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착륙 경쟁 (2)
“아.”
고천수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송하나가 탄식을 흘렸다.
-오우, 세상에. ㅋㅋ
-엄청나게 엉켜 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도 그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고천수는 함께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흘렸다.
‘다 같이 죽자는 거지.’
다량의 메이플라이가 폭풍처럼 한 차례 휩쓸고 간 직후, 헬기와 비행기들은 서로의 경로를 침범할 만큼 위험하게 뒤엉켜 있었다.
“이러다간 서로 부딪혀서 추락하겠어요.”
소방대원이 고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고천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예, 착륙할 때가 되면 아주 볼 만할 것 같습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아냐?”
송하나가 불안스레 말했다.
“괴물들도 좀 줄어들었으니까 어떻게든 서로 양보 좀 하자고 해야…….”
“그게 쉽겠냐.”
고천수는 면박을 주듯 답했다.
메이플라이의 수가 줄어들긴 했어도 저게 다라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몇 마리의 메이플라이로도 헬기와 비행기는 여전히 추락할 위험이 존재했다. 동체에 타격이 간 쪽은 특히.
“까딱하면 희생되는 게 자기일 수 있다. 다들 불안에 먹혔어.”
날이 흐려 시계가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언제 어느 때 구름을 뚫고 새로운 몬스터까지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낙하산 갖고 있어도 바다로 뛰어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들 치열하게 경쟁할 거야.”
착륙하기 위한 경쟁.
이런 건 고천수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서로 다른 쪽에 착륙하자고 하면 안 되나?
-비행기야 그렇다 쳐도 헬기들은 좀 다른 데 가도.
-공항에 안 내려도 되잖아.
“안 내릴 수가 없다니깐요, 형님들.”
공포에 잠긴 사람들은 시야가 더 가려지기 마련이었다.
‘공항’만이 안전하다는 답을 받은 가운데, 누가 굳이 다른 데로 가려고 한단 말인가.
게다가 쫓아오는 메이플라이로 다들 마음이 급하기에, 공항이 보이자마자 거기에 내리려고 할 것이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충돌로 사망하는 건 고천수도 사양이었다.
“조종사님.”
헤드셋을 내려쓴 고천수는 여전히 조종에만 집중하고 있는 조종사에 물었다.
“혹시 조종 실력이 어떻게 되십니까.”
조종사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건 조금 전에 확인했다.
하지만 고천수는 좀 더 구체적인 실력을 확답 받고 싶었다.
“……제 실력에 의심이 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밖에 좀 보시죠.”
누가 조금만 잘못해도 하늘에서 대형 사고가 나게 생겼다.
마치 꽉 막힌 고속도로의 차들처럼, 헬기와 비행기들이 말도 안 되는 거리로 근접해 있었다.
“이 상황에서 뚫고 나갈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
“혹시 교신 내용 좀 함께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요청에 조종사가 곧장 손을 뻗어 뭔가 버튼을 눌러 주었다.
『……이 시바 새끼들!』
그러자 들리는 소리들.
『저리 안 꺼져, 이 새끼들아?』
『다같이 뒈지자는 거야 머야!』
『난 안 비킨다! 착륙할 때 뒈지기 싫으면 다 비켜!』
서로를 향한 노골적인 비난이 고천수의 귀에 쑤셔 박혔다.
『그딴 코딱지만 한 기체로 어딜 비벼! 너 26R에서부터 이륙 존나게 느려가지고 뒤에 다 밀리게 했던 놈이지?』
『자기소개하냐, 이 시발넘아? 대형 여객기면 다야? 엔진에 불붙은 거 보니까 곧 뒈질 것 같은데 너나 꺼져!』
『미친 새끼야, 여기 엔진 안 터진 놈 있냐?』
비난 수위를 높여 가는 기장들과 조종사들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용 무전 채널이 뭘 위해 존재하는지도 잊은 듯했다.
“들으셨으니 알겠지만 협의는 불가능합니다.”
요청했던 내용을 들려준 조종사는 교신을 차단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공항 말고 다른 데 착륙하자는 제안은,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더 이동해도 공항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렇습니다.”
역시 이 조종사도 다른 데 착륙할 생각은 없는 것이었다.
‘일단 보고 나서 결정한다더니…….’
고천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집부리는 건 다른 조종사들이랑 똑같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조종 실력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는 것.
