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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12화 (112/224)

112. 노숙자 (2)

“밖? 무슨 밖?”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공항 밖 말이야?”

“…….”

고천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야, 이 새끼.’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말에 고천수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너 괴물 본 적 없어?”

“괴물?”

“좀비든 뭐든 네가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무거나.”

“없는데…… 컥!”

고천수는 발로 남자의 목을 세게 짓눌렀다.

“헛소리.”

그러고 발을 치운 고천수는 쭈그려 앉아 남자를 노려보았다.

“괴물을 만난 적이 없다고? 진심으로?”

“지, 진짜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콜록! 대체 밖에 뭐가 있길래 다들 이 난리인 거야!”

억울해하는 듯한 남자의 외침에 고천수가 눈썹을 움찔했다.

“다들 이 난리?”

“끄, 끅! 바, 발 좀.”

무심코 힘이 더 들어간 듯했다.

고천수가 발을 치워 주자, 남자는 목을 부여잡고 몇 번이나 더 기침을 내뱉었다.

“이 공항 밖에도 뭐가 있는 건가?”

진정할 때쯤 고천수가 질문하자 남자가 힘겹게 숨을 뱉으며 답했다.

“모, 몰라. 난 나가 본 적 없으니까. 근데 다들 그랬어.”

“다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말이야.”

그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1층이랑 국내선 전 층에 근처 지역이나 비행기 타고 들어온 피난민들이 가득해.”

“흠.”

“다, 다들 어떤 일이 있어서 여기 온 건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무슨 일인지 모를 리가 있을까.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었다.

“네가 언급했잖아. 다들 괴물들 때문에 난리라고. 근데 마치 넌 하나도 본 적 없는 듯이 얘기하네?”

“나 진짜 본 게 없다니깐. 난 나간 적이 없어서 몰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처럼 괴물 얘기를 하는 건 들었지만, 다들 워낙 중구난방이어서 제대로 알게 된 것도 없고.”

“…….”

참으로 터무니없는 얘기에 고천수는 가만히 시선만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텅 빈 활주로를 비추고 있는 창문이 보였다.

‘이 공항에서 빠져나간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대기 중인 비행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분명 이 공항에도 무슨 일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나 비정상적일 정도로 활주로가 깨끗할 일이 없을 테니까.

-어지간히 수상하네.

-그냥 어벙이 아님?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갈 길 가자.

시청자들의 의견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은 비행기가 끊겨서 그냥 머물고 있다는 멍청한 자유 여행객과 그런 식으로라도 놀아날 시간이 없었다.

“잠시 내려가 봐야겠어.”

그렇게 송하나에게 얘기하는 고천수를 보며,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내려가려고?”

“그래.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가서 물어볼 것도 많을 테니까.”

다음 행선지에 대한 단서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조심해서 접근하면 뭐라도 캐낼 수 있을 터였다.

“물어볼 게 많다니…… 나한텐 겨우 이거 물어보고 끝이면서?”

남자는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다른 질문 좀 던져 보고 싶다고 그냥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될 텐데.”

“넌 맞는 게 취미인가.”

“아, 아니, 바로 내려가지는 말라고 하는 말이야.”

손을 내저은 남자가 바로 이유를 설명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이상해. 무서워.”

“무섭다고?”

“그래, 당신도 무섭기는 하지만.”

고천수가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냥 무섭다고! 그러니까 그냥 내려가지 말라는 얘기야!”

뭔지는 몰라도 경고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고천수는 그 말을 신뢰할 수는 없었다.

-얘 좀 이상한데.

-방금 전까지 자기 때리던 고천수한테 이런 경고를 한다?

-빼박 아님?

시청자들은 의심을 보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남자는 계속 말했다.

“걱정 마. 처음 보는 당신 걱정해서 하는 얘기는 아니야. 나 때문이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괜히 벌집 쑤셔서 여기까지 올라오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지.”

벌집을 쑤신다.

그 표현에 고천수는 남자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내가 내려가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너한테까지 관심을 가지게 될 거라고?”

