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01화 (101/224)

101. 마스크를 써라 (5)

최하층.

드디어 그곳에 다다른 일행의 앞에, 일반적인 선실 통로와 다르게 골조가 그대로 노출된 넓은 길이 나타났다.

-어떻게든 여기까지 내려왔네.

-아직까진 특별한 게 안 보여.

-어디 숨어 있는 걸지도 모름.

일행들과 함께 내려오면서 고천수는 아직 특별한 위협은 마주하지 못했다.

‘이 안에 있는 건가?’

통로를 조금 걸어가자 거대한 벽과 함께 닫혀 있는 문이 하나 보였다.

고천수는 먼저 다가가 거기에 달려있는 창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차동진……!’

주영훈 상병의 말 대로였다.

닫힌 문 안쪽에 차동진이 쓰러져 있었다.

‘더스트는?’

고천수는 시선을 돌려보았지만 특별한 건 찾지 못했다.

“저희도 봐도 됩니까?”

승무원들이 고천수의 곁으로 와 물었다.

고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차례대로 안을 살폈다.

“진짜 사람이…….”

“다른 건 안 보이는군요.”

승무원들은 창문 안쪽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통로의 문을 열었다.

덜컥.

열리는 문을 따라 거기에 기대고 있던 차동진이 스르륵 쓰러졌다.

“이분이…….”

승무원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고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쭈그려 앉아 차동진의 상태를 살폈다.

‘역시 죽진 않았지만…….’

수면 상태에 빠져 있었다.

고천수는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형님들, 이 상태의 사람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없어.

-아니, 없지는 않지 머저리 색햐. 뒤에 치료제 나오잖아.

-그럼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븅신아. 갑자기 시비여.

“또 시작이시네.”

고천수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치료제가 없다면 그로서도 뭘 어쩔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차동진 씨.”

좀 더 친해졌으면 좋았을 테지만, 이런 세계에서는 원래 이타적인 사람이 생존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고천수는 그에게 존경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이내 승무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는 여태까지 마주치지 못했던 더스트를 만나게 될 확률이 높았다.

“이 안에 들어가면 기관사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에 더스트의 폭발에서 먼지를 걸러낼 수 있다고 해도, 그 폭발력 자체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경각심을 가지고 이 안으로 진입해야 했다.

“괴물들 사이에서 기관사님을 반드시 지켜 주세요. 점검하고 수리를 끝내는 데 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니까 각오하시고요.”

고천수의 말에 승무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엿듣고 있던 기관사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먼저 가겠습니다. 고천수 씨는 기관사님과 뒤를 따라오세요.”

그렇게 말한 승무원들이 먼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최하층이라고는 해도 거대한 배인 만큼 통로의 너비는 상당했다.

일반적인 학교 복도의 2배는 될 것 같은 크기였다.

크아아아아!

어디선가 괴성이 들렸다.

고천수는 도끼를 돌려 잡았다.

승무원들도 긴장하며 쇠파이프를 꽉 쥐었다.

크아아!

나타난 건 일반 좀비 한 마리.

제일 앞서가던 승무원이 빠르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좀비의 머리를 때렸다.

콰직!

좀비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콱! 콰직!

승무원들은 쇠파이프를 휘둘러 바닥에 쓰러진 좀비를 확인 사살해 버렸다.

“헉, 헉…….”

당장의 위협은 제거했지만 승무원들은 유달리 지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디에 있는 거냐…….’

고천수는 눈을 빠르게 굴리며 주위를 살폈다.

분명히 이 안에 더스트가 존재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으르르르.

그때였다. 흑구가 경계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고천수는 고개를 돌렸다.

아아.

인영이 있었다.

작은 사람 형태를 한 무언가가 입을 벌린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어?”

승무원들이 놀라 움츠러드는 사이, 그 무언가는 갑자기 전력으로 이쪽에 달려왔다.

“으아아! 시발!”

콱!

승무원 중 한 명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그것을 때려 버렸다.

퍼엉!

폭발.

이미 너무 가까이 붙었던 것일까.

