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광신도 (3)
고천수가 있는 곳에 탑이 나타난 그 시각, 영등포역.
기차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내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자, 여러분! 우리는 10분 뒤, 공덕역으로 출발합니다! 모두 준비해 주십시오!”
7.5사단의 병사 하나가 대기 중인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누나, 괜찮으신가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양민철이 장서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장서연은 살짝 창백한 표정으로 답했다.
“괜찮아, 지금은.”
“멀미도 너무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아요.”
김하령이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멀미, 아니거든.”
기관사가 멀미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 곧장 인상을 쓰는 장서연을 보며, 양민철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여기 오긴 왔네.’
일반적인 여정이 아니었기에 장서연이 멀미를 한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상행선에 오른 기차를 온갖 몬스터가 따라왔으니까.
철컥, 철컥.
하지만 지금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 7.5사단의 활약으로 몬스터에게 붙잡히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봐, 다들 멍하니 있지는 말라고.”
갑작스럽게 들린 소리에 양민철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대전터미널에서 만났던 남자, 기성현이 앉아 있었다.
“곧 있으면 여기서 움직인다고 하잖아. 또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돼.”
그는 원래 같이 오려고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양민철은 까칠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 덕분에…….’
대전을 잘 알고 있던 남자 덕분에 대전역에서 7.5사단을 찾았을 때 의심을 받지 않고 현지인으로 위장해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가 맞긴 한 걸까.’
아무의 보호도 받지 않고 대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했다.
일전에 고천수가 없었다면 죽을 뻔했던 적이 많았다.
그렇기에 7.5사단 사이에 숨어서 대전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택했건만, 하필 고천수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와 버렸다.
“그렇다고 그렇게 죽상을 짓지는 말고.”
기성현이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곧 인천 공항으로 간다고 했잖아. 비행기 타고 어디로 가려는 게 분명해. 안전한 곳으로 갈 거야.”
대전역의 7.5사단은 서울로 올라가 인천 공항으로 향한다고 했다.
공항이라고 하면 비행기가 있을 테고, 그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할 게 분명했다.
“저는 찾을 사람이 있는데요.”
양민철이 말하자 기성현이 헛웃음을 뱉었다.
“고천수, 그 양반?”
기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본인부터 살 생각을 해. 네가 날 데려온 것처럼.”
양민철은 그를 여기까지 데려올 때, 본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논리를 폈다.
정작 본인이 그 말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양민철은 고천수를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형, 진짜 제주도로 간 거예요?’
서울은 생각보다 안전했다.
기찻길에서 달라붙던 많은 몬스터들도, 서울에 들어서자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자, 여러분!”
7.5사단의 지휘관 하나가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나와 소리쳤다.
“몬스터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밖은 여전히 위험하기 그지없습니다! 모두 저희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7.5사단 부대원들은, 기차에 탔던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함께 데려가려고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양민철은 그런 7.5사단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댈 수밖에 없었다.
보호가 필요해 7.5사단을 이용하는 선택을 했지만, 그렇다고 7.5사단이 이타심을 발휘해 사람들을 도와줄 거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을 테니까.
‘응?’
병사 하나가 지휘관에게 다가와 뭐라고 속닥댔다.
그러자 지휘관은 병사와 함께 어딘가로 이동했다.
“다들 잠시만 계세요.”
양민철은 일행에게 말하고는 그들이 사라진 곳으로 몰래 따라갔다.
그렇게 골목으로 들어간 그들을 엿볼 수 있는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중대장님, 다른 병사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병사가 지휘관에게 말했다.
“저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려는 게 아닙니까? 사단장님은 제주도에 계실 텐데요.”
제주도.
그 말에 양민철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제주도라고?’
대전역에 있을 때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통에 다들 기차에 올랐다.
당시 하행선이 막히는 바람에 7.5사단 부대원들은 상행선을 택한 것으로 보였다.
‘근데도 제주도로 알고 있었다는 건가?’