“그래서 조종사님, 실력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어느 정도는.”
“눈 감고 하는 조종도 어느 정도 가능합니까?”
두루뭉술한 대답에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다시 묻자 조종사가 몸을 흠칫했다.
“눈을, 감고 말입니까?”
-ㅋㅋㅋㅋ
-도발하는 거임?
-지금 눈 감으면 바로 바다행일 듯.
진짜 눈을 감아 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고천수는 차분하게 다시 조종사에게 물었다.
“눈뜨기 좀 어렵더라도 조종이 가능하십니까?”
“……미리 경로를 봐 놨다면, 어떻게든 잠깐 동안은 가능하겠죠.”
“정말로?”
이어진 고천수의 질문에, 조종사는 마침내 무언가 느낀 듯 답변했다.
“뭔가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섬광탄 같은 것 좀 터뜨려 보려고요.”
어차피 이대로 가면 착륙하면서 서로 경로가 엉켜 전멸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이쪽이 먼저 양보를 받으면서 다른 기장들과 조종사들이 정신을 차리게 할 필요가 있었다.
“터뜨려도 기동 가능한지 대답 좀 해 주시죠.”
고천수의 발언에 조종사가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답했다.
“가능은 하겠죠. 제 앞에서 터뜨리지 않는 이상.”
“그렇습니까?”
“네, 그럴 것 같습니다.”
조종사는 어디선가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했다.
여태 맨눈으로 비행했던 것이다.
‘그렇겠지.’
고천수는 밖이 어둡다는 점에서 이 방법을 착안한 것이었다.
‘다들 어두운 상태에 익숙해져 있을 테니까.’
눈앞에서 섬광탄이 터지면 누구든 딱 당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안 그래도 빛에 약한 메이플라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천수, 다른 놈들 다 골로 보내려고?
-선글라스 끼고 있는 사람은 괜찮은 거 아님?
-뭐 터지는 줄 알고 놀라긴 할 걸?
시야가 멀든지 안 멀든지 그건 상관없었다.
“조명탄 한두 개로는 부족할 겁니다. 저희도 가지고 있는 거 다 썼으니까요.”
조종사의 말에 고천수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렇게 잠깐 빛나고 마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고천수는 흑구를 돌아보았다.
“그렇지 흑구야?”
왈…….
“어, 그래. 준비됐다는 거지? 조종사님!”
“예.”
“저희가 가장 앞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선두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비행기가 헬기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지만, 교신했던 내용대로 비행기들은 엔진에서 연기 하나씩은 피워 올리고 있는 상태였다.
조종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헬기를 좀 더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헬기는 다른 기체들을 사이로 빠져나가며 빠르게 앞쪽으로 향했다.
“교신 좀 연결해 주세요.”
고천수가 부탁하자 조종사가 교신을 양방향으로 켜 주었다.
『……야, 뭐야! 앞쪽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꺼져!』
『우리 위기 상황이라 급하다고!』
『날파리 새끼야! 저리 비키지 못해?』
예상했던 대로 원색적인 욕이 가득했다.
“아아, 여러분.”
고천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진정하세요.”
여기 누구 하나 급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대로 가면 다 같이 뭉쳐서 죽습니다. 몰라서 그러는 겁니까?”
『누가 모른대? 너 뭐야, 새끼야!』
『우리가 급하니까 먼저 내려서기만 하겠다고!』
『헬기는 아무데나 내려도 되잖아!』
비행기 쪽의 반발이 심했다.
‘뭐, 맞는 말이긴 해.’
헬기는 활주로를 사용하지 않아도 내려설 수 있었다.
하지만 교신 내용이 이래서야 헬기들도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헬기들도 비어 있는 공간 아무 데나 내려서려고 할 거고, 수십 대가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비명횡사하게 될 게 뻔했다.
“근데 이러면 다 무슨 소용이 있냐고.”
다들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늘에 괴물 좀 떠 있다고 양보 안 하면 제주공항에 피해밖에 더 줍니까?”
급한 건 알겠지만, 침착해질 필요가 있었다.
“서로 협의 좀 합시다. 다 같이 내릴 수 있…….”
『닥쳐!』
『여기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아?!』
『너 같은 놈보다 훨씬 살 가치가 있다고!』
빠득.
고천수는 순간 눈썹을 움찔했다.
“뭐? 너 뭐라고 했냐?”
