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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03화 (103/224)

103. 한도초과 (1)

흔들리는 선체.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후우.”

구명정으로 향하는 길은 깨끗했다.

딱히 다른 몬스터를 맞닥뜨리지는 않았지만 고천수는 뭔가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뭔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툭.

흑구가 다리를 건드렸다. 고천수는 그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했다.

“고천수 씨!”

주영훈 상병이었다.

그는 허둥거리면서 고천수를 향해 외쳤다.

“이거 어떻게 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홀로 이곳에 올라와서인지 그는 패닉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비켜 보세요.”

고천수는 그를 대신해서 구명정을 내릴 준비를 했다.

“흑구랑 같이 타세요. 안에 들어가서 안전벨트 메시고요.”

그러면서 고천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까지 송하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송하나 씨, 내려오고 있습니까?”

『네네! 내려가고 있습니다! 5분만요!』

5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쿠구구구.

배에서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침몰하는 거 아냐?

-이 정도로?

-이미 기울고 있음.

“송하나 씨, 시간 없습니다. 빨리 오세요.”

다른 구명정도 있어서 기다려 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한 명이라도 일행을 늘리고 싶었다.

‘솔직히 너무하잖아.’

양민철 일행을 잃은 이후로 제대로 된 동료 영입을 못 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가기 전에 자그마한 파티 정도는 꾸릴 수 있어야 하건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미묘했다.

성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뭔가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고는 해도 몇을 데려가 볼 생각이었다.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 몇 명은 필요했다.

제 아무리 생존 능력이 뛰어나도 개인으로서 이겨낼 수 있는 재난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고천수는 기다렸다.

‘와라.’

쿠구구구.

배가 기우는 소리에 고천수는 일단 구명정 위에 올라탔다.

“고천수 씨!”

그 상태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송하나가 나타났다.

“다른 분들은?”

“선장님은 배에 남는다고 했고, 다른 분은 먼저 내려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쿠궁.

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고천수는 송하나를 구명정에 태우고 배와의 연결 다리를 끊었다.

“망할.”

버스기사 박창식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다들 꽉 잡으세요!”

고천수는 자리로 가 안전벨트를 매고는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그러고는 내부 장비를 통해 구명정을 바다 위로 내렸다.

첨벙!

구명정이 내려진 것을 확인한 고천수가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 엔진을 작동시켰다.

우우우웅.

느리게 출발하는 구명정.

고천수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늘어졌다.

“하아.”

그러는 고천수의 시야에 주영훈 상병과 송하나가 들어왔다.

‘뭐야, 이게.’

결국에 크루즈 선에서 내려 두 명과 같이 구명정을 타게 되었다.

크루즈 선에 오르기 전에 네 명이 있던 것과 비교하면 머릿수로는 완전히 대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위험 구간을 지나오지도 못했잖아.’

정보창을 켜 보니 달라진 내용이 없었다.

그 말인 즉, 크루즈 선에 타서 이득을 본 게 하나도 없다는 소리였다.

‘아니, 있기는 있나.’

흑구에게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물품을 확보하기는 했으니까.

“고천수 씨.”

송하나가 고천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선장님은 자기 배와 승객을 버릴 수 없다면서 자리에 남으셨어요.”

“…….”

“저는 선장님이 배에서 내리는 승객을 지켜야 한다고 해서 온 거고요.”

고천수는 혼자서 내려온 송하나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배에 남은 선장과 배영호도 모두 훌륭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지금 고천수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내용은, 그런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형님들.”

고천수는 시청자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맞는 겁니까?”

그는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감내하듯 주먹을 꽉 쥐었다.

“뭔가 이상한데 말입니다.”

반드시 크루즈 선을 탔어야 했을까.

내재돼 있던 선량함 외에 특색이 없던 선원들.

고천수가 들인 노력에 비해 그들에게서 건질 것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크루즈 선은 고천수 혼자의 능력으로 되살려내기엔 너무 거대한 재난 덩어리였다.

