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광견
[흑구가 Lv.2로 성장했습니다.]
[지금부터 애견창에서 흑구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뭐야, 이건.”
통조림 캔을 다 먹은 흑구를 바라보려니, 이런 알림이 떠올랐다.
-드디어 애견이 된 흑구.
-ㅋㅋㅋㅋㅋ 통조림 하나 먹고 각성하네.
-잘 좀 먹여라, 천수야.
왈!
흑구가 성장한 자신을 보라는 듯 늠름하게 자세를 갖췄다.
고천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Lv.2라고?’
흑구가 평범한 개가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지능이 엄청 높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 마스크가 있을 때부터…….’
플레이어가 동물을 데리고 다닐 것이리라는 사실은, 대비한 것처럼 마스크가 있던 것부터가 힌트였다.
플레이어가 얻게 되는 동물이 일반적인 것이라면 그 정도의 지원을 해 줄 필요는 없었을 터.
게다가 아무리 대형견 사이즈라고 해도 품종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마스크가 맞았다는 건, 이미 플레이어에게 따라붙게 되는 동물의 품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었다.
“애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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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구(Lv.2)
* 스킬 1 : 광견(光犬). 반경 5km까지 확산할 수 있으며, 1주일에 3번 각 5분간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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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견?’
뭔가 제대로 된 설명이 없는 스킬이 달려 있었다.
왈왈!
흑구가 짖는 소리에 놀란 고천수가 순간 고개를 돌렸다.
“설마 또?”
고천수는 서둘러 창밖을 살폈다.
헬기 몇 대가 주변을 지나치고 있었다.
“고천수 씨!”
송하나도 고천수를 돌아보며 외쳤지만 방법이 없었다.
고천수는 쓸 만한 게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필요한 게 있을 리 없었다.
고천수의 시선이 멈춘 곳은, 그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흑구의 얼굴이었다.
‘광견…….’
뜬금없는 스킬이었다.
‘아냐.’
여태까지의 전개를 보면 아이템과 새로운 스킬은 항상 필요한 시점에 배치돼 있었다.
크루즈 선에서 얻어온 통조림으로 성장한 흑구의 스킬이, 아무렇게나 생겨났을 리는 없는 일이었다.
“흑구!”
밑져야 본전이었다.
고천수는 흑구를 향해 소리쳤다.
“광견이 되어라!”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것일까.
하지만 흑구가 진짜 플레이어의 펫이라면, 지시 사항에 대한 보정은 분명히 있을 터였다.
반짝.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 응답받았다.
화아아악!
황금색으로 잠시 반짝인 흑구의 몸이 강렬한 흰 빛을 뿜어냈다.
“끄아아악! 내 눈!”
섬광탄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흑구의 몸에서 나오는 빛은 일정 구역에 한정되지 않고 미친 듯이 확장돼서 뻗어 나갔다.
그 탓에 고천수는 두 눈을 감싸 쥐고서도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콰당!
결국 바닥에 발이 걸린 고천수는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크윽!”
고통에 신음하려니, 미친 듯이 강렬했던 빛이 갑자기 수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고천수는 잠시간의 시간으로 시력을 회복하고 나서야 흑구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뭐야, 저건…….”
흑구는 아직도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만 조금 전이 빛의 테러 그 자체였다면, 지금은 노란 전구 수준일 뿐이었다.
-앜ㅋㅋㅋㅋ 무슨 밝기 조절되는 조명이냐겈ㅋㅋㅋ
-이 스킬 만들어놓은 놈, 취향 존나 웃김. ㅋㅋㅋ
-무서운 건 애견 스킬은 다 이따구라는 거. 고양이를 찾았어야지.
-X냥이 얘기하지 마라. 성격 구린 거 걸리면 몬스터보다 심하니까.
고천수는 헛웃음을 뱉으며 눈을 비비다가 다시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 제기랄.”
헬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새 이곳을 빠져나간 것이었다.
“놓쳤잖아!”
끼잉.
흑구가 자기에게 뭐라고 하는지 아는 건지 시선을 피하며 주춤거렸다.
“아니, 너한테 뭐라 그러는 건 아니고.”
스킬 설명이 없다 보니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천수 씨……!”
같이 넘어졌었는지 송하나가 바닥을 기며 입을 열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앗! 저건 뭐예요?”