“맞아.”

“너 여기 환승하러 왔다가 갇힌 거면 어디 갔다 올 일도 없지 않았냐? 이 위에 있다는 국제선 3층이면 몰라도.”

고천수는 의문스러움에 물었다.

“그런데 내려갔다 왔다고?”

“환승 구역에만 있기엔 답답했어. 자고 일어났더니 직원도 없고 비행기도 떠나갔고. 그래서 말리는 사람도 없길래 다른 층도 좀 돌아다녔다가 온 거야.”

남자는 그러면서 고천수의 팔을 붙잡았다.

“아무튼 내려가지 마. 자경단인지 뭔지 아주 악질이야.”

“자경단?”

“그래.”

남자는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7.5사단이라는 놈들 때문에 그딴 게 만들어졌어.”

“7.5사단?”

그 단어에 고천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뭐야! 뭔지 얼른 말해 봐!”

“뭐, 뭔데. 왜 그렇게 흥분해. 나도 아는 건 적어. 그냥 7.5사단이라는 놈들이 여기서 서로 통제 잘하고 있으면 안전지대로 데려가 준다고 했대. 그래서 자경단이라는 게 생긴 거고.”

고천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대충 무슨 얘기인지는 알 듯했다.

“근데 그 7.5사단이 안 왔어. 이후는 어떻게 됐는지 알겠지?”

힘을 얻은 집단은 고여 있으면 쉽게 변질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직 고천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고직 여기서 처음 만난 사람의 말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곧장 받아 줄 이유는 없었다.

고천수는 이제 송하나를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응? 나?”

자신에게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송하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건 당연한 거고. 이 사람 말에 대한 더 구체적인 의견 말이야.”

“음.”

송하나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신뢰가 필요한 거면 일단 기본적인 거라도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아.”

“뭘?”

“나도 여러 나라를 다녀봐서 여행 상품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이거든.”

송하나는 고천수 옆에 앉아 남자에게 물었다.

“환승 중에 못 하고 여기 있는 거라고 했죠?”

“어? 어. 맞아.”

“환승할 때 타고 갈 비행기는 동일한 항공사였나요?”

그 질문에 남자는 망설일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일한 항공사였어.”

“그럼 여권이랑 보딩패스 줘 보세요.”

송하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일한 항공사였으면 탑승권까지 미리 쥐여 줬을 거 아니에요. 여권이랑 같이 줘 보라고요.”

“화, 확인해 보려는 건가? 그럼 여권만 줘도 되겠지?”

“아뇨, 두 개 다.”

송하나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여권만 가지고는 당신이 한 말이 다 맞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고천수는 살짝 침음했다.

‘은근히 잘 묻네.’

자기가 알고 있는 분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고천수는 송하나가 요구한 것들을 꺼내려고 자신의 품을 뒤적거리는 남자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으면서.’

이미 몸 수색은 흑구가 다 했다.

무기를 찾으라는 지시긴 했지만, 뭘 무기로 갖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콧등에 걸리는 게 있었다면 흑구가 다 눈치를 줬을 것이었다.

“아!”

남자는 뭔가 생각난 듯 외쳤다.

“지금 여기 없고 입국 심사장 쪽에 있어! 갖고 돌아다니다가 잃어버릴까 봐 그 안에 넣어 둬서…….”

그러면서 남자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흑구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괜찮아. 그냥 한번 따라가 봐.”

고천수의 고갯짓에 흑구가 이빨을 집어넣었다.

“고, 고마워.”

감사 인사를 전한 남자는 곧장 입국 심사장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흑구가 마치 그를 감시하듯 옆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냐?

-맞아. 그냥 저 남자는 두고 다른 데 가는 게 나을지도?

-여기선 이상한 놈이 랜덤으로 나와서 우리도 딱히 못 도와줌.

“도와달라고 시위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정보가 모자랐다.

‘얻을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 얻어 봐야지.’