“흑구를 위해서 제가 크루즈 선에 타야 했을 수도 있지만, 득이 실보다 많은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답 좀, 부탁드립니다.”

유도당한 느낌.

살아남기 위한 것과는 그다지 관련 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한 기분이었다.

아니, 낭비 수준이 아니었다.

“형님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배에 오른 거긴 했지만, 고천수는 당장 눈에 보이는 지표를 따른 것뿐이었다.

이 세계가 등 떠미는 대로.

“설명을…….”

팔의 통증이 극심해졌다.

“끄으윽!”

눈앞이 붉어졌다.

고천수가 숨을 헉헉대는 사이 알림이 떠올랐다.

[경고. 생명이 위독합니다.]

“뭐……?”

고천수는 떨리는 팔을 들어올렸다.

상처가 곪고 있었다.

검붉은 무언가가 팔에서부터 시작해 어깨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크, 헉.”

고천수는 팔에 매어져 있는 매듭을 더 강하게 조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끙…….”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뭐야, 변하는 거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러게 팔 자르라고 했잖아. ㅋㅋㅋ

“고천수 씨, 왜 그러시죠?”

주영훈 상병이 안전벨트를 풀고 고천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고천수는 그런 그에게 팔을 내밀며 소리쳤다.

“고천수 씨, 무슨 일이에요?”

이상함을 느꼈는지 송하나도 고천수에게 묻다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고천수 씨, 그건……!”

팔에 있는 상처.

좀비에게 당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을 송하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렸다.

“하, 한도초과님.”

고천수는 타오를 것 같은 눈을 돌리며 겨우 채팅창을 쳐다보았다.

“괜찮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도초과] : 글쎄~?

말투가 바뀌었다.

고천수는 크게 숨을 삼켰다.

“괜찮다고, 하셨을 텐데요.”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도초과는 열혈 팬이었다.

여태까지 죽을 위기에서 구해 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신뢰를 하고 있었건만.

-[한도초과] :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천수야.

하지만 지금의 한도초과는 뭔가가 달라 보였다.

-[한도초과] : 네가 이렇게 되지 못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ㅉㅉ. 울부짖는정신병자 매니저 삼았을 때부터 알았어야지.

-닉부터가 제정신이 아닌뎈ㅋㅋㅋ

-둘이 한 패임.

뭐가 한 패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천수는 이제 몸을 뒤틀며 채팅창에서 시선을 돌렸다.

“쿠, 쿨럭!”

무릎이 꺾였다.

고천수는 기침을 하며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온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러니하게도, 눈은 자꾸만 감기려고 하고 있었다.

“쿨럭!”

[경고. 생명이 위독합니다.]

붉어진 시야는 마치 게임에서 피격을 받았을 때의 연출과 비슷했다.

고천수는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이런, 망할…….”

픽.

고천수는 의식은 어둠속으로 날아갔다.

***

번쩍.

마치 번개가 치듯 순간순간 고천수의 시야가 돌아왔다.

“으아아악! 고천수 씨!”

보이는 것은 주영훈 상병의 얼굴이었다.

“으악! 으아악!”

그는 고천수를 밀어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고천수는 그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달라붙어 이를 들이밀었다.

“으아아아아!”

주영훈 상병이 고천수를 발로 찼다.

뒤로 엎어진 고천수는 구명정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야는 붉었다.

하지만 고천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물어뜯고 싶다는 열망만 남았을 뿐.

“크어아.”

입에서 알 수 없는 괴성이 튀어나갔다.

시야 한편에 채팅창이 존재했지만 고천수는 글자를 읽지 못했다.

“크아아아아아!”

고천수가 다시 일어서는 사이, 주영훈 상병은 구명정의 측면 도어를 열어 버렸다.

“크아아!”

고천수가 그런 그를 붙잡으려고 할 때였다.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리커버리 스킬이 발동됩니다.]

[남은 시간 - 00:00:30]

알림 문구가 나타났다.