빛나는 흑구를 보며 묻는 말에 고천수는 기가 차 헛웃음을 뱉었다.
‘뭐라고 해야 돼, 이거.’
빛나는 개라니, 고천수도 설명이 힘들었다.
“그러게요. 저도 저런 건 처음 보네요.”
“그, 그런가요? 근데 고천수 씨가 개한테 광견이 되라고 한 건 뭐…….”
“글쎄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마침 잘됐습니다.”
고천수는 손짓으로 흑구를 가까이에 오게 한 뒤에 태연하게 말했다.
“조명탄 대신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앜ㅋㅋㅋㅋ
-황당.
-이걸 이해하라고 하는 말임?
이해시킬 생각은 없었다.
빛나는 개를 도대체 어떻게 정상적으로 납득시키란 말인가.
‘그럴 필요도 없고.’
어차피 이 세상은 제대로 된 설명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굳이 애써서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할 이유는 없었다.
“뭘 주워 먹고 이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저희한테 쓸 만하면 그만입니다.”
“고, 고천수 씨!”
뒤에서 송하나가 부르는 것은 아랑곳 않고 고천수는 흑구를 들고 해치 밖으로 나갔다.
“흑구야, 잘 들어.”
날은 어둡고 조명탄도 없다.
눈에 뵈지 않는 이상 누구도 조난 신호를 보지 않는 상태로 추정됐다.
그렇다면 직접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사는 건 너한테 달렸다.”
흑구의 스킬은 시청자들에게 비웃음을 샀지만 고천수가 생각하기에 이만큼 좋은 스킬이 없었다.
여러 가지 활용도가 있지만, 일단은 조명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냐?”
왈?
“반짝반짝. 응? 너 내 말 알아듣는 거 다 안다.”
-ㅋㅋㅋㅋㅋㅋ 뭐 하냐.
-대화하냐?
-흑구, 다 알아듣는 거 들켰넼ㅋㅋㅋ 이제 어리둥절한 척 꿀 못 빠누.
“광견이 되라는 말 확실하게 인지했잖아!”
지시를 확실하게 이해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헬기가 지나가면 반짝이면서 신호를 부탁한다. 밝기는 적당히 강렬하면 돼. 우리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때 봤던 조명탄들 알지?”
미친 듯이 밝으면 구명정의 모습이 가려지고 뭐가 터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오케이?”
고천수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고개를 까딱이자, 흑구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고천수는 그렇게 흑구를 놔두고 다시 구명정 안으로 내려갔다.
-자기만 들어오는 거 봐라. ㅋㅋ
-흑구가 불 안 밝혀도 넌 불평하지 말아야 함.
“흑구도 이해할 겁니다.”
가까이 있다간 눈이 멀어 버릴 정도였다.
빛을 가리다가 해치 밖에서 괜히 발을 잘못 디디면 바다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이게 서로에게 좋은 방안이었다.
“고천수 씨! 개는요?”
“아. 밖에 두었습니다.”
“네?”
송하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도 되는 건가요?”
“알아서 할 겁니다.”
“개가요?”
“네, 그러니까 잠시 기다리도록 하죠.”
헬기가 연달아서 지나갔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겠지만 헬기가 지나갈 수 있는 안전한 경로로 이 부근이 꼽혔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헬기는 또 지나간다.
지금은 그 가능성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던 헬기를 믿을 수 있을까?
-붙잡아도 괜찮은 거임?
“이렇게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형님들.”
이곳으로 이끈 건 다름 아닌 한도초과였다.
그다지 안전한 방식으로 인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그를 반드시 죽는 길에 처넣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구할 생각을 없으면 헬기를 조종하고 있는 사람도 굳이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쪽으로 오는 헬기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적었다.
‘엔진…….’
그보다 한도초과를 떠올리며 순간 난 생각에, 고천수는 레버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설마 싶지만.’
멀쩡하던 엔진이 고장 나고 조명탄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물론 엔진 고장이야 프로펠러에 해조류가 걸려도 일어날 수 있고, 조명탄에 대한 것은 송하나가 어떻게 된 건지 추측을 해 줬다지만 의구심은 남아있었다.
깊이 잠들었던 고천수는 한도초과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송하나 씨.”
한도초과가 떠오른 고천수는 송하나를 보며 물었다.
“나이 좀 물어도 됩니까?”
