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게 종말은 게임이다-100화 (100/224)

100. 마스크를 써라 (4)

“흐아아아아악!”

곧장 비명이 터져나왔다.

콰득!

갑자기 나타난 좀비 한 마리가 배영호의 얼굴에서 뜯어간 무언가를 그대로 씹어먹었다.

‘이런……!’

고천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도끼로 좀비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쿡.

좀비는 괴상한 단말마를 내지르고 곧장 바닥으로 쓰러졌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흐으으으윽!”

이어서 신음과 비명을 토해내는 배영호의 입을, 고천수가 손으로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요!”

“흐읍! 흡!”

고통에 몸부림치는 배영호를 보며 고천수는 낮게 소리쳤다.

“조용히!”

“흡…….”

배영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내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고천수는 주위를 살폈다.

‘괜찮은 건가……?’

다행히도 바로 몰려드는 다른 몬스터들은 없어 보였다.

“이, 이런 젠장.”

“괜찮은 겁니까?”

승무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눈치를 보며 말했다.

‘괜찮을 리가 있나.’

고천수는 다시 배영호를 바라보았다.

배영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당장은 고통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변이의 증상으로 이유가 바뀔지도 몰랐다.

-야, 빨리 대가리 쳐 버려!

-뭘 망설여!

-곧 좀비로 변한다구!

고천수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승무원들이 고천수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 잠깐!”

“뭐 하려는 겁니까!”

“놓으세요.”

고천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물리면 변합니다. 한 번도 못 보시진 않았을 텐데요.”

하지만 승무원들은 배영호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죽이는 건……!”

누가 죽인다고 했던가.

“안 죽을 테니까 놓으라고요.”

고천수는 승무원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그 위압감에 승무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순간, 고천수는 배영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배영호는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피부가 뜯긴 건 아니었다.

‘고글이 깨졌어.’

좀비의 이빨에 고글만 깨져 나가면서 얼굴에 부상을 입은 듯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임?

-안 물린 거.

-그냥 맹인 된 거냐?

배영호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고천수는 그런 그에게 물었다.

“배영호 씨, 괜찮습니까?”

“누, 눈이…….”

역시 멀쩡하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배영호 씨를 두고 갈 겁니다.”

고천수는 배영호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서 배영호를 챙기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자, 가죠.”

고천수가 배영호를 두고 걸음을 옮기자 승무원들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 잠깐. 이대로요?”

“데리고 가야…….”

“일부터 해야 합니다.”

기관사가 승무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상을 입을 때마다 안전한 곳에 옮겨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여기까지 내려왔으니 빨리 기관실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잔인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망설이는 동료 승무원들에게, 배영호가 신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가세요.”

그는 벽에 기댄 채로 동료들에게 손짓했다.

“빨리 가서 배를 고치고 오세요.”

“하지만…….”

“얼른.”

배영호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안 지키면 누가 지켜요.”

선원은 배와 승객을 위해 헌신한다.

“제발 가세요.”

배에 오르며 모두는 약속을 했다.

“그래야 절 도와주러도 빨리 올 테니깐요.”

여기까지 듣고서도 멈춰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금방 오겠습니다.”

동료들은 결국 발걸음을 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선원의 임무가 우선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곁에 따라붙은 걸 보고 고천수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벌써 한 명 리타이어.’

아직 하부로는 내려가지도 않았다.

‘간간이 일반 좀비들이 보여.’

유람선에 탄 사람 수에 비해서는 적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좋아할 일은 아니지.’

사람들이 깨지 않는 잠에 들었기 때문에 이런 좀비가 적은 것이었다.

‘대체 그놈은 어디에…….’

콰직!

어디선가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고천수는 일행들을 보며 손을 뻗었다.

“뭐, 뭡니까.”

의문을 표하는 일행들을 보며 고천수는 검지를 입술에 올렸다.

‘뭔 소리지?’

타격음이었다.

심지어 소리가 몇 번 더 울리고 있었다.

콱! 콰직!

고천수는 흑구를 내려다보았다.

-왜? 흑구 밀어버리게?