맞자마자 터져 버리는 그것의 먼지에 휩싸이며 승무원이 옆으로 크게 밀려나 넘어졌다.

“큭……!”

그사이 먼지는 허공으로 넓게 퍼졌다.

흡사 밀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

색깔은 잿빛에 가까운 그 분진에 일행들 모두가 팔을 휘둘러댔다.

‘생각보다 더 넓게 퍼져.’

고천수는 잠시 숨을 참고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망할……!”

“엿 같은 괴물 자식!”

일행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멀쩡했다.

마스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리라.

“후.”

고천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면서 넘어진 승무원에게 향했다.

“괜찮습니까?”

“네, 저는 괜찮…… 저, 저기!”

그때였다. 고천수가 승무원이 뻗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니 그것, 더스트가 2마리가 더 나타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아.

아아아.

더스트들은 붉은 눈을 빛내며 비척대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더럽게 못 생겼네.”

아아아아!

더스트들은 그 모욕적인 언사를 참아 줄 수 없다는 듯, 빠르게 달려왔다.

“이런……!”

한 마리는 아직 멀쩡하게 서 있던 다른 승무원에게 향했다.

퍼엉!

그리고 그 승무원이 쇠파이프를 제대로 휘두르기도 전에 달라붙어 터져 버렸다.

“컥!”

쿠당탕!

폭발력에 밀린 그가 벽까지 밀려나 머리를 크게 부딪쳤다.

아아아!

나머지 한 마리의 더스트가 고천수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으르르릉!

하지만 더스트는 고천수에게 닿지 못했다.

퍽!

달려든 흑구가 더스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던 것이다.

퍼엉!

그 충격에 타이밍이 어긋난 것인지 더스트는 그대로 바닥에서 터져 버렸다.

후우우우.

먼지가 위로 조금 솟구치다가 옆으로 살짝 퍼져 나갔다.

“……너.”

고천수가 놀란 표정을 짓자 흑구가 옆으로 와 뱅글뱅글 돌았다.

-와, 흑구 지능 실화?

-흑구: 새꺄, 빨리 쓰다듬어 줘! 칭찬해 달라고!

-돌았네.

시청자들의 성화대로 흑구를 멍한 표정으로 쓰다듬어 준 고천수는, 순간 정신을 퍼뜩 차리고 벽에 머리를 부딪쳤던 승무원에게 달려갔다.

“저기, 괜찮…….”

“컥, 커헉.”

괜찮지 않았다.

머리를 다친 승무원은 몸을 미친 듯이 떨어대고 있었다.

“이런, 씨…….”

심지어 그의 마스크는 충격 때문인지 살짝 벗겨져 있었다. 그 틈으로 먼지가 조금 유입된 것인지, 그의 핏줄이 마구 튀어 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옆으로 다가온 기관사가 함께 그의 상태를 살피고 숨을 삼켰다.

“이건…….”

“이미 늦었습니다.”

고천수는 그를 놔두고 기관사와 다른 승무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가야 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차피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지 않았던가.

기관실만은 반드시 정리해야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나가떨어졌다고 해서 망설일 수는 없었다.

“빨리요.”

승무원 1명, 기관사 1명.

그리고 흑구.

고천수는 얼마 없는 일행들을 챙겨 다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기관사님,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앞에 갑자기 벽이 나타나면서 문이 2개가 나타났다.

고천수의 물음에 기관사는 재빠르게 오른쪽 문을 가리켰다.

“저, 저쪽입니다.”

여태 어느 정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기관사도 긴장이 되었는지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덜컥.

승무원이 먼저 달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머지는 지체할 것 없이 그를 뒤따랐다.

“저쪽!”

뒤에서는 기관사가 계속 방향을 지시해 줬다.

그렇게 일행은 공장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기관실로 진입할 수 있었다.

“문은 닫아 주세요!”

들어온 통로의 문을 닫아 달라고 요청한 기관사는 이제 선교로부터 이어지는 장비부터 체크하더니, 어딘가로 빠르게 달려갔다.

-[한도초과] : 천수야, 근데 조심해.

갑자기 보인 채팅에 고천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뭘 말입니까?”

