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02화 (102/224)

102. 마스크를 써라 (6)

“찾았어?”

대답은 없었다.

잠시 고천수를 바라보던 흑구는 갑자기 뛰어가기 시작했다.

“찾았구나.”

고천수는 바로 통조림 캔을 챙기고 흑구를 따라나섰다.

-흑구 겁나 빠르네.

-같이 가, 욘석아!

빠르긴 했지만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가는 도중에 마주친 승무원이 고천수를 보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 씨, 대체 뭘…….”

승무원을 챙겨 줄 여력은 없었다.

계속해서 흑구를 따라가던 고천수는 기관실과 이어져 있는 어느 통로를 통과해서 뛰다가 어느 순간 멈춰 섰다.

“헉, 헉.”

내부는 뜨거웠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려니 숨쉬기가 버거웠지만, 고천수는 호흡을 정리하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것에 더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시발…….”

-와, 이게 뭐야.

-으, 극혐.

-웨에에에엑!

모두가 함께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짓이겨진 좀비더미였다.

크아아아.

크어어.

크아아아…….

서로 뒤엉킨 좀비들이 기계 설비에 끼어 있었다.

치이이이익.

망가진 유압관에서는 뭔가가 세차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천수는 손을 내밀었다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씨!”

유증기였다.

손에 맺히는 기름을 보면서 고천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고천수 씨! 잠깐만 기다…….”

뒤늦게 쫓아온 승무원이 고천수가 보고 있는 현장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멈춰 섰다.

“뭐, 뭐야, 이건!”

고천수와 같은 반응을 보인 그는 뭔가를 확인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기, 기관장님!”

그랬다.

좀비들은 모두 정비복을 입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좀비들은 기관장과 기관사들인 것이었다.

‘그냥 이렇게 됐을 리는 없어.’

고천수는 좀비들에게 다시 시선을 향했다.

구겨진 유압관들과 한꺼번에 짓이겨져 있는 좀비들.

마치 프레스에 눌려 버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크아아아아!

멀리서 우렁찬 괴성이 들렸다.

고천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망할……!”

레드 좀비.

그 녀석이 기관실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안 돼!”

고천수는 빠르게 뛰어갔다.

유일하게 남은 기관사를 보호해야만 했다.

“기관사님!”

마침내 그를 찾았을 때였다.

고천수는 뭔가가 다가서는 기척을 느끼고 도끼를 옆으로 뻗었다.

펑!

더스트였다.

고천수는 충격에 휘청거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컥!”

더스트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그것보다 중요한 건 기관사였다.

“고천수 씨!”

기관사가 달려와 소리쳤다.

“괜찮습니까?!”

“이 안에 위험한 놈이 있습니다. 일단 자리를 피해서 다시 정비 계획을…….”

펑!

그때였다.

또다시 이어진 충격에 밀려 벽에 몸을 박은 뒤에야, 고천수는 더스트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있었다.

-위다!

-위에서 떨어지고 있어!

고천수는 신음을 뱉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그냥 일반적인 천장이 아니라 복층 구조의 통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펑! 퍼엉!

더스트들은 거기에서 떨어져 내리며 고천수의 곁에서 터져 버렸다.

“크윽!”

수많은 먼지가 눈앞을 휘감았다.

열기가 차오른 이곳에서 이 정도의 분진은 위험했다. 고천수는 기관사를 찾기 위해 손을 뻗었다.

덥썩.

그리고 그것이 실착이었다.

크아아아아!

붙잡은 것은 이제 막 몸을 일으킨 레드 좀비였다.

더스트들과 함께 통로에서 떨어진 놈이었던 것이다.

타악!

곧장 속도를 높인 레드 좀비에게 떠밀리며 고천수는 입을 벌렸다.

“크으으윽!”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서부터 떠밀렸기에 아직 충격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갈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짧게 올려잡은 도끼로 레드 좀비의 몸을 후려팼다.

콰직!

한 방으로는 모자랐다.

고천수는 자신을 떠미는 레드 좀비에게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콰작! 콰직!

몇 방이나 얻어맞은 레드 좀비가 살짝 균형을 잃었다.

고천수는 벽에 몸을 박기 전, 가까스로 그런 레드 좀비를 밀쳐내고 옆으로 몸을 날릴 수 있었다.

콰앙!

휘청거리던 레드 좀비는 그대로 벽에 몸을 박았다.

고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끼를 더 휘둘렀다.

“……여덟, 아홉, 열!”

촤악!

버둥거리던 레드 좀비가 그대로 목을 베이며 절명했다.

