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자경단 (3)
제주공항 국내선 3층.
“…….”
고천수는 열려 있는 3층의 출입문 앞에 서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없네.”
밖으로 통하는 건 1층만 있는 게 아니었다.
3층 출입문 밖도 고가도로로 연결돼 있던 것이다.
“천수야, 이건…….”
“그래,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몰랐지.”
옆에서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송하나를 보며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 와 봤던 탓에 제주공항의 구조가 다 기억나지는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송하나, 너도 몰랐던 거야?”
“어. 비행기 타고 도착하면 1층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으니까. 나도 구조까지 다 기억하고 다니진 않아서…….”
쭈뼛거리는 답하는 송하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고천수는 출입문 손잡이를 잡았다.
‘휴 그놈은 왜 여기에 대해서 말을 안 해 줬지?’
그렇게 약간의 의문을 가지면서 문을 열고 나갔을 때였다.
“응……?”
조금 걸어가자 안쪽에서 봤을 때는 밖의 기둥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다.
“뭐지?”
제주공항의 맞은편의 건물로 이어지는, 그러니까 고천수가 서 있는 고가도로와는 수직으로 연결되어 있던 길이 끊겨 있었다.
-무너져 있네.
-몬스터라도 지나갔나.
그건 아닌 듯했다.
‘일부러 끊어낸 흔적 같은데.’
그냥 무너졌다면 완만히 무너져 있는 곳도 있을 법한데,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잔해들이 너무 산산조각 나 있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이었다.
‘7.5사단의 짓인가?’
길이 끊긴 것만으로 모자라 위로 뛰어내릴 만했을 것 같은 구조물들은 죄다 흔적만 남기고 부서져 있었다.
“천수야, 여기 뭔가 이상한 꽃들이 붙어 있네?”
그때, 함께 끊긴 길 쪽을 살피던 송하나가 절단면에 피어 있는 붉은 꽃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야!”
고천수는 얼른 그 손을 붙잡아 당겼다.
쉬악!
순간, 꽃의 줄기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며 튀어올랐다.
“뭐, 뭣……!”
다행히 송하나가 꽃에 물리는 일은 없었다.
-와, 꽃에 이빨 달린 거 봄?
-레더빌라네.
-크면 좆됨. 활주로에 있던 것들처럼.
고천수는 시청자의 말에 활주로를 둘러싸고 있던 꽃들을 떠올렸다.
‘그게 전부 이 레더빌라였다고?’
심지어 멀리서도 보였으니 그건 성체였다.
꿀꺽.
고천수는 송하나를 뒤로 물리며 경고했다.
“뭐든 함부로 손대려고 하지 마. 한 번도 본 적 없는 꽃이면 더더욱.”
“아, 알았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송하나를 보고 고천수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형님들, 레더빌라는 얼마나 위험한 거죠?”
-그냥 보는 그대로의 식인 식물임.
-크기에 따라서 마비가 올 수도 있어서 건들지는 않길 바람.
-크기 크면 마비고 뭐고 그냥 씹어 버리니까 조심하고.
조금만 더 컸어도 큰일 날 뻔했다는 소리였다.
“후.”
고천수는 고가도로의 난간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수많은 레더빌라들이 붙어 있었다.
‘아무데서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건가.’
매우 위험한 종이었다.
왈!
짖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 고천수의 눈에 저 멀리에 있는 흑구가 보였다.
“뭐야, 길이 있나?”
고가도로라는 건 결국 경사가 낮아지는 곳도 있다는 뜻이었다.
“흑구야, 거기 길이…….”
기대심을 갖고 흑구가 있는 쪽으로 향하던 고천수는 얼마 이동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었다.
“망할.”
흑구가 있는 쪽도 도로가 끊겨 있었다.
반대로 달려가 확인해 보니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3층은 빠져나갈 곳 없이 그대로 고립되어 있었다.
“여기로는 못 가.”
다시 들어가야 했다.
‘참, 뭣 같게도 만들어 놨네.’
이래서야 무조건 밑으로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밑에는 제발 헬모스나 레더빌라가 없길 바랄 뿐이었다.
“다 돌아와.”
고천수는 일행에게 손짓했다.
“4층으로 간다.”
***
얼마 뒤.
4층에 올라갔다가 온 고천수는 다시 3층으로 내려와 한 항공사 라운지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설마 4층에 아무것도 없을 줄이야.
-사람도 없고.
