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착륙 경쟁 (1)
-왜.
-뭔데 또.
-???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한숨을 흘렸다.
“형님들, 생각해 보니 공항이면 뭔가 뻔하지 않습니까.”
여태 지나온 공항들은 하나같이 멀쩡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주공항 또한 어떤지 예상이 되지 않는가.
“가자마자 머리 아픈 일이 생길 것 같네요.”
만약 제주공항에 몬스터가 없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밖에 있는 헬기 수를 보았는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제주공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질문 좀 더 해도 되겠습니까?”
고천수는 소방대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제주공항에서 이쪽 길을 알려 줬다는 사람, 군인인 것 같지는 않았습니까?”
“음…….”
소방대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답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냥 안전하다고 오라는 내용뿐이었습니다.”
너무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고천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랬는데도 다들 거기로 가는 중이란 말입니까?”
“그럴 수밖에요.”
소방대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어디가 안전한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곳이 있다고 하면 가볼 수밖에 없죠.”
“제주도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까?”
“다른 선택지?”
“네, 혹시 다른 데도 후보군이 있었나 해서 말이죠.”
고천수는 여기까지 오면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택지였다.
‘제주도가 종착지인지 경유지인지는 알아야 돼.’
대전에서 대전역이 아닌 대전복합터미널을 택한 것부터 해서, 다른 펫을 더 찾아볼 생각 없이 흑구를 데리고 온 것.
고천수는 큰 것에서부터 자잘한 것까지 선택지를 골라 왔다. 그것이 반드시 자의로 실행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내가 놓친 것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천수가 아는 건 스스로 지나온 길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시야를 넓혀 보려고 할 필요가 있었다.
“후보군이라…….”
그리고 소방대원은 그런 고천수의 의지에 응답하듯,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잘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그렇군요.”
괜한 기대를 했던 것일까.
고천수가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아, 그런데 좀 이상한 얘기는 들었어요.”
“이상한 얘기……?”
“북쪽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요. 서울 쪽으로.”
서울.
고천수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서울이라고?’
제주도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성격의 장소였다.
‘거긴 왜?’
안전할 리가 없었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인구만 한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렇다면 그만큼 위험한 곳도 없었다.
좀비만 생각해도 어마무시한 숫자가 존재할 게 분명했다.
“누가 뭐라고 뜬소문이라도 흘리는 겁니까?”
고천수가 묻자 소방대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에 얘기했듯이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가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흐음.”
정보가 부족했다.
‘이것도 제주도에 가면 알 수 있는 부분일까?’
고천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흑구를 바라보았다.
흑구가 그런 그를 따라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뜻밖의 알림이 떠올랐다.
고천수는 서둘러 정보창을 켜보았다.
[상시 정보 :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보 1 : 제주공항에 있는 사람들을 주의하십시오.]
[정보 2 : 제주공항에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정보 3 : 양민철, 장서연, 김하령은 현재 대전역에서 영등포역으로 이동 중입니다.]
“……!”
거기에 뜬 내용을 확인한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새로운 정보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 끼어 있었다.
‘다들 서울로 가고 있다고?!’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서울로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천수야?”
송하나가 고천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 녀석들 살아있었네.
-대박사건.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고천수는 나머지 정보로 시선을 가져갔다.
3번 정보가 제법 충격적이긴 했지만, 특이한 건 1번과 2번도 만만치 않았다.
‘제주공항의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고천수는 1번 정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제주공항이 안전하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그래도 직접 글자로 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조종사님! 이 헬기, 제주공항의 어디로 착륙합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조종사가 뒤를 힐끗거렸다.
그러더니 자신이 차고 있는 헤드셋을 가리켰다.
“이거 쓰세요.”
소방대원은 고천수에게 헤드셋을 씌워 주며 말했다.
“저희처럼 가까이 붙어 있지 않아서 잘 안 들릴 거예요. 로터 소음 때문에.”
헤드셋을 착용한 고천수가 다시 물었다.
“조종사님, 이 헬기는 제주공항의 어디로 착륙합니까?”
“글쎄요.”
조종사는 나지막이 답했다.
“그건 가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관제탑에서 전해 주는 바가 있겠죠.”
“그럼 사람이 없을 만한 곳으로 갈 수 있습니까? 딱 제주공항에 착륙할 필요는 없을 테니.”
제주공항에 위험한 사람들이 있는 거면 조금 주의를 살필 필요가 있었다.
“글쎄요. 뭐, 가 봐야 알겠죠.”
조종사의 답변은 뭔가 성의가 없었다.
고천수는 그런 조종사의 모습을 살짝 노려보았다.
‘뭐지?’
먼가 갈색의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소방대원의 것과는 결이 달랐다.
아니, 그냥 일반인 복장인 것처럼 보였다.
-야, 저거 소방대원이 아닌데?
-그걸 인제 알았냐.
-진짜?
고천수는 헤드셋을 벗고, 슬쩍 소방대원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분은 소방대원이 아닌가요? 약간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아, 조종사 분은 그냥 어쩌다 만났습니다. 헬기 조종해 줄 분이 필요해서 협력을 받은 거예요.”
그 말에 고천수는 마른침을 살짝 삼켰다.
‘협력이라고?’
소방대원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생겼지만 고천수는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든 날 도와주려고 멈췄던 건 맞으니까.’
게다가 의문이 든다고 해서 뭘 어쩌겠는가.
헬기 안에서 소란이 일었다간, 아무도 득 볼 것 없이 손해만 생길 뿐이었다.
“왜 그러시죠?”
소방대원의 물음에 고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헤드셋을 쓰고 말했다.
“조종사님, 그래도 제주공항에 별 사람 다 있을 것 같으니까, 웬만하면 조용한 데로 착륙 부탁드립니다.”
