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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21화 (121/224)

121. 퇴거 조치 (3)

두다다다!

그때였다.

익숙한 소음이 주변에서 울려 퍼졌다.

두다다다다……다!

헬기였다.

하지만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뭐야, 저건.”

헬기는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저게 우리 도와주러 온 헬기야?”

휴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타려다가 다 같이 죽겠는데?”

쿠아앙!

그사이에 크라켄은 점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야야야!”

고천수는 헬기를 올려다보며 급하게 외쳤다.

“송하나! 빨리 로프 내려!”

-ㅋㅋㅋㅋㅋ 마음 급한 거 보게.

-송하나도 문만 열고 휘청거리고 있는데?

-탈 수 있을까?

콰앙!

크라켄이 이제 제주공항의 지척에 다다랐다.

고천수는 서둘러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형님들, 헬모스가 모스볼로 변하면 터져서 기관지를 망가뜨린다고 했죠? 그거, 기관지 외에 다른 부분도 포함입니까?”

-갑자기?

-지금 물어볼 이유가 있나?

“빨리요! 시간 벌이는 되나 보는 거니까!”

-어휴, 살벌하네.

-호흡했을 때가 제일 타격이 크긴 한데, 점막에도 흡수돼서 타격 주긴 하지.

-생화학 가스랑 비슷함. 몸 내부로 들어가면 통증은 상당할걸.

쿵!

고천수는 다시 시선을 돌려 크라켄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제주공항에 다가선 크라켄이 거대한 다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망할……!”

고천수가 난간을 붙잡은 순간, 크라켄의 다리 하나가 제주공항을 때렸다.

콰아앙!

엄청난 흔들림에 고천수가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휴와 소방대원도 각기 붙잡고 있던 것을 놓치고 바닥에 넘어졌다.

쾅! 콰앙!

크라켄이 연달아 제주공항을 때렸다.

그러자 헬기도 자리를 뜨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다려어어어! 괜찮아!”

고천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헬기도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지금 자리를 내빼 버린다면 다시 탈 수 있는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다.

“아직은 괜찮아!”

크라켄이 제주공항을 때려 부수는 상황 속에서도 고천수는 헬기를 향해 지금은 괜찮다고 외쳤다.

‘송하나! 네가 조종사를 설득해야 돼!’

크라켄은 위협적이지만 약점이 없지는 않았다.

헬기에 탈 수 있는 시간만이라면, 아직 확보할 수 있었다.

크우우우우!

그리고 그 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통통.

깨진 창문들 쪽에서 모스볼이 고무공처럼 튀어 올라 크라켄에게 가 터졌다.

우우우우우!

크라켄은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움찔대며 몸을 뒤로 물렸다.

아예 바다로 돌려보낼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약간의 시간은 벌었다.

“지금이야! 빨리!”

헬기는 여전히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균형을 되찾았다.

잠시 누그러진 크라켄을 보며 조종사가 마음을 다잡은 듯했다.

좌라락!

곧 로프가 내려왔다.

헬기가 불안정해서인지 착륙은 불가능해 보였다.

“로프 잡아요!”

고천수는 먼저 로프를 붙잡고 올라갔다.

-ㅋㅋㅋㅋㅋ 잡으라고 해 놓고 자기가 1빠인 거 봐.

-천수는 반드시 생존한다.

미안하지만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먼저 올라가는 게 우선이었다.

낙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아래에 두어야 안전했다.

소방대원은 자경단원들 때문에 힘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물론 버린다는 건 아니고.’

고천수는 소방대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얼른 와서 잡으세요!”

탁!

웃기게도 그 손을 잡은 것은 휴였다.

“야 이 자식! 뭐 하는 거야!”

“잡으란 거 아니었어?”

그렇게 로프에 안착한 휴가 고천수를 향해 말했다.

“자리 좀 줘. 저 분 좀 태우게.”

영악한 놈이었다.

“진짜 뭣 같은 놈이네, 너.”

고천수는 빠르게 로프를 타고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네 말대로 안 하면 너도 발로 차서 떨어뜨려 버린다.”

“걱정 말라고.”

휴는 뒤이어 로프를 붙잡은 소방대원의 팔을 꽉 붙잡았다.

왈!

남은 건 흑구였다.

흑구는 달려와 로프의 끝자락을 이빨로 붙잡았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두다다! 두다다다다다!

헬기는 빠르게 몸체를 기울여 제주공항의 정문 쪽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두다! 두다다다다!

