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16화 (116/224)

116. 제주공항이라는 이름의 감옥 (1)

“왜 갑자기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문을 열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려던 고천수는 올라오는 그들을 발견하고 바로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ㅋㅋㅋㅋㅋ 천수 문 열다가 놀란 거 봤냐?

-거의 자지러지던데.

-그런 것치고는 너무 웃기게 해결하지 않음? ㅋㅋㅋ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1젠 후원! - 기적의 쇼맨십!]

“감사합니다, 형님.”

왠지 한도초과가 없어서 살 맛 난 듯한 새로운주인에게 감사를 표하며, 고천수는 층계에 쓰러져 있는 단원들에게 다가갔다.

“또 다 기절했냐.”

무슨 개복치만 있는 건지 단원들은 죄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기절이 아니라 목 꺾였어, 천수야.

-둘 다 네가 죽인 거임.

“아, 죽었어요? 그럼 자연사죠. 송하나처럼 유연했으면 둘 다 살았어요.”

-ㅋㅋㅋㅋ 뭐래, 이 미친 새끼.

“천수야, 괜찮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뒤에서 송하나가 흑구와 함께 나타났다.

고천수는 그녀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시피. 다행히도 잘 처리했다.”

이번에 만난 단원들 중에는 허리춤에 곤봉을 하나 차고 있던 이가 있었다.

고천수는 그 곤봉을 빼내 송하나에게 건네주었다.

“바로 무기 얻었네. 이거라도 써.”

“고마워.”

송하나는 곤봉을 받더니, 거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체인을 단단하게 묶었다.

“아, 한 번도 안 써 보기에는 뭔가 아쉬워서.”

고천수의 시선에 송하나가 민망한 표정으로 답했다.

-명품 체인 곤봉이라니.

-이게 바로 스웩인가.

“흑구야, 컴온.”

고천수는 흑구를 데리고 내려가 1층 문을 살짝 열어 주었다.

“밖에.”

그가 하는 짧은 말에 흑구는 고개를 살짝 내밀고 좌우를 살폈다.

그러고는 다시 안으로 몸을 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없구나.’

문을 더 활짝 연 고천수도 좌우의 살펴보았다.

좁은 복도로 되어 있는 그곳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밖에 아무도 없었네.

-또 있었으면 똑같이 처리.

-여긴 계단이 없잖아, 똘추야.

고천수는 다시 비상계단으로 돌아와 송하나에게 손짓했다.

“가자, 명품 곤봉.”

“난 송하나야.”

대답을 무시한 고천수는 계단을 나와 조심스럽게 비상문 밖 복도를 이동했다.

“아니라니까요!”

그때였다.

갑자기 들린 소란스러운 외침에 고천수가 몸을 흠칫했다.

“뭐지?”

마치 비명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정말 아니에요!”

뭐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복도를 빠져나가자, 넓게 일자로 펼쳐진 1층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한 에스컬레이터 주변, 정확히는 근처에 만들어져 있는 단상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냥 들어왔던 거라고요! 들어오면 안 되는 줄 몰랐습니다!”

그 단상 위에는 고천수에게 익숙한 인물이 하나 자경단에게 붙들린 채로 있었다.

“뭐야, 저건.”

고천수가 놀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홀로 경찰모까지 눌러 쓴 남자 한 명이 단상에서 외쳤다.

“여러분, 또 한 명의 파렴치한 인간이 우리들의 대기소에 기어들어왔습니다.”

남자는 자경단에게 붙들려 있는, 고천수와 함께 헬기를 타고 이곳에 왔었던 소방대원을 가리켰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있음을 알고, 몰래 함께 탑승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 그게 무슨…….”

“단죄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남자는 팔을 활짝 벌리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이 남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동시에 내뱉은 한 마디는 고천수에게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사형!”

***

사형이라니, 잘못 들은 건가.

고천수가 들은 것을 의심하고 있는 사이, 외침은 더 이어졌다.

“사형이 필요합니다!”

