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23화 (123/224)

123. 선택지

‘선택지?’

고천수가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알람창이 더 나타났다.

[각 선택 별로 특전이 존재합니다.]

[1. 뉴타운 : 7.5사단의 사단장과 1대1 안전한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차귀도 : 현재 상황에서는 불필요할 수 있는 진실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뭐야.’

[시스템이 개연성을 성립할 시간을 확보해야 하므로, 60초 내에 선택을 부탁드립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시, 랜덤으로 목적지가 부여됩니다.]

[00:00:60]

[00:00:59]

…….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고천수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형님들, 이건?”

-선택지네.

-네가 스토리를 어느 정도 진행시켜서 뜬 거임.

-무시해도 됨.

시청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평이했다.

‘무시해도 된다고?’

하지만 고천수는 그럴 수 없었다.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부모님과 연관된 단서가 갑자기 주어졌다.

선택에 따라 목적지가 달리 주어진다면, 당연히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못 고르겠으면 그냥 놔두셈.

-어차피 목적지가 부여되는 거지 강제되는 건 아님.

“부여된 목적지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안 가면 다 어긋나긴 하겠지.

-부여된 목적지에 맞게 퍼즐이 맞춰질 테니까.

-좀 곤란해지겠지만 감내하고 그래도 되긴 함.

[00:00:28]

고천수는 식은땀을 흘렸다.

고작 60초로 해결을 보기에는 너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00:00:10]

카운트다운.

고천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첫 번째를 고르면 7.5사단의 사단장과 1대1로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안전하게.

7.5사단의 고위급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두 번째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확실치는 않지만 부모님은 차귀도에 존재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망할!’

게임을 클리어하면 이 세계를 재편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도 의연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 했던가.

부모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자 결심이 조금 흔들렸다.

만약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이 세계는 이대로 흘러가게 되므로, 그런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시급히 부모님을 찾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00:00:01]

“으아아!”

고천수는 눈앞에 떠 있는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바로 클릭했다.

“천수야?”

결정을 끝내고 그냥 가만히 굳어 있는 고천수를 보고 송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하아.”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그는 자신의 시야에 남아 있는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1. 뉴타운 : 7.5사단의 사단장과 1대1 안전한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엇을 골랐는지 강조하듯 몇 번이나 깜박인 선택지는 곧 솜사탕처럼 녹아서 사라졌다.

“어이.”

휴가 고천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팍!

고천수는 반사적으로 휴의 손을 쳐 버렸다.

“건들지 마.”

하나를 선택함으로 인해서 중요한 하나를 버려 버렸다.

고천수는 몰려드는 찝찝함에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예민하네, 천수.

-그럴 거면 그냥 두 번째 거 고르는 게 낫지 않았음?

안 될 말이었다.

감정적으로는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는 게 맞았지만, 실리적으로는 첫 번째가 맞았다.

현재 상황에서는 불필요할 수 있는 진실 하나를 얻으려고 7.5사단에 대한 최고 가치의 정보를 내던질 수는 없었다.

-불효자여, 불효자.

빠득.

고천수가 이를 갈며 채팅창을 쳐다보았다.

[울부짖는정신병자 : 지금은 다들 좀 자제해라.]

매니저가 나서자 채팅창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아.’

고천수는 속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며 표정을 정리했다.

‘이성을 잃으면 안 되지.’

방송은 고천수가 생존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 중 하나였다.

기분이 좀 나빠졌다고 다 티를 내는 건 프로의 자세가 아니었다.

“형님들, 최후의 효자 모릅니까?”

고천수는 태도를 바꿔 말했다.

“당장은 못 만나도 장기적인 플랜으로 제가 보호를 해 드릴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말투가 왤케 상조회사 같냐.

-ㅋㅋㅋㅋㅋ 설계사한테 맡겨야 할 듯.

-그래, 천수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다만 부모님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제시할 수 있었는지, 차귀도를 떠나 어디로 가려는지는 불명이었다.

“저도 그건 모르겠습니다.”

고천수가 물었더니 남자는 이렇게 답변했다.

