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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29화 (129/224)

그리고 불행히도 고천수에게는 그 일을 시작할 열쇠가 들려 있었다.129. 광신도 (1)

다음 날 아침.

혼자 먼저 일어난 고천수는 호텔 내부에 있는 뷔페로 향했다.

‘있네.’

조식을 먹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몇 명 존재했다.

고천수는 그릇에 적당히 음식을 퍼 담아 남녀 한 쌍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

수많은 자리를 내버려두고 자신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하는 것이 불편했는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자리 많지 않습니까?”

“예, 그렇네요.”

고천수는 포크를 들어 올리고 빵부터 찍어서 입에 밀어 넣었다.

우걱우걱.

맛있게 빵을 먹는 고천수를 보고 남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ㅋㅋㅋㅋㅋ 뭐 하는겨.

-누가 더 잘 먹는지 보여 주는 듯.

-그럼 우리 천수 못 이기지. 걸신이잖어.

하지만 고천수는 도란도란 앉아 있는 남녀를 곤혹스럽게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앉은 게 아니었다.

“그거요.”

고천수는 포크로 남녀의 목에 걸린 탑 모양 목걸이를 가리켰다.

“다들 디엔드 신도이신가요?”

고천수의 물음에 남녀는 서로를 마주보며 숨을 삼켰다. 그러더니 남자가 고천수에게 반문했다.

“예, 맞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저도 하나 생겨서요.”

고천수는 품 안에 숨겨져 있던 목걸이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아, 그러셨군요.”

남자는 애매하게 반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천수에게 말했다.

“같은 신도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고천수는 디엔드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슨 역할을 맡을지 기입하는 종이도 일단 몇 가지를 써 둔 채 가지고만 있을 뿐이었다.

“들어갈지 말지 좀 고민돼서요. 마침 목걸이를 차고 계시길래 물으려고 했던 겁니다.”

성역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다른 신도들이 포교에 나서지는 않았다.

고천수는 디엔드가 어떤 색채를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해 근처의 신도들을 찾은 것이었다.

가급적이면 정말 일반적인 신도들로.

“음, 저희야 같은 신도가 되면 좋긴 하죠.”

그런데 뭘까. 직접 포교를 하러 방에 들어왔던 사람들에 비해, 이쪽의 신도는 뉴비의 가입을 그렇게 반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묘하게 말하는 남자를 보며 고천수는 잠시 침음했다.

‘뉴비를 환영하는 건 사이비의 국룰일 텐데.’

역시 백경연이 한 말이 맞는 듯했다.

‘탑에 올라가는 건 선착순이라…….’

올라갈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다면 뉴비의 가입을 원하지 않는 것도 이해는 됐다.

‘그렇다고 뭐, 죽일 듯이 굴지는 않네.’

시청자들이 광신도 에피소드라고 해서 미친놈들이 많은 건 아닐까 우려를 좀 했다.

‘광신도라고 할 것까진 아닌데.’

고천수는 식기를 그냥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겁나 찝찝한데.’

일을 저지르기 전에 분위기부터 파악하고 가려고 했건만,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없었다.

“형님들, 대체 광신도가 어디에 있다는 거예요.”

-ㅋㅋㅋㅋㅋ

-네가 찾아 인마.

어제부터 물어봤지만 시청자들은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하, 너무 비협조적이시네요.”

뷔페 밖으로 나가자 로비에 있는 흑구의 모습이 보였다.

왈!

흑구는 고천수를 보자마자 달려오며 짖었다.

“뭐야, 너 혼자 나왔어?”

끄덕끄덕.

흑구는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흔들었다.

“자식, 이제 숨기는 것도 없네.”

무슨 말을 하든 알아듣는다는 건 고천수도 이제 잘 알고 있었다. 흑구도 그런 고천수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지, 뱅글뱅글 돌며 장난을 걸었다.

“송하나는 아직도 꿈나라인가?”

지금부터 갈 곳에 데려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굳이 지금 그럴 것까진 없을 듯했다.

‘어차피 큰 역할을 기대하는 건 아니니까.’

한도초과와의 연 때문에 혹시나 어딘가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은 것뿐, 굳이 지금 송하나에게 무리한 일을 건넬 필요는 없었다.

