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노숙자 (1)
제주공항.
외부인이 제주도에 올 때, 보통 가장 처음 발을 딛게 되는 곳.
두두두두두두……두!
고천수 일행이 탄 헬기가 마침내 그 공항의 활주로 한쪽에 내려섰다.
“도착했네요!”
소방대원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만 도착해 버렸지만…….”
그는 마치 답을 바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지만, 고천수는 개의치 않았다.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하냐.’
발광하는 개라니, 누가 봐도 평범한 애완동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소방대원은 흑구를 몬스터로 의심하는 듯했다.
“저희는 따로 가겠습니다. 먼저 가세요.”
고천수는 소방대원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궁금한 것이 많은 듯했지만, 그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 그럼…….”
소방대원은 눈치를 보더니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보내도 되는 거임?
-되게 위축된 것 같은데.
-사람 구한 거치고는 겁이 많아 보임.
‘겁이 많은 게 아니야.’
고천수는 멀어져 가는 소방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찝찝한 거겠지.’
뭐가 됐든지 간에 헬기들과 비행기들이 엉키게 만든 건 고천수였다.
소방대원의 철칙과는 맞지 않는 존재일 터.
그 찝찝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빠르게 달아나는 듯한 소방대원을 고천수는 이해했다.
“천수야, 저기.”
고천수는 헬기에서 내린 조종사를 살짝 가리켰다.
그는 소방대원과 함께 가지 않고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
고천수는 조종사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송하나의 손을 붙잡아 끌었다.
“감사 인사 정도면 된 거니까.”
소방대원이 고천수를 찝찝하게 생각했다면, 고천수는 조종사가 찝찝했다.
‘고집쟁이 같으니.’
결국에는 노출도가 높은 활주로에 그냥 헬기를 내리지 않았는가.
실력은 끝내줬지만 그다지 함께 하고 싶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계속 보넼ㅋㅋㅋㅋ.
-조종사는 천수가 맘에 들었던 거 아님?
“글쎄요, 형님들.”
고천수는 뒤로 살짝 고개를 힐끗 돌려보았다.
지저분하게 수염이 난 인상.
이름 모를 조종사는 이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지금은 별로 일행을 늘리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죠.”
고천수는 시청자들에게 대답하며, 송하나를 활주로 옆 공항 건물에 데려갔다.
“형님들, 제주공항에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 뭐겠습니까.”
그건 이제 막 제주공항에 발을 디딘 소방대원과 조종사도 위험 인물로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행적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그냥 보내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헬기 로터 소리도 마지막에 좀 이상했잖아요? 날개도 좀 이상하게 틀어져 있는 것 같고. 저거 다시 타자고 모일 일도 없을 것 같군요.”
-제주공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고천수
-벌써 얼간이들 골로 보냈음.
-ㅋㅋㅋㅋㅋ 아. 뭔ㅋㅋㅋㅋ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 시청자들은 놔두고 고천수는 송하나를 바라보았다.
“송하나. 지금부터 사람들을 잔뜩 만날 건데,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마.”
“쓸데없는 얘기?”
“내가 얘로 뭘 했는지 같은 거.”
고천수는 쫄래쫄래 뒤를 따라온 흑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왜 말하면 안 되는지는 알겠지만, 얜 뭐야, 진짜?”
“나도 몰라.”
“뭐?”
송하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냐?”
“날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하, 하지만…….”
“너무 의문을 가지려고 하지 마.”
고천수는 눈썹을 치켜떴다.
“내 편인지 아닌지만 확인되면 돼. 알았어?”
“어, 응.”
그의 기합에 놀란 듯, 송하나가 침을 꼴깍 삼키며 엉겁결에 대답했다.
“좋아. 그럼 마음의 준비나 해. 이제 안으로 들어갈 테니까.”
“아, 잠깐!”
송하나가 갑자기 외쳤다.
“그 사람들은 어떡해? 헬기 같이 탔던 사람들.”
“그게 왜.”
“얘가 뭘 했는지 봤잖아.”
그녀는 흑구를 가리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고천수는 대답없이 그녀를 마주보았다.
-아차!
-이런 시발 그놈들한테 경고를 안 했어!
-라고 생각하는 듯. ㅋㅋ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천수는 살짝 헛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그 정도 말이 나가는 건.”
애초에 말을 흘리고 다닐 성격들도 아닌 듯했지만, 진짜 그런 얘기를 퍼뜨린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고천수는 흑구에 대한 내용을 함구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송하나가 먼저 자처해서 누군가에게 뭘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늘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다 보면, 네가 뭘 더 말하게 될지 몰라.”