하지만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헬기의 날개는 역시나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젠장!”

흔들리는 로프를 좀 더 꽉 붙잡으며 고천수가 이를 악물었다.

“빨리 좀!”

안 그래도 잡기 힘든 로프였다. 뒤흔들리기까지 하니까 버티기 힘들었다.

위이이잉!

드디어 날개가 방향을 맞추고 헬기가 제대로 된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속도가 빨랐다.

헬기는 제주공항을 넘어가 정문 앞까지 빠르게 날아갔다.

“흑구야! 꼬리 들어!”

점점 고도가 낮아지는 와중에 헬기는 정문 근처에 있던 레더빌라의 서식지까지 날아갔다.

흑구는 고천수의 외침을 듣고 꼬리를 말아 올렸다.

촤악! 촥!

레더빌라들이 그런 흑구를 붙잡으려고 줄기를 뻗고 이빨을 들이댔다.

위이이잉!

간신히 레더빌라들을 지나친 헬기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위로 잠시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고도를 낮추며 어떤 풀밭 앞까지 일행들을 데려갔다.

“뛰어!”

고천수는 헬기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다 뛰라고!”

왈……!

높이가 낮아지자 흑구가 먼저 밑으로 뛰어내렸다.

풀썩!

아래가 긴 풀밭이라 다행히 충격은 적은 듯했다.

점프의 안전도가 확인됐으니, 다음은 사람들 차례였다.

“으아아!”

소방대원이 몸을 던졌다.

“간다!”

그다음은 휴였다.

“후.”

고천수는 몸을 던지지 않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송하나!”

내려오라고 할 시간까지는 없었다.

고천수는 그녀에게 경고만 한 마디 날려 주었다.

“꽉 잡고 있어!”

그렇게 그는 로프를 놓고 뛰어내렸다.

풀썩!

안전한 착륙이었다.

고천수는 바로 수풀 속을 헤집고 나와 이제는 방향을 잃고 뱅글뱅글 돌고 있는 헬기를 바라보았다.

-추락한다!

채팅에 올라온 한 마디와 함께 헬기가 근처에 있던 구조물을 들이박고 미끄러지듯 도로 위로 착륙했다.

끼이이이익!

소름끼치는 마찰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쿠아앙!

헬기는 결국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충돌하고 말았다.

“송하나……!”

고천수는 서둘러 헬기가 충돌한 곳으로 달려갔다.

“송하나!”

헬기는 모래가 쌓여 있는 둔덕에 처박혀 있었다.

“고, 고천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둔덕 덕분에 충격이 좀 줄었는지 죽지는 않은 듯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를 되짚으며 고천수는 마침내 모래 더미에 파묻힌 송하나를 찾아냈다.

“흑구야!”

왈!

재빨리 달려온 흑구가 개다운 능력을 보여 주었다.

파파파팍!

흑구는 발로 재빠르게 모래 더미를 파내기 시작했다.

“뺀다.”

어느 정도 몸이 드러나자 고천수를 송하나를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으읏.”

잠깐의 걸림이 있기는 했지만, 송하나는 그 손길을 따라 무사히 바깥으로 나왔다.

“괜찮냐?”

고천수의 물음에 송하나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난 괜찮은데 조종사님이……!”

“흑구야!”

고천수가 외치자 흑구가 코를 킁킁거리며 모래에 묻힌 조종석의 위치를 찾아냈다.

파파파팍.

흑구는 방금 전에 송하나를 구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앞발을 마구 휘둘러서 땅을 파냈다.

“읍…….”

소리가 들렸다.

고천수는 도끼로 같이 땅을 파냈다.

-야, 미친 ㅋㅋㅋㅋ

-그러다가 대가리 찍어!

“아, 참. 그렇네요. 이거 휘두르는 게 습관이 돼서.”

-돌았냨ㅋㅋㅋ

다행히도 그사이에 흑구가 조종사를 찾아냈다.

“푸, 푸하!”

조종사는 모래 밖으로 머리를 꺼내고 숨을 토해냈다.

“잡으세요!”

고천수는 그런 조종사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흑구는 쉴 새 없이 주변의 흙을 파냈다.

쿠웅!

순간 들린 굉음에 다들 고개가 돌아갔다.

“공항이……!”

모두의 입에서 경악이 튀어 나갔다. 제주공항이 완전히 짓이겨지고 있었다.

크라켄이 헬모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다리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크아아!

크아아아!