“고천수 씨! 이러지 마세요!”

주영훈 상병은 가까이 다가서는 고천수를 보며 소리쳤다.

“이러지 마세요! 제발…… 끄악!”

그렇게 외치던 주영훈 상병은 다시 한번 고천수에게 붙잡혀서 몸싸움에 가까운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으아아아!”

고천수의 공격을 피하려고 발버둥 치던 그는 결국 힘에 못 이겨 문밖으로 떨어져 버렸다.

풍덩!

“크아아아!”

고천수는 그런 그를 쫓지 못하고 한 번 크게 포효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은 시간 - 00:00:00]

뒤틀려 있던 몸이 갑자기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끅?”

반쯤 접혀 있던 무릎이 펴지고, 허리가 세워졌으며, 시야의 붉은빛이 점차 옅어졌다.

“뭐, 뭐가…….”

잃어버렸던 말도 나왔다.

“커헉.”

역겨운 것을 토해내듯 입안에 고여 있던 자신의 피를 뱉어낸 고천수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에 똑바로 설 수 있었다.

“뭐, 야…….”

온몸이 멀쩡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니야.”

몸이 뒤틀리면서 생겼던 상처는 다 회복되었지만, 팔에 있는 것만은 예외였다.

감염이 시작되었던 그 상처만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러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고천수는 주영훈 상병이 떨어진 문밖을 내다보았다.

“제기랄.”

불행히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어느새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드르륵.

급하게 레버를 돌려 구명정의 방향을 바꾸던 고천수의 눈에 송하나의 모습이 담겼다.

“…….”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의자에 가만히 늘어져 있었다.

‘설마…….’

잠시 좀비가 되었던 자신에게 물렸던 건 아닌가 싶어 고천수는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천수가 살아났어!

-나는 완전히 끝나버린 줄 알고…….(눈물)

-아, 조의금 봉투 만들고 있었는데 야발.

동시에 채팅창에서 올라오는 채팅창을 보며 고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살아났다고?’

그렇다는 얘기는 한 번 죽은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고천수는 순간 몸을 회복하면서 보았던 알림을 떠올렸다.

리커버리.

분명 그 스킬이었다.

“스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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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커버리 : 무언가에 감염되어 죽었을 시, 30초가 지난 후 감염이 일어나기 직전 단계로 회복합니다. 이때, 감염을 일으켰던 부상 자체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남은 횟수 1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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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되었다던 스킬의 내용이 나타나 있었다.

‘30초? 그 알림은 조금 늦게 떴는데……. 그럼 설마 내가 잠시 좀비가 되어 움직이는 게 해금 조건이었던 건가?’

고천수는 탄식하며 송하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만약 감염됐을 때의 자신에게 물렸다면 언제 어느 때에 좀비로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후우.”

떨어진 주영훈 상병을 구하는 게 급해서 구명정부터 움직였지만, 열린 문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찰랑.

도리어 파도가 쳐 구명정 안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고천수는 서둘러 문을 닫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망할.’

어느새 안개가 낀 바다.

주영훈 상병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고천수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도끼를 빼어 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든 지금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당장은 눈앞에 있는 위협을 제거해야 했다.

“송하나 씨?”

고천수가 불렀지만 송하나는 대답이 없었다.

여전히 미동도 없이 그냥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쪽에서 송하나에게서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그냥 기절해 버린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가지 마.

-그냥 냅둬.

그때, 채팅창에 묘한 채팅들이 올라왔다.

‘가지 말라고?’

시청자들은 고천수가 의식을 잃고 죽었을 때의 상황도 전부 보았단 말인가.

“형님들, 저 변했을 때 대체 뭘 한 거죠.”

추측은 가능했다.

주영훈 상병을 공격하던 장면이, 뇌의 기억 공간에는 확실히 남아 있었으니까.

“송하나 씨?”

별다른 답이 없는 시청자들을 놔두고 고천수는 송하나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였다.

“왁!”

송하나가 갑자기 일어나며 고천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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