-천수 빡쳤다.
-헐.
-겁도 없는 놈들이네.
『너보다 훨씬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고천수는 흑구를 로프에 묶었다. 그리고 로프의 끝을 걸개에 걸면서 말했다.
“좋아, 그럼 선글라스 써.”
『뭐?』
“선글라스 끼라고. 살고 싶으면.”
『뭔 소리하는 거야, 이 새끼.』
『말장난하면서 길만 방해하는 거 같은데?』
『너나 껴, 시발넘아!』
계속된 공격에도 고천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다 껴.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옆에 달라붙은 괴물들 내가 떨어뜨려 볼 테니까.”
다들 지금 달라붙은 메이플라이 때문에 정신이 나가 있는 것이었다.
고천수는 그 점을 언급하며 말했다.
“이 상태로 가면 비행기 한두 대가 제주공항에 대가리 처박고 피난처랑 피난민 전부 박살내는 절망적인 결말밖에 없어. 틴팅만으로는 역부족일 테니까 진정하고 선글라스부터 껴. 그리고 순서 정하면 돼.”
이제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공항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개소리!』
『속이려고 하지 마!』
『내가 먼저 내릴 거야!』
고천수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했다.
“너희를 쫓고 있는 괴물은 빛에 약해.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따라 줄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알겠다고 대답하고 이행을…….”
『거짓말 치지 말라고!』
『그딴 얘기나 할 거면 꺼져!』
『길이나 막을 거면 네가 탄 헬기부터 박살낼 테니까!』
“…….”
“천수야?”
무슨 교신 내용을 듣고 있는지 모르는 송하나가 고천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아.”
하지만 그녀는 고천수의 얼굴을 보고 숨을 헉하고 삼켰다.
“난 분명히, 경고했다?”
그는 상대방의 무지를 경멸하는 듯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다.
드륵.
고천수는 헬기의 문을 열었다.
옆에서 소방대원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흑구를 바깥으로 밀어 내렸다.
왈……!
흑구가 아래쪽에서 울부짖는 가운데, 소방대원이 고천수를 보며 외쳤다.
“무, 무슨 짓입니까! 뭘 하려고……!”
“들어가세요.”
고천수는 소방대원을 밀며 흑구에게 외쳤다.
“광견 최대로 한번 보여 줘라, 흑구야!”
잠깐의 정적.
하지만 일이 시작되는 건, 그리 오래지 않았다.
번쩍.
그러자 흑구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고천수가 흑구에게서 시선을 돌리자마자, 사방이 빛으로 가득 찼다.
『뭐, 뭐야!』
『앞이……!』
『끄아악!』
교신은 그걸로 끝이었다.
뒤에서는 폭음이 하나 둘씩 들려왔다.
쾅! 콰아아아앙!
후폭풍이 헬기의 날개를 건드렸다.
휘청이는 헬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종사는 핸들을 꽉 붙잡았다.
콰앙!
강렬한 빛이 사방을 감쌌지만, 조종사는 어떻게든 버틸 만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섬광탄보다 강한 빛이 헬기 아래서부터 뿜어져 나왔으니까.
문제가 되는 건 빛이 정면으로 닿는 공간뿐.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이 헬기의 뒤편에 있던 다른 비행체들이 있는 곳이었다.
『미 및…….』
『치이이익.』
『으악!』
간간히 들리는 교신에 잡다한 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고 그 소리마저 잠잠해질 때, 고천수는 아래를 향해 외쳤다.
“불 꺼!”
슥.
그 지시에, 흑구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쿠우우웅!
송하나는 빛이 사라지자 천천히 팔을 얼굴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폭음이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녀가 보게 된 것은 어딘가로 도망친 것처럼 사라진 괴물들, 그리고 뒤엉켜서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와 헬기들이었다.
“이, 이럴 수가.”
소방대원도 그 광경을 확인하고 입을 벌렸다.
“대, 대체 무슨 일이…….”
고천수는 그들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흑구부터 아래에서 끌어올렸다.
그러자 소방대원이 고천수를 붙들었다.
“저, 저기, 방금 그건 뭡니까!”
“……보신 대로입니다.”
고천수는 뻔뻔할 정도로 태연하게 답했다.
“사고가 나서 다들 떨어졌네요.”
어느새 헬기는 홀로 제주도에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무사히 착륙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