“가자, 흑구야.”

왈!

고천수는 의기양양한 흑구를 데리고 호텔 건물을 나섰다.

부우웅!

그렇게 빛줄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자니 차 한 대가 나타나 옆을 따라오더니 창문을 내렸다.

“아니, 고천수 씨. 아침부터 어딜 가는 겁니까?”

백경연이었다.

‘하. 뭐야, 이 아저씨.’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빛줄기가 보이는 곳에 좀 가려고 합니다.”

“성역이라고 부르기로 한 겁니까?”

백경연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고천수 씨는 그런 거에는 별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예, 뭐. 그런 걸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7.5사단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저는 갈 길이 바빠서 이만.”

고천수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자 백경연은 따라붙지 않았다.

‘뭐, 자신이라도 하는 건가?’

백경연은 빛줄기가 그냥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 있었다.

구경하러 가는 걸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는 건, 그냥 적당히 희망만 품고 오라는 뜻일 수 있었다.

‘웃기는 놈이네.’

결국에 자기 밑에 들어올 거라고 자신하고 있는 거라면 틀렸다.

7.5사단은 곧 제 역할 끝내게 될 것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빛줄기 아래의 공사 현장으로 향하자니, 안전모를 쓰고 있는 남자가 한 명 다가왔다.

“흠.”

고천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았다.

안전모라니, 진짜 챙길 건 다 챙겼구나 싶은 것이었다.

“지원 좀 하려고 왔습니다.”

고천수는 품에서 가입서를 꺼내 내밀었다.

남자는 아, 하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안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저쪽에 사무실이 있습니다. 거기로 가보시죠.”

정말이지 무미건조한 태도였다.

‘광신도는 대체 어디?’

관을 지고 나가던 남자가 제일 미쳐 보였을 정도였다.

물론 막상 탑이 생겨나고 나면 경쟁에 미쳐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벌써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똑똑.

“계십니까.”

남자가 안내해 준 대로 한 컨테이너 박스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왤케 허술해, 이거.’

심지어 디엔드의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좀 조악해 보이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고천수는 뒤편의 사람들이 열심히 공사를 진행하는 장면을 돌아본 뒤, 다시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가입하러 왔…….”

삐걱.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앳된 얼굴의 여자가 나타났다.

-우아아아아악!

-나왔다!

-내 최애캐!

-시발 천수가 진짜 여기까지 오다니!

-끼얏호우!

갑자기 채팅창이 요란스러워졌다.

고천수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이지적인 여자.

한눈에 봐도 외국인인 게 좀 예상 못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이 이렇게까지 반응할 만한 인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들어오세요.”

그녀는 인사도 없이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고천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형님들, 뭡니까. 개깜놀했잖아요.”

-ㅋㅋㅋㅋ

-미안.

-오랜만에 봐서.

아무리 봐도 그냥 오랜만에 보일 법한 반응은 아니었다.

“알고 있어야 하는 특이사항 있으면 좀 알려 주십쇼.”

-몰라도 됨.

-너한테 해가 되는 건 아님.

-일단 들어가 봐.

“변태 아닙니까. 만날 제가 불안해하는 거나 즐기고 말이죠.”

말 그대로 시청자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고천수는 한숨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뭐, 일단 가자.’

고천수는 흑구와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 있는 내용물은 별다른 게 없었다. 벽에 붙어 있는 탑 모양의 포스터 몇 장, 집무용 책상 세트, 그리고 접객용 소파 테이블 세트가 내부 시설의 거의 전부였다.

“앉으세요.”

여자는 고천수를 소파에 앉히고는 차를 한 잔 타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티백으로 우려낸 저렴한 녹차였다.

“요새는 이것도 귀하죠.”

고천수의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나른한 얼굴로 말했다.

“7.5사단이 제공하는 것들이 너무 분에 넘칠 뿐.”

“아, 예.”

티백 녹차를 내놓은 걸 정당화하려고 그러나 싶어 고천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넘겼다.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고 디엔드에 가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셨나요.”

다른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더 이상의 가입은 막고 싶었는데, 포교자들이 그새 당신에게 접촉했나 보군요.”

“막는다고요?”

“네. 너무 많으니까요.”

고천수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포교자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신도를 모으고 다니는 겁니까?”

