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08화 (108/224)

108. 헬기 타는 법

두다다다다다다!

두다다!

두다다다다다!

엄청난 소음이 하늘을 뒤덮었다.

-저건?

-헐.

-엄청난데.

소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헬기들이었다.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니었다.

십수 대에 달하는 헬기가 하늘을 찢을 듯 모터를 돌리며 한꺼번에 기동하고 있었다.

“천수야?”

“괜찮아. 헬기들이 잔뜩 지나가는 모양이야.”

고천수는 사다리 아래에서 자신을 부르는 송하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주변에 있는 괴물들을 자극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서둘러야겠어.”

그리고 그 생각은 소방대원도 마찬가지인지, 로프에 묶인 들것을 급하게 아래로 내렸다.

“스스로 탑승 가능하시겠습니까!”

들것과 함께 내려오지 않고 외치는 소방대원을 보며 고천수는 살짝 눈썹을 움찔했다.

‘인원이 없는 건가?’

지금 들것에 타라고 하는 소방대원과 조종사.

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뭐 나타날까 봐 그런 거 아님?

-약간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여기까지 왔으면 별거 다 보긴 했을 테니까.

시청자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쨌거나 일단 구해 주기만 한다면 뭐든 가릴 이유는 없었다.

고천수는 해치 옆까지 내려온 들것에 일단 흑구를 태웠다.

그리고 송하나를 올라오게 해 태우고 자신도 올라탔다.

“더 타면 위험합니다!”

들것의 안정성 때문인지 소방대원이 경고했다.

‘어차피 더 탈 인원도 없는데.’

고천수는 팔을 들어 알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소방대원은 구명정이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타 있을 거라고 본 듯했지만, 어차피 들것에 더 오를 사람도 없었다.

“들어올립니다!”

소방대원이 크레인을 작동시켜 들것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하지만 이대로 모든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푸우우우우우!

구명정이 갑자기 뭔가에 붙잡혀 끌려내려갔다.

“뭐, 뭐야!”

송하나가 그 장면을 내려다보며 놀라며 소리쳤다.

왈!

흑구도 불안한 듯 짖었다.

구명정을 붙잡은 건 다름 아닌 거대한 촉수였다.

고천수는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크라켄……!”

주변에 울리는 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자극을 받고 나타난 듯했다.

“형님들! 크라켄이 헬기도 공격합니까?”

-크라켄은 자기 영역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면 공격함.

-이 정도 소리면 그만한 적이라고 생각할걸.

-자극해버려서 위험하긴 할 듯.

“Offer!”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제안 기능의 제약은 이미 풀렸다.

고천수는 시청자들을 향해 외쳤다.

“내 가방 버리기! 보상은 들것 위에 인원들의 무게를 3분간 절반으로 만드는 것!”

그러자 고천수가 말한 내용이 문구로 허공에 새겨지며 가격표가 붙었다.

-68젠. ㅋㅋㅋㅋ

-좀 센데?

그나마 반 박자 빠르게 제안을 해서 가격이 싸게 먹힌 게 분명했다.

“받아 주실 분 없습니까?”

헬기가 촉수에 놀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을 바꿔 다른 제안을 걸어 봤자 더 높은 금액이 걸릴 것이었다.

“아아아아!”

헬기가 촉수를 피해 달아나면서 들것이 마구 흔들렸다.

주저앉은 송하나는 들것을 고정하고 있는 줄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형님들!”

드드드득!

들것의 방향이 뒤틀리면서 크레인이 끌어올리던 로프가 심하게 갈리는 소리가 났다.

“멈춰요! 끌어올리지 마세요!”

고천수는 당황하는 소방대원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끌어올리면 끊어집니다!”

구조용 헬기의 크레인이 버티는 무게는 보통 체구의 성인 남성 4명분. 부하를 받기 시작하면 위험한 게 당연했다.

드득.

끌어올려지던 로프가 멈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전해진 건 아니었다.

우우우우우.

크라켄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수면 위로 올라서고 있던 것이다.

“이런 제기랄…….”

그 위용에 고천수가 주춤거리는 순간, 갑자기 알림이 떠올랐다.

[새로운주인 님이 제안을 수락하였습니다.]

[미션을 수행하십시오.]

제안을 받아 줄 시간이 다 흐르기 전, 한 명의 시청자가 구원자로 등장했다.

“아?”

-왜? 예상외야?

고천수가 놀라며 숨을 삼키는 사이, 채팅이 더 올라왔다.

