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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24화 (124/224)

124. 성역 (1)

콰직!

내달린 승합 택시는 그대로 전면의 강도 무리를 덮쳤다.

“끄악!”

“으아아!”

“미친!”

원래라면 치일 일은 없었겠지만, 공격 당해 쓰러진 리더와 트럭을 노리고 달려간 고천수와 휴 때문에 강도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던 상태였다.

사방으로 시선이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지 못한 강도들은 갑작스러운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부웅!

부아앙!

그때, 승합 택시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두 트럭이 움직였다.

키가 꽂혀 있던 두 트럭을 고천수와 휴가 운전했던 것이다.

“흑구야!”

고천수에게 이름을 불린 개, 흑구는 리더의 목을 놓고는 트럭의 짐칸에 뛰어올라 탑승했다.

“뭐, 뭐야!”

“이 자식들!”

“잡아!”

리더를 잃은 강도들이 뭐라도 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남은 차에 잘 나눠 타 보라고.”

고천수는 그들을 조롱하듯 한 마디를 남기며 트럭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미끄러지듯 달려 나간 트럭은 곧 강도들과 멀어졌다.

붕!

부아앙!

승합 택시와 휴가 탄 나머지 트럭도 각각 고천수의 차량에 따라붙었다.

-공짜로 트럭 두 대 얻었넼ㅋㅋㅋ

-얕잡아볼 게 따로 있지 하필 천수를 얕잡아봐서. ㅋㅋ

-타이밍 지렸다.

차를 얻었으니 고천수는 차귀도에 이선웅과 소윤재를 따로 보낼 수단을 확보한 셈이었다.

고천수는 적당히 강도들을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차를 세웠다.

끼익!

끽!

승합 택시와 다른 트럭도 급하게 고천수가 주차해 둔 차량 옆에 브레이크를 걸고 멈춰 섰다.

“고천수 씨!”

승합 택시의 뒷문을 열고 나온 이선웅이 허겁지겁 고천수가 타고 있는 차를 향해 달려왔다.

“괜찮습니까?”

운전석 앞 창문까지 다가온 그는 고천수를 걱정하듯 물었다.

-넘 티나는 거 아님?

-돈 준 사람 아들만 아니었으면. ㅋㅋ

-어디 다쳤다고 하면 까무라칠 듯.

어디 다쳤다고 하기엔 애초에 강도들과 별 접촉도 없었다.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싸울 것도 없이 그냥 차만 뺏은 거뿐이니까요.”

다수의 적을 상대해야 할 때는 상대방의 예상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전력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방심을 유도하고 기만 전술로 허를 찔러야만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고천수에게는 상대방을 농락할 때 사용할 만한 패가 몇 개는 있었던 것이다.

“꼭 저런 놈들은 차에 키도 꽂아 놓더라. 엔진 음이 들려야 더 간지나서 그런 듯.”

운전석의 창문을 내린 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놈도 그 패였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네.’

고천수는 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한시름 덜었나.’

차를 얻었기 때문에 이선웅을 소윤재와 함께 차귀도로 보낼 수 있었다.

“이선웅 씨.”

고천수는 창문을 열며 말했다.

“저기 휴한테서 차를 받아서 차귀도로 가 주세요.”

“······고천수 씨는 정말 안 갑니까?”

이선웅이 아쉬움이 남는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본인을 데려가고 싶은 건가.’

아들을 직접 데려가야만 자신이 얻을 것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이선웅 씨만 가 주세요.”

시선을 돌리자니 승합 택시에서 내려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소윤재가 보였다.

“소윤재 씨!”

고천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이선웅 씨랑 가세요! 저희는 여기서 갈라지도록 하죠!”

그러자 소윤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차는 휴는 소윤재와 이선웅에게 트럭을 넘겨주었다.

“고천수 씨.”

서로 갈 길로 떠나기 전, 소윤재가 고천수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감사했습니다.”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저도 감사했습니다.”

피차 서로의 목숨을 구했다.

고천수도 그에게 전할 고마움은 있었다.

“그럼 연이 또 닿으면 뵙죠.”

멋있게 한 마디를 남기는 고천수에게 소윤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런데 연줄은 만들어 두는 거 아니었나요?”