다리가 고가도로에도 걸치자 그곳에 있는 레더빌라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크라켄을 공격했다.

크우우우우!

하지만 그건 크라켄의 화를 돋우는 행동이었다.

크라켄은 더욱 강하게 다리를 내리쳐 레더빌라들을 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에.

-존나 쎄긴 하네.

-야야, 멍 때리지 말고 빨리 튀어!

“다들 정신 차려요!”

고천수는 조종사를 완전히 밖으로 꺼낸 다음에 외쳤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겁니다!”

콰앙!

크라켄은 제주공항을 완전히 분쇄하고 있었다.

잔해가 여기까지 날아올 정도였다.

‘저기서 멈출 거라는 보장도 없어.’

빨리 자리를 떠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고천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헬기도 부서진 마당에 그냥 뛰어서 아무렇게나 도망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어 보였다.

부우웅.

그때였다.

“뭐야, 저건.”

고천수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부우우우!

웬 승합차 한 대가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저건.

-7.5사단이 보낸 거 아님?

버스 대용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작았다.

게다가…….

‘택시?’

노란 번호판이었다.

끼익.

승합 택시는 고천수 일행 앞에 멈춰서더니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아, 이런 세상에!”

거기에 모습을 드러낸 웬 중년의 남자가 무너지는 제주공항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뭔 괴물이야 저건!”

반응만 봐도 이쪽 일행을 태우러 온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뭐 해! 다들 타요!”

그렇게 말한 건 웃기게도 휴였다.

휴는 승합 택시의 뒷문을 붙잡아 당겼다.

“뭐야, 왜 안 열려!”

당연한 얘기겠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남자는 그런 그의 행동에 당황하며 소리쳤다.

“자, 잠깐 기다려요! 당신들이 내가 태워야 할 손님들인지 알아야 돼요!”

“손님?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송하나가 그런 운전기사를 보며 빽 소리를 질렀다.

“부탁이니까 태워 주세요! 안 그러면 저희 다 죽을 거예요!”

“아, 아니, 나는 돈을 받고 여기에 사람을 태우러 온 거예요! 그냥은 태워 줄 수가…… 억?”

순간이었다.

뒷문에서 운전석 문으로 온 휴가 남자의 멱살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자, 잠깐! 뭐 하는 거야!”

남자가 발버둥 쳤지만 이미 늦었다.

휴는 그를 완전히 바깥으로 꺼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덜컥.

그사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조종사가 달려가 운전석에 탑승했다.

“다들 빨리 타요!”

그는 뒷문의 잠금을 풀어 주었다.

고천수는 뒷문을 열고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서둘러!”

소방대원, 송하나, 흑구는 재빠르게 탑승을 마쳤다.

남은 것은 휴와 이 차를 몰고 온 남자뿐이었다.

“사, 살려 줘!”

순식간에 차를 잃고 제압당한 남자가 사색이 된 채로 호소했다.

“나, 난 돈을 받고 사람을 태우러 왔을 뿐이야! 살려 줘!”

“휴!”

고천수가 휴를 말리기 위해 외쳤다.

“해치지 마! 그 사람은 적이 아니야!”

적이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차를 내줄 리가 없었다.

쿠웅!

휴가 남자를 데리고 실랑이를 하는 동안 크라켄이 제주공항을 밀어젖히고 넘어오고 있었다.

잔해들끼리 빨판으로 집어서 마구잡이로 집어던지고 있어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그냥 두고 가.

-뭘 두고 가. 데려가야지.

-휴는 살인마 잡는 살인마임.

시청자의 말에 고천수는 눈썹을 치켜떴다.

‘살인마 잡는 살인마.’

자경단을 잡고 있던 것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는 했다.

하지만 과연 데려가도 괜찮을 존재일까.

‘맞불용으로 쓸 수 있다면…….’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 휴는 영국의 미치광이 살인마가 쓴 가명과 약자만 같을 뿐, 조형이 일치하지는 않는 듯했다.

적어도 여태까지 보인 행동만 보면 플레이어의 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정신인 놈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그냥 두고 가는 게 좋겠지만, 고천수는 그렇게 쉽게 일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휴!”

앞으로 이쪽에 해가 될 미친놈이 나타날 확률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대신 나서 줄 카드가 있다면…….

“그 사람 데리고 타!”

고천수는 휴를 향해 소리쳤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데리고 타라고!”

여기서 말만 들어준다면 고천수는 확실히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휴! 새 집 구하러 가야지!”

그의 외침에 휴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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