-뭐해? 수행 안 하고?

그랬다. 멍때릴 때가 아니었다.

갑자기 한도초과와는 좀 다른 노선을 달리던 시청자가 나타난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고천수는 서둘러 가방을 벗었다.

‘아깝긴 하지만…….’

안에 있는 내용물을 몇 개 건지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서 가격이 책정된 것이리라.

이미 이 가방 자체로 제안이 성립된 이상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훅.

고천수는 가방을 밖으로 내던졌다.

그렇게 바보 같은 표정으로 떨어져 내리는 가방을 바라보았다.

-천수야, 정신 차려. 너 날아간다?

[제안이 적용됩니다.]

“큿!”

순간 몸의 변화를 느낀 고천수가 흠칫하며 들것을 더 꽉 붙잡았다.

“으아아아! 천수야!”

동시에 송하나의 몸이 방금 전보다 심하게 펄럭였다.

그리고 그건 흑구도 마찬가지였다.

으르르르르르.

들것 테두리의 결박 끈을 문 흑구가 밖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몸을 낮추고 있었다.

‘망할……!’

고천수는 입술을 깨물며 상황을 살폈다.

일행은 모두 조금 전보다 들것 위에서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몸의 힘과 저항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헬기가 이동하면서 맞게 되는 바람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몸무게를 더 줄였으면 큰일 날 뻔했네!’

상황이 급해서 미리 모든 걸 따져 보지 못한 채 제안을 걸었다. 로프가 끊어지지 않도록만 하려고 했는데 이런 부작용을 간과하게 될 줄은 몰랐던 터다.

우우우우.

크라켄은 이 헬기를 쫓기 시작한 듯했다.

거대한 촉수가 파도를 뚫고 위험스레 옆으로 올라왔다.

“미친!”

겨우 촉수 하나였지만, 물기둥과 함께 올라오는 모습을 보려니 가히 용오름에 비견할 만했다.

두다다다다다다!

헬기는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다.

고천수 일행이 떨어질까 봐 염려하는 듯했다.

“더 높이!”

그건 분명 고마운 일이었지만, 고천수는 우물쭈물대는 소방대원에게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더 높이 올라가세요!”

소방대원은 고천수의 외침을 듣긴 한 듯했지만 그래도 망설이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빨리!”

고천수가 계속 소리치자 소방대원은 조종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뭐라고 말을 전했다.

그러자 헬기가 점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들 꽉 잡아!”

고천수는 일행들에게 외치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부터는 지구력 싸움이었다.

위이이잉.

헬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들것도 심하게 흔들렸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헬기가 상승하는 동안 다들 이를 악물고 버티기만 했다.

후웅.

촉수가 하나 더 들것을 쫓아왔다.

하지만 크라켄이 뾰족하게 세운 촉수는 들것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덜컹.

하지만, 대신 흑구의 몸통을 스쳐 버렸다.

깨갱!

비명을 토한 흑구가 그대로 결박 끈을 놓쳐 버렸다.

탁!

그때, 송하나가 손 하나만을 결박 끈에 남긴 채 몸을 쭉 뻗어 흑구의 발을 잡아냈다.

“천수야!”

하지만 흑구를 잡으면서 균형이 뒤틀린 송하나는 남은 손 하나마저 결박 끈을 놓쳐 버렸다.

“……송하나!”

그럼에도 떨어지지는 않았다.

순간 송하나는 발을 교차해 결박 끈을 붙잡고는 들것에 거꾸로 매달렸던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

고천수는 그런 송하나의 반사 신경에 경악하며 외쳤다.

헬기의 고도는 그사이 더 올라갔다.

크라켄의 촉수에게서 완전히 달아난 것이었다.

스륵.

송하나의 발이 풀리려는 게 보였다. 고천수는 들것을 기어가 송하나의 다리를 붙잡았다.

위이이잉.

동시에 헬기를 속도를 떨어뜨리며 크레인을 작동시켰다.

들것은 딸려 올라가는 로프를 따라 천천히 헬기와 가까워졌다.

그때의 흔들림 때문인지 송하나의 손에서 흑구의 발이 미끄러져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른 로프 하나 고정해서 주십쇼!”

고천수는 소방대원을 급하게 돌아보며 외쳤다.

그 말에 소방대원이 로프 하나를 헬기 안쪽의 걸개에 고정한 뒤, 고천수에게 풀어주 건네주었다.

스륵.

고천수는 그 로프를 송하나에게 다리가 붙잡혀 있는 흑구의 곁으로 보냈다.