-괜한 헛수고만 했네.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온리베어도, 보급함도 없던 것이다.
‘제기랄.’
불만만 갖는 대신 혹시 뭐라도 있나 싶어 4층에 있는 식당들까지 다 돌았지만, 유의미한 것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마치 지정된 맵 밖을 도는 것처럼, 이 상황에는 필요 없는 공간뿐이었다.
‘아니, 필요 없다까지는 아니지.’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100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이곳을 다 휩쓸지는 않은 듯했다. 3, 4층에는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있었다.
특히나 이 3층 라운지에 있는 것들은…….
“흠.”
고천수는 조금 전에 내린 커피를 마시며 살짝 탄식을 내뱉었다.
“여길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분이었군요.”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첫 라운지 이용에 대한 감상을 내뱉는 고천수를 보며 시청자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이 상황에서 여유라니 대단하네.
-찾은 게 없으면 빨리 내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님?
-ㅋㅋㅋㅋ 놔둬. 이런 데가 처음이라잖아.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 타 본 비행기는 저가 항공사의 이코노미석뿐이었고, 그마저도 수학여행 때나 경험해 봤을 뿐이었다.
특별석 전용의 라운지에 들어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잠깐의 여유 정도는 괜찮잖아요, 형님들.”
호기롭게 위로 올라간 것에 비해서 건진 게 없어서 심력 소모가 컸다.
잠깐이라도 기력 충전이 필요했다.
“자.”
송하나가 어디선가 들고 온 에너지바를 내밀었다.
“뭐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을 거 아냐.”
“그래, 고맙다.”
생각이 많아져서 몸을 돌보지 못하는 건 나쁜 일이었다.
고천수는 바로 포장을 뜯고 에너지바를 입에 밀어넣고 우물거렸다.
‘오래 휴식을 취할 여유는 없다.’
남아 있는 시설만 생각하면 고천수도 이곳에서 시간을 때울 수는 있었다.
실제로 휴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잘 숨어만 있는다면 며칠은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며칠이라.’
고천수는 가방에 챙겨 넣은 손전등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쉐도우에 대해서도 기억했다.
‘그 망할 자식은 아직 죽은 게 아니야.’
잠시 떠나 있는 것뿐이었다.
조건만 갖춰지면 다시 나타날 것이 확실했다.
“형님들, 제가 명서 초등학교에 있던 시간이 어느 정도 되죠?”
-그건 왜.
-네가 짱박혀 있던 것만 따지면 한 2, 3일 아니었나?
-왜. 갑자기 쉐도우라도 생각난 거임? ㅋㅋㅋ
“네.”
숨길 건 없었다.
“손전등 보니까 그놈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어서 말이죠.”
시청자의 말대로 한 2, 3일 정도는 있었을 터였다.
좀 여유를 가진다면, 3일이 되기 전에는 이곳에서 나가는 게 제일 좋았다.
-그 녀석 무섭긴 무서웠지.
-혹시 여기서 버텨 보려는 거면, 난 잠깐 동안은 찬성함.
-네가 재정비할 시간 정도는 충분할 듯.
재정비라.
아직 1층 상황이 어떤지 정보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결정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띠링! 새로운주인 님이 1젠 후원! -난 반대니까 내려가셈.]
게다가 그러한 결정을 원치 않는 시청자까지 있었다.
-쟤는 반대도 돈 주면서 반대하네.
-한도초과 빠지니까 슥 돌아오는 거 보소. ㅋㅋㅋ
-빈집이라 이거지. ㅋㅋ
고천수의 입장에서는 후원과 함께 의견을 내는 건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그도 그냥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주인 님. 감사합니다.”
고천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새로운주인 님의 말대로 내려가 보긴 할 겁니다.”
물론 서로의 입장 차가 있다고는 해도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은 한도초과가 제격이었건만.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복귀할 때가 시간이 아니라 3일 뒤라고 규정된 걸 보면, 한도초과가 돌아오는 것은 72시간보다는 빠를 수도 있었다.
그냥 다음 날 0시가 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계산하는 방식이면 말이다.
“하나야, 준비 마쳤다. 다시 출발하자.”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라운지 밖으로 향하자니, 송하나가 흑구와 함께 곁으로 따라붙으며 물었다.
“어디 가게?”
“충전은 다 했으니까 내려가야지.”
그 말에 송하나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괜찮을까? 다들 속아야 할 텐데.”
“안 속아도 별 수 있나.”