“저는 급하게 여기로 온 것뿐이어서요. 거래 징표하고 같이 착수금도 30%나 줘서 그냥 믿었습니다.”

“천수야, 네가 지금 쥐고 있는 명함에 적혀 있는 거, 아는 사람이야?”

송하나가 의문을 참지 못한 듯 끼어들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누구?”

“내 부모님.”

그러자 주위의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

“부모님이라고?”

“자, 잠깐만.”

그 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새로 만난 남자였다.

“그분들이 부모님이라고요?”

“네, 아마도요.”

고천수는 남자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보러 갈 수는 없겠죠. 제가 가야 할 데가 있어서요.”

뉴타운.

고천수는 7.5사단과의 만남을 위해 중문 관광단지에 위치한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래서, 부탁 하나를 좀 드리고자 합니다.”

다들 놀란 기색이 잦아들기도 전에, 고천수는 남자에게 말했다.

“아무개 씨, 차귀도로 돌아가실 거죠?”

“아, 아무개 씨?”

“이름을 몰라서요.”

“아, 이, 이선웅입니다.”

“좋습니다, 이선웅 씨.”

고천수는 말을 이었다.

“이선웅 씨는 차귀도에 다시 돌아가실 거죠? 저희 부모님도 다시 만나실 거고.”

“예? 어, 음.”

이선웅은 당황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그렇죠? 제 가족이 일단 거기에 있으니까 차귀도에 가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구해 달라고 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다시 보기가…….”

“걱정 마십쇼. 제가 있지 않습니까.”

노인을 구하지 못했다고 해도, 아들 얘기를 하면 또 다른 표정을 지을 부모님이었다.

“이선웅 씨는 부모님하고 만나서 아들이 제주도에 있다고 전해 주세요.”

선택지로 고르지는 못했지만, 만나는 걸 시도해 볼 여지는 있었다.

“그리고 위험한 상황만 아니면 거기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 됩니다.”

“본인이 직접 바로 만나러 안 가고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선웅에게 고천수는 바로 답했다.

“네, 저는 바로 안 갑니다. 들를 곳이 있어서요.”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에게 무작정 기다려 달라고 할 순 없었다.

“그 뉴타운인가 하는 곳으로 가실 건가요? 알려 주시면 아들이 거기에 있다고…….”

“아닙니다. 제가 거긴 하겠지만, 이선웅 씨가 돌아가셨을 때도 제가 거기에 있을지는 알 수 없죠. 괜히 엇갈릴 수도 있으니 그건 함구해 주세요.”

하지만 이선웅만 보낼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소방대원 소윤재를 쳐다보았다.

“소윤재 씨, 혹시 괜찮다면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네? 저 말입니까?”

“지금까지 행동으로 보면 믿음직한 사람이어서요.”

고천수는 그에게 이선웅과 함께 가 줄 것을 부탁했다.

“이선웅 씨랑 가서 제 부모님의 안전을 살펴 주세요. 소방관이라면 부모님도 믿음이 좀 생기실 테니까요.”

그에 따른 보상 같은 걸 준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윤재는 역시 지금까지 보여 왔던 태도대로 반응을 보였다.

“저로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저도 딱히 갈 데는 없었으니까 상관없긴 합니다만.”

“갈 데가 왜 없습니까?”

휴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그 노인이 중문 관광단지로 가라고 했다면서요.”

“예. 고마운 말씀이긴 했지만, 공항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것 같아서요. 저는 그런 세력에는 믿음이 가지 않아요.”

서로가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고천수는 소윤재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잘 부탁드리고, 혹시 서로 연락이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을 쓰면 될지 논의를…….”

왈!

그때였다.

흑구가 갑자기 정면을 보며 짖었다.

“응?”

끼이이이익!

고천수가 물음표를 그리는 찰나, 차가 갑자기 뒤흔들리며 급하게 멈춰 섰다.

쿵!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던 일행들은 서로 뒤엉키며 나동그라졌다.

“큭!”

그건 고천수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 얘기에 매몰된 나머지 초보적인 실수를 했던 것이다.

