지만, 양민철 일행은 잠자코 서 있었다.
모든 게 미쳐 가는 듯했다.
‘형.’
양민철은 이곳에 없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심신이 지치는 만큼이나 의지할 사람이 더 필요한 느낌이었다.
‘형도 이런 걸 보고 있나요?’
안타깝게도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
‘뭐야, 이 초원은.’
한편, 갑자기 나타난 초원을 계속 걷던 고천수는 연신 탄식을 내뱉었다.
‘뭐야.’
공간은 미친 듯이 넓은데 위를 쳐다보면 하늘까지 존재했다. 그것도 그냥 천장을 꾸며 놓은 것이 아니라 진짜처럼 생동감 있는 하늘이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고천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
멀리서 휴가 소리쳤다.
“세상에 이런 건물도 있네!”
휴는 건물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으로 삼으면 아주 쓸 만하겠어!”
“집?”
고천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거주지로 쓸 거라면 이런 수상한 장소보다 호텔이 훨씬 나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었다.
-이야, 아무리 봐도 하늘 기깔 나네.
-그러게. 진짜 천장 맞음?
-주위에 초원이랑 시계 달린 바위, 천장. 이 세 개밖에 안 보임. 아, 지금 나타난 저 계단이랑.
많은 시청자가 이 장소에 대한 별다른 의문 없이 그냥 풍경에 대한 감상만을 내뱉고 있었다.
‘흐음.’
고천수는 채팅창을 보며 침음했다.
‘왜 그 여자를 봤을 때랑은 반응이 다른 거지?’
디엔드 관리자라는 그녀를 보았을 때는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며 호들갑을 떨었지 않은가.
‘이상해.’
아무리 그녀가 시청자들의 최애캐라고 하더라도, 이 탑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7.5사단이 만들어 놓았던 장막을 걷고 나온 메인 스테이지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고천수가 보기엔 좀 심심한 수준이었다.
“으윽!”
“으아악!”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입구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지평선의 끝에는, 초원에서 빠져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시청자들이 말한 계단인가?’
비명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들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다가가 본 고천수는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헛웃음을 뱉었다.
“뭐야.”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싶었더니 그냥 저들끼리 밀치면서 2층으로 올라가다가 굴러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저리 비켜! 당신 때문에 굴러떨어졌잖아!”
“그게 왜 내 탓이야! 계단이 너무 단차가 심해서 그렇지!”
“시끄러워!”
사람들은 뒤엉켜서 저들끼리 소리를 치고 광분하고 있었다.
“형님들, 이게 광신도는 아니겠죠.”
그렇다면 제법 모양이 빠진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왈왈!
가만히 서 있는 고천수를 보며 흑구가 뭘 하겠냐는 듯 짖어 보였다.
“알았어. 일단 올라가 보자.”
어차피 몬스터나 함정이 있어도 앞에 간 다른 신도들이 대신 경험해 줬을 터였다.
시청자들의 말대로 선착순이라는 게 사실 의미가 없다면, 고천수는 그냥 그들을 뒤따라가면서 될 일이었다.
‘여기도 시계가…….’
계단 입구 안쪽에도 시계가 있었다.
‘이 시간 안에 주파하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탑을 끝까지 올라가기에는 터무니없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초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시간이 멈춰 있기도 했다.
고천수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계단을 밟았다가 흠칫했다.
‘시계가 다시 간다.’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가고 있었다. 즉, 이건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여기부터는 시간 적용이라 이건가?’
그렇다면 뭔지는 몰라도 이제 느긋하게 굴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빠르게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퍽!
퍼억!
그렇게 2층에 올라서서 본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의 집단 난투극이었다.
“저리 꺼져!”
“내 거야!”
“비키라고!”
계단에서랑 똑같은 상황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긴…….’
돌로 된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는 이곳의 길거리에는 알 수 없는 열쇠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열쇠를 하나씩 얻기 위해서 서로를 치고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야, 동지애는 하나도 없네.
-같은 신도들 맞나. ㅋㅋ
-나만 살 수 있으면 돼!
애초에 규율이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사이비들은 어쩔 수 없었다.