“저런 녀석 때문에 7.5사단이 버스를 안 보내는 거라고요!”

“단장님! 바로 죽여 버려야 합니다!”

끔찍할 정도로 비틀린 논리가 들어간 주장.

소방대원은 곧장 사색이 되었다.

“아니야! 아니라니까요! 저는 그냥 어쩌다 여기에 들어온…… 컥!”

발악하듯 소리치던 소방대원이 옆에 있던 자경대원에게 곤봉으로 머리를 맞았다.

추욱.

불쌍한 소방대원은 그대로 힘을 잃고 늘어져 버렸다.

“사형!”

“사형!”

“그대로 죽여 버리자!”

주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죄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팔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워우, 살벌하네.

-고여서 돌아 버렸나?

-무슨 원시 부족도 아니고.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즐거운 듯했지만, 고천수는 그러지 못했다.

‘아, 시바.’

어렸을 때 수학여행을 왔을 때 봤던 기억,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서 경험한 공항들의 내부로 구조를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 절망스러웠다.

‘다 노출돼 있잖아.’

숨기가 어려운 창고형 구조.

천장이 높고, 많은 유동인구를 고려한 듯 내부가 크게 비어 있기 때문에 시야가 대부분 막히는 곳이 없었다.

‘출입구 쪽은…….’

여러 가지 물건들이 쌓여 출입문들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경단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감시를 하고 있기도 했다.

헬모스나 레더빌라는 없었지만.

“천수야, 우리 어디로 나가야 하는 거야?”

그게 문제였다.

고천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쇠를 떠올렸다.

‘적어도 어디에 쓰는지는 알아야 하는데.’

1층 출입문에 사용하면 되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문이 워낙 많은 데다 이렇게 가로막혀 있으면 한 번 직접 맞춰 볼 수도 없었다.

‘그나마 어둡기라도 했으면 나았을 텐데 말이지.’

제주공항은 곳곳에 전등이 들어와 있었다.

예전 수학여행 때 가이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면, 분명 이곳에는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돼 있었다고 했다.

-천수, 나가기가 좀 어렵겠는데?

-잘못하면 갇혀서 그놈 보는 거 아님?

-그놈 아저씨가 이놈~ 할 듯.

-아, 노잼이야. 극혐.

고천수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적어도 지금은 소방대원을 단죄하는 일로 다들 단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라도 하려면 이렇게 소란스러울 때 시도를 해 봐야했다.

‘어?’

그러던 고천수의 눈에 또다시 낯익은 것이 들어왔다.

‘저건……!’

초록색 선이었다.

바로 지척에 있는 웬 안내 부스 안에서, 분기점을 알리는 바로 그 선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게 왜 저기 있지?

-그냥 방사능 아님?

-고천수, 너 설마 저기 가려는 거?

안내부스는 고천수가 지금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몇 걸음 정도만 들키지 않으면 안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다들 단상을 보고 있습니다.”

고천수는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아주 잠깐이면 돼요.”

-야, 잠깐.

-기다리는 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고천수는 당당하게 안내 부스로 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분기점을 통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히는 과정에서 자경단원 한 명이 뭔가 기척을 느낀 듯 시선을 보냈다.

그리 길지 않은 틈이었는데도 무척이나 빠른 눈썰미였다. 부스의 창문으로 그런 자경단원을 몰래 내다보며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 젠장. 이쪽으로 올 것 같은데.’

그렇게 마주치면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해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면을 튼 사이가 아니니 심지어 바로 정체를 들키고 공격받을 가능성이 컸다.

다만 기척을 느낀 건 저 한 명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고천수를 제대로 발견한 건 아니었는지 고개를 갸웃대는 모습이었다.

‘빨리 좀……!’

서둘러야 했다.

분기점을 통과하면 정보든 스킬이든 무조건 무엇 하나는 바로 얻게끔 되어 있었다.

여태까지 그랬다.

분기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상점이 갱신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알림이 바로 튀어나왔다.

“상점?”