경찰복을 빼앗아 입은 것은 잠시 간의 혼란을 노리기 위한 것일 뿐, 완벽한 보호망은 절대 아니었다.
고천수는 송하나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2층에는 아직 새로운 정찰 인원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였다.
“형님들, 역시 한 가지는 확실하네요.”
고천수는 확신을 가진 채로 채팅방의 인원에게 말했다.
“자경단 녀석들, 머릿수가 부족한 거.”
인원에 여유가 있었다면 자경단은 2~4층도 다 뒤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1층을 막는 데 급급해 보였다.
이 공간을 다 메울 인력이 없는 것이었다.
“하나야.”
이름을 부르자 송하나가 몸을 움찔하더니 고천수를 바라보았다.
“왜?”
“아니, 지금부터 내려갈 거긴 한데, 긴장은 풀어.”
자기도 모르게 체인을 쥔 손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면으로 부딪힐 게 아니라 몰래 나갈 수 있는 곳만 찾을 거야. 1층 상황이 어떤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야. 알았어?”
고천수는 결코 전투력이 꿇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수의 사람과 싸우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뭣보다 난 7.5사단의 본거지를 빨리 찾아야 해.’
처음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 고천수는 그저 모든 시련을 견뎌내며 생존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7.5사단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사건에 끼어들었다. 그건 이 7.5사단에 뭔가 고천수가 인지하고 진행해야 될 스토리 라인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7.5사단이 단순 맥거핀은 아니라는 거지.’
아직 고천수는 7.5사단의 실체에 접근하는 수준의 과정밖에 거치지 못했다.
스스로 이 게임에서 얼마만큼의 진도를 빼고 있는지를 가늠해 보려면, 그는 서둘러 7.5사단의 몸체를 발견해 내야만 했다.
“알았어. 조심할게.”
송하나가 침을 꼴깍 삼키며 답했다.
여전히 긴장은 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가자.”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
고천수는 일행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
제주공항 1층.
한 비상계단에 경찰복을 입은 남자 자경단원 둘이 들어섰다.
“어, 거참. 교대 한번 늦게 하네.”
그들은 2층에 올라간 인원 둘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혀를 찼다.
“그러게 말이야. 면세점에서 쇼핑이라도 하고 있나?”
“그렇게 놀고 있다간 대장님한테 뒈질걸.”
둘은 천천히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말했다.
“참, 외부인 잡았다며?”
“어, 무슨 소방대원이라고 하던데.”
“한 명?”
“그것밖에 없다고 하대. 뭐, 하늘에서 폭발음 씨게 한 번 난 걸 보면 다른 놈들은 죄다 공중에서 터진 걸지도.”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비상계단을 잔뜩 울렸다.
쾅!
그때였다.
2층으로 통하는 비상문이 갑자기 닫혀 버렸다.
“?”
“뭐지?”
단원들은 순간 놀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방금?”
“바람 때문인가?”
하지만 이곳은 공항 내부.
바람 때문에 열려 있는 문이 닫힐 일은 없었다.
“먼저 올라갔던 녀석들이 제대로 고정 안 해 둔 건가.”
“그, 그런가.”
꿀꺽.
단원들은 뭔지 모를 위화감에 조심스럽게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다만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문이 원래 열려 있던 것이 아니라, 방금 전에 열렸다가 닫힌 것임을.
삐걱.
그렇게 그 사실을 모르는 단원 중 한 명이 문고리를 잡아 돌릴 때였다.
콰앙!
문이 갑자기 열리며 문고리를 잡았던 단원의 머리에 직격했다.
“크악!”
충격을 받은 단원이 주춤대며 뒤의 동료에게 부딪혔다.
“다들 피해! 얼른!”
그와 동시에 누군가 들이닥치며 외치더니, 그들을 붙잡아 아래쪽 계단으로 등 떠밀었다.
“뭐, 뭐야.”
“이게 무슨……!”
그들은 당황했지만 들이닥친 누군가가 경찰복을 입고 있어 순간 제대로 된 반응을 못 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이 그들의 운명을 갈랐다.
턱.
뭔가에 다리가 걸린 그들은 곧바로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큭! 크악!”
“컥!”
쿠당탕!
요란하게 계단을 굴러 층계에 멈춰선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발로 그들의 다리를 걸었던 장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갑자기 만나서 존나 깜짝 놀랐네.”
장본인, 고천수는 이제야 그들을 만난 감상을 내뱉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