“네?”

“서로 연락할 방법 말이죠.”

“아.”

생각해 보니 헤어지기 전에 서로에게 연락할 수단을 마련해 놓자는 얘기를 했었다.

-대사만 멋지게 치려고 하지 말라고. ㅋㅋ

-이 자식, 매너리즘에 빠진 듯.

-정신 차려!

고천수는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제가 갈 길이 급해서 잠깐 잊었나 보네요. 소윤재 씨, 혹시 생각해 둔 방법이 있습니까?”

공을 돌리자 소윤재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답했다.

“봉화는 어떻습니까?”

“봉화?”

고천수가 미처 떠올리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네, 오면서 이선웅 씨에게 물어보니까 차귀도 근처에 당산봉이라고 과거 봉화대가 있던 장소가 있다고 하더군요.”

과거.

예전에 있었다는 얘기에 고천수가 살짝 눈썹을 움찔하자 소윤재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최근에 그걸 누가 복원해 놨다고 합니다. 촬영인지 아니면 그냥 문화재 복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하더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이용해서 신호를 주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거리가 멀 텐데, 제가 있는 곳까지 시야가 닿겠습니까?”

“중문 관광단지라면 거리가 멀긴 합니다. 시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쪽과 당산봉의 중간쯤은 와야 확인이 용이하지 않을까 합니다.”

“흠.”

“어디까지나 제가 알려 드린 무전 채널을 이용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겁니다.”

강도를 마주쳤을 때, 소윤재는 혹시나 다들 찢어지게 된다면 사용해 보길 바란다면서 무전 채널을 지정해 줬다.

‘뭐, 쓰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서로 송수신이 닿는 무전기도 지금 없지만, 주파수 도약을 할 수 있는 무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내용이 애먼 데로 흘러나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7.5사단 놈들이 들으면 좋을 게 없겠지.’

제주공항에 도착하기 전이면 몰라도 이젠 제주도 본섬 안에서 서로 얽히고설키게 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무전 내용을 통해 그놈들에게 주목받는 일은 생겨선 안 됐다.

‘물론 괜한 걱정일 수도.’

이젠 직접 7.5사단을 만나러 가야 했다.

무전이고 뭐고 면전에서 보게 생겼는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일단 평상시에 봉화는 한 개를 켜 두겠습니다. 발견하면 별 일 없는 거니까, 그쪽으로 올 때 그냥 들어오세요. 2개는 위험, 3개는 절대 오지 말라는 표시로 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만약 소윤재가 봉화를 피워 올린다고 해도 중문 관광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차귀도를 향해서 이동하지 않으면 7.5사단이 신경 쓸 만큼 당장 봉화가 눈에 띄지는 않을 테니 고천수가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소윤재 씨만 믿겠습니다.”

텁.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곧 고개를 끄덕인 소윤재는 이선웅과 함께 트럭에 올랐다.

부우웅!

둘을 태우고 사라져 가는 트럭을 보면서 고천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인가.’

부모님을 보러 가지 않고 7.5사단에게 향할 대가.

과연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덜컥.

누군가 조수석 문을 건드렸다.

고천수가 고개를 돌리며 조수석 창문을 내리자, 거기에는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송하나가 있었다.

“난 이거 타도 되나 해서.”

휴와 승합 택시에 타야 하는 게 꺼림칙해서일까.

“나도 그 자리가 좀 탐나는데.”

“흐악!”

휴가 갑자기 옆에 나타나자 송하나가 기겁하며 흠칫거렸다.

“이것 참.”

고천수는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요상한 걸로 골치 아프게 하는고만.”

-근데 휴는 왜 고천수랑 송하나한테만 말 놓는 거임?

-친구각이라고 생각하면 놓는 것 같던데.

-아 시바, 소름. ㅋㅋㅋㅋㅋ

“······.”

꽤 찝찝한 소리를 들은 듯했지만, 고천수는 애써 무시하며 기어 봉을 잡고 말했다.

“둘 다 승합차나 타.”

***

실랑이 끝에 고천수는 조수석에 하나만 태우고 가기로 했다.

-ㅋㅋㅋ 역시 조수석은 이 녀석이지.

-킹정임.