“보고요.”
짤막한 대화를 마치고 고천수는 다시 헤드셋을 치웠다.
-근데 천수 너는 제주공항에 내리기 싫은 거?
-그러게. 제주공항 가긴 해야지.
-2번 정보 안 보임?
2번 정보에는 제주공항에 필요한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다고 나와 있었다.
“저도 못 본 게 아닙니다, 형님들.”
1번 정보를 생각하면 정보 2는 짓궂은 장난 수준이었다.
사람들을 피해서 보물찾기라도 하라는 뜻 아닌가.
‘하여간에 정말…….’
쉽게쉽게 지나가는 꼴을 못 본다.
제주공항을 그냥 스킵하고 가 버릴까 봐 마련해 둔 장치처럼 보였다.
“그냥 주의는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여태 공항들 어땠는지 형님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벤트가 일어나기 너무 좋은 장소라 고천수는 벌써부터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왈!
그때, 흑구가 밖을 보며 일어나 짖었다.
고천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이럴 수가…….”
여태 보지 못했던 비행기들까지 나타나 있었다.
고천수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왜 이렇게 많아?”
이렇게 한꺼번에 공항에 들어가면 자리가 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문제인 듯했다.
“헬기들이…….”
소방대원이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들 속력을 높이고 있어요.”
“제기랄.”
고천수는 다시 헤드셋을 머리에 착용했다.
“조종사님! 보고 계시죠! 비행기들이 몇 대나 나타났습니다! 사고 안 나려면 활주로 말고 다른 데에 착륙해야 돼요!”
“……공항 밖에 착륙하면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누가 공항 안에 들어와야만 보호해 준다고 말하기라도 한 겁니까?”
누가 뭐라고 했건 서로 뒤엉켜서 뒈지는 위험만 피하자는 얘기였다.
“헬기도 수십 대입니다! 부딪히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네,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답변이 답답했다.
고천수가 눈꺼풀을 살짝 떨자니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야야, 참아. ㅋㅋㅋㅋ
-여기서 조종사랑 싸우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부조종사도 없자너.
-천수 얘는 좀 진정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듯. ㅋㅋㅋ
그때, 송하나가 고천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천수야, 진정해.”
그러면서 바로 하는 말이라고는 겨우 이것뿐이었지만, 고천수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긴장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한도초과 때문에…….’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고천수는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위이이이잉!
비행기들이 서로 부딪칠 듯이 날고 있었다.
헬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서로 양보는 하지 않겠다는 듯 위협적인 비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들 같이 죽자는 건가?’
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 터였다.
교신을 통해 서로에게 양보를 해 달라고 떠들고 있을 것이었다.
‘설마…….’
고천수는 비행기들의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런 위협이 없다면 다들 저러고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메이플라이들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 쒯.”
고천수는 탄식처럼 욕을 내뱉었다.
“헉, 천수야. 저기 봐! 뭐가 따라오고 있어!”
“그래, 하나야. 나도 보고 있어.”
소란을 떨어 봤자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그냥 최대한 빨리 제주공항으로 가는 일뿐이었다.
콰앙!
-경쟁자 하나 컷!
-폭발이…… 시작됐다!
그때, 메이플라이에게 당한 헬기 하나가 동력을 잃고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이, 이런!”
소방대원이 그 광경을 보고 놀라며 헤드셋을 쓰고 조종사에게 외쳤다.
“조종사님! 보셨죠?!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조종사는 소방대원의 외침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듯했다.
“조종사님?”
물음표를 그리는 소방대원을 보며 고천수는 이를 악물었다.
‘아 씨, 이거. 조진 거 아냐?’
쾅! 콰앙!
메이플라이에게 당한 헬기들이 추풍낙엽처럼 바다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 헬기도 곧 메이플라이의 희생양이 될 것처럼 보였다.
‘아니.’
고천수는 조종사가 헬기를 움직이는 경로를 보며 곧 깨달았다.
‘안 조졌다.’
우우웅.
헬기가 갑자기 고도를 낮췄다.
“으아아아!”
“아앗!”
왈!
소방대원과 송하나, 그리고 흑구가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서로 뒤엉켰다.
“다들 꽉 잡아요!”
홀로 주변의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던 고천수가 외쳤다.
“지금부터 시작일 테니까!”
위이잉!
조종사가 핸들을 조작할 때마다 헬기가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쾅! 콰앙!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는 폭발음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야, 이거 괜찮은 거?
-괜찮음.
-보고만 있어도 멀미남. 우웩.
헬기는 곡예 비행을 계속했다.
메이플라이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터져나가는 헬기의 수는 분명 십수 대였다.
쿠웅! 콰앙!
여러 번의 충격을 견디지 못한 비행기 한 대도 엔진들을 잃고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떨어져 내렸다.
콰앙…….
마치 소나기와 같았다.
어느 순간 메이플라이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물론 전부가 없어진 건 아니었다.
“후.”
그래도 잠깐의 시간은 벌었다.
고천수가 살짝 힘을 빼고 몸을 늘어뜨리자 나머지 인원들도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괘, 괜찮아진 건가?”
소방대원이 식은땀을 훔치며 밖을 내다보았다.
흑구도 혀를 내밀고 헐떡이고 있는 사이에, 송하나는 고천수에게 시선을 향했다.
“고천수, 괜찮아?”
“뭐가.”
쓸데없는 걱정인가 싶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너 표정이…….”
송하나의 말에 고천수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리하구나, 너.”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불안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는데, 송하나는 제법 감이 있어 보였다.
“그래, 좀 너무 여유가 없어 보이지?”
고천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향했다.
“저거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