상행선을 택해서 영등포역으로 오면서도 군인들 대부분은 제주도를 목적지로 알았다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제주도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
지휘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곳에 오려고 미리 기차까지 올려 보냈었잖아. 도착한 인원한테서 서울이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연락도 받았고.”
먼저 출발했던 KTX는 성공적으로 서울에 도착했었다고, 지휘관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를 목적으로 온 거야. 공항으로 가는 건 새로운 계획일 뿐, 제주도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점을 잘 전달해 두도록 해.”
그 말에 병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7.5사단의 부대원들은 서로 가고 싶은 목적지가 다른 듯했다.
‘그래서…….’
양민철이 이렇게 저 둘을 쉽게 엿볼 수 있는 것도, 그들이 다른 병사들을 피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공항에서 어디로…….”
병사의 물음에 지휘관은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그건 가서 선택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더 묻지 말도록.”
“……그럼 다른 거 하나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병사는 지휘관의 목을 가리켰다.
“중대장님이 차고 계신 그거, 몇몇 병사도 차고 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 이거?”
지휘관은 목에 차고 있던 탑 모양의 목걸이를 꺼내보였다.
“일종의 기념품 같은 건데, 자네도 관심 있나?”
“아니, 그건…….”
“원래라면 별로 알려 줄 생각은 없었지만, 자네는 호기심이 많으니까 같이 좀 얘기를 나눠 볼까?”
지휘관은 병사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어딘가로 끌고 갔다.
“일원이 되면 자네도 훨씬 안심할 수 있게 될 거야.”
“저…….”
둘이 그렇게 사라져 가는 모습을 내다보면서 양민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양민철은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돌아가서 얘기해 놔야겠어.”
그는 빠르게 몸을 돌려 일행에게 향했다.
***
“다들 이동!”
7.5사단의 군인들이 사람들을 인솔해 공덕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릴 거래?”
“걸어서 가니까 한 1시간 이상은 걸리겠지?”
“그동안 안전할까…….”
저마다 불안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양민철은 일행들에게 말했다.
“말씀드렸던 대로 뭔가 찝찝해요. 인천공항에서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게 맞는지도요.”
“또인가?”
기성현은 살짝 탄식을 뱉으며 말했다.
“찝찝할 수 있다는 건 이해하겠지만 별 수 없잖아. 일단은 이들을 따라서 인천 공항까지 가서 생각하는 게 나을 거야.”
“나도 동감이긴 해.”
장서연이 기성현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서울이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해서 진짜 괜찮다고만 볼 수는 없어.”
수도권은 우리나라 인구의 대부분이 사는 곳이었다.
그만큼 먹이가 풍부해 괴물들이 몰리기 좋고, 위험하게 변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수 있었다.
“적어도 확실하게 위험 장소를 뜰 수 있는 수단은 확보해야 돼. 그러니까 인천 공항까지는 얌전히 따라가자.”
“그래요. 저도 들으니까 서울도 곧 위험해질 수 있겠던데요?”
김하령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주워들은 내용을 내뱉었다.
“서울에서 쓰는 아리수에 괴물들이 싫어할 만한 뭔가가 들어갔던 모양이래요. 수도관에서 물이 마르면 또 괴물들이 득시글댈지 몰라요.”
“야.”
장서연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사람 고치는 공부한 애가 겨우 그런 말을 믿는 거냐?”
“그렇지만, 들었어요. 저는 허튼 소리는 잘 주워듣거든요.”
“참나.”
김하령의 말은 믿기 힘든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 것은 아니었다.
“저도 듣긴 들었어요.”
양민철이 다른 군인들이 했던 얘기도 전했다.
“아까 제가 돌아오면서 들었던 건데, 아리수가 쓰는 취수원에 뭔가 괴물들에게 먹히는 성분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너도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영등포역에 도착해 곳곳을 수색했던 7.5사단의 부대원들은 아리수, 라고 써진 물병을 수십 개 습득했다고 했다.
“저도 몇 개 챙겼어요.”
양민철은 가방에서 물병 몇 개를 꺼내 보였다.
