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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19화 (119/224)

119. 퇴거 조치 (1)

“뭐야, 이건!”

똑같은 대사로 외치는 남자를 보고 단원, 아니, 고천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수상하다 했지.”

퍽!

고천수는 팔을 휘둘러 남자를 쳐 버렸다.

남자가 당황하며 뒤로 밀리며 주춤대는 사이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다시 보네.”

그리고 반가움의 표시로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저세상 갈 뻔했어.”

“뭐, 뭐야, 당신.”

휴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까지 분명히 다른 사람이었는데?”

“어…….”

고천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

고천수는 적당한 타이밍을 재다가 그냥 배지를 사용해 연속 자리 교체로 이곳에 온 것뿐이었다.

“네가 착각했나 보지.”

그래서 고천수는 억지를 부리기로 했다.

“난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다고.”

“엉?”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짜증난 듯 고개를 돌리는 휴를 보며 고천수는 손을 내저었다.

“아, 내가 그 설명을 안 했네. 나 방금 전에 연기도 하고 있었어. 자경단원처럼.”

-연깈ㅋㅋㅋㅋ

-설마 그 연기는 아니지? 매연할 때 그 연기지?

-연기로 속였댘ㅋㅋㅋㅋ

“연기?”

휴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순간 헛웃음을 내뱉었다.

“연기를 하고 있었다고?”

“그래. 못 믿겠어?”

고천수는 반문하며 얼굴에서 표정을 없앴다.

“못 믿으면 뭘 어떻게 할 건데.”

“…….”

휴는 말문을 닫더니 고천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나타난 고천수.

휴는 혼란에 휩싸인 듯 고천수를 경계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고천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한번 죽여 보려고?”

“……너, 내가 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네.”

휴는 눈썹을 치켜떴다.

“내가 분명히 여기를 그냥 지나가는 손님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손님?”

-ㅋㅋㅋㅋㅋ

-우리 천수가 위치 바꾸기 전에 뭐라고 했었나 보네.

-뭐, 그게 뭘지는 대략 짐작 가지만.

“뭔데요.”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뭐냐고요. 저 인내심 짧아요.”

-ㅋㅋㅋㅋㅋ 짧으면 좀 길러 봐라.

-휴, 이 새끼는 너한테 위협이 되는 놈은 아님. 아니, 아니었음.

-그냥 제주공항 차지하려고 하는 홈리스인디.

위협이 안 된다니,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부터가 충분한 위협인데.”

휴 하워드 홈스.

줄이면 H. H. 홈스인데, 이렇게만 보면 영국에서 호텔을 지어서 투숙객들을 살해한 미치광이 살인마와 약자가 똑같지 않은가.

“적어도 문제가 있는 놈이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청자들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아서 경계만 하고 있었건만, 휴는 앞 글자가 하나 달라서인지 모델이 된 인물과는 좀 다르게 조형된 듯했다.

지나가는 손님은 건들지 않는다는, 헛웃음 나오는 설정으로.

“이상하네.”

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뭔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좀 더 망가져 버린 걸까?”

마침 구실이 던져졌다.

고천수는 빠르게 답했다.

“그래, 맞아.”

갑작스러운 조우 때문에 놀랐던 건 고천수도 마찬가지였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맞춰야만 했다.

“네가 좀 더 이상해진 거겠지. 딱 봐도 너 제정신이 아니잖아.”

“흐음.”

일반적인 사람이면 모욕으로 느낄 만한 것이겠지만, 휴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다가 마는 것으로 정리를 끝냈다.

“그렇네.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설명인 것 같아.”

“그래, 알겠지? 알겠으면 네가 있던 데로 돌아가. 우리는 그냥 갈 길 갈 테니까.”

고천수는 한시라도 빨리 이 정신병자를 치워 버리고 싶었다.

“가라고. 또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하지 말고.”

날선 말투였지만 휴는 딱히 반발하지 않았다.

자신이 엉뚱한 사람을 공격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하듯, 휴는 양손을 들고 천천히 물러났다.

“오케이오케이. 실수했으니까 그만 돌아갈게.”

그러더니 열려 있는 천장으로 걸어간 휴는, 그곳으로 내려와 있는 전선 같은 것을 붙잡고 올라갔다.

