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13화 (113/224)

113. 자경단 (1)

‘두 개?’

고천수는 살짝 탄식을 뱉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까지 한꺼번에 두 개가 나왔던 일이 있던가?

-천수 당황한 것 같은데?

-ㅋㅋㅋㅋ 두 개 나오니까 후달리남.

-왜? 젠도 57젠이나 있자너.

고천수는 두 보급함을 살펴보았다.

‘둘 다 방패?’

가격으로 따지면 하나는 6젠, 다른 하나는 23젠이었다.

합하면 29젠이나 먹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합하면 반 이상 날라가네.

-그럼 그냥 23젠짜리만?

-글쎄. ㅋㅋㅋㅋ

고천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흘렸다.

“하나만 있어도 고민될 때가 많은데 말이죠.”

게다가 정보에 따르면 이 공항에는 보급함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고작 이곳에서 젠을 다 써 버리면 뒤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 망할.’

그래도 도끼 하나 나왔던 거에 비하면 젠이 덜 들기는 했다.

수십 젠짜리가 지금만 있던 것도 아닌데 괜히 부담을 느끼는 걸 수도 있었다.

‘6젠…….’

여태까지 열어 왔던 보급함을 통해서 대략 어느 정도의 유용성을 가진 건지는 느껴졌다.

“이거, 열겠습니다.”

5젠짜리라면, 손전등이 있었다.

그와 비슷하거나 살짝 더 좋은 정도의 유용성이라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뭐……!”

하지만 안에 들어있던 것은, 고천수의 예상을 뛰어넘어 버렸다.

-뭐야?

-뭔데 그래!

-앗. 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

내부를 확인한 고천수는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왜 지금 이게 나온 거예요?”

-ㅋㅋㅋㅋ

-흥분.

“예? 웃지 말고요. 왜 나온 거냐고요.”

-아니, 미친놈아. ㅋㅋ 그냥 나온 거겠지.

안에 들어있던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바로 손전등이었다.

“이게 왜 또 나온 거야.”

쉐도우를 상대할 때 썼던 5젠짜리 손전등.

여기까지 오면서 당연히 소실해 버렸던 물건.

“하.”

물론 저번에 사용했을 때에는 일부러 쉐도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용한 것이긴 했다.

이번에도 상시 위협에 따른 물자 보충 정도로 보면 되겠지만, 고천수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PTSD 엄청나네.’

따돌리긴 했어도 쉐도우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놈인지를 알고 있으니까.

“후우.”

일단 나왔으니 챙겨야 했다.

고천수는 근처 진열장에 있던 백팩 하나를 들고 와 손전등을 넣었다.

“이제 문제는…….”

나머지 하나였다.

‘23젠.’

결코 적지 않은 가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높지도 않았다.

‘20젠 정도라면 흑구에게 먹였던 음식 정도.’

윙슈트나 기타 다른 아이템들의 가격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게 나올 리는 없어 보였다.

-지금 보급함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문제네.

-몇 개 더 찾아보고 상자깡 하는 게 좋지 않나?

-그게 쉽겠니?

고민이 좀 되긴 했지만 이걸 열어도 젠이 남기는 했다. 고천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엽니다, 형님들.”

어차피 지금까지 쓸모없는 게 나온 적은 없었다.

활용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분명 어딘가에서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덜컥!

그리고 나온 것은……!

“어?”

고천수는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고 잠시 탄식을 흘렸다.

“어…….”

안에 있던 것은 열쇠였다.

-ㅋㅋㅋㅋㅋ

-어디다 쓰는 거?

-천수 멘붕한 거 봐라.

“시발 대박!”

하지만 고천수가 보인 반응은 지금 올라온 시청자들의 채팅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열쇠라고!?”

얼른 열쇠를 꺼내 본 고천수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형님들, 보세요! 열쇱니다!”

-?????

-뭐야.

-어휴, 여기 겜알못들만 모였나. 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도 이것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나뉘었다.

“아니, 모르는 분들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고천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열쇠잖아요.”

-그게 왜.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다른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해 주지 않아 고천수는 친히 이것이 뭔지 알려 주었다.

“출구요.”

공포 재난 게임에서 열쇠는 다른 아이템보다 중요했다.

“꼭 필요한 게 숨겨져 있는 아이템이 있는 방의 문이나 밖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 주죠. 빠져나가야 하는 장소에 이런 아이템이 있으면 무조건 낼름 주워들고 봐야 합니다.”