고천수는 올라오는 채팅들을 보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왈!

짐칸에서 조수석을 새로 할당받은 흑구가 매우 감사하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한 번 짖어 보였다.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고천수는 한탄을 하듯 흑구에게 말했다.

“내가 제일 믿는 건 너인데 말이야.”

옆에 있으면 가장 든든한 게 흑구였다.

가능하다면 빨리 보급함에서 먹이를 찾아서 성장을 시켜 보고 싶을 정도였다.

‘Lv.3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되네.’

물론 그것도 먹이를 찾았을 때에나 확인해 볼 수 있는 거지만.

왈!

그때, 갑자기 흑구가 앞을 보며 짖었다.

“응?”

순간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 고천수는 깜짝 놀라며 핸들을 급하게 꺾었다.

끼익! 끼이익!

S자로 운전하며 간신히 차량의 균형을 맞춘 고천수는 브레이크를 콱 밟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사람이었다.

누군가 도로를 걷고 있던 것이다.

“사람?”

차가 다닐 수 있는 곳에서 걷는 사람이라니, 예전이라면 미친놈이라고 욕했겠지만 상황이 달라졌으니 그건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이상했다.

왜냐하면······.

“저게 뭐야. 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는 바퀴가 설치된 몸체만 한 관을 끌고 걷고 있었다.

-진짜네.

-관 ㅋㅋㅋㅋㅋ

-아, 시바. 드디어 시작되나.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니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형님들, 뭡니까, 저건.”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봐. ㅋㅋ

고천수는 멀어져 가는 누군가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성별은 남자란 걸 알았다.

빵.

경음기 소리가 들려 고천수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니, 거기에 차를 세워 놓은 전병훈이 창문을 내리고 고천수에게 뭐라고 하고 있었다.

위잉.

운전하며 닫았던 조수석 창문을 다시 내리려니, 이젠 전병훈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잘 들렸다.

“고천수 씨,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상한 사람 같아요.”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는 건 고천수도 동감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저 남자에게 반응했다.

고천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덜컥.

기어를 후진으로 바꾼 고천수가 차를 빠르게 몰아 남자를 쫓아갔다.

위잉.

고천수는 운전석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남자를 불러 보았다.

“저기요.”

하지만 남자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관을 끌고 열심히 걸어갈 뿐이었다.

“헉, 헉······.”

고된 노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소리가 고천수의 귓가에 쑤셔 박혔다.

“저기, 잠시만요.”

고천수가 다시 불렀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아나.”

그리고 고천수에게는 인내심이 없었다.

“한 번만 더 부르는데 대답이 없으면 차로 칠 겁니다. 아시겠어요?”

-뭐랰ㅋㅋㅋ

-이 새끼 진짜 또라이 아님?

-아무리 우리가 보는 플레이어라지만, 얘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해보임. ㅋㅋㅋ

뭐라든 상관없었다.

고천수는 남자의 정체가 뭔지 알아야 했다.

“저기요.”

그래서 다시 한번 불렀다.

이번엔 약간 더 기다려 주었지만, 남자는 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덜컥.

그렇다면 실력 행사로 한 번 관심을 끌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부우우우!

일단 후진으로 차를 남자가 걸어가는 방향으로 더 길게 뺐다.

그리고 진짜 칠 것처럼 마주보는 방향에서 기어를 바꾸고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였다.

힐끔.

남자가 운전석에 있는 고천수를 쳐다봤다.

끼이익!

고천수는 남자를 치지 않고 차를 멈춰 세웠다.

“이제 대화할 용의가 좀 있습니까?”

멈칫.

남자는 걸음을 세웠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고천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으르르르.

그런 남자를 보며 흑구가 이빨을 드러냈다.

“잠깐 진정해.”

고천수는 흑구에게 팔을 뻗으며 말했다. 아직 저게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확인부터 해야 했다.

‘물론······.’

흑구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알 듯했다.

꾀죄죄한 몰골에 어딘가 정신을 빼 놓고 온 것 같은 표정.

딱 봐도 조심해야 되는 인물이었다.

-조심해라. 이놈 백퍼 성역에서 나온 놈이니까.

그리고 고천수는 처음, 이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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