“헉, 헉.”

고천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벽에 몸을 기댔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레드 좀비가 멀리서부터 돌진해서 왔다면, 이미 몸이 부서져 버렸을 수도 있었다.

“헉…….”

하지만 왜일까.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고천수는 고개를 밑으로 내렸다.

“아?”

팔에 상처가 있었다.

***

-야, 뭐야!

-레드 좀비한테 긁힌 거야?

-부딪혀서 난 상처 아님?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고천수는 숨을 크게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급하게 옷깃을 찢어낸 고천수가 서둘러 상처 부위 위로 매듭을 만들었다.

“큭!”

고천수는 허둥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상처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언제 생긴 거지?’

특정할 수 없었다.

주변으로 먼지가 짙게 깔렸고, 거기에 레드 좀비까지 갑자기 나타났던 터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상처가 언제 생긴 건지 알 수가 없던 것이다.

‘언제 생긴 거야!’

먼지가 상처에 닿지는 않은 건지 아니면 호흡기를 통하지 않으면 괜찮은 건지는 몰라도 일단 수면욕은 없었다.

다행히 분진 또한 열기에 터지지 않고 사라진 상태였다.

-야, 뭐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시청자들의 닦달에 고천수는 식은땀을 흘렸다.

-도끼 들어!

-더 늦어지면……!

시급했다.

무엇에 상처가 났는지, 역시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잘해 왔던 자신을 믿기에 이번 상처도 좀비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 고천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런 시발……!”

이딴 데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었다.

고천수는 도끼를 꽉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리고 내려치려던 순간,

『멈춰!』

목소리가 들렸다.

-[한도초과] : 멈춰, 고천수!

한도초과였다.

고천수가 멍한 표정을 그리자니 한도초과가 계속 말했다.

-[한도초과] : 괜찮아! 그냥 냅둬!

“예?”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천수가 물었다.

“그냥 두라고요?”

-[한도초과] : 어! 그냥 냅둬!

“보신 건가요?”

언제 상처가 났는지.

-[한도초과] : 비슷해!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고천수는 확신이 필요했다.

이 팔을 잘라내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시간 없습니다, 형님!”

늦게 팔을 잘라낸 이가 어떻게 됐는지 다들 봤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지체할 시간은…….

-[울부짖는정신병자] : 자르지 마.

-그래, 자르지 마!

-지금 자르면 어차피 죽어!

자르라는 시청자들과는 반대의 의견이 등장했다.

-안 잘라도 돼!

-자르지 마!

-[울부짖는정신병자] : 내가 다 처리해 뒀어. 알겠어?

무슨 말일까.

-[한도초과] : 천수야, 누나 못 믿어?

누나는 누가 누나인가.

고천수는 계속 혼란에 휩싸이며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까진…….’

아직까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냥 어디에 긁혀서 난 상처 그 이상의 그 이하의 고통도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괜찮은가?’

신뢰를 줄 수 있는 시청자들이 팔을 자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흐음…….”

온리원이 뭐라고 답변해 줄까 싶어 기다려 봤지만, 그는 침묵 중이었다.

이제 어쩔 수 없었다.

판단은 스스로의 몫이었다.

“흐아아아!”

고천수는 도끼를 높이 치켜세웠다.

-[한도초과] : 천수야!

후웅!

도끼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

하지만 비명이나 신음은 없었다.

도끼날은 허공을 긋고 그냥 아래로 내려왔다.

“……믿어 보겠습니다.”

고천수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가겠습니다.”

-진짜로?

-이대로 감?

시청자들 중 모두가 고천수를 지지하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믿음을 주는 시청자의 의견을 따르는 게 상식적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줄 수 있는 정황.

고천수도 아무것도 없이 말을 믿은 건 아니었다.

“기관사…….”

고천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기관사님?”

하지만 고천수가 보게 된 것은, 목이 꺾여 있는 기관사의 모습이었다.

“하.”

제대로 꼬여 버렸다.

“죽었잖아.”

위에서 떨어져 내린 더스트들의 폭발을 잘못 맞아 목이 나가 버린 듯했다.

왈!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려니 저쪽에 이제 막 도착한 흑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왜 이제 와 인마.”

늦게 온 흑구를 원망하려던 고천수는 순간 멈칫했다.

“그렇지, 참.”

흑구에게 다시 마스크를 씌워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유 때문에 흑구가 행동하는 데 망설임이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고천수 씨!”

승무원까지 나타나 고천수에게 달려왔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조진 거죠, 그냥.”