[띠링! 니목에혓바닥 님이 1젠 후원! - 낼름.]

-네가 생각했던 그런 게 아니면?

-맞아. 아니라면?

“이미 몇 분은 제 생각이 맞는 쪽으로 반응을 해 주신 것 같은데요? 낼름 님 감사합니다.”

채팅창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고천수는 곧 표정을 구겼다.

“이게 있는 게 꼭 좋은 건 아닐 수도요.”

여기서 쉽게 나갈 수 있다면 나올 아이템은 아니었다.

해당 구간의 난이도를 알려 주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살짝 기분이 찝찝해지는 건 있었다.

“그럼…….”

“꺄악!”

갑자기 비명 소리가 끼어들었다.

“응?”

뒤를 돌아본 고천수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야야야!”

흑구가 뒤에 있었다.

“하나랑 같이 있었어야지!”

낮게 윽박지른 고천수는 빠르게 소리가 난 쪽으로 뛰어갔다.

멈칫.

그러고는 뭔가를 발견하고 근처 진열장 옆에 숨었다.

“놔아아!”

송하나는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저건.’

두 명의 남자.

제복을 입고 있는 그들은 송하나를 붙잡고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경찰?’

공항 내에 존재하는 자치 경찰로 보였다. 고천수는 곁으로 따라온 흑구에게 시선을 향했다.

“야, 흑구.”

상황을 보니 송하나를 버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고천수는 흑구의 도움을 받기 위해 눈짓했다.

슥.

그러자 흑구가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삐졌나 본데.

-그러게 왜 소리지름. ㅋㅋㅋㅋㅋ

“아오.”

고천수는 성질을 내려다가 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형이 잘못했다. 나중에 먹을 거 더 챙겨주면 되잖아.”

그러자 내려가 있던 흑구의 꼬리가 다시 위로 살랑였다.

‘거 참, 알기도 쉽네.’

어쨌거나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면 할 일은 하나였다.

“네가 오른쪽, 난 왼쪽. 오케이?”

고천수의 말에 흑구가 살짝 다리를 굽혔다 일어났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 더 큰 긍정의 표시였다.

“자. 하나, 둘, 셋!”

손가락을 차례로 편 뒤 고천수는 바로 도끼를 치켜들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야아아아아아!”

콱!

날의 반대편인 도끼뿔이 왼쪽 경찰의 머리를 찍었다.

“아?”

쓰러지는 동료를 보며 오른쪽이 탄식했다.

“뭐, 뭐야, 너는!”

대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곧 있으면 흑구가…….

“응?”

고천수는 흑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표정을 구겼다.

“뭐야, 이 자식. 어디 갔어.”

-삐져서 도망 감. ㅋㅋㅋㅋ

-호감도 수치도 잘 고려했어야지.

애완동물 호감도라니, 기가 차서 고천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뭐냐고, 너!”

남은 경찰은 송하나의 목을 세게 둘러 잡은 채 소리쳤다.

“이년 동료냐? 아, 그래. 네 얼굴은 본 적이 없어! 밖에서 온 외부인이겠지!”

“외부인?”

고천수는 잠깐 난색을 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외부인인 건 맞겠죠.”

“그래, 망할 외부인 자식들! 멋대로 공항에 쳐 기어 들어오는 예의도 없는 놈들!”

“제주도가 이렇게 민심이 박했나요?”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학여행 왔을 때는 되게 친절했는데.”

“닥쳐!”

경찰은 이를 갈며 외쳤다.

“하늘에서 다 터진 줄 알았더니만 바퀴벌레처럼 살아 들어와서는! 내가 순찰 도는 곳으로 왔으니, 그냥 즉결 처분해 버리겠어!”

“오우.”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누가 누굴 즉결 처분한다는 건지.”

이 정도면 휴가 얘기했던 자경단의 내용보다도 심한 수준인 듯했다.

“놓으시죠.”

고천수는 도끼로 경찰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세게 목을 조르는 것 같은데.”

송하나는 벌써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팍!

그때였다.

송하나가 경찰의 발등을 밟았다.

“끄악!”

경찰이 주춤거리며 몸을 숙이자, 송하나는 그대로 팔꿈치를 휘둘러 경찰의 턱에 적중시켰다.