고천수는 송하나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우리가 쥐고 있는 정보를 누군가에게 함부로 넘겨주려고 하지 마. 그게 설사 공공연한 비밀이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으리라.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송하나는 곧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 알았어! 조심할게!”
그 모습에 고천수는 속으로 또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로 별 생각은 안 하겠군.’
흑구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의구심을, 우리만이 가진 정보로 포장했다.
덕분에 송하나는 흑구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일종의 자산으로 받아들일 터였다.
“자, 가자.”
이제 더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고천수는 건물 입구에 몸을 살짝 걸쳤다.
“형님들, 안에 보이는 게 있습니까?”
하지만 안으로 몸을 완전히 들여놓은 것은 아니었다.
고천수는 자신보다 넓은 시야를 확인할 수 있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뭐라도 보이냐고요.”
-ㅋㅋㅋ 야.
-이 자식 진짜 ㅋㅋㅋㅋ.
-시청자가 네 카메라냐?
“3인칭 시점이니까 저보다 더 보이는 거 있을 거 아닙니까. 이 정도 걸치면 관찰자는 건물 내부로 카메라 워크 적용되는 거 맞잖아요. 예?”
-앜ㅋㅋㅋㅋㅋ 진짜 이 쉨ㅋㅋ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뻔뻔하게 지금 말하는 거 봐라. ㅋㅋㅋ
-이 정도는 어련히 안 도와줄까.
시청자들은 소란스럽게 떠들다가 곧 답을 내주었다.
-없어. 안에 아무것도.
그제야 고천수는 고개를 안으로 들이고 내부를 살펴보았다.
고천수가 들어온 곳에는 에스컬레이터 하나가 덩그러니 존재하고 있었다.
‘2층으로 통하는 곳인가?’
도착장 출입구로 바로 나갈 수 있는 1층 통로를 찾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고천수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다른 입구로 찾아가려다가 괜히 헤맬 수도 있고.’
활주로 쪽과 이어진 제주공항의 구조는 고천수도 잘 알지 못했다.
‘뭣보다 나한테 필요하다는 물건도 찾아야 하니까.’
어차피 내부를 찬찬히 뒤져야 했다.
정보에 나온 위험한 사람들도 건물의 출입구인 1층에 몰려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지금은 이쪽 길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었다.
우우우우우우.
게다가 활주로 방향에서 뭔가 심상찮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활주로를 둘러싸듯 웬 붉은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꽃들에서 난 소리는 아니겠지만, 고천수는 활주로 쪽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가자.”
그는 이내 떠밀리듯 일행과 함께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
제주공항 국제선 2층.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그곳은, 예상외로 조용하기만 했다.
“뭐지?”
송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아무도 안 보여.”
“그러게.”
고천수도 고개를 이곳저곳으로 돌리며 침음했다.
‘깨끗해.’
여태까지 거쳤던 다른 장소들과 다르게 이곳은 매우 깨끗한 편이었다.
‘몬스터들이 여기까진 들어오지 않은 건가?’
하물며 좀비라도 있었다면 바닥이 이렇게 깨끗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피나 얼룩이 남아 있을 테니까.
‘아니, 뭔가 있긴 하네.’
먼지라고 생각했는데 창문에 전부 뭔가 녹색의 이끼 같은 것이 끼어 있긴 했다.
-헬모스야.
-해모수?
-아. 제발 좀.
“형님들, 헬모스가 뭡니까?”
-엿 같은 이끼지 뭐야. 괜히 건들지 마. 건드렸다간 모스볼 돼서 공처럼 튀다가 터짐.
-흔적도 없이 터지긴 하지만, 그건 그냥 기체화돼서 그런 것뿐.
-한 번만 잘못 호흡해도 네 기관지 작살나니까 저거 있으면 창문엔 관심 꺼.
설명이 너무 살벌했다.
고천수는 헬모스에 대한 관심을 끊기로 했다.
왈.
그때, 흑구가 조그마한 소리로 짖었다.
고천수는 흑구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뭔가가 벤치 옆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는 고천수를 보며 송하나가 말했다.
“저거 사람 아냐?”
그녀의 말대로 누워 있는 뭔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람인지 아닌지는 지금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흑구야.”
고천수는 흑구의 머리에 살짝 손을 대며 입을 열었다.
“가서 보고 와.”
그러더니 이내 흑구를 정체 모를 존재에게 보냈다.
-흑구 엄청 굴리네 ㅋㅋㅋㅋ
-위험한 건 다 흑구 시키려는 거임?
그런 건 아니었다.