남자가 수상하긴 하다고 해도, 털어놓는 정보가 진짜일 가능성만 있다면 그냥 넘겨버리기엔 신경 쓰였다.

지금 이곳은 제주공항의 국제선이 있는 곳.

좀 더 많은 시설이 있는 국내선 쪽으로 넘어가면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었다.

너무 조심스럽더라도,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준비를 좀 더 미리부터 꼼꼼히 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

남자는 곧 흑구와 함께 돌아왔다.

“가져왔어!”

남자는 손에 여권과 탑승 티켓인 보딩패스를 들고 있었다.

“줘 보세요.”

송하나가 그것을 받아들고 빠르게 살펴보았다.

“어때.”

“나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단은 본인이 말한 대로인 거 같아. 여권에 찍힌 도장을 보면 영국에서 온 것도 맞고. 탑승권이랑 이름도 일치해. 날짜도 좀 됐어.”

“좋아.”

고천수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널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는 말 정도는 들어봐도 될 것 같아졌어.”

“뭐? 안 믿는다니. 다 보여 줬…….”

“꼭 믿어야 할 건 없잖아.”

참고만 되어도 그만이었다.

“휴 하워드 홈스.”

“!”

“역시 영어 이름이네.”

고천수는 이름을 보고 여권을 돌려주며 제안했다.

“같이 국내선 쪽으로 넘어가자.”

“뭐?”

“같이 넘어가자고.”

어차피 고천수는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안내자가 필요한데, 너 여기서 좀 돌아다녔다며. 길 안내는 가능할 거 아냐.”

“아니, 뭐…….”

휴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아 봤자 잘 알지는 못해서. 그리고 말했잖아.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아.”

“그래?”

고천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뭐, 할 수 없지. 하나야.”

“응?”

“가자. 흑구 데리고.”

송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가? 위험한 거 아냐?”

“어차피 여기서 지지부진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

고천수는 걸음을 옮기며 휴에게 말했다.

“충고 고마웠다. 조심해서 갈게.”

“…….”

“바이.”

말없는 휴를 뒤로하고 고천수는 송하나와 함께 국내선 건물로 통하는 길로 향했다.

“천수야, 괜찮은 거 맞아?”

“…….”

이번에는 고천수가 말문을 닫았다.

그는 국내선 건물에 다다랐을 때에야, 그녀에게 답했다.

“괜찮을 거다. 아마도.”

그러면서 고천수는 입구를 통해 천천히 국내선 건물로 들어갔다.

-이쪽도 한산하네. 헬모스는 잔뜩 있지만.

-사람들 보임?

-아직.

감시자나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득하다고 하더니.’

고천수는 일단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응?”

그러다가 면세점에 다다랐을 때, 고천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건…….”

온리베어였다.

녀석이 안쪽에서 고천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야?”

송하나의 눈에는 온리베어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잠시만.”

고천수는 서둘러 면세점 안으로 들어갔다.

“야, 어디 갔어.”

빼꼼.

그러자 카운터 안쪽으로 사라졌던 온리베어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어디야. 안내해.”

-ㅋㅋㅋㅋㅋ 시박.

-이젠 그냥 자연스럽구나?

도도도.

온리베어는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면세점 구석까지 걸어 들어갔다.

고천수는 온리베어를 차분히 따라갔다.

‘믿고 따라가도 되는 건 이놈뿐이지.’

처음 봤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보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게 바로 온리베어였다.

적어도 온리베어는 고천수를 속이거나 놀리려고 하지 않았다.

정직하게 안내 역할을 수행할 뿐이었다.

‘문제는 자금.’

다만 온리베어가 나타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의 진행에 있어 필요한 물건을 중개해 주는 건 맞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고천수는 그저 공항에서 찾은 물건이 처음부터 너무 비싼 가격으로 책정돼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멈칫.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았을 때였다.

고천수는 온리베어가 갑자기 사라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뭐야, 이거.”

눈앞에 놓인 상황을 보고 고천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두 개의 보급함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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