디엔드를 만든 놈은 이런 걸 신경 안 쓰고 뭘 했는지, 고천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교주라도 나타난다면 모를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서로의 열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쭉 돌아보다가 흑구에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흑구야, 저 놈.”
으르르르!
흑구는 곧장 어떤 사람에게 달려들어 팔을 물고 늘어졌다.
“으아악! 내 팔!”
땡그랑!
그 사람이 쥐고 있던 열쇠가 떨어졌다.
고천수는 걸어가 그 열쇠를 주워들었다.
“누가 누굴 죽여도 모를 상황이네.”
열쇠를 살펴보고 있자니, 휴가 고천수의 곁으로 다가와 중얼거렸다.
고천수는 식겁하며 휴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소리 좀 하지 말아 줄래?”
-살인하는 놈이 이런 얘기하니까 무섭긴 하네. ㄷㄷ
-휴는 근데 계속 데려가야 함?
-ㅇㅇ 고천수한테 살의 보이는 놈 있으면 쓸 만함.
마침 열쇠를 가지고 있는 고천수에게 신도 하나가 달려들었다.
“내, 내 거야, 내 놔! ……컥!”
신도는 휴가 내지른 발에 얻어맞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구만. 손 좀 봐 줄까?”
퍽! 퍼억! 퍽!
파운딩 펀치로 신도를 골로 보낸 휴가 한숨을 살짝 내쉬며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가자, 고천수. 우리들 집 찾아야지.”
집에 미친놈이었다.
-고천수랑 있으면 제일 좋은 집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보는 듯.
-왜?
-미친놈은 미친놈끼리 통하는 법이지. 딱 봐도 고천수는 끝까지 가게 생겼잖아.
고천수의 입장에서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휴의 전투 능력은 확실히 쓸 만했다.
‘어쩔 수 없지.’
인천 공항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던 휴가 고천수에게 붙어 있는 건, 더 좋은 집을 같이 찾아 줄 동료라고 보고 있어서일 터.
고천수가 휴를 능력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휴도 예사롭지 않은 고천수의 곁에 붙어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걸 얻게 될 거라고 직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휴! 가자!”
열쇠를 들었으니 이게 어디에 맞는 것인지 찾아야 했다.
고천수는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달려가 일단 열쇠를 꽂아 보았다.
덜컥.
안 맞았다. 열쇠를 들고 다른 집으로 가면서 고천수는 휴와 흑구에게 다시 지시했다.
“휴! 그리고 흑구! 열쇠 좀 얻어 와 봐! 최대한 많이!”
그러자 휴와 흑구는 신도들과의 대난투에 참가했다.
혼전이었다.
수백 명의 비명과 기합을 들으며 고천수는 들고 있는 열쇠를 들고 다음 집으로 가서 꽂아 보았다.
덜컥.
“제기랄!”
틀렸다.
이 방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 데도 못 들어가……!”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기 위해 고천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하지만 시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시발 말이 되나 이거.’
주어진 건 2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2층에서부터 이런 난전으로 시간을 뺏기면 도저히 위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덜컥! 덜컥!
휴와 흑구가 차례로 얻어 온 다른 열쇠들도 맞는 곳을 찾지 못했다.
2층에 있는 집은 어림잡아도 이곳 신도들의 수와 비슷한 수백 채. 열쇠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정답부터 찾아내야 했다.
‘힌트가 너무 많이 주어지면 오히려 힌트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런 류의 게임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희망의 네잎클로버를 찾아야 하는데, 문 밖이 온통 네잎클로버인 것이나 다름없이 힌트를 줬던 게임이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개발자가 왜 그딴 짓을 했는지 의도를 이해해야 했다.
땡그랑!
고천수는 열쇠들을 버리고 바로 옆에 있던 집의 문으로 손을 뻗었다.
“좋아. 해 보자.”
달칵!
그렇게 붙잡은 문고리에서는 여태까지와 다른 소리가 났다.
“역시!”
미쳐 버린 사람들이 한쪽만 보고 있을 때는 역발상을 해 보는 게 최고였다.
“큭!”
문이 무겁지만 이것 역시 열쇠가 필요한 척하려는 속임수일 터.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고천수가 문을 어깨로 밀어젖힐 때였다.
탁.
그 여자, 디엔드의 관리자가 고천수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