“예? 나이요?”
“네.”
고천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송하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는 왜요? 중요한가요?”
“오래 보게 될 사이면 좀 더 편하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나이도 비슷한 것 같고.”
“…….”
송하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오빠 소리 듣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죠?”
-ㅋㅋㅋㅋㅋㅋㅋ
-발상 봐라.
-얘도 평범하진 않네.
고천수는 얼굴을 살짝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저보단 적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송하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 스물여섯이에요! 혹시 더 많아 보여요?”
“저도 스물여섯입니다. 동갑이네요.”
고천수는 송하나가 딴소리를 하기 전에 말했다.
“잘됐죠? 오빠 소리는 필요 없는 나이니 서로 말 놓읍시다.”
“이게 무슨…….”
“송하나.”
장난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는 듯 고천수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 좀 부탁할게.”
“아니, 왜 바로 놔요!”
“이유가 있다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기 전에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세계에서는 서로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이간질하는 놈이 있을지 몰랐다.
‘이대로 잠시나마 일행으로 만들 거면, 송하나에게도 다른 관계를 허락하면 안 된다.’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그녀가 갈대처럼 다른 파티로 붙을 가능성을 줄여야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남들 눈에 친해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동료가 없는 사람은 이런 세계에서 노려지기 쉬워.”
고천수는 자신과 송하나를 차례로 가리켰다.
“너와 내가 지금 그런 상태야.”
그리고 둘 중에 누가 더 노려지기 쉬운지를 따지면, 그건 단연코 송하나 쪽이었다.
“네가 그저 나와 임시로 같이 다닌다는 걸 알면, 노리는 놈이 있을까 없을까?”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네가 안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처신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야.”
고천수는 송하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물론 말을 놓고 친구처럼 군다고 해서 우리가 실제로 막역한 동료처럼 보일지는 미지수야. 그래도, 남들 눈에 그렇게 인식될 가능성은 훨씬 더 크다는 얘기다.”
-그럴 듯하게 얘기하네.
-그러게. 사실 오빠 소리 들으려다가 실패한 거 맞는데.
꾸욱.
실소가 터질 뻔한 걸 주먹을 꽉 쥐어 참으며 고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선택은 네가 해. 다만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할 거야.”
겨우 말을 놓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송하나는 엄청 고민하는 표정을 보였다.
“나, 난…….”
송하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우물쭈물했다.
“으음.”
“결렬인가?”
“아, 아니!”
송하나는 황급히 손을 내젓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럼 고천수라고 부르면 돼?”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넘어간다고?
-앜ㅋㅋㅋㅋㅋ 개그치냐?
시청자들에게는 우스운 일일지 몰라도 송하나로서는 충분히 이렇게 반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누가 사이 물어보면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 정도만 답해 주고.”
투다다다다다다!
그때였다.
멀리서 헬기가 또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왈!
창문을 통해 깜박이는 빛이 새어 들어왔다.
“잘하고 있네.”
흑구가 발광을 시작했다.
이제 헬기가 반응을 하는 일만 남아있었다.
투다다다다다…….
멀어져 가는 걸까?
소리가 조금 옅어졌다.
다다다다다!
아니,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천수는 고개를 돌리며 송하나에게 말했다.
“하나야, 준비해라. 헬기가 오는 것 같다.”
“어? 아, 알았어!”
우우웅.
구명정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주변 물결이 흩어졌다.
새어져 들어오는 빛도 약해지는 것으로 보아, 헬기가 가까이 다가온 게 분명했다.
“흑구야! 이제 나 올라갈 테니 불 꺼!”
고천수는 사다리를 붙잡고 곧장 해치 밖으로 올라갔다.
츄릅.
흑구가 그런 그에게 달려와 혀로 볼을 핥았다.
“아, 거참. 칭찬해 줄 테니까 핥진 마.”
두다다다다다다다!
위를 올려다보니 붉은색 헬기 한 대가 구명정 위에 머물고 있었다.
헬기의 몸체에는 119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문이 열린 헬기에서 소방대원 한 명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잭팟이네.”
이런 세계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진짜 구조대원을 만났다.
고천수는 양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저희가 곧 구조해 드리겠습니다!”
이어지는 소방대원의 외침.
순간, 고천수는 하늘에서 굉음처럼 울리는 다른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