-[한도초과] :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에 잘 못 느끼는 것도 있을 수 있어.

그게 뭔가 하다가 고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고천수는 이를 바득거렸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이 배를 고쳐 제주도까지 정상적으로 운행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설마설마.”

그는 기관사가 간 방향으로 따라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주영훈 상병을 구명정에 보내 두기는 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상정 외였다.

“흑구야.”

고천수는 흑구의 마스크를 붙잡으며 말했다.

“한 번만 부탁해도 되냐.”

마스크를 씌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또다시 더스트가 나타나면 흑구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

사실상 주인이 된 사람으로서는, 벗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네 후각이 필요해.”

이런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후각 능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름때가 묻어 있는 이곳에서 문제가 있는 장소를 찾아내려면, 사람의 후각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와, 흑구 거 벗기려고?

-흑구 거 벗겨서 비상용 마스크 구비. 쌉이득.

인성질은 아니었다.

고천수가 그만큼 흑구에게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 할 수 있잖아. 그치?”

결코 평범한 개는 아니었다.

그것만은 고천수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스륵.

고천수가 마침내 흑구의 마스크를 벗기자 옆에 있던 승무원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천수 씨!”

“괜찮습니다!”

그리고 고천수는 흑구의 목걸이도 풀어 주려고 했다. 크기가 좀 큰 편이라, 복잡한 기관실을 오가다 어디에 잘못 걸릴까 봐서였다.

으르르.

하지만 흑구가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으르르르.

고천수에게 이빨을 드러냈던 것이다.

“뭐야. 싫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싫다는데 억지로 이것까지 벗길 이유는 없었다.

“좋아. 이것만 부탁할게.”

고천수는 흑구의 코를 두드렸다.

“이상한 냄새 맡으면 알려 줘.”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천수는 흑구를 3초 정도 지그시 바라보았다.

왈.

흑구는 중얼거리듯 작게 짖었다.

그러더니 고천수의 손을 떠나 어딘가로 달려갔다.

“저, 저렇게 보내도 되는 겁니까?”

승무원이 걱정스럽게 묻는 것을 보고 고천수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럼요.”

그렇게 해서 잘못될 거였으면 이미 잘못됐다.

흑구는 여태까지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능력이 있음을 이미 입증했다.

지금은 믿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응……?”

그러던 고천수에게 또 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뭐야.”

곰 인형이었다.

고천수는 그 곰 인형을 보며 탄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너 여기에도 있는 거냐?”

그러면서 걸음을 옮기는 고천수를 보며 승무원이 급하게 외쳤다.

“고천수 씨! 어디 가는 겁니까!”

“잠시만 계세요.”

고천수는 갑자기 나타난 온리베어를 얼른 따라갔다.

보급함에서 나오는 물품 중에 여태 쓸데없는 것은 없었다. 이런 장소에서 나오는 아이템이라면, 더욱 중요한 것일 확률이 컸다.

“거기냐.”

고천수는 어떤 장비들 옆에 있는 보급함을 찾아냈다.

보급함에 손을 대자니 온리베어는 간곳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지?”

보급함에 그려져 있는 것은 개와 고양이 표시였다.

-드디어 천수도 이걸 보네.

-와, 이거 20젠이나 함.

-애견인의 문턱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태까지의 보급함과는 달랐다. 다시 봐도 칼이나 방패 표시 같은 건 없었다.

‘진짜 동물한테 쓰는 거라고?’

애완동물을 데리고 탈 수 있는 배, 사람의 것과 함께 구비돼 있던 개와 고양이의 마스크들, 그리고 이 보급함까지.

“이거 역시 우연은 아니군요.”

여기까지 오는 길은 고천수가 선택했기에 흑구를 만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물건이 구비되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랬군.’

뭐든 간에 고천수는 여기에 데려올 수 있는 기회가 있던 거고, 흑구는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덜컥.

고민할 것도 없었다.

74젠이나 있으니 20젠은 우스웠다.

“이건…….”

안에 들어있던 것은 웬 정체불명의 통조림 캔 하나였다.

왈!

그때였다.

흑구가 돌아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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