“흑구야, 물어!”

다행히도 흑구는 똑똑한 녀석이었다.

흑구가 바로 로프를 깨물며 무게를 줄이자마자 고천수는 송하나를 끌어올렸다.

“꽉 잡아!”

다음으로 고천수는 흑구가 물고 있는 로프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와, 씨. 간 떨어질 뻔.

-난 또 흑구는 버리려는 줄. ㅋㅋㅋ

[진정한동료 님이 3젠을 후원하셨습니다. - 개도 동료야, 동료!]

흑구까지 끌어올리고 나니, 들것은 어느새 헬기의 문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자! 얼른 안으로!”

소방대원은 들것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송하나와 흑구는 그런 소방대원의 안내를 따라 헬기 안에 탑승했다.

“후.”

다음은 고천수였다.

“갑니…….”

[적용이 종료됩니다.]

시간이 지났다.

고천수가 들것에서 살짝 몸을 굽히는 순간 무게가 돌아왔다.

“끅?”

갑자기 돌아온 무게에 고천수는 적응하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탁!

그때, 그런 고천수의 손을 붙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송하나였다.

“꽉 잡아!”

그녀는 고천수가 헬기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하아,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네가 안 잡아 줬어도 나 살 수 있었던 건 알지?”

고천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넌지시 한 마디를 해 주었다.

“참나.”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렇겠지. 알았어.”

“…….”

-생각보다 더 쿨한데?

-이건…… 천수가 졌다.

-ㅋㅋㅋㅋㅋ 천수 졸렬.

고천수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소방대원을 바라보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뻔뻔한 그라도 소방대원에게 향할 감사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소방대원은 지쳐 버린, 하지만 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니 저도 기쁘네요.”

고천수가 예상했던 대로 헬기 안엔 소방대원 한 명과 조종사 한 명뿐이었다.

“지금까지 못 구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을 흐리는 그를 보며 고천수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을 구했으니 그걸로 된 거죠.”

“네?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니…….”

“혹시 물 좀 있습니까?”

소방대원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그의 요구대로 물부터 찾아 건네주었다.

꿀꺽꿀꺽.

“크아아아…….”

시원하게 물병의 반 정도를 털어낸 고천수가 송하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줘.”

“받으면 네가 안 구해 줬어도 난 산 거야.”

“…….”

“그래, 농담이야. 고맙다. 도와줘서.”

고천수는 물병을 송하나에게 건네주고 다시 시선을 소방대원에게 향했다.

‘왜 이러지.’

살기만 하면 도움을 받는 건 무안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송하나에게 도움을 받은 부분은 뭔가 기분이 미묘했다.

애써서 이쪽이 데려가 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거꾸로 도움을 줬기 때문일까.

어쩌면 한도초과가 깃들어 있지 않은 이상, 당장은 크게 쓸모는 없을 거라 평가 절하하고 있다가 허를 찔려서일 수도 있었다.

‘됐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한숨 돌렸으니 지금은 확인할 것이 있었다.

“저기, 뭣 좀 물어도 되겠습니까?”

고천수의 질문에 소방대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뭡니까?”

“지금 이 헬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수십 대의 헬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였다.

따로 정보창이 갱신되지는 않은 걸 보면, 이건 직접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라는 뜻일 터.

그리고 그 정보는, 바로 눈앞의 소방대원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제주도.”

그리고 소방대원은 고천수가 고대하던 목적지를 밝혔다.

“제주도로 가고 있습니다.”

“제주도로……. 하늘에 있던 다른 헬기들도 다 말입니까?”

“네.”

소방대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육지 쪽의 하늘길은 막혀 있는데, 이쪽 바다 위는 제주도까지 길이 열려 있다고 하더군요.”

“누가 말입니까?”

“제주도에 있는 누군가가.”

누군가라니, 고천수는 의문을 표했다.

“누가 말입니까?”

“그건 모릅니다. 하지만 제주공항 쪽은 방비를 잘해 두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주공항…….”

“전해 들은 말로는 일단 건물 안에만 들어오면 확실히 살 수 있는 모종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제주공항으로 가는 중입니다.”

제주공항이라면 제주도의 출입구 중 하나.

그것에 무언가 진행되고 있단 말인가.

고천수는 어릴 때 여행으로 들러본 적이 있던 그곳을 떠올렸다.

“잠깐, 제주공항?”

그리고 순간, 그는 다른 것까지 함께 떠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