기동성을 생각하면 흑구가 이런 일을 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이라 여길 뿐이었다.
왈!
긴장하고 있던 고천수였지만 다행히도 좀비는 아닌 듯했다.
고천수는 도끼를 빼어 들고는 송하나와 함께 흑구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으음.”
누워 있는 건 웬 남자였다.
흑구의 소리 때문인지 누워 있던 정체 모를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어?”
“…….”
“어어어어어?”
그는 잠시 얼굴로 미친 듯이 물음표를 그렸다.
그러더니, 자세를 잡고 뛰쳐 올라 갑자기 고천수에게 달려들었다.
“이야아아…… 컥!”
고천수는 반사적으로 그런 그에게 발차기를 먹였다.
콰당!
옆에 있던 벤치에 허리를 부딪친 그는 우스꽝스럽게 나동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끄악! 끄아악! 끕?!”
고천수는 그런 그의 목을 발로 짓누르면서 물었다.
“뭐야, 너.”
깨끗한 공항 2층에 홀로 있는 남자.
주변에 몬스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제멋대로 달려들더니 제멋대로 비명을 지르며 어그로를 끄는 모습이 고천수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옷차림이 너저분해 노숙자인 것처럼 보였지만, 나이는 이미지에 안 맞게 젊어 보였다.
그 기묘함에, 고천수는 도끼날을 그에게 들이민 채로 무섭게 눈을 내리깔았다.
“저, 천수야.”
송하나는 그런 그의 눈치를 보면서 살짝 끼어들었다.
“몸에 무기라도 있는지 뒤져 볼까?”
너무 심하니까 그만두라는 말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전혀 예상외의 말을 하는 송하나를 보며 고천수는 눈썹을 살짝 움찔했다.
-ㅋㅋㅋ 고천수한테 그새 감화된 거냐, 얘.
-천수 터프한 거 보고 빠진 듯.
-그냥 천수한테 줄 선 거지, 새끼들아.
이유는 뭐든 상관없었다.
고천수는 그녀가 그렇게 나서 준다고 하는 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됐어.”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녀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무기가 있었으면 자기가 자기 몸을 먼저 뒤졌겠지.’
맨몸으로 달려든 것도 그렇고 지금도 뭘 찾는 시늉은 없는 것으로 보아 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흑구야, 네가 좀 하자. 하나 너는 주위 좀 경계해 주고. 그게 더 역할이 맞으니까.”
물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꼼꼼해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왈!
지시를 받은 흑구가 남자의 몸을 헤집어 놓았다.
“큭! 크읏!”
남자는 몸을 흠칫거렸지만 흑구에게는 뭘 어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고천수의 발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뭔 힘이 이렇게 센가 싶지?”
고천수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람 방심하게 해서 덮치려고 했던 거야?”
“아, 아니…….”
“아니면 뭐야.”
흑구가 아무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순간, 고천수는 그에게서 발을 치우며 말했다.
“그냥 스파링 뜨려고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켁, 콜록! 콜록!”
남자는 답하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고천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그가 진정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나, 난…….”
오래잖아 다시 입을 연 남자가 말했다.
“그냥 노숙자야.”
“장난하나.”
이런 시국에 노숙자를 자처하다니, 이렇게 웃기는 일도 또 없을 것이었다.
“제주공항에서 노숙하고 있던 사람도 있냐? 그것도 이런 시국에?”
“지, 진짜야. 너한테 달려든 것도 네가 들고 있는 도끼를 보고 반사적으로 그런 거라고.”
콘셉트를 어떻게 잡은 건지 남자는 끝까지 말을 바꾸지 않았다.
“난 노숙자 맞아!”
“더 맞을래?”
“자, 자유 여행객이었다니까!”
갑작스러운 발언에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유 여행객?”
“그래! 뉴스에서 이런 사례 못 봤어?”
남자는 상당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한국계 영국인이야. 영국에서 출발했는데, 여기서 환승해서 중국으로 가려고 했고!”
-환승?
-아, 뭔지 알겠네.
자유 여행객 노숙자.
고천수도 뉴스로 본 적은 있었다.
“……그러니까 영국에서 중국으로 놀러 가려다가 중국행 비행기가 안 떠서 공항 노숙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냐? 경유 비행기가 더 싸서 여기 들렀던 거고?”
“저, 정확해! 그거야!”
고천수의 말에 남자가 화색이 되었다.
“바로 이해하는 거 보니까 너 머리가 좋구나!”
“그래, 칭찬은 고맙게 받을게. 근데 말이야.”
공항 노숙자를 자처하기엔, 그 이유가 좀 이상했다.
“너, 지금 밖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