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제주공항이라는 이름의 감옥 (3)
“또 희생양이 하나 들어왔네.”
노인은 피칠갑이 된 얼굴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참 불쌍하게 됐어.”
“저, 저기요!”
소방대원이 노인을 보며 다시 다급하게 외쳤다.
“혹시 방법을 아십니까? 나갈 수 있는 방법!”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둘이면 뭐라도…….”
하지만 소방대원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이 고개를 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소방대원은 그 말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철창을 쥐고 마구 뒤흔들었다.
“꺼내 줘! 여기서 내보내 달라고!”
“쯧쯧.”
노인은 그런 소방대원을 보며 혀를 찼다.
“조용히 있어. 괜히 명 재촉하지 말고.”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어르신도 여기 있다간 죽을 겁니다! 같이 나가시죠!”
“죽는다고?”
헛웃음을 흘린 노인은 소방대원이 가엾다는 듯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안 죽어. 적어도 그쪽처럼은.”
“예?”
소방대원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노인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소리죠?”
“난 원래 여기에 있던 사람이야. 외부인이 아니고.”
“그게 무슨…….”
“이해가 안 되지?”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나도 이해가 안 된다. 뭐 하러 외부인들 잡아 죽이지 말라고 나서서 이 꼴이 됐는지.”
그러면서 노인은 소방대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 특별히 사람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고, 엿 같아서 그랬던 거니까 오해는 마. 그냥 자기네는 선택받았느니 하는 개소리를 자꾸 지껄이는 걸 참아 줄 수 없었거든.”
“선택?”
“7.5사단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우릴 여기다 데려다놨어. 뉴타운으로 데려가겠다면서.”
처음 듣는 소리가 끼어 있었다.
소방대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뉴타운? 그게 뭡니까?”
“망한 이 나라의 새 거점. 쓸 만한 인간들 모아다가 거기서 새출발하겠다는 거지. 7.5사단이.”
“그 7.5사단이라는 건…….”
“군인들이라는 것 말고는 나도 정체는 잘 몰라. 하지만 당신도 듣긴 들었겠지. 제주공항이 안전하니까 오라고 한 거. 그거 그냥 7.5사단이 관제탑에 켜 두고 간 거야.”
여기 들어왔다가 죽은 외부인은 다 그걸 듣고 와서 작살난 것이라고 하며 노인은 표정을 구겼다.
“살아남은 몇몇 놈들은 다시 비행기 타고 도망친 건데, 당신 친구들은 어때. 당신 잡히고 다 도망갔나?”
“전…….”
소방대원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애초부터 친구가 없었어요.”
“뭐? 그럴 리가.”
노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같이 들어온 사람들이 있겠지. 왜, 그쪽 버리고 가서 그냥 없던 셈 치기로 했나?”
“네, 뭐.”
소방대원은 같이 들어왔던 일행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들어온 사람들은 있는데 친구라고 부르기엔 안 맞았으니까요.”
“그렇군. 역시 버리고 간 건가.”
노인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니까 사람 많이 구하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 정작 자기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구해 주는 사람이 없구만.”
“…….”
소방대원은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좋아.”
노인은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그래도 업보란 게 있다면, 그쪽도 여기서 빠져나갈 기회 정도는 있겠지. 그때를 대비해서 한 가지 알려 줄게.”
“네?”
“여기서 빠져나가게 된다면 중문 관광단지로 가.”
중문 관광단지.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 지역 중 하나였다.
“7.5사단이 거기로 간다고 한 거 들었어. 우리를 두고 간 엿 같은 놈들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거기가 가장 안전할 거야.”
소방대원으로서는 귀중한 정보 하나를 들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에 전혀 반색하지 못했다.
“전혀 몰랐던 얘기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업보라고 했잖아. 운이 좋으면 나가겠지.”
노인은 헛웃음을 뱉었다.
“뭐, 그리고 혹시나 해서 얘기해 두는 건데, 여기 놈들은 그냥 거기까지 자력으로 갈 시도조차 안 하는 정신병자들이야. 설상가상으로 누가 살인도 저질러서 자경단 만들더니 저 지랄 난 거고.”
“…….”