-ㅋㅋㅋㅋ 미끼로 쓰려는 듯.

-언젠 제주도까지 같이 가자몈ㅋㅋㅋㅋ

그런 게 아니었다.

고천수는 수신호까지 알아먹는 이 개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 것이었다.

“흑구야.”

그리고 마침내 귓가에 대고 이렇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보고 와.”

그러면서 엉덩이를 떠밀자 흑구가 주춤하며 고천수를 올려다보았다.

-ㅋㅋㅋㅋㅋ 기껏 생각해낸 게.

-흑구 놀랐잖앜ㅋㅋㅋ

-흑구 : 뭐지? 왜 엉덩이 만지지? 화나네?

하지만 시청자들의 놀림과는 다르게 흑구는 고천수를 빤히 쳐다보더니, 곧 걸음을 움직였다.

‘간다……!’

고천수가 눈을 크게 뜨는 사이, 흑구는 놀랍게도 코너를 돌아 소리가 들린 쪽으로 사라졌다.

그러더니 오래잖아 고천수의 곁으로 돌아왔다.

꾸욱.

흑구는 고천수의 바짓자락을 물어서 끌어당겼다.

“뭐. 따라오라고?”

당연한 얘기지만 흑구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고천수의 바짓자락을 계속 끌어당길 뿐이었다.

콱!

그러는 동안 타격음은 또다시 계속됐다. 고천수는 흑구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콰악!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주영훈?!’

처음 배를 탔을 때 헤어졌던 주영훈 상병이 몰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쇠막대기 하나를 휘두르고 있었다.

콰직!

주영훈 상병은 겁에 질린 표정이 역력했지만,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 더 큰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주영훈 상병은 몰려드는 좀비들만 착실하게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저러다간 당하겠어!”

“도와줘야 돼!”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승무원들이 먼저 뛰쳐 나갔다.

툭.

따라서 달려 나가려던 기관사는 고천수가 팔을 들어서 막았다.

“잠시만요.”

기관사는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었다. 위험한 상황에 그냥 뛰어들게 할 수는 없었다.

콱! 콰작!

승무원들이 참여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바뀌었다.

좀비들 대여섯에게 둘러싸여 위험했던 주영훈 상병은, 갑작스러운 협력에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콰직!

마지막 좀비가 바닥에 쓰러졌다.

승무원들은 크게 숨을 몰아쉬며 주영훈 상병을 돌아보았다.

“다, 당신들은…….”

주영훈 상병은 바보처럼 중얼거리다가 순간 몸을 멈칫했다.

고천수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주영훈 상병, 살아 있었군요.”

고천수는 주영훈 상병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아래에 내려가지 마세요.”

상황이 정리된 뒤, 주영훈 상병은 고천수 일행의 행선지를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려가면 안 돼요.”

“왜죠?”

“그놈이 있으니까.”

고천수의 물음에 주영훈 상병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놈?”

“네. 그놈이요.”

고개를 갸웃하는 고천수를 보며 주영훈 상병은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제가 처음에 쫓아갔던 사람 있잖아요. 아이라고 생각했던……. 그거, 괴물이었어요.”

그 내용은 고천수가 이미 상상하고 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람 몸에 달라붙더니 터져 버리더라고요. 터지고 나서는 이상한 먼지 같은 걸 흩뿌리고.”

“먼지……!”

승무원들과 기관사가 각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거 더스트였네. 변종 좀비 쉑.

-주영훈 얘도 기관실 쪽 갔던 건가?

-더스트들 뜨거운 거 좋아해서 거기 몰려있을 텐데.

지금까지 왜 더스트를 만나지 못했는지, 고천수는 그 이유를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더스트. 그놈이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고 금방 아래로 내려갔던 건가.’

그러고 보니 수면에 빠진 사람들은 무방비가 된 것 치고는 아직 죽지 않은 상태가 대다수였다.

그 말인 즉, 사람들이 수면에 빠진 시간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내려가지 마세요. 위험해요.”

“네, 위험한 건 알겠습니다.”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주영훈 상병에게, 고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데 그걸 봤다는 건 괴물과 맞닥뜨렸다는 얘기일 텐데, 그쪽은 어떻게 멀쩡한 겁니까?”