‘후.’

그제야 속으로 한숨을 몰아쉬던 고천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 우리 안의 소방대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벌벌벌 떨고 있었다.

‘안 놀랐으면 사람이 아니겠지.’

주변에서 치고받고 사람을 죽여 댔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고천수는 주위의 시체를 살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 작자는 없네.’

헬기 조종사는 없었다. 허탕을 쳤던 것이다.

“얼른 움직여!”

“우리 쪽에 뭔 일이 생겼다!”

“빨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 외침에 고천수는 숨을 삼켰다.

‘제기랄.’

흠씬 두들겨 맞은 녀석과 교체를 했더니 자경단원 쪽이 소란스러워진 듯했다.

‘너무 빨리 들켰어.’

원래라면 위치가 바뀐 녀석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멍하게 있다가, 그냥 머리를 긁적이며 여기로 다시 걸어오게 하는 게 계획이었다.

-꼬였네.

-어떻게 할 거임?

예정대로만 진행됐으면 여기를 미리 정리하고 얼 타면서 오는 단원만 추가로 끝장내 버렸으면 될 텐데, 이렇게 됐으니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철커덩!

고천수는 잠금이 풀려 있던 우리의 문을 열고 소방대원에게 손짓했다.

“나오세요.”

“……예?”

“얼른! 죽기 싫으면 서둘러야 합니다!”

급하게 외치는 고천수의 말에 소방대원은 엉겁결에 우리에서 걸어 나왔다.

“올라가세요!”

아직 열려 있는 천장 쪽으로 걸어간 고천수가 소방대원에게 소리쳤다.

“빨리요!”

상황이 상황이었다.

그 외침에 소방대원은 얼굴에서 망설임을 지워 버리고 일단 천장에서 내려온 전선들부터 잡았다.

턱!

고천수가 다리를 들어서 올려 준 덕분에 소방대원은 빠르게 천장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고천수는 그 뒤를 이어서 바로 전선을 붙잡았다.

‘별 일 없나 보군.’

함정은 없는지 먼저 올라간 소방대원은 고천수에게 빨리 올라오라며 손짓했다.

고천수는 그의 손짓을 따라 얼른 전선을 타고 올라가 천장으로 올라섰다.

스르륵.

그러자 거기에서 몰래 대기하고 있던 휴가, 전선들을 빠르게 잡아 올려서 회수하면서 말했다.

“내가, 도와줬네. 그치?”

그 이죽거리는 면상을 보며 고천수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잠시였다.

덜커덕.

휴가 판자로 구멍을 닫자, 주위는 암전이 된 듯 완전히 깜깜해졌다.

***

한편, 헬기가 있는 곳.

흑구와 함께 그 장소에 도착한 송하나는 멍하니 주위를 살피며 서 있었다.

“없어.”

헬기 조종사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일단 고천수의 말대로라면 여기서 잠시 대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헬기 조종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고천수는 뭔가 나타나면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었다.

그게 뭔지 알 수 없는 이상 송하나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왈!

그때, 흑구가 어딘가를 향해 한 번 짖었다.

송하나는 반사적으로 그곳을 쳐다보았다.

“앗……!”

그리고 발견했다.

이곳에 찾아와 만나려고 했던 그 사람을.

“저기요!”

송하나는 빠르게 달려갔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헬기로 자신과 고천수를 제주공항으로 데려다준 조종사가 보이고 있었다.

“……?”

조종사는 그런 그녀를 보며 살짝 눈을 치켜떴다.

“뭡니까.”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경계하는 투로 말했다.

“그, 그게! 안에 위험한 사람들이 있어서요! 다시 헬기를 타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급한 마음에 그녀가 허겁지겁 말하자 그는 살짝 손을 내저었다.

마치 진정하라는 듯했다.

“차분히 얘기해 보세요.”

“공항 안에 위험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고천수가 조종사님을 찾아서 도움을 청하라고 했어요!”

“고천수라면, 그쪽하고 같이 있던 분 말입니까?”

조종사는 그렇게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헬기로 향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웬 수리 도구들이 들려 있었다.

“공항이 위험한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고요.”