“포교자들은 원래 교주님 말만 들어서요.”

자세한 설명은 해 주지 않고 그녀는 살짝 손을 내밀었다.

“가입서, 줘 보시겠어요?”

고천수가 종이를 내밀자 그녀는 거기에 적힌 이름과 내역을 천천히 살펴보며 말했다.

“고천수 씨, 건축공에 지원하셨네요.”

“예, 제가 뭐 만드는 걸 좋아해서요. 딱 봐도 겁나 재밌을 것 같아서.”

-ㅋㅋ 뻔뻔한 거 보게.

-그냥 열쇠 꽂아보려고 하는 거잖아.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고천수를 보며 그녀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거짓말.”

순간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예?”

“종교 단체라고 해서 그냥 찾아오면 다 받아 줄 줄 알았나요?”

그녀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지나칠 정도로 당당해요. 탈출구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

“저는 그냥 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 오르는 것만이 제 영혼을 지켜줄 거라 믿어요.”

그녀는 예상보다 더 예리한 부분이 있었다.

“원칙적으로 가입을 막지는 않지만, 저는 장난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은 혐오합니다.”

쫙.

그녀는 종이를 찢으며 고천수를 노려보았다.

“돌아가세요.”

하지만 고천수는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예, 종교에 무슨 믿음이나 호기심이 생겨서 온 건 아니긴 한데, 방금 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고천수가 무려 3분이나 들여 작성한 것이었다.

“제가 탑을 나타나게 해 주면 어쩌려고.”

벌떡!

순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왈!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흑구가 소파 사이의 테이블 위로 뛰어오르며 그녀에게 짖어보였다.

“고천수 씨, 가입서 하나 달랑 들고 와서 헛소리를 할 거면 그만한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고천수에게 일갈했다.

‘이것 봐라.’

고천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지금 누가 키를 쥐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네?’

웬만하면 원만하게 처리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고천수도 더 질질 끌 생각은 없었다.

“흑구야, 가자.”

고천수는 곧장 흑구와 함께 컨테이너 박스 바깥으로 나갔다.

“콧대 높은 여자가 이 다음 상황에서도 과연 저렇게 나오는지 보자고.”

시청자들이 왜 그렇게 호응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천수에게는 그냥 좀 까탈스러운 디엔드의 관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약간 마찰이 생기더라도 하려고 했던 일이나 하는 게 나았다.

“뭐죠? 새로 가입하신 분입니까?”

또다른 안전모를 쓴 남자가 다가와 물었지만 고천수는 무시했다.

“저기요? 처음에는 제나 님에게 확인을 받아야…….”

“아, 아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잠깐 기다리십쇼!”

고천수는 시끄러운 신도들을 뒤로하고 계속 걸었다.

“겁나 떽떽거리기만 하네.”

사람들은 고천수를 불러세우려고만 할 뿐, 아무도 달려들지는 못했다.

사실 그러지도 못할 게 지금 이곳에는 7.5사단의 군인들도 가득했다. 특별히 누가 점거하고 있는 땅이 아니었다.

심지어 고천수가 뒤를 돌아보려니, 제나라는 이름으로 추측되는 디엔드의 관리자는 멀찍이 서서 그냥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 얌전히 보고들 있어라.”

어차피 고민해 봤자 이곳에서 더 특별한 준비는 할 수 없었다. 이 게임의 특성상 너무 시간을 오래 끌면 쉐도우나 다른 몬스터가 나타날 거고, 탑은 어쨌거나 직접 형태를 보고 어떻게 할지를 판단해야 했다.

신도들이고 뭐건 간에, 잡다한 사항에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간단하게.’

이곳까지 오면서 항상 외쳐 왔던 단 하나의 모토.

마이 엑시트.

오로지 탈출로만 생각하면 나머지 복잡한 것들은 정리가 되게 되어 있었다.

‘찾았다.’

신도들이 몰려 있는 곳의 바닥에, 열쇠를 꽂을 문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흑구야.”

왈왈! 으르르르르!

흑구가 달려 나가 신도들을 밀어내고 이빨을 이죽거렸다.

“좋아.”

고천수는 품에서 열쇠를 꺼내서 구멍에 맞췄다.

그러나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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