“아, 저는…….”

주영훈 상병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린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분이 살려 줬어요.”

“그분? 차동진 씨?”

“네, 맞아요. 제가 따라갔던 그 분이요.”

한숨을 쉰 주영훈 상병은 좀 더 상세하게 내용을 설명했다.

“우리가 그 괴물이 아이가 아니란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어요. 좁은 통로에서 위기에 빠졌죠.”

“그럼…….”

“그분이 통로 문을 닫고 괴물을 상대해 준 덕분에 전 괜찮았어요. 근데 그분은 괴물이 터지고 난 뒤에 나온 먼지를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쓰러졌죠.”

수면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창문으로 그분이 쓰러진 게 보였지만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 먼지가 남아 있는지도 알 수가 없어서……. 몹쓸 짓을 한 거죠. 제가 그분을 버렸어요.”

“아닙니다. 어쩔 수 없었을 테니까요.”

고천수도 수면 상태의 사람들과 맞닥뜨린 경험이 없었다면, 접촉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저희도 그런 괴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서 이렇게 준비를 하고 온 겁니다.”

고천수가 마스크를 툭툭 두드리자 주영훈 상병이 헛웃음을 뱉었다.

“그렇네요. 사실 그 마스크 때문에 누군지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고천수 씨 특유의 눈매가 아니었다면…….”

“눈매?”

-ㅋㅋㅋㅋ 양아치 눈매 얘기하는 듯.

-고글 써도 레이저 광선급이긴 하지.

-[한도초과] : 천수 눈매 선한데.

다른 말은 버틸 수 있었지만 고천수는 한도초과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한도초과] : 앗! 진짜야!

“네, 제 눈매가 좀 눈에 띄긴 하죠.”

애써 한도초과를 무시하며 고천수는 주영훈 상병에게 말했다.

“아무튼 마스크는 저희만 가지고 있으니까, 주영훈 상병은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하지만…….”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자기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니까.”

이기적인 것만 아니라면 자기 자신부터 챙길 필요가 있었다.

“이쪽으로 가세요. 가다 보면 승무원 한 명 보일 텐데, 그 사람은 좀 챙겨서 가고요.”

“으음.”

“참.”

고천수는 주영훈 상병에게 당부했다.

“가면 다른 데로 가지 말고 우리가 왔던 구명정으로 가세요.”

“구명정……이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주영훈 상병을 보며 다른 일행들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구명정이라뇨?”

“지금은 그거 타면 위험해요.”

“바다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역시 다들 바다에 뭔가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뭐, 구명정을 타고 도망가라고 안 하는 거겠지.’

배를 지켜야 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구명정 탈출 옵션을 아예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건, 배의 레이더든 뭐든 간에 감지망에 뭔가 걸린 적이 있다는 사실과 진배없었다.

“만약을 위해서입니다.”

고천수는 다시 주영훈 상병에게 말했다.

“긴 말 안 할 테니까 거기로 가 있으세요. 구명정 바로 내리란 건 아니고, 그냥 그쪽에만 가 있으라는 얘기예요.”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주영훈 상병은 고천수의 활약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었다.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시간을 더 버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아.”

주영훈 상병은 탄식하며 대꾸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에 상황이 촉박함을 알아먹은 모습이었다.

주영훈 상병은 아주 잠깐 쭈뼛거리는 것을 끝으로, 고천수 일행들에게 고개를 숙인 뒤 뛰어갔다.

“다, 다들 살아서 뵈어요.”

그렇게 주영훈 상병은 곧 달려가며 모습을 감추었다.

“…….”

남은 것은 적막뿐.

구명정을 언급한 고천수를 보며, 일행들이 각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기관실.’

고천수는 속으로 행전지를 곱씹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겁나게 불안한 울림이야.’

정보창에 뜬 내용이 괜히 있을 리는 없었다.

바다에 뭐가 있든지 간에 한 번 맞닥뜨릴 일이 있는 거라면…….

“갑시다.”

고천수는 마스크 끈을 고쳐 매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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