헬기까지 걸어간 그는, 그녀에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

“마침 잘됐네요. 좀 도와주시죠. 뭘 들고 있으면 올라가는 데 방해가 되어서요.”

그러고서 그는 헬기 위로 올라가더니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주세요, 이제.”

다시 도구를 받아든 그는 헬기 날개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뭐, 뭔가요? 역시 심하게 고장 났나요?”

“제어봉이 이상한 것 같아서요. 손 좀 보고 바로 다시 출발할 겁니다.”

송하나의 물음에 조종사가 담담하게 답했다.

급한 자신에 비해 차분한 조종사를 보며 송하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빠르게 해 주실 수 있는 거죠?”

“제가 정비사인 건 아니니까 장담은 못 하지만 금방 끝날 겁니다. 적어도 이 공항을 넘어서만 갈 수 있게 만들면 되겠죠.”

우우우.

순간, 어디선가 들린 소리에 송하나는 몸을 흠칫했다.

“뭐, 뭐지?”

쿠웅.

약하지만 지반이 살짝 흔들렸다.

왈!

흑구가 불안한 듯 짖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송하나는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아직 보이는 것은 없었다.

“뭐야…….”

분명히 뭔가 있었지만 특정할 수 없었다.

송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곤두선 신경으로 계속 사방을 경계하는 일뿐이었다.

쿵.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또다시 지반이 울리기 시작했다.

쿠앙! 쿠아앙!

울림이 확연하게 커졌다.

송하나는 놀라며 조종사에게 외쳤다.

“조종사님!”

“들었습니다!”

첨벙!

저 멀리 수평선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넘실대는 파도가 제주공항 끝자락을 적시고 있었다.

“서, 설마…….”

송하나가 숨을 삼키는 사이, 위에서 내려온 조종사가 재빠르게 헬기 안 조종석으로 들어갔다.

위이이이잉!

조종사는 지체할 것 없이 헬기에 시동을 걸었다.

“자, 잠시만요!”

송하나가 얼른 올라타며 소리쳤다.

“설마 지금 이동하려는 건 아니죠?”

“이동해야 합니다.”

조종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뭔가 오고 있어요. 여기서 도망쳐야 합니다. 헬기 상태를 보면서 최대한 멀리.”

“안 돼요!”

고천수가 아직 공항 안에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 데려다준 그를, 송하나는 그대로 두고 갈 수 없었다.

“천수 태우고 가야 돼요!”

“안 됩니다.”

하지만 조종사는 단호했다.

“가만히 있다가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르…….”

그때, 조종사는 입을 다물고 옆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그 자리로 들어온 흑구가 조종사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으르르르르.

거의 광견(狂犬)에 가까운 얼굴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

날아오르면 곧장 작살을 내버리겠다는 듯 흑구는 선글라스까지 내리고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었다.

“개 좀 어떻게 해 주시겠습니까?”

조종사의 물음에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 개가 아니에요.”

흑구는 고천수가 데려온 개였다.

그를 주인으로 생각하는 녀석인 만큼, 그녀가 통제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다려 주세요. 천수가 오면 알아서 해 줄 거예요.”

그가 오기만 한다면 흑구는 분명 진정시킬 수 있었다.

“……후회할 겁니다.”

조종사가 경고했다.

하지만 송하나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좀만 기다려 주세요.”

어차피 흑구 때문에 뭘 어쩔 수도 없었지만.

쿠궁.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행되던 일이 갑자기 멈추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쿠아아아.

육지 위로 바닷물이 빠르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

그 광경을 본 조종사가 송하나를 노려보며 외쳤다.

“저거 안 보이십니까? 빨리 여기서 이동해야 합니다!”

“아, 어…….”

송하나도 그가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심상치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안 들립니까?”

해일이 밀려오는 것을 보며 조종사조차도 침착함을 잃었다.

콰아앙!

그때, 바다 쪽에서 무언가가 올라섰다.

우우우우우우!

알 수 없는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촉수와도 같은 다리.

그걸 보고서야 송하나는 바다에서 무엇이 뒤쫓아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천수야.”

그녀의 입에서 절망 섞인 탄식이 새어 나갔다.

“우리 망한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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