“7.5사단이 여기 보관해 뒀던 식량까지 떨어지면, 그냥 자멸하겠지. 그러니까 그 전에 여기서 떠나. 난장판이 되기 전에.”
어느새 노인은 소방대원의 탈출을 기정사실화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도 정신이 온전치는 않은 듯했다.
‘어떻게 나가라는 거지.’
소방대원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러 오지 않을 것이었다.
“아, 오늘 저녁은 뭐 나올라나.”
“만날 먹던 통조림이겠지 뭐겠어.”
그때, 담배를 피우러 갔던 자경단원들이 잡담을 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읏.”
소방대원은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탈옥 계획이라도 하고 있었나?”
단원들은 그런 소방대원을 놀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외부인들은 꼭 주제 파악을 못한다니까.”
“그러게. 우리에 갇혔으면 얌전히나 있을 것이지.”
그러더니 단원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좀 놀아 줄까?”
“그럴까? 뭐, 어차피 죽을 거 몇 대 좀 얹어서 때려도 되겠지.”
곤봉을 꺼내든 그들은 곧 소방대원이 갇혀 있는 우리를 열기 위해 자물쇠를 만지작거렸다.
“자, 꺼내면 어디부터 조져 줄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그들을 보며 소방대원이 사색이 되었다.
“아, 안 돼.”
“뭐가 안 돼.”
단원들은 겁에 질린 소방대원을 보며 더욱 흥에 취했다.
“팔이나 다리 중에 하나 골라 봐.”
“원하는 대로 작살내 줄게.”
“으, 으아아.”
소방대원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데도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오지 마!”
달칵.
자물쇠가 해제됐을 때였다.
“얀마.”
옆 우리에 있던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니들 적당히 좀 해. 뭐 재밌다고 그렇게 사람 하나 몰아넣고 실실거려.”
“뭐?”
“방금 뭐라고 했냐?”
단원들이 발끈하자 노인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적당히 하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방관을 보면서 낄낄거려. 병신들이.”
명백한 도발이었다.
남자들은 소방대원이 있는 곳에서 돌아서서 노인이 있는 우리로 향했다.
“이 새끼가. 그래도 같이 온 인원이라고 봐줬더니.”
“아주 돌았네.”
그들의 말에 노인은 씨익 미소를 그렸다.
“여기 안 돌은 놈 있나.”
철커덕철커덕.
단원들은 급하게 노인이 있는 우리의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다.
“이 새끼 요즘 따라 살살 긁더니 안 되겠네.”
“방금 전에 한 말을 후회하게 해 줄게.”
살벌한 그 광경 속에서, 소방대원은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안에 핏물이 가득 담긴, 그런 미소였다.
파악!
잠금이 해제되자마자, 노인은 단원들에게 멱살을 붙잡혀 끌려 나갔다.
퍽!
그리고 이후의 일은, 완전히 예상대로였다.
퍽! 퍼억!
노인이 얻어터지기 시작한 걸 보고 소방대원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퍽!
“넌 불순물이야! 우리랑 같이 있으면 안 되는 불순물!”
“찌꺼기라고!”
노인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발길질에 걷어차이고 있을 뿐이었다.
씨익.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노인 위로, 단원들의 발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뻑!
뭔가 잘못된 듯한 소리.
노인은 이내 몸에서 힘을 잃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응?”
단원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뭐야.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설마 대가리 나갔나?”
단원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노인의 상태를 살폈다.
“아 씨, 이거 뒈졌네.”
“단장님이 뭐라 그러는 거 아니냐?”
“어차피 신경도 안 쓰던 놈이었으니까 괜찮지 않나?”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던 단원들은, 결론도 이내 쉽게 내었다.
“그래, 어차피 뒈질 놈이었지.”
“그러게 왜 까불어, 까불기를.”
간단했다.
고작 이런 장면이, 노인의 최후였던 것이다.
‘난 끝이야.’
소방대원은 절망했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야, 이렇게 됐다고 너는 그냥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단원들이 소방대원을 노려봤다.
소방대원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 안 돼.”
단원들이 다가왔다.
“저리 가!”
덜컥.
단원들이 자물쇠를 잡고 열었다.
“으아아아!”
순간 터져나가는 비명 소리.
하지만 그건 소방대원이 낸 것이 아니었다.
“끄악!”