“큭!”

클린히트.

턱을 쥐며 물러나는 경찰에게, 몸을 돌린 송하나가 발차기로 사타구니까지 올려 차 버렸다.

“크아악!”

조금 전보다 더 큰 비명을 뱉으며 경찰이 쓰러졌다.

으르르르!

그러자 어디선가 흑구가 뛰쳐나와 그런 경찰을 물어뜯었다.

“끅! 끄아! 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뒹구는 경찰을 보며 고천수는 입을 벌렸다.

“뭐야.”

이제야 튀어나온 흑구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에 고천수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흑구도 늘었네.

-천수가 주인이어서 그럼.

-ㅋㅋㅋㅋㅋ 삐비빅! 동기화되었습니다!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올리는 흑구에게 걸어간 고천수가 말했다.

“쨔샤, 그만해.”

한 명쯤은 남겨 둬야 질문이란 걸 할 수 있었다.

으르르…….

하지만 흑구가 물러섰을 때, 고천수는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경찰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너 진짜 너무 폭력적이구나?”

-자기는 한 방에 보내 버렸으면서. ㅋㅋㅋ

-뭐, 고통을 덜 줬다고 한다면 이해한다만.

-경찰을 그렇게 보내면 어떡해.

고천수는 채팅창을 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형님, 아직 부족하시네요.”

쓰러져 있는 경찰들을 가리킨 고천수가 말했다.

“딱 봐도 옷이 안 맞잖아요.”

-옷ㅋㅋㅋㅋㅋ

-스읍. 왠지 허영웅 생각날라 하네.

-이유가 좀. ㅋㅋㅋ

“그것 말고도 딱 봐도 이제 막 20대가 된 놈들인데 옷 좀 보세요.”

둘 다 경감에 해당하는 자치 경찰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말이 됩니까?”

실제로는 나이를 더 먹었고, 최연소에 가까운 경감이 나왔다고 해도 그게 두 명이나 동시에 함께 있을 확률은 희박했다.

“그냥 주워 입은 거예요.”

경찰복에 적혀 있는 이름표도 해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역시 본인의 옷일 확률이 적었다.

“야.”

고천수는 피투성이로 신음을 흘리고 있는 경찰, 아니, 정체 모를 남자에게 물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으어아…….”

“말 돌리지 말고, 인마.”

-ㅋㅋㅋㅋ 말 못 하는 거 아님?

-입술이 나갔는디.

뭔가 묻기에는 남자의 상태가 별로 안 좋았다.

그럼에도 고천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야, 너. 누구야, 대체.”

“자, 자…….”

“뭐라고?”

“자경…….”

끝까지 다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뭐. 너 자경단이라고?”

“너, 너흰 끝장 날…… 끅.”

남자는 채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기절했다.

고천수는 그런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하.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네, 근성이. 이런 걸로 기절을 다 하고.”

-ㅋㅋㅋㅋ 누가 보면 다른 나이대인 줄.

-얼마나 차이 난다고. ㅋㅋ

-얘, 넘어질 때 좀 세게 넘어졌었음. 머리 박아서 이런 듯.

이유가 뭐가 됐든지 간에 기절한 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물어볼 놈들이 없어졌네.”

고천수는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뭔지는 알았지만.”

휴의 말대로 이곳에는 자경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멋대로 경찰복을 주워 입고 자경단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형태가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진짜 뭐가 이렇게 돼 있는 건지.’

하늘에서 폭발했던 비행기와 헬기들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오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배타적인 자경단이 있는 것만 봐도, 그들이 바라던 안전은 여기에 없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어떤 놈이야, 대체.’

사람들을 여기로 부른 놈이 있을 터였다.

“콜록! 콜록!”

아직도 기침을 하며 목을 매만지고 있는 송하나를 보고 고천수가 물었다.

“야. 괜찮아?”

“콜록. 어, 이, 이제 괜찮아.”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큰일 날 뻔했네. 고마워.”

“고맙기는.”

송하나는 붙잡힌 상태에서도 제법 잘 대응한 편이었다.

다른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고 구해야 할 정도로 답도 없는 인질이었다면, 고천수도 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콜록.”

그때, 작은 기침 소리가 또 들려왔다.

다만 이번에는 송하나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라. 눈치 없이 끼어드는 소리가 있네?”

고천수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두 남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딱 할 일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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