기관사는 죽었고 좀비가 된 기관장이 있는 곳에서는 유증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언제 어디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돌아가야겠습니다.”

고천수가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승무원이 어깨를 붙잡았다.

“그, 그냥 가다뇨! 그럼 배는……!”

“끝났습니다.”

이 배는 원래부터 이런 끝을 맞을 운명이었다.

고천수는 그 사실을 이제 깨달았다.

“구명정 타고 나가야 합니다.”

“……하, 하지만!”

“죽을 겁니까?”

고천수는 그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전 여기서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찌는 듯한 열기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천수는 주변에 떨어져 있던 흑구의 마스크를 찾아 다시 녀석에게 씌워 주었다.

“가자.”

그렇게 둘이 이동하기 시작하자 승무원은 잠시 주춤거리다가 곧 뒤를 따라왔다.

“송하나 씨, 지금 바로 거기 있는 분들 데리고 구명정으로 오세요.”

고천수는 가면서 송하나에게 무전했다.

『뭐죠? 수리에 실패했나요?』

“네.”

돌려말할 것도 없었다.

고천수의 말에 송하나는 잠시 답변이 없었다.

『그렇군요. 선장님께 얘기해 둘게요.』

“저희는 우현 3번 구명정으로 갑니다. 거기로 오시든지 탈출하든지 하세요. 이상.”

그대로 무전을 마무리한 고천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안 좋아.’

상황이 안 좋았다.

정보창을 다시 열어 보니 바다에는 위험한 몬스터가 있다는 정보가 아직도 떠올라 있었다.

지금 바로 구명정을 타도 될지는, 알 수가 없던 것이다.

구구구구.

하지만 고천수는 이내 결심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

최하층을 벗어나 위층으로 올라서자니,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배 뒤틀리는 거 아님?

-곧 뭐 터지려고 하는 듯.

-야야! 빨리 나가라! 여기 갇히면 뒈지겠다!

쾅!

그때였다.

굉음이 울리며 선체가 기우뚱했다.

“큭?”

뭐가 터진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사태가 심각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서둘러요!”

고천수의 외침에, 승무원은 어째서인지 도리어 걸음을 멈추었다.

“뭐합니까!”

“겨, 격벽 문을…….”

승무원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격벽 문을 닫아야 해요!”

“뭐라고요?”

“문이요!”

승무원은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혹시 벽이 터진 거면 격벽 문을 다 닫아야 해요! 문들이 많이 열려 있었어요! 닫아야…….”

“제정신입니까?”

지금 내려가면 죽을 게 확실했다.

“빨리 같이 올라가요. 어서!”

“닫고만!”

승무원은 기어코 몸을 돌려세웠다.

“닫고만 올게요!”

“이봐요!”

고천수의 외침도 소용없었다.

승무원은 그대로 다시 최하층으로 내려갔다.

“제기랄…….”

붙잡으러 갈 수는 없었다.

-책임감 넘치네.

-승무원 한 명이서 뭘 어쩌겠다고.

-ㅜ,ㅜ

왈!

흑구가 옆에서 고천수의 걸음을 재촉했다.

고천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니, 전력으로 위를 향해 달려갔다.

아아.

아아아.

큰 충격 때문인지, 도처에 숨어 있던 더스트가 튀어나올 조짐을 보였다.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고천수는 마침내 배영호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여전히 피 때문에 두 눈을 감은 채로 배영호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잘 안 됐습니다.”

고천수는 솔직하게 답했다.

“여기서 올라가야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요?”

“다 죽었고, 한 명은 문을 닫는다면서 돌아갔습니다.”

고천수는 배영호의 팔을 붙잡았다.

“가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

하지만 배영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 명이, 남았다고요?”

“네! 하지만 곧 죽을 겁니다!”

고천수는 다시 한번 배영호에게 말했다.

“가야 한다고요!”

“먼저 가세요.”

그런 고천수에게 배영호가 답했다.

“저는 나중에 갈게요.”

아아아.

아아아아아.

폭음에서 도망치듯, 더스트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소리.

“가세요.”

배영호는 고천수를 떠밀었다.

“버리고는 못 가요.”

그 말이 고천수를 움직이게 했다.

“전 버릴 건 버립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고천수는 그를 향해 한 마디를 남겼다.

“그래도 만난 기억까지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고맙네요.”

배영호는 엇갈리는 고천수를 보며 전언을 남겼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고천수 씨.”

고천수는 배영호를 놔두고 혼자 계단을 올라갔다.

펑! 퍼엉! 펑!

뒤에서는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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