‘젠장……!’

다행히도 충격이 크진 않았다. 고천수는 몸을 추스르고 운전대를 꽉 붙잡고 있는 전병훈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앞에……!”

그 대답에 빠르게 전면을 확인한 고천수는 작게 탄식했다.

“뭐야, 저건.”

트럭 두 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

“형님, 저거 보이십니까?”

승합 택시를 가로막은 트럭들의 뒤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는 남자들이 열 명이나 서 있었다.

“진짜 저쪽에서 뭔가 오긴 오네요.”

“뭐가 터진 곳에는 항상 먹잇감도 온다더니.”

“형님 말대로입니다.”

부하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 앞에 있던 리더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항상 꽁무니 빠지게 도망쳐 오는 놈들이 있다니까.”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물건을 빼앗는 이 강도 무리는, 조금 전에 연달아 이어진 폭음을 듣고 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당연히 그곳에서 도망쳐 오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예상한 무리의 리더는 부하들을 이끌고 길목 중 하나를 틀어막고 있던 것이었다.

“자, 겁먹고 도망 온 놈들 빨리 털어먹고 우리도 자리를 뜨자고.”

한 곳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건 없었다.

리더는 멈춰 선 승합 택시를 향해 몽둥이를 휘적거리며 다가갔다.

“가자.”

부하들이 그런 그의 뒤를 따랐다.

부우웅.

승합 택시가 뒤로 빠지지 못하게 트럭 한 대가 더 나타나 뒷길까지 가로막았다.

이제 이 무리에게는 승합 택시의 탑승객들을 털어먹을 일만 남아 있었다.

드르륵.

그때, 승합 택시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와~ 살벌하네, 살벌해.”

웬 거적때기를 입은 남자 하나가 내리면서 탄식을 내뱉었다.

“단체로 몰려들어서 사람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 어디에 있던 자경단이랑 비슷하네.”

“뭐야.”

리더는 남자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웬 거지같은 놈이 나왔네.”

“거지 맞아. 홈리스라서.”

그 말에 강도들이 단체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홈리스.”

“장난하나, 새끼가.”

“털리기 전 발악 같은 건가?”

그사이, 승합차에서 또 다른 남자가 내려섰다.

“휴, 잡것들 상대로 나대지 좀 마.”

그는 거적때기 남자를 휴라고 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넌 또 뭐야.”

“고천수라고 하는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리더를 보며, 고천수라고 이름을 밝힌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길 좀 지나가게 비켜.”

“뭐?”

리더는 고천수의 요구를 듣고 헛웃음을 뱉었다.

“얘들아, 들었냐?”

쪽수 싸움으로 가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리더는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길 좀 지나가게 비켜 달란다.”

부하들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리더는 다시 고천수에게 고개를 돌리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야. 비켜 달라고?”

가로막은 이유가 있는데 맨입으로 비켜 줄 수는 없었다.

“가지고 있는 거 다 내놔. 그럼 살려는 줄게.”

“다?”

“그래. 그 차도.”

리더가 승합 택시를 가리키자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럼 공평하게 서로 차 걸고 한판하자.”

“뭐?”

“마침 차가 더 필요했거든.”

으르릉!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합 택시에서 검은 개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뭣……!”

전혀 예상외의 것의 등장에 리더는 잠시 주춤거렸다.

그리고 그 잠깐의 시간이 치명타가 됐다.

“컥!”

리더는 개에게 목을 물리며 뒤로 넘어졌다.

“리더!”

그의 부하들이 놀라며 시선을 돌린 사이 고천수와 휴가 튀어나갔다.

콱!

콰직!

도끼와 칼이 방심한 강도들의 신체를 파고들었다.

“크악!”

“으아악!”

둘은 그러면서도 강도들과 전면전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저 길을 막는 인원만 제거하고 각자 트럭으로 뛰어갔던 것이다.

“뭐, 뭐야!”

“막아!”

바로 차를 강탈하려고 한다는 걸 안 몇몇이 소리쳤다.

부르릉!

그때, 승합 택시도 갑자기 엔진 음을 내며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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