“흐음.”
장서연이 그걸 보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야.”
“누나도 하나 받으세요.”
고천수는 물병을 장서연에게 건넸다.
“아니, 난 이런 건…….”
“누나 빼고 다 챙겼어요.”
기성현과 김하령이 물병을 하나씩 들어보였다.
“어, 뭐야, 정말?”
“네, 그러니까 하나 받으세요.”
장서연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혼자 낙오되기는 싫은지 물병을 받아들었다.
“가는 길에 목마르다고 마시면 안 돼요? 다른 마실 거 드릴게요.”
“야.”
그렇게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고 난 뒤, 1시간이 넘게 지났을 때였다.
“도착!”
지휘관이 손을 들며 외쳤다.
“여러분! 다 왔습니다!”
저 멀리 공덕역이라고 써진 곳이 보였다.
“와, 다 왔다!”
“이제 살았어!”
“공항으로 가자!”
지친 사람들이 기쁨에 차 소리쳤다.
하지만 양민철의 일행은 함께 좋아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잠깐의 안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던 것이다.
쿵.
그리고 그러한 대비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듯, 갑자기 주변이 울리기 시작했다.
쿵.
“뭐, 뭐야.”
“소리가…….”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뒤늦게야 주위를 살폈다.
쿠웅!
순간, 갑자기 빌딩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기괴하게 생긴 거인이었다.
“빅 바디……!”
군인 한 명이 그렇게 탄식한 걸 양민철이 들었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
빅 바디가 사람들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으아아아악!”
“괴물이다!”
“도망쳐!”
사람들이 한꺼번에 공덕역으로 달려갔다.
“저리 비켜!”
“내가 먼저 갈 거야!”
“비켜어어어어!”
위기 앞에서는 여기까지 함께 온 동지애 같은 것이 없었다.
서로 밀치고 쓰러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민철은 예상외의 것을 몇 개 발견했다.
‘뭐야, 저건.’
뛰어가는 몇몇 사람들의 목에서 목걸이가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탑 모양의 목걸이였다.
‘설마…….’
그들은 마치 이런 상황을 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주위 사람들을 밀어 넘어뜨려 미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런 미친놈들이!”
양민철은 경악했지만 손쓸 도리는 없었다.
빅 바디는 미끼도 아랑곳 않고 짓밟으며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야 야! 이거 쓰면 될까?”
물병을 흔들면서 묻는 장서연을 보며 양민철이 탄식했다.
“너무 적지 않을까요?!”
빅 바디를 상대하기에는 아리수가 부족했다.
그리고 양민철도 아직 아리수가 괴물에게 통하는지는 확인받지 못했던 터였다.
목숨을 걸고 사용해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우우우우.
“흐, 흐아아아악!”
뒤처진 사람들 몇이 결국에는 붙잡혀 빅 바디의 식도로 직행했다.
“제가, 맨 앞으로 갈게요.”
김하령이 앞서려는 것을 보며 장서연이 기가 찬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먼저 간다는 거야.”
어차피 달리기는 장서연이 김하령보다 빨랐다.
하지만 장서연은 무작정 앞서나가지는 않았다.
“야, 잡히겠어.”
장서연은 물병을 손에 틀어쥐면서 말했다.
“한번 시도해 볼 수밖에 없겠다.”
“예?”
원래는 아리수의 힘을 믿지도 않았던 그녀를 보며 양민철이 기겁했다.
“위험해요! 그러면…….”
“물병 다 내놔!”
장서연은 들고 있던 물병부터 열어서 아리수를 자신의 머리에 쏟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물기에 젖어 길게 흩날렸다.
“얼른!”
양민철이 망설이고 있는 사이, 김하령과 기성현이 물병을 건넸다.
장서연은 그 물로 서둘러 온몸을 적셨다.
“그, 그럼 제 것도……!”
탁!
장서연이 양민철의 물병을 받아들 때였다.
바닥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식탐을 버리지 못한 빅 바디의 입이, 장서연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