단원 중 한 명이 칼에 가슴을 깊게 찔린 상태로 단말마를 내뱉고 있었다.
“뭐, 뭐야, 너는!”
아직 멀쩡한 단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웬 거적때기를 입은, 노숙자 같은 젊은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너희가 존재하게 된 이유.”
팍!
남자는 나머지 단원을 밀쳐서 넘어뜨리고 품에서 다른 칼을 꺼내들었다.
“단원 놀이 아주 재밌게 하네~. 나 하나 잡자고 만들더니 엉뚱한 짓이나 하고 있고.”
“너, 넌 설마!”
단원은 남자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살인마 새끼!”
“그래, 잘 아네.”
남자는 단원을 짓누르며 말했다.
“근데 살인마? 누가 보면 나만 살인마인 줄 알겠어. 너희도 여기 들어오는 놈들 다 썰어 대고 있잖아?”
“뭐?”
턱!
순간 자신에게 칼을 내리꽂는 남자의 손목을 붙잡으며,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큭! 이, 이 새끼……!”
“방심하면 안 되지. 순식간에 끝나게 된다니까?”
남자는 무릎으로 상대를 압박하며 칼을 찔러 넣으려고 했다.
“끄, 끄아아아!”
하지만 단원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몸을 뒤척거리다가, 마침내 회전에 성공해 남자를 밀쳐냈다.
“넌 뒈졌다, 이 새끼야!”
단원은 남자의 손을 발로 차 칼을 떨어뜨리게 했다.
그리고 칼을 다시 주워 들려는 남자에게 달려들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퍽!
단원의 주먹이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에 닿았다.
“죽어!”
퍽!
“죽어, 이 살인마 새끼!”
그렇게 단원이 옅은 웃음을 흘리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퍽!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타격음이 터졌다.
“컥!”
단원은 입을 벌리며 주춤했다.
정확히 갈비뼈에 남자의 주먹이 직격했던 것이다.
“간지럽네.”
남자는 단원의 목을 손날로 쳐 버렸다.
“끄헉.”
“비켜.”
파악!
남자의 무릎 올려치기에 고간을 얻어맞은 단원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좀 비겁했나?”
남자는 단원의 얼굴을 발로 차 버리며 말했다.
“확실히 좀 비겁했을지도.”
“이, 이…….”
퍽!
단원의 말문이 남자의 두 번째 발길질에 막혔다.
“대답해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남자는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허, 헉.”
소방대원은 남자와 눈을 마주치고는 뒤로 주춤거렸다.
“아, 괜찮아요, 아저씨.”
남자는 소방대원을 보고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저는 아저씨한테는 관심 없거든요.”
“무, 무슨…….”
“전 여기서 안 나가려는 놈들만 싫어해서.”
퍽!
남자는 단원을 목을 발로 내리찍었다.
“이 공항은 제가 집으로 삼기로 했거든요. 홈리스 신세가 지긋지긋해서.”
꿀꺽.
소방대원은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웨, 웬 또 미친놈이…….’
소방대원의 눈에 일부분이 열려 있는 천장이 보였다.
남자는 저곳을 통해서 내려온 것이리라.
‘위층에서 내려온 건가……!’
단원의 말을 봤을 때, 남자는 공항 안에서 신출귀몰하는 듯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지금 소방대원이 남자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괜찮다니까요.”
퍽!
남자는 아직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방대원을 향해서 말했다.
“전 잠깐 들렀다 가는 손님한테는 친절한 편이니까. 아까 전엔 이놈들 조심하라고 한 손님들한테 일러주기까지 했다니까요.”
손님들.
소방대원은 눈을 크게 떴다.
‘손님? 누구? 조종사를 말하는 건가?’
그러다가 소방대원은 순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떠올렸다.
‘손님들, 이라고 했지?’
단수가 아닌 복수.
남자가 언급한 것은 한 명이 아닌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헬기 조종사가 아닌 다른 무리에서 곧장 소방대원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잘 가라.”
남자가 칼을 주워 들고 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단원의 머리에 내리찍었다.
팅!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응……?”
칼은 단원의 머리가 아닌 바닥에 내리 찍혔다.
“뭐야, 이건.”
그리고 어느새, 단원은 다른 사람의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