스킬이 아니라 상점 쪽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고천수는 바로 상점창을 켜 보았다.

----

※ Item

* 유니폼 배지(25젠) : 가슴에 차는 양방향 화살표 모양의 배지다. 차는 순간 자신의 유니폼이 업그레이드되며, 같은 종류의 유니폼을 입은 대상과 자리를 교환할 수 있다. 단, 자신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대상이어야 하며, 반경 100미터 내에서만 이 효력을 사용할 수 있다. 남은 횟수 10회.

----

“뭐야, 이게.”

좀 비싼 가격이었다.

“25젠이나 내라고?”

달라는 대로 줘 버리면 남는 건 6젠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다가오는 자경단의 걸음을 느끼고, 고천수는 눈을 딱 감고 뒷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망할.’

그는 25젠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템에 다 털어 넣었다.

똑똑.

그때, 코앞까지 찾아온 자경단원이 슬쩍 문을 두드렸다.

“……후.”

고천수는 작게 한숨만 내쉴 뿐 별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의심이 들었던 것일까.

자경단원은 안에서 대답이 들려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덜컥!

자경단원은 결국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응?”

그런 자경단원의 눈에 보인 건 별 게 아니었다.

그냥 공항 안내 책자나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평범한 안내 부스의 모습이었다.

“뭐지.”

자경단원은 고개를 다시 갸웃거렸다.

뭔가 나가는 걸 보지는 못했으니, 안내 부스에 뭔가 있다면 눈에 안 띌 리가 없었다.

“뭐야.”

하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건 자신이 이미 안내부스에 몸을 들여놓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 걸음을 옮겨 문틀을 넘는 과정이 생략된 것처럼.

“스읍.”

자경단원은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표정을 짓고는 이내 뒤돌아섰다.

“쥐였나…….”

결국에 자기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사형이라고 외치는 소리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곧 헛웃음을 짓고는 단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후우.”

그때, 고천수는 어느새 일행 곁으로 복귀한 상태로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네.”

일부러 문과 등지고 있다가 자경단원이 문을 여는 순간 서로의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자경단원이 곧바로 나타난 안내 부스의 내부를 살피며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고천수는 사뿐한 걸음으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던 것이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송하나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표정으로 물음표를 그렸다.

-ㅋㅋㅋㅋㅋ 무슨 마술도 아니고.

-근데 진짜 마술 같았음.

-바꿔치기!

남은 횟수는 9회.

고천수는 이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를 떠올렸다.

‘비싸게 주고 샀지만 효율은 확실해.’

경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면, 전부 위치를 바꿀 수 있었다.

안내 부스에서 빠져나와 적당히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한 고천수는 다시금 밖을 바라보았다.

‘기억에는 있어야 한다고 했지?’

사용하려면 한 번쯤은 얼굴을 봐 놔야 한다는 소리였다.

고천수는 빠르게 자경단원들의 모습을 살폈다.

“자, 단죄의 형태가 결정되었습니다!”

그사이 단상 위에서 단장이라 불렸던 남자는, 자신 아래 몰려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그렇다면 적절한 시점이 필요하겠죠. 공명정대한 법의 집행은 형장의 이슬이 맺는 시간이라고 하는 새벽이 가장 좋을 터. 그때까지 이 남자는 감옥에 가두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더니 단장은 주위에 있던 자경단원들에게 명령했다.

“이행하세요.”

그러자 자경단원들이 소방대원을 끌고 갔다.

“아니야. 난 그냥 들어온…….”

소방대원은 신음과도 같은 중얼거림을 흘리며 이내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기 나갈 수 있는 거임?

-개무서운데.

-벌써 이 정도면 나중에 광신도 에피소드 나오면 진짜 지려버릴 듯.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까지 들었지만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헬기 조종사는 어디 간 거지.’

벌써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이 공항은 미치광이 탈옥수들이 문을 열고 나온 감옥 안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천수야.”

송하나도 불안한 듯 고천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괜찮아.”

그에 고천수는